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부용정
1. 개요
창녕 부용정은 선조 15년(1582) 한강 정구가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이후 성안의에게 넘겨졌으며, 영조 3년(1727)에 소실되었다가 정조 4년(1780)에 재건되었으나 한국 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 건물은 1955년에 원래 모습대로 복원된 것이다.
2. 역사
선조 15년(1582)에 한강 정구(1543∼1620) 선생이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부용정을 지었고, 후에 부용당 성안의(1561∼1629) 선생에게 넘겨주었다.
정구 선생은 성안의의 스승으로 일찍이 오건에게 『주역』 등을 배웠고, 이어서 이황과 조식에게서 성리학의 의미를 터득했다.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그는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면서 후배 양성에 힘을 써 성리학을 전파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원래 정자는 영조 3년(1727)에 불타 없어졌고, 정조 4년(1780)년에 다시 지었으나, 한국 전쟁으로 또 다시 없어졌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55년에 원래 모습대로 다시 지은 것이다.
2.1. 건립과 초기 역사 (1582년 ~ 1727년)
부용정은 선조 15년(1582)에 한강 정구(1543∼1620) 선생이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정자로, 후에 부용당 성안의(1561∼1629) 선생에게 넘겨주었다.
정구 선생은 성안의의 스승으로 일찍이 오건에게 『주역』 등을 배웠고, 이어서 이황과 조식에게서 성리학의 의미를 터득했다.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그는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면서 후배 양성에 힘을 써 성리학을 백성을 위한 학문으로 발전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원래 정자는 영조 3년(1727)에 불타 없어졌다.
2.2. 소실과 재건 (1727년 ~ 1950년)
부용정은 선조 15년(1582)에 한강 정구(1543∼1620) 선생이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정자로, 후에 부용당 성안의(1561∼1629) 선생에게 넘겨 주었다.
정구 선생은 성안의의 스승으로 일찍이 오건에게 『주역』 등을 배웠고, 이어서 이황과 조식에게서 성리학의 의미를 터득했다.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그는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면서 후배양성에 힘을 써 성리학을 전파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원래 정자는 영조 3년(1727)에 불타 없어졌다. 이후 정조 4년(1780)년에 다시 지었으나, 한국 전쟁으로 또 다시 없어졌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55년에 원래 모습대로 다시 지은 것이다.
2.3. 한국전쟁과 복원 (1950년 ~ 현재)
부용정은 조선 선조 15년(1582)에 한강 정구(1543∼1620) 선생이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정자였으나, 한국 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원래 정자는 조선 영조 3년(1727)에 불타 없어졌고, 조선 정조 4년(1780)에 다시 지어졌으나,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의 만행으로 인해 또다시 소실되는 비극을 겪었다. 이는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전쟁으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건물은 1955년에 원래 모습대로 복원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