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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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숙손은 최운해의 손자이자 최윤덕의 아들로, 조선 초기의 무신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예빈시직장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특히 파저강 여진족 정벌과 북방 안정에 기여했다. 세조 즉위 후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으며, 국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476년 사면 복권되었다.

최숙손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최숙손
원어명崔淑孫
출생일?
사망일1457년경?
국가조선
직책예빈시직장
거주지조선 경상도 창원
조선 한성부
국적조선
별명자 문약(文若)
학력무과 급제
경력군인 겸 정치가
본관통천(通川)
정당무소속
임기1422년 3월 1일 ~ 1427년 8월 31일
군주조선 세종대왕 이도
섭정상왕 이방원(前)
영의정 류정현(前)
배우자창녕 조씨 부인
부모최윤덕(부), 팔거도씨(모)
친인척최운해(조부)
형제최영손(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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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최윤덕 장군의 장남으로 조선 태조 초에 창원 무릉촌에서 태어났다. 무과 등과 이전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1422년(세종 4년) 예빈시직장을 거쳐, 1427년(세종 9년) 오위의 사직으로 왕세자 시종관이 되었다. 1433년(세종 15년) 아버지 최윤덕의 군관으로 파저강의 여진족 정벌에 종군하였으며, 이때의 전공으로 절충상호군에 올랐다. 1435년(세종 17년) 첨지중추원사, 1437년(세종 19년) 평안도 여연 판여연도호부사로 제수되어 4군 설치와 북방 안정에 힘썼다.

1442년(세종 24년) 중추원부사, 1443년(세종 25년) 전라도 수군도안무처치사, 1444년(세종 26년) 동지중추원사와 경상도 우도도절제사를 역임했다. 1445년(세종 27년) 경상도 도절제사 재임 중 부친상을 당해 3년간 시묘살이를 하고, 1449년(세종 31년) 평안도 판창성대도호부사로 다시 북방 안정에 힘썼다.

1452년(문종 2년) 문종 서거 후 윤암, 이완, 이령 등과 함께 궁성사면절제사로 변란에 대비하였다. 같은 해 사은정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453년(단종 1년) 전라도병마절제사, 1455년 전라도 도절제사를 역임했다. 같은 해 세조 즉위 후 중추원부사, 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456년(세조 2년)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장자 최맹한, 조카 최계한과 함께 먼 지방에 유배되었다. 1458년(세조 4년) 2월, 함께 안치되었던 장자 최맹한과 조카 최계한은 안치된 곳을 옮겼으나, 최숙손은 이 기록에서 빠져 있어 유배 후 국문의 후유증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476년(성종 7년) 사면 복권되었다.

2.1. 가계 및 초기 생애

최운해 장군의 손자이자, 최윤덕 장군의 장남으로 조선 태조 초에 창원 무릉촌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팔거도씨이다.

무과로 등과하여 1422년(세종 4년) 예빈시직장을 거쳐, 1427년(세종 9년) 오위의 사직으로 왕세자 시종관이 되었다. 1433년(세종 15년) 아버지 최윤덕의 군관으로 파저강의 여진족 정벌에 종군하였으며, 이때의 전공으로 6월에 절충상호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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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내용
증조부최록(대의공신-고려)
조부최운해(충군좌명공신-고려),(개국원종공신-조선)
최윤덕
팔거도씨
본인최숙손
배우자창녕조씨
동생최경손, 최광손, 최영손(단종충신단 배향)
아들최맹한, 최중한, 최흡한

2.2. 군사 활동 및 관직 역임

1422년(세종 4년) 무과에 등과하여 예빈시직장을 거쳤다. 1427년(세종 9년) 오위의 사직으로 왕세자 시종관이 되었다. 1433년(세종 15년) 최윤덕의 군관으로 파저강 여진족 정벌에 참가하여 전공으로 절충상호군에 올랐다. 1435년(세종 17년)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1437년(세종 19년) 평안도 여연 판여연도호부사로 부임하여 4군 설치와 북방 안정에 기여했다.

1442년(세종 24년) 중추원부사, 1443년(세종 25년) 전라도 수군도안무처치사, 1444년(세종 26년) 동지중추원사와 경상도 우도도절제사를 역임했다. 1445년(세종 27년) 경상도 도절제사 재임 중 부친상을 당해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1449년(세종 31년) 평안도 판창성대도호부사로 다시 북방 안정에 힘썼다.

1452년(문종 2년) 문종 사후 궁성사면절제사로 변란에 대비하였다. 같은 해 사은정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3년(단종 1년) 전라도병마절제사, 1455년(단종 3년) 전라도 도절제사를 역임했다. 같은 해 세조 즉위 후 중추원부사, 지중추원사가 되었다. 이 해에 아우 최영손이 금성대군 사건에 연루되어 사망했다.

2.3. 유배와 죽음

1456년(세조 2년), 사육신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육신 중 한 명인 이개와 연루되어 장자 최맹한, 조카 최계한과 함께 먼 지방에 유배되었다. 1458년(세조 4년) 2월, 함께 안치되었던 장자 최맹한과 조카 최계한은 안치된 곳을 옮겼으나, 최숙손은 이 기록에서 빠져 있다. 이는 유배 후 국문의 후유증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 1476년(성종 7년)에 사면 복권되었다.

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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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증조부최록(대의공신)
조부최운해(충군좌명공신, 개국원종공신)
최윤덕
팔거 도씨
본인최숙손
배우자창녕 조씨
동생최경손, 최광손, 최영손(단종충신단 배향)
아들최맹한, 최중한, 최흡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