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타이
1. 개요
살리타이는 13세기 몽골 제국의 장군으로, 고려를 침공한 인물이다. 초기 활동을 거쳐 제1차, 제2차 고려 침공을 이끌었으며, 제2차 침공 중 사망했다. 살리타이는 "권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우야르를 비롯한 구 무칼리 휘하 장교들과 거란족 출신 장수들로 군대를 구성했다. 살리타이의 군대는 4명의 장군이 이끄는 4개 부대로 구성되었으며, 드라마 《무인시대》와 《무신》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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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년 사망 -
안혜왕후
안혜왕후는 고려 희종과 성평왕후의 딸로 고종의 왕비가 되었으며, 고종과의 사이에서 원종 등을 낳고 1232년 사망 후 안혜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아들 원종의 즉위 후 왕태후로 추존되었다. -
1232년 사망 -
툴루이 칸
툴루이 칸은 칭기즈 칸의 넷째 아들로, 몽골 제국 건국에 참여하여 군사적 재능을 보였으나, 섭정으로 제국을 통치하고 금나라 정벌에 활약하다가 여러 설 속에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들이 몽골 제국 발전에 기여했다. -
몽골 제국의 장군 -
우량카다이
우량카다이는 몽골 제국의 장수로서 수부타이의 아들이며 젤메의 조카이고, 몽골의 유럽 침략, 남송 정복, 대월 침공 등 여러 원정에 참여하여 군사적 능력을 발휘했으며 쿠빌라이 칸과 함께 대리국 정벌과 남송 공격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황위 계승 전쟁에서 쿠빌라이를 지지했다. -
몽골 제국의 장군 -
수부타이
수부타이는 1175년 또는 1176년 몽골에서 태어나 칭기즈칸과 오고타이 칸 시대에 활약하며 금나라, 호라즘, 루스 등지에서 혁신적인 전술로 몽골 제국 영토 확장에 기여한 명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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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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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2. 생애
살리타이는 "코르치(qorči)"라는 칭호를 가졌으며, 케식(친위대)의 일원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228년 요동 방면에서 금나라의 평장 제브게(哥不靄)가 활동하자 오고타이의 명으로 요동에 파견되었고, 탐마치(타마군)를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1229년에는 칭기즈 칸 때부터 활약한 살지우트부의 우야르를 휘하에 두고 요동의 여러 성을 공략했다.
1231년 가을, 고려가 과거 몽골 사신을 살해한 것을 명분으로 살리타이는 고려 침공을 명령받았다. 홍복원과 합류하여 압록강 연안의 함신진, 철주를 공략했다. 안북부 전투에서 승리한 후 연말에는 수도인 개경을 포위하여 고려에 항복을 권고했고, 1232년 초 고려의 항복을 받아냈다.
1232년 가을, 고려가 몽골에 반기를 들자 살리타이는 다시 고려를 침공했다. 수주의 처인성(현 용인시 처인구)을 공격하던 중 승려 김윤후가 쏜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살리타이의 죽음으로 몽골군은 부장 테게의 지휘 하에 철수했지만, 이후에도 탕구트 바토르를 사령관으로 하여 고려 공격은 계속되었다.
2.1. 초기 활동
살리타이는 출신이 불분명하지만, "코르치(qorči)"라는 칭호로 보아 원래 케식(친위대)의 일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228년, 요동 방면에서 금나라 평장 제브게(哥不靄)가 활동하기 시작하자, 오고타이의 명으로 살리타이가 요동에 파견되었다. 사료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이때 살리타이가 이끌었던 것은 탐마치(타마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229년에는 칭기즈 칸 시절부터 활약하여 실전 경험이 풍부한 살지우트부의 우야르를 휘하에 두고 개주, 선성 등 요동의 여러 성을 공략했다.
2.2. 제1차 고려 침공
1231년 가을, 몽골은 고려가 과거 몽골의 사신을 살해한 것을 구실로 고려를 침공했다. 살리타이는 홍복원과 합류하여 압록강 연안의 함신진, 철주를 공략했다.
10월에 안북부 전투에서 승리한 살리타이가 이끄는 타마군은 연말에 수도인 개경을 포위하여 고려에 항복을 권고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사신이 오갔고, 1232년 초 고려의 항복이 결정되었다.
2.3. 제2차 고려 침공과 죽음
1232년 가을, 고려가 몽골에 반기를 들자 살리타이는 다시 군대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다. 수주의 처인성(현 용인시 처인구)을 공격하던 중, 승려 김윤후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살리타이의 죽음으로 몽골군은 부장인 테게의 지휘 하에 철수했지만, 이후에도 탕구트 바토르를 사령관으로 하여 고려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었다.
3. 살리타이의 군대
살리타이는 "권황제(權皇帝)"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는 무칼리가 사용하던 칭호 중 하나로, 요동 방면에서 무칼리의 지위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살리타이가 이끄는 군대에는 우야르를 비롯한 구 무칼리 휘하 장교들과 다수의 거란족 출신 장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원사』에 기록된 살리타이 휘하의 장군으로는 우야르, 야율설사, 이랄매노, 왕영조 등이 있는데, 우야르를 제외하고는 모두 거란족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살리타이의 군대는 살리타이, 테게(迪巨), 탕구트 바토르(唐古元帥), 포도(蒲桃元帥) 등 4명의 장군이 이끄는 4개 부대로 구성되었으며, 이는 이란 방면에 파견된 촐마군이 이끄는 만인대와 유사한 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