진하 (전한)
1. 개요
진하는 전한 초기의 인물로, 탕군 출신으로 유방을 섬기며 좌사마로 한나라에 들어갔다. 이후 한신 휘하에서 활약하며 해하 전투에서 공취와 함께 항우를 공격하여 초나라를 대파하는 데 기여했다. 회계, 절강, 호양 일대를 평정하여 고제 6년(기원전 201년)에 열후에 봉해졌으며,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사망했다. 그의 아들 진상이 작위를 계승했고, 증손 진교가 가문을 다시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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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80년 사망 -
여록
여록은 전한 고황후 시기에 고황후의 신임을 받아 군권을 장악하고 조왕에 봉해지는 등 막강한 권력을 누렸으나, 고황후 사후 여씨 일족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주살된 여씨 일족의 핵심 인물이다. -
기원전 180년 사망 -
고황후
고황후 여치는 전한 고조 유방의 황후이자 혜제 유영의 어머니로, 섭정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여씨 일족을 중용하는 등 전횡을 일삼다 사후 여씨 일족이 몰살당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탕군에서 사인(舍人)으로 처음 고제를 섬겼고, 좌사마(左司馬)로서 한나라에 들어갔다. 이후 한신에 속해 전공을 세워 장군이 됐다. 해하 전투에서는 우군을 맡아 전군을 맡은 한신이 항우와 싸워 불리해 물러나자 좌군을 맡은 공취와 함께 항우를 쳤다. 초군이 불리해지자 한신이 되돌아와 싸워 초군은 대패했다. 이후 회계·절강·호양 일대를 평정했다. 이 공적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1년) 열후가 되었다.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죽어 아들 진상(陳常)이 뒤를 이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탕군에서 사인(舍人)으로 처음 고제를 섬겼고, 좌사마(左司馬)로서 한나라에 들어갔다. 이후 한신에 속해 전공을 세워 장군이 되었다. 해하 전투에서는 우군을 맡아 전군을 맡은 한신이 항우와 싸워 불리해 물러나자 좌군을 맡은 공취와 함께 항우를 쳤다. 초군이 불리해지자 한신이 되돌아와 싸워 초군은 대패했다. 이후 회계·절강·호양 일대를 평정했다. 이 공적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1년) 열후가 되었다.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죽어 아들 진상(陳常)이 뒤를 이었다.
2.2. 한신 휘하에서의 활약
탕군(碭郡)에서 사인(舍人)으로 처음 고제를 섬겼고, 좌사마(左司馬)로서 한나라에 들어갔다. 이후 한신에 속해 전공을 세워 장군이 됐다. 해하 전투에서는 우군을 맡아 전군을 맡은 한신이 항우와 싸워 불리해 물러나자 좌군을 맡은 공취와 함께 항우를 쳤다. 초군이 불리해지자 한신이 되돌아와 싸워 초군은 대패했다. 이후 회계·절강·호양 일대를 평정했다. 이 공적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1년) 열후가 되었다.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죽어 아들 진상(陳常)이 뒤를 이었다.
2.3. 해하 전투
탕군에서 사인(舍人)으로 처음 고제를 섬겼고, 좌사마(左司馬)로서 한나라에 들어갔다. 이후 한신에 속해 전공을 세워 장군이 됐다. 해하 전투에서는 우군을 맡아 전군을 맡은 한신이 항우와 싸워 불리해 물러나자 좌군을 맡은 공취와 함께 항우를 쳤다. 초군이 불리해지자 한신이 되돌아와 싸워 초군은 대패했다. 이후 회계·절강·호양 일대를 평정했다. 이 공적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1년) 열후가 되었다.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죽어 아들 진상(陳常)이 뒤를 이었다.
2.4. 회계·절강·호양 평정
좌사마(左司馬)로서 한나라에 들어갔으며, 이후 한신에 속해 전공을 세워 장군이 되었다. 해하 전투에서는 우군을 맡아 전군을 맡은 한신이 항우와 싸워 불리해 물러나자 좌군을 맡은 공취와 함께 항우를 쳤다. 초군이 불리해지자 한신이 되돌아와 싸워 초군은 대패했다. 이후 회계·절강·호양 일대를 평정했다. 이 공적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1년) 열후가 되었다.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죽어 아들 진상(陳常)이 뒤를 이었다.
2.5. 열후 책봉과 죽음
탕군에서 사인(舍人)으로 처음 고제를 섬겼고, 좌사마(左司馬)로서 한에 들어갔다. 이후 한신에 속해 전공을 세워 장군이 됐다. 해하 전투에서는 우군을 맡아 전군을 맡은 한신이 항우와 싸워 불리해 물러나자 좌군을 맡은 공취와 함께 항우를 쳤다. 초군이 불리해지자 한신이 되돌아와 싸워 초군은 대패했다. 이후 회계·절강·호양 일대를 평정했다. 이 공적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1년) 열후가 되었다.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죽어 아들 진상(陳常)이 뒤를 이었다.
3. 후손
문제 원년(기원전 179년), 아들 공후(共侯) 진상이 작위를 이었다. 경제 2년(기원전 155년), 진상의 아들 진언(陳偃)이 뒤를 이었으나, 경제 중2년(기원전 148년) 죄를 지어 작위가 박탈되었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 진하의 아들 진최(陳最)가 소후(巢侯)에 봉해져 가문을 이었으나, 이듬해에 죽어 봉국이 폐지되었다.
원강 4년(기원전 62년), 진하의 증손인 무릉상조(茂陵上造) 진교(陳僑)가 조서를 받들어 가문을 일으켰다.
3.1. 아들 진상
문제 원년(기원전 179년), 아들 공후(共侯) 진상이 작위를 이었다. 경제 2년(기원전 155년), 진상의 아들 진언(陳偃)이 뒤를 이었으나, 경제 중2년(기원전 148년) 죄를 지어 작위가 박탈되었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 진하의 아들 진최(陳最)가 소후(巢侯)에 봉해져 가문을 이었으나, 이듬해에 죽어 봉국이 폐지되었다.
원강 4년(기원전 62년), 진하의 증손인 무릉상조(茂陵上造) 진교(陳僑)가 조서를 받들어 가문을 일으켰다.
3.2. 손자 진언
문제 원년(기원전 179년), 진하의 아들 공후(共侯) 진상이 작위를 이었다. 경제 2년(기원전 155년), 진상의 아들 진언(陳偃)이 뒤를 이었으나, 경제 중2년(기원전 148년) 죄를 지어 작위가 박탈되었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 진하의 아들 진최(陳最)가 소후(巢侯)에 봉해져 가문을 이었으나, 이듬해에 죽어 봉국이 폐지되었다. 원강 4년(기원전 62년), 진하의 증손인 무릉상조(茂陵上造) 진교(陳僑)가 조서를 받들어 가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