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B. 스미스
1. 개요
찰스 B. 스미스는 미국의 군인으로, 1916년 출생하여 1965년 준장으로 퇴역했다. 그는 1941년 진주만 침공 당시 군인 훈장을 받았고,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특히 한국 전쟁 발발 직후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를 이끌고 오산 죽미령 전투에 참전하여 수훈 십자장을 받았으며, 이후에도 한국에서 은성 훈장을 받았다. 퇴역 후에는 모토로라에서 근무했으며, 한국을 방문하여 참전 용사들을 기렸다. 그는 대한민국으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고, 2004년 사망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름 | 찰스 브래드퍼드 스미스 |
|---|---|
| 출생일 | 1916년 5월 7일 |
| 출생지 | 뉴저지주 램버트빌 |
| 사망일 | 2004년 5월 27일 |
| 사망지 |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
| 별명 | Brad |
| 복무 기간 | 1939년 ~ 1965년 |
|---|---|
| 최종 계급 | |
| 주요 참전 전투 | 제2차 세계 대전 진주만 공격 한국 전쟁 오산 전투 |
| 서훈 | 수훈십자장 육군공로훈장 은성훈장 리전 오브 메리트 군인훈장 한국 태극무공훈장 |
| 지휘 | 제24보병사단 제21보병연대 제1대대(스미스 부대) 제3보병사단 제15보병연대 |
| 부대 | Task Force Smith |
|---|---|
| 연대 | 15th Infantry Regiment |
-
뉴저지주 출신 -
재러드 쿠슈너
재러드 쿠슈너는 미국의 사업가, 투자자, 부동산 개발업자, 신문 발행인이자 도널드 트럼프의 사위이며 전 미국 대통령 수석 고문으로, 쿠슈너 컴퍼니즈 CEO로서 부동산 사업을 확장하고 트럼프 행정부에서 다양한 정책 분야에 관여했으며, 현재는 투자 회사 애피니티 파트너스를 설립하여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 -
뉴저지주 출신 -
그로버 클리블랜드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미국의 22대, 24대 대통령으로, 민주당 소속이며 연속되지 않은 두 번의 임기를 수행한 유일한 인물로서, 정직성과 청렴성을 강조하며 부패에 맞서 싸웠고 관세 인하와 재정 개혁을 추진했으며, 대통령 재임 중 백악관에서 결혼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윌리엄 렌퀴스트
윌리엄 렌퀴스트는 미국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며, 보수주의 성향으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대한 좁은 해석, 연방 정부 권한 축소 및 주 정부 권한 확대를 주장했으며, `부시 대 고어` 사건과 빌 클린턴 탄핵 재판에 관여했다. -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리처드 닉슨
리처드 닉슨은 제37대 미국 대통령으로, 외교 정책, 워터게이트 사건, 그리고 사임이라는 상반된 유산을 남겼다. -
2004년 사망 -
로널드 레이건
미국의 배우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쳐 제40대 대통령을 지낸 로널드 레이건은 레이거노믹스 정책으로 미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소련과의 긴장 완화로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재정 적자 증가와 소득 불평등 심화, 이란-콘트라 사건 등 논란도 있었다. -
2004년 사망 -
박명근
박명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으로,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후 한국 전쟁에 참전, 공직 생활과 박정희 대통령 비서관을 거쳐 4선 국회의원 및 대한투자신탁 사장을 역임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송덕비가 건립되었다.
2. 생애
찰스 B. 스미스는 뉴저지주 램버트빌에서 태어나 1939년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41년 10월 베티 에번스와 결혼했다. 그는 진주만 공격 당시 오아후섬 스코필드 막사에 있었으며, 한국 전쟁 발발 후 오산 전투에서 "스미스 특수 임무 부대"를 이끌고 수훈 십자장을 받았다.
이후 준장으로 진급하여 1965년에 은퇴했고, 말년에는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살았다.
2.1. 초기 생애 및 제2차 세계 대전
1916년 5월 7일 미국 뉴저지주 램버트빌에서 태어났다. 1939년 뉴욕의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하와이 오아후 지역 미국 제25보병사단 제35연대 스코필드 배럭스(Schofield Barracks)에 배치되어 첫 근무를 시작했고, 35연대의 한 중대를 지휘했다. 1941년 10월 베티 에번스와 결혼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침공 당시, 일본군이 진주만과 오아후의 다른 섬을 공격하자 스미스는 본부의 부대와 함께 섬의 수비 위치로 가서 방어하였으며, 바다에 빠진 조종사를 구출한 공로로 군인 훈장을 수상했다.
1942년 말, 제25사단 일원으로 과달카날로 항해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1944년에 미국으로 돌아와 캔자스주의 포트 리븐워스(Fort Leavenworth) 지휘부에 근무하며 미국 육군지휘참모대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조지아주 포트 베닝(Fort Benning)에서 교관으로 근무하고, 그 후 워싱턴 D.C.에 있는 국방부에 배치되어 3년 반 동안 근무했다.
2.2. 한국 전쟁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6월 30일 한반도에 지상군 투입을 결정했다. 스미스 중령은 특수임무부대장으로 임명되어 제24보병사단 제21보병연대 제1대대의 B중대와 C중대를 중심으로 406명으로 편성된 부대를 이끌게 되었다. 이 부대는 7월 1일 08시 45분 부산에 도착하여, 기차로 7월 2일 08시 대전에 도착했다. 그날 밤 경기도 오산 북방 죽미령에 진지를 점령하고 평택에 대대지휘소를 설치했다. 7월 4일에는 밀러 오스본 페리 중령이 이끄는 제52포병대대 A포대가 합류하여 보병과 포병을 통합한 특수임무부대가 완성되었다.
7월 5일, 스미스 부대는 T-34 전차를 앞세운 조선인민군 2개 보병연대와 1개 전차연대와 맞서 싸웠다. 6시간 동안 이어진 전투에서 조선인민군의 전차 6대를 파괴하고 42명을 사살했으며, 8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러나 미군도 540명(포병 134명 포함) 중 181명(전사 150명, 실종 31명)이 목숨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전투는 유엔군 소속 미 지상군이 한국전에서 치른 첫 전투였다. 스미스 부대는 포위되자 후퇴 명령을 내렸고, 조선인민군의 진격을 7시간 동안 저지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미군 참전을 확인한 조선인민군이 전열을 재정비하는 동안 열흘을 벌어 낙동강 전선 구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미스는 이 전투에서 패했지만, 적은 병력과 부족한 장비에도 용감히 싸운 공로로 수훈 십자장을 받았다.
이후 스미스는 제24보병사단 제21보병연대 제1대대장으로 계속 활동하며, 1950년 10월 17일 황해도 해주에서 은성 훈장을 받았다. 1950년 11월 1일 신의주 남쪽 30km 지점까지 북진했다가 중국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후퇴한 뒤, 11월 10일 전출 명령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2.3. 한국 전쟁 이후
버지니아주 포트 먼로, 포트 맥아더, 캘리포니아주, 펜실베이니아주 칼라일에 있는 육군 대학과 육군 야전 부대에서 근무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3년 동안 나토 남부 사령부에서 근무했다.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서 제3보병사단 제15보병연대를 지휘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3년간 선임 참모를 지냈다. 버지니아주 노퍽에 있는 육군 해군 대학의 조교로 근무했다. 메릴랜드주 포트 미드에서 제2군 참모장이 되었다. 콜로라도주 포트 커슨(Fort Carson)에서 제5사단 부사단장으로 근무했다. 1965년에 준장으로 퇴역했다.
1975년 7월과 1987년 7월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오산 죽미령 전투 전몰 장병 추도식 및 유엔군 초전 기념식에 참석했다. 1975년 7월 4일 첫 방문 때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전사한 전우들에게 영광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