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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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친박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를 맡으면서 등장한 용어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지칭하며 한나라당의 주요 계파로 부상했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 친이계 쇠퇴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친박은 분화되었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에 따라 비박계와 갈등을 겪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및 구속으로 정치적 구심점을 잃고 자유한국당 내 입지가 위축되었으며, 이후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친박은 새누리당, 대한애국당 등 친박 정당을 통해 활동했다.

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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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친박이라는 용어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악화된 여론 속에서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자유한국당) 대표로 선출되어 당을 이끌면서 등장하였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정치인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한나라당의 주요 계파로 부상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서청원, 홍사덕 의원 등은 탈당 후 미래한국당에 입당했고, 이후 총선에서 당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당명을 "친박연대"로 변경하였다. 총선 이후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탈당 인사들의 복당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후 복당을 허용하였다. 친박연대는 2010년 당명을 미래희망연대로 변경하고, 같은 해 한나라당과 합당하였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 친이계의 쇠퇴와 박근혜 정부 출범으로 친박계는 분화가 가속화되었다. 원박(원조 친박), 범박(범친박), 구박(舊朴), 신박(신친박)등 다양한 파생 용어가 등장하였다. 원박은 2007년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정치인을, 복박은 박근혜와 정치적으로 멀어졌다가 다시 친박으로 복귀한 자를, 월박은 친이계에서 친박계로 넘어온 자를 뜻한다. 2015년에는 진박(진실한 친박)과 가박(가짜 친박)이라는 용어도 등장하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비박계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였고, 2016년 12월 9일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갈등이 증폭되었다. 비박계 의원 29명은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선언하였다. 2017년 1월 2일,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탈당을 선언하였다. 2월 13일,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고, 3월 31일 구속되면서 친박은 정치적 구심점이 사라져 자유한국당 내 입지가 위축되었다. 이후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친박들은 새누리당, 대한애국당등으로 활동하였다.

2.1. 용어의 등장과 초기 친박

친박이라는 용어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악화된 여론 속에서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자유한국당) 대표로 선출되어 당을 이끌면서 등장하였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정치인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한나라당의 주요 계파로 부상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서청원, 홍사덕 의원 등은 탈당 후 미래한국당에 입당했고, 이후 총선에서 당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당명을 "친박연대"로 변경하였다. 총선 이후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탈당 인사들의 복당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후 복당을 허용하였다. 친박연대는 2010년 당명을 미래희망연대로 변경하고, 같은 해 한나라당과 합당하였다.

2.2. 친박연대와 미래희망연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한나라당 후보 공천 과정에서 탈락한 서청원, 홍사덕 의원 등이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미래한국당에 입당하였고, 이후 총선에서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당명을 "친박연대"로 변경하였다. 총선 이후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탈당자의 복당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후 입장을 선회하여 복당을 허용하였다. 친박연대는 당명을 2010년 미래희망연대로 바꾸었고, 같은 해 한나라당과 합당하였다.

2.3. 친박의 분화와 다양한 용어

친박이라는 용어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등장하였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정치인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며 친박계가 한나라당의 계파로 부상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 탈락한 서청원, 홍사덕 의원 등이 미래한국당에 입당했고, 이후 당명을 "친박연대"로 변경하였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 친이계의 쇠퇴와 박근혜 정부 출범으로 친박계는 분화가 가속화되었다. 원박(원조 친박), 범박(범친박), 구박(舊朴), 신박(신친박)등 다양한 파생 용어가 등장하였다. 원박은 2007년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정치인을, 복박은 박근혜와 정치적으로 멀어졌다가 다시 친박으로 복귀한 자를, 월박은 친이계에서 친박계로 넘어온 자를 뜻한다. 2015년에는 진박(진실한 친박)과 가박(가짜 친박)이라는 용어도 등장하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비박계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였고, 2016년 12월 9일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갈등이 증폭되었다. 비박계 의원 29명은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선언하였다. 2017년 1월 2일,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탈당을 선언하였다. 2월 13일,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고, 3월 31일 구속되면서 친박은 정치적 구심점이 사라져 자유한국당 내 입지가 위축되었다. 이후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친박들은 새누리당, 대한애국당등으로 활동하였다.

2.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정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비박계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찬동하였으며,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었다. 12월 16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정우택 의원이 나경원 의원을 제치고 원내대표로 선출되자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가 사퇴하였다. 비박계에서는 유승민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35명은 12월 27일 새누리당을 탈당한다고 21일 발표하였다.

27일 비박계 의원 29명이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개혁보수신당의 창당을 선언하였다. 2017년 1월 2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당 쇄신 요구에 탈당을 선언하였다. 2월 13일에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으나, "박근혜 대통령과의 거리두기와 선긋기"는 부정하였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고, 3월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정치적 구심점이 사라져, 자유한국당 내에서의 입지가 급속히 위축되었다.

이후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친박들은 새누리당, 대한애국당의 친박 정당들이 등장하면서 친박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죄석방과 명예 유지, 정권 교체를 요구하여 시위와 집회를 벌이게 되었다.

다만 의원으로는 2-3명에 불과해 여전히 자유한국당 내에 친박 의원은 50명 이상으로 분류된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는 당 쇄신 차원에서 2017년 11월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명하면서 강제로 출당 조치했고, 친박계는 반발했다.

2.5. 자유한국당과 친박의 쇠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로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되어 당을 이끌면서 '친박'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정치인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면서 친박계는 한나라당의 주요 계파로 부상했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 친이계가 쇠퇴하면서 친박계는 분화되기 시작했고,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원조 친박을 의미하는 원박, 범친박, 과거 친박이었던 구박, 신친박, 돌아온 친박인 복박, 홀대받는 친박인 홀박, 박근혜를 추종하는 종박, 비박에서 친박으로 넘어온 월박, 멀어진 친박인 멀박, 잘린 친박인 짤박, 찍힌 친박인 찍박, 박근혜 옹위 부대인 옹박 등 다양한 파생 용어가 등장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후,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비박계는 개혁보수신당을 창당하며 새누리당을 탈당했고, 2017년 1월에는 이정현 전 대표도 탈당했다.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의 거리두기는 부정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 및 3월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으로 친박은 정치적 구심점을 잃고 자유한국당 내에서 급속히 위축되었다. 이후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친박들은 새누리당, 대한애국당 등 친박 정당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죄 석방과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는 당 쇄신 차원에서 2017년 11월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명했지만, 친박계는 이에 반발했다.

3. 역대 친박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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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원 수 || 구성원
한나라당20명김무성, 서청원, 유기준, 유승민, 윤상현, 이규택, 이명규, 이인기, 이정현, 이종혁, 이주영, 이진복, 이한구, 정갑윤, 최경환, 한선교, 허태열, 황우여, 황진하 등
미래희망연대14명노철래, 유정현, 김을동, 김정, 김혜성, 김장수, 김학송, 송영선, 윤영, 이영애, 정영희, 정하균, 조원진, 허천
새누리당66명강석호, 강창희, 권경석, 권성동, 권영세, 권영진, 김광림, 김기현, 김무성, 김성수, 김성조, 김세연, 김영선, 김영우, 김재경, 김정훈, 김태환, 김학용, 김희정, 나성린, 박근혜, 박대해, 박보환, 서병수, 서청원, 손범규, 송광호, 송영근, 신경림, 심재철, 안효대, 유기준, 유승민, 유일호, 유재중, 유정복, 윤상현, 윤영석, 윤진식, 이경재, 이군현, 이낙연, 이명규, 이상권, 이상일, 이완구, 이우현, 이정현, 이종혁, 이주영, 이진복, 이철우, 이학재, 이한구, 이한성, 정갑윤, 정몽준, 정수성, 정우택, 정의화, 조원진, 최경환, 현경병, 홍문종, 홍사덕, 황우여, 황진하 등
자유한국당9명강석진, 곽대훈, 곽상도, 김석기, 김성태(비례대표), 박완수, 윤상직, 추경호, 최경환 등
대한애국당1명조원진
우리공화당1명홍문종
무소속6명강길부, 김무성, 유승민, 윤상현, 이정현, 최경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