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계성 고분군
1. 개요
창녕 계성 고분군은 영축산에서 뻗어내린 구릉 사면부에 조성된 5~7세기 대규모 고분군이다. 계성천이 서북쪽에 흐르고, 261기의 봉분이 분포하며, 정상부에 지름 30m가 넘는 대형 무덤 5기가 있다. 1917년 이후 여러 차례 발굴 조사를 통해 구덩식 돌덧널무덤, 창녕양식 토기, 금동관편, 장신구, 마구류, 무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5세기 구덩식 돌덧널무덤과 6~7세기 앞트기식 돌방무덤이 확인되었으며, 축조 양식의 변화는 가야의 성립, 발전, 쇠퇴 과정을 보여준다. 창녕양식 토기는 가야와 신라 간의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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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의 무덤 -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경상남도 창녕읍 일대에 위치한 5~6세기 신라의 대형 고분군으로, 1911년 처음 알려졌으며 150여 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2011년 사적으로 통합 재지정되었다. -
해제된 경상남도의 기념물 -
천성진성
천성진성은 조선 중종 때 왜구 방어를 위해 축조된 진성으로, 군함 보호 및 수군 주둔을 위한 성곽이었으며 현재는 성벽 일부만 남아 조선 시대 중기 진성 축성 양식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받는다. -
해제된 경상남도의 기념물 -
기장읍성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위치한 기장읍성은 조선시대에 군사적, 행정적 기능 수행 및 주민 보호를 목적으로 축조된 읍성으로, 현재 장관청만 남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었다. -
신라의 무덤 -
대릉원
신라시대 고분군인 대릉원은 경주 황남동 일대에 위치하며 미추왕릉, 천마총, 황남대총 등의 고분이 있고, 특히 천마총에서는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가 출토되었다. -
신라의 무덤 -
경주 김유신묘
경주 김유신묘는 삼국 통일에 기여한 김유신을 기리는 묘로, 넓은 부지와 십이지신상이 조각된 호석 등을 갖추고 있지만, 묘의 주인공에 대한 논란이 존재한다.
2. 지리적 위치
3. 발굴 조사
4. 무덤 양식
5. 출토 유물
6. 역사적, 학술적 가치
창녕 계성 고분군은 영축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구릉 사면부에 조성된 대규모 고분군으로, 5세기~7세기에 걸쳐 조성되었다. 고분군의 서북쪽으로는 계성천이 흐르고 있으며, 능선 여러 갈래에 261기의 봉분이 분포하고 있는데 정상부에는 지름 30m가 넘는 대형무덤이 5기가 있다.
1917년 처음으로 고분군의 분포도가 작성된 이후, 1967년 5호분, 1968년 1호분․4호분, 2013년~2015년 2호분․3호분, 2017년 156호분, 2018년 2-3~5호분 등 5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구덩식 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에 석곽 상부는 나무로 덮개를 만든 특징이 확인되었다. 뚜껑굽다리접시(유개고배, 有蓋高杯)와 긴목항아리(장경호, 長頸壺), 원통모양그릇받침(통형기대, 筒形器臺) 등 창녕양식 토기류, 금동관편, 금제 귀걸이, 은제 허리띠 등의 장신구류, 말띠드리개(행엽, 杏葉) 및 발걸이(등자, 鐙子), 말안장 꾸미개(안교, 鞍橋) 등의 마구류, 무구류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5세기에 축조된 구덩식 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인 대형 고총 고분과 6~7세기에 축조된 앞트기식 돌방무덤(횡구식석실)이 모두 확인되었는데, 이러한 축조 양식의 변화는 고분군의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이동하며 나타난다. 이는 창녕 지역에서의 가야의 성립, 발전과 쇠퇴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특히, 창녕양식 토기는 가야 지역 토기제작 전통을 바탕으로 신라 지역의 토기제작 기술이 유입되면서 등장한 창녕지역의 특징적인 토기 양식으로, 가야와 신라 간의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