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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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호는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 후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검찰, 치안국장, 군 법무감 등을 역임했다. 한국 전쟁 중 군 법무감, 국방부 차관을 거쳐 제1공화국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4·19 혁명 이후 허정 과도 정부에서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제3공화국 출범 후 정계에 입문하여 내무부 장관, 법무부 장관, 주일본 대사를 지냈고, 12·12 군사 반란 이후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을 맡았다. 1981년 국정자문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1995년 자유민주연합 외교안보행정특임위원을 역임했다.

이호 (법조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이호
현지어 표기李澔
생애1914년 2월 7일 ~ 1997년 5월 24일 (84세)
출생지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본관영천(永川)
별명호는 가세(茄笹)
리노이에 히로시(李家 澔)
종교불교
배우자성낙은
자녀슬하 5남 1녀
군 복무
복무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1949년 ~ 1955년
최종 계급대한민국 육군 준장
근무육군본부, 국방부
지휘육군본부 군법무차감
육군본부 군법무감
육군본부 계엄사령부 부사령관
육군본부 헌병감
국방부 차관
주요 참전 전투/전쟁한국 전쟁
기타 이력
기타 이력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일본 주재 대한민국 대사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
대한적십자사 총재
자유민주연합 외교안보행정특임위원(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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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이호는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부유하여 일찍 일본으로 유학, 리츠메이칸중학, 사가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1939년 도쿄제국대학 재학 중에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경성지방검찰청 및 경성고등검찰청 검사로 일했다. 광복 후에도 경력을 인정받아 1946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48년 대검찰청 검사, 1949년 내무부의 초대 치안국장 등으로 승진했다.

1949년 육군 법무장교 중령으로 임관, 1950년 한국 전쟁 발발하자 육군본부 법무감(준장), 육군본부 계엄사령부 부사령관, 정전위원회 대표 등을 지냈다. 1951년 5월 15일, 육군본부 법무감에 임명되었고, 1951년 9월 11일에는 육군본부 병참감이 되었다. 1953년 국방부 차관에 올랐으며, 1955년에는 대한민국 육군에서 준장으로 예편하고 제1공화국의 법무부 장관에 취임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들어선 허정 과도 정부의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5·16 군사 정변으로 제3공화국이 출범하자 1963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했으며, 196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당에 입당하며 박정희를 지지하였다. 1967년 내무부 장관, 1968년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두 장관직을 두 번 씩이나 역임했으며, 1971년 주일본 대사를 지냈다. 주일 대사를 그만둔 뒤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내다가 12·12 군사 반란이 일어나자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을 맡았다.

1981년 국정자문위원회 위원에 위촉되었다. 만년에는 1995년 자유민주연합 외교안보행정특임위원 직위를 잠시 역임하였다.

장남인 이동이 서울시립대학교 총장을 지내는 등 5남 1녀가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한 가문으로 유명하다.

2.1. 일제강점기 및 해방 초기

이호는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부유하여 일찍 일본으로 유학, 리츠메이칸중학, 사가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1939년 도쿄제국대학 재학 중에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경성지방검찰청 및 경성고등검찰청 검사로 일했다. 광복 후에도 경력을 인정받아 1946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48년 대검찰청 검사, 1949년 내무부의 초대 치안국장 등으로 승진했다.

1949년 육군 법무장교 중령으로 임관, 1950년 한국 전쟁 발발하자 육군본부 법무감(준장), 육군본부 계엄사령부 부사령관, 정전위원회 대표 등을 지냈다. 1951년 5월 15일, 육군본부 법무감에 임명되었고, 1951년 9월 11일에는 육군본부 병참감이 되었다. 1953년 국방부 차관에 올랐으며, 1955년에는 대한민국 육군에서 준장으로 예편하고 제1공화국의 법무부 장관에 취임했다.

2.2.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호는 일본 유학을 거쳐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39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귀국 후 경성지방검찰청 및 경성고등검찰청 검사로 근무했다. 광복 후에도 검사 경력을 인정받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1946), 대검찰청 검사(1948)를 거쳐 내무부 초대 치안국장(1949)으로 승진했다.

1949년 육군 법무장교 중령으로 임관, 1950년 한국 전쟁 발발하자 육군본부 법무감(준장), 육군본부 계엄사령부 부사령관, 정전위원회 대표 등을 역임했다. 1951년 5월 15일, 육군본부 법무감, 1951년 9월 11일에는 육군본부 병참감이 되었다. 1953년 국방부 차관에 올랐고, 1955년 대한민국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뒤 제1공화국 법무부 장관에 취임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허정 과도 정부에서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제3공화국 출범 이후 1963년 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 1967년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여 박정희를 지지하였다. 이후 내무부 장관(1967년 - 1968년), 법무부 장관(1968년 - 1970년)을 역임하고,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주일본 대사를 역임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내다가 12·12 군사 반란 이후 전두환이 설치한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을 맡았다.

1981년 국정자문위원회 위원에 위촉되었고, 1995년 자유민주연합 외교안보행정특임위원을 잠시 역임하였다.

2.3. 제1공화국 및 제3공화국 시절

이호는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 형편 덕분에 일찍 일본으로 유학하여 리츠메이칸중학, 사가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1939년 도쿄제국대학 재학 중에 이미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수재였다.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경성지방검찰청 검사, 경성고등검찰청 검사를 거쳤고, 광복 후에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1946), 대검찰청 검사(1948), 내무부 초대 치안국장(1949) 등으로 승진했다.

1949년 육군 법무장교 중령으로 임관하여 1950년 한국 전쟁 때는 육군본부 법무감(준장)과 육군본부 계엄사령부 부사령관, 정전위원회 대표 등을 지냈다. 1953년 국방부 차관에 올랐으며, 1955년 대한민국 육군에서 준장으로 예편하고 제1공화국의 법무부 장관에 취임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들어선 허정 과도 정부의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5·16 군사 정변으로 제3공화국이 출범하자 1963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했으며, 196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당에 입당하며 박정희를 지지하였다. 1967년 내무부 장관, 1968년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두 장관직을 두 번 씩이나 역임했으며, 1971년 주일본 대사를 지냈다.

2.4. 전두환 정권 및 그 이후

이호는 12·12 군사 반란 이후 전두환이 설치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1981년 국정자문위원회 위원에 위촉되었으며, 1995년 자유민주연합 외교안보행정특임위원 직위를 잠시 역임하였다.

3. 학력

일본 도쿄 제국대학교 법학과 학사(1940년)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1956년)

3.1. 비학위 수료

* 경희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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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기타
아내성낙은
아들이동1941년 5월 27일 ~ ,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이근1942년 10월 10일 ~ , 이화여대 의대교수
아들이양주보스턴총영사
아들이은1946년 8월 20일 ~ , 서울대 화학부 명예교수
아들이단IMF 경제학박사
아들이춘1957년 10월 18일 ~ , 한양대학교 교수

5. 비판 및 논란

5.1. 군사 정권 협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