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성군
1. 개요
창성군은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 접한 평안북도의 군이다. 동남쪽은 산악 지형이며, 수풍댐으로 인해 수풍호가 형성되었다. 내륙성 기후를 보이며, 옥수수, 쌀, 땅콩 등을 재배하고, 양을 많이 기른다. 김일성이 지방공업 발전을 강조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1읍, 1로동자구, 15리로 구성되어 있다. 교통은 도로와 압록강 수운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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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창성군 |
|---|---|
| 한자 표기 | 昌城郡 |
| 로마자 표기 (매큔-라이샤워) | Ch'angsŏng-gun |
| 로마자 표기 (개정 로마자) | Changseong-gun |
| 행정 구역 종류 | 군 |
| 국가 | 북한 |
| 도 | 평안북도 |
| 면적 | 605.2 km² |
| 인구 (2008년) | 26,577명 |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 하위 행정 구역 | 1읍, 1로동자구, 15리 |
| 읍 | 창성읍 |
|---|---|
| 로동자구 | 1개 |
| 리 | 15개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 -
평안북도
평안북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서북부에 위치하며, 신의주를 도청 소재지로 하여 3개의 시와 22개의 군으로 구성되어 있고, 압록강과 청천강을 주요 하천으로 하며 대륙성 기후를 보이는 도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 -
량강도
량강도는 1954년 함경도, 평안도, 자강도 일부를 합쳐 신설되었으며 압록강,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과 접경하고 백두산이 위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도이다. -
평안북도의 군 -
동창군
동창군은 평안북도 동부의 산악 지형에 위치하며 자강도와 경계를 접하고 1952년 창성군에서 분리되어 신설된 군으로, 금, 은, 인회석 등의 광업이 주요 산업이며 옥수수 경작과 소규모 수력 발전이 이루어지고 1개의 읍, 1개의 로동자구, 16개의 리로 구성되어 있다. -
평안북도의 군 -
벽동군
벽동군은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 접하며 자강도에 위치하고, 산지가 많아 임업이 주요 산업이며, 고려 시대에 벽동군으로 명명되었다.
2. 지리
창성군은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서쪽은 수풍댐 호수와 맞닿아 있고 그 건너편은 중국이다. 남서쪽은 삭주군, 남쪽은 대관군, 동남쪽은 동창군, 동북쪽은 벽동군과 맞닿아 있다.
지형은 동남쪽이 높고 압록강 쪽으로 점차 낮아지며, 대부분 가파른 산악 지대여서 경작지는 적고 숲이 울창하다. 강남산맥이 지나고 반덕산이 솟아 있으며, 가장 높은 곳은 비래봉으로 해발 1470m이다.
영주천, 남창천이 압록강 지류로 흐르고, 대령강 지류인 창성강도 지난다.
2.1. 기후
내륙 지대에 위치하여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연평균 기온은 7.3°C이고, 1월 평균 기온은 -11.6°C, 8월 평균 기온은 22°C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000mm이다. 그러나 산악 지대는 훨씬 춥고, 비래봉에 쌓인 눈은 5월 하순까지도 녹지 않는다. 수풍댐 근처에는 안개가 흔하다.
3. 역사
일제강점기까지 창성군은 9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43년 수풍댐 건설로 압록강변의 군청을 비롯한 창성면(昌成面)·전창면(田倉面)·창주면(昌洲面)이 수몰되었다. 이에 따라 창성면·전창면·창주면·우면(祐面)을 창성면으로 통합하고, 군청을 우면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1952년 행정구역 재편으로 동남부의 동창면·대창면·청산면이 동창군으로 분리되었다. 기존 창성군의 창성면·신창면을 중심으로 창성군(1읍 18리)이 재편성되었으며, 현재는 1읍 1로동자구 15리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013년 6월 14일 김정은이 창성혁명사적관을 방문하여 "대원수님들의 혁명 사적이 가장 많이 어려 있는 창성군을 인민의 낙원으로 더 잘 꾸려 창성땅에서 '사회주의 만세' 소리가 더 높이 울리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김형직이 1920년대 초 일제 감옥에서 출옥한 후 평안북도 창성, 의주, 삭주 등지에서 반일 결사체 '조선국민회' 지하조직을 복구했다고 선전한다. 또한 1950년대 말 6.25 전쟁 당시 북상하는 유엔군에 밀려 평안북도 산골로 후퇴했던 김일성이 그해 10월경 창성군 창골 지역 농가에 머물렀다고 한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일성이 108차례, 김정일이 60차례 창성군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195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 창성군의 창성면·신창면을 중심으로 창성군(1읍 18리)이 재편되었다. 현재 창성군은 1읍 1노동자구 15리로 구성되어 있다.
| 연도 | 내용 |
|---|---|
| 1914년 4월 1일 | 평안북도 창성군에 부내면・남창면・창주면・전창면・우면・동창면・대창면・신창면・청산면 설치 (9면) |
| 1918년 | 부내면이 창성면으로 개칭 (9면) |
| 1939년 | 남창면이 창성면에 편입 (8면) |
| 1940년 | 창주면・전창면・우면이 창성면에 편입 (5면) |
| 1952년 12월 | 평안북도 창성군 창성면 및 신창면 일부 지역을 가지고, 창성군을 설치. 창성군에 창성읍・금야리・옥포리・달산리・인산리・의산리・상리・중리・간암리・봉천리・유평리・유전리・신평리・낙성리・연풍리・회덕리・풍덕리・어신리・완풍리 설치 (1읍 18리) |
| 1953년 | 동창군 화풍리의 일부가 연풍리・회덕리에 분할 편입 (1읍 18리) |
| 1963년 | 중리・간암리가 합병하여 약수리가 발족 (1읍 17리) |
| 1970년 | 상리가 약수리에 편입 (1읍 16리) |
| 1972년 | 유전리가 유전노동자구로 승격 (1읍 1노동자구 15리) |
5. 경제
창성군은 내륙 지대에 위치하여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연평균 기온은 7.3°C이고, 1월 평균 기온은 -11.6°C, 8월 평균 기온은 22°C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000mm이다. 그러나 산악 지대는 훨씬 춥고, 비래봉에 쌓인 눈은 5월 하순까지도 녹지 않는다. 수풍댐 근처에는 안개가 흔하다.
경작지는 전체 군 면적의 6.1%에 불과하다. 옥수수, 쌀, 땅콩, 고추,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으며, 잠업이 널리 행해진다. 양을 많이 기르고, 목재 벌채와 산업, 약초 재배를 비롯해 금, 텅스텐, 석탄 광업도 주요 산업 중 하나이다.
김일성이 지방공업 발전의 본보기로 내세운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김일성은 1962년 8월 창성에서 열린 지방 당·경제일꾼 연석회의에서 '군의 역할을 강화하며 지방공업과 농촌경리를 더욱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훨씬 높이자'라는 연설을 했고, 이 연설은 북한에서 지방공업 발전을 위한 경전처럼 여겨진다. 누에치기를 널리 하고 있으며, 그 밖의 농작물로는 옥수수, 쌀, 땅콩, 고추, 고구마, 그리고 여러 가지 과일이 있다. 창성군은 양의 생산량에서도 군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목재와 약초를 포함한 다양한 산물이 산림에서 채취되며, 금, 텅스텐, 석탄도 산에서 채굴된다. 지역 제조품으로는 고추장과 알코올이 있다. 산악 지형에 기후도 좋지 않아 농업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과수 생산이 활발하다. 이 밖에, 직물·농기구·제지 공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