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황
1. 개요
최세황은 일제강점기 청주지방법원 검사,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법무부 행형국 국장, 전주지방 검찰청 검사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1957년 국방부 차관을 지냈으며,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한일 어업 협정 협상에 한국 대표로 임명되었다.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한성통운 사장과 서울 컨트리 클럽 이사 및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다. 1992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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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자 표기 | Choe Sehwang |
|---|---|
| 한글 | 최세황 |
| 한자 | 崔世璜 |
| 직위 | 제5대 전주지방검찰청 검사장 |
|---|---|
| 임기 시작 | 1952년 7월 18일 |
| 임기 종료 | 1954년 4월 6일 |
| 직위 | 제8대 국방부 차관 |
| 임기 시작 | 1957년 8월 8일 |
| 임기 종료 | 1960년 5월 27일 |
| 출생지 | 사리원시, 황해도 |
|---|---|
| 출생일 | 1919년 8월 30일 |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 사망일 | 1992년 10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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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방부 차관 -
이호 (법조인)
이호는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 후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주일본 대사 등을 역임하고 12·12 군사 반란 이후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을 지냈다. -
대한민국의 국방부 차관 -
서주석
서주석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자 외교안보 전문가로,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근무하며 민주당계 정권에서 외교안보 정책 수립에 관여했고,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 수석비서관, 국방부 차관, 국가안보실 제1차장을 역임하며 남북 합의 도출에 기여했으나, 5.18 민주화운동 왜곡 활동에 참여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
병사한 사람 -
현진건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의 사실주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등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을 받기도 했다. -
병사한 사람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
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진중권
대한민국의 미학자이자 작가, 평론가, 대학교수인 진중권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며 미학, 예술, 정치, 사회에 대한 저술 및 번역 활동과 진보 정당 활동을 해왔다. -
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윤석중
윤석중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아동문학 운동을 이끌고 수많은 동요와 동시집을 발표하며 한국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2. 초기 생애 및 학업
최세황은 황해도 사리원 (오늘날 황해북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태어났다. 1941년 일본 주고쿠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3. 정부 경력
최세황은 일제강점기 청주지방법원에서 검사로 일했으며, 한국 독립 후 대한민국 정부에서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57년 8월에는 김정렬의 뒤를 이어 국방부 차관에 임명되었고, 1963년 2월에는 민주공화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같은 달 외교부는 그를 한국과 일본의 어업 협정 협상 한국 대표로 임명했다.
3.1. 법조 경력
졸업 후 최세황은 한국으로 돌아와 일제 시대 청주지방법원에서 검사로 일했다. 한국이 독립한 후, 그는 새로운 대한민국 정부에서 일자리를 얻어 1948년 고등검찰청, 1949년 대검찰청, 1951년 법무부 소속 행형국 국장, 1952년 전주지방 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했다. 1957년 8월, 장관으로 승진한 김정렬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의 국방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1963년 2월 민주공화당 창당 발기인의 한 사람이었다. 외교부는 그를 그 달에 한국과 일본의 어업 협정에 관한 협의에 한국 대표로 임명했다.
3.2. 법무부 및 검찰청 주요 직책
최세황은 일제강점기 청주지방법원에서 검사로 일했다. 한국 독립 후, 대한민국 정부에서 1948년 고등검찰청, 1949년 대검찰청, 1951년 법무부 소속 행형국 국장, 1952년 전주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했다.
3.3. 국방부 차관
졸업 후 최세황은 한국으로 돌아와 일제 시대 청주지방법원에서 검사로 일했다. 한국이 독립한 후, 그는 새로운 대한민국 정부에서 일자리를 얻어 1948년 고등검찰청, 1949년 대검찰청, 1951년 법무부 소속 행형국 국장, 1952년 전주지방 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1957년 8월, 장관으로 승진한 김정렬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의 국방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3.4. 민주공화당 창당 참여
졸업 후 최세황은 한국으로 돌아와 일제 시대 청주지방법원에서 검사로 일했다. 한국이 독립한 후, 그는 새로운 대한민국 정부에서 일자리를 얻어 1948년 고등검찰청, 1949년 대검찰청, 1951년 법무부 소속 행형국 국장, 1952년 전주지방 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했다. 1957년 8월, 장관으로 승진한 김정렬 (1917년)한국어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의 국방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1963년 2월 민주공화당 창당 발기인의 한 사람이었다. 외교부는 그를 그 달에 한국과 일본의 어업 협정에 관한 협의에 한국 대표로 임명했다.
4. 퇴임 이후 활동
최세황은 퇴임 이후 개인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한성통운(韓星通運)의 사장을 지냈다.
최세황은 골프 애호가였다. 1992년 10월 11일 중앙대학교병원에서 사망했으며,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자, 두 아들, 두 딸이 있었다.
5. 사망
최세황은 1992년 10월 11일 아침, 중앙대학교병원에서 사망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자와 두 아들, 두 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