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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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캉글리는 튀르크어로 "두 바퀴 수레"를 의미하며, 킵차크족, 페체네그족 또는 텔레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 민족 집단이다. 캉글리는 카라한 칸국, 비잔틴 제국, 호라즘 제국 등 다양한 역사적 맥락에서 언급되었으며, 몽골 제국에 정복된 후 다른 튀르크 민족 및 몽골인에게 흡수되었다. 현재는 카자흐인, 우즈베크인, 키르기스인 등 여러 민족에게 씨족으로 존재하며, 하마, 알리한 스마일로프 등 역사적, 현대적 인물들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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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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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유형 | 튀르크족 |
활동 시기 | 7세기 ~ 13세기 |
주요 거주 지역 | 시르다리야 강 중류 지역, 카자흐스탄 남부 |
언어 | 튀르크어족 |
역사 | |
기원 | 돌궐 텔레족 |
7세기 | 서돌궐의 지배하에 있다가 독립 |
11세기 | 오구즈 튀르크에 의해 정복 |
13세기 |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 |
문화 | |
사회 구조 | 씨족 중심의 유목 사회 |
종교 | 샤머니즘 불교 네스토리우스교 이슬람교 |
경제 | 유목, 농업, 무역 |
언어별 명칭 | |
튀르크어 | قانقلى (Qaŋlï) |
2. 명칭의 유래
에르코치(2023)는 캉글리가 텔레 부족(*''Tägräk'')에서 기원했다고 제안한다.[3] 캉글리(Qangli)는 튀르크어로 "두 바퀴 수레"를 의미한다.
에르코치(2023)는 캉글리가 텔레 부족 (*''Tägräk'')에서 기원했다고 제안한다.[3] 카라한의 사전 편찬가 마흐무드 알 카슈가리는 ''Qanglı''라는 성을 가진 킵차크 족장을 언급하며, ''Qanglı''를 "짐을 싣는 수레"로 간단하게 풀이했다.[5] 튀르키예어 "kağnı" ()는 두 바퀴 수레를 의미한다.[4]
튀르키예어 "kağnı" (gaŋlıota)는 두 바퀴 수레를 의미한다.[4] 카라한의 사전 편찬가 마흐무드 알 카슈가리는 ''Qanglı''라는 성을 가진 킵차크 족장을 언급하며, ''Qanglı''를 "짐을 싣는 수레"로 간단하게 풀이했다.[5] 이들은 킵차크인과 동일시되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으며,[7] 페체네그인의 일부를 형성했거나,[8] 텔레 출신일 수 있다.[1]
3. 기원
그들은 킵차크인과 동일시되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으며,[7] 또는 페체네그인의 일부를 형성했거나,[8] 텔레 출신일 수 있다.[1]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7세는 그의 저서 ''제국 통치론''에서 캉가르라고 통칭되는 세 개의 페체네그 부족을 언급한다. ''캉가르''는 소그디아의 캉 지역과 연관되어 있으며, 돌궐 제국의 쿨 테긴 비문에 언급된 캉가리스족과 캉구 타르반 도시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9] 하지만 캉글리, 캉가르, 그리고 캉가리스/켕게레스(동돌궐의 서돌궐에 대항하는 동맹)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피터 골든과 이슈트반 바샤리는 그들의 이름이 '캉 (하)' 지역(중국 문헌의 강거 = 시르다리야 지역)에서 유래했다고 제안한다.[10] 그러나 당나라의 역사서 당회요는 ''캉헬리''(캉글리)를 강거의 다른 이름인 ''캉'' 국가와 구별하며, 캉헬리의 말을 강 국가의 말, 즉 대완마와 동일시하여 구별했다.[11]
라시드 앗 딘은 『집사』 부족편에서 캉글리가 오구즈족의 분파로서 위구르, 킵차크, 카를루크, 카라지, 아가체리와 함께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다.
명칭과 그 유래에 유사점이 있는 궁월족이나 고거족과의 관계가 생각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다. 무라카미 쇼지(村上正二)에 따르면, 오히려 킵차크족의 분파나 에메크(Ämäk)족[15] 등에서 분기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4. 역사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7세는 그의 저서 ''제국 통치론''에서 캉가르라고 통칭되는 세 개의 페체네그 부족을 언급한다. ''캉가르''는 소그디아의 캉 지역과 연관되어 있으며, 돌궐 제국의 쿨 테긴 비문에 언급된 캉가리스족과 캉구 타르반 도시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9] 하지만 캉글리, 캉가르, 그리고 캉가리스/켕게레스(서돌궐 제국에 대항하는 동돌궐의 동맹)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피터 골든과 이슈트반 바샤리는 그들의 이름이 '캉 (하)' 지역(중국 문헌의 강거 = 시르다리야 지역)에서 유래했다고 제안한다.[10] 그러나 당나라의 역사서 당회요는 ''캉헬리''(캉글리)를 강거의 다른 이름인 ''캉'' 국가와 구별하며, 캉헬리의 말을 강 국가의 말, 즉 대완마와 동일시하여 구별했다.[11]
4. 1. 초기 역사
페체네그 칸국이 10세기 초에 멸망한 후 캉글리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폰토스 스텝의 다양한 튀르크 유목민들은 이전에는 분리되어 있었을 수 있지만, 결국 13세기까지 서로 동화되었다. 실제로 쿠만족의 동부 집단은 ''Qanglı''(라틴어: ''Cangle'')로 알려졌다.[12]
많은 캉글리 전사들이 11세기에 호라즘 제국에 합류했다. 1175년에 그들 중 일부는 발하슈 호 북쪽에 살았으며, 카라 키타이 (서요)에서 금나라로 충성을 옮겼다.[13]
그들은 1219-1223년 몽골의 중앙아시아 정복 동안 칭기즈 칸의 군대에 의해 정복당했다. 부하라에 있던 캉글리 중 수레보다 키가 큰 사람들은 몽골인들에게 살해당했다. 1225년에 키르기스인과 킵차크 스텝 지역에 여전히 살고 있던 잔존 세력을 제압했다. 호라즘의 캉글리 잔존 세력은 자랄 앗딘 밍부르누가 장군 초르마칸과 총독 친테무르에 맞서 오랫동안 저항한 후 대칸 오고타이에게 항복했다. 몽골 정복 이후, 남은 캉글리들은 다른 튀르크 민족과 몽골인에게 흡수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원나라에서 복무하면서 카르친이 되었다.
라시드 앗 딘의 『집사』 부족편에는, 오구즈족의 분파로서 위구르, 킵차크, 카를루크, 카라지, 아가체리와 함께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명칭과 그 유래에 유사점이 있는 궁월족이나 고거족과의 관계가 거론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다. 무라카미 쇼지(村上正二)에 따르면, 오히려 킵차크족의 분파나 에메크(Ämäk)족[15] 등에서 분기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4. 2. 호라즘 제국 시기
페체네그 칸국이 10세기 초에 멸망한 후 캉글리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폰토스 스텝의 다양한 튀르크 유목민들은 이전에는 분리되어 있었을 수 있지만, 결국 13세기까지 서로 동화되었다. 실제로 쿠만족의 동부 집단은 Qanglıla로 알려졌다.[12]
많은 캉글리 전사들이 11세기에 호라즘 제국에 합류했다. 1175년에 그들 중 일부는 발하슈 호 북쪽에 살았으며, 카라 키타이(서요)에서 금나라로 충성을 옮겼다.[13]
바야우트 부족 출신 칭기즈 칸의 딸 테르켄 하툰이 호라즘 제국의 술탄인 알라 웃딘 테키쉬와 결혼한 이후, 많은 캉글리족 수령들은 호라즘 영내에 거주하며 호라즘 술탄을 섬기게 되었다. 테르켄 하툰의 신임과 그 외 캉글리 병사들의 공적에 의해, 캉글리 수령들은 호라즘 제국의 여러 장수들 중에서도 최고위로 진출하여 호라즘 국내에서 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테르켄 하툰은 다음 술탄인 알라 웃딘 무함마드의 어머니이기도 했으며, 캉글리족의 장군들로 조직된 당파의 지도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술탄과 동등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알라 웃딘 무함마드와 테르켄 하툰 양쪽에서 다른 명령이 내려졌을 경우, 그 명령을 받는 자는 그 날짜가 새로운 쪽을 채택하거나, 알라 웃딘 무함마드가 한 주를 획득했을 경우 그 대부분을 테르켄 하툰에게 넘겨야 했다. 또한, 테르켄 하툰은 "후다반다 자한(세계의 군주)"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4. 3. 몽골 제국 시기
페체네그 칸국이 10세기 초에 멸망한 후 캉글리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폰토스 스텝의 다양한 튀르크 유목민들은 이전에는 분리되어 있었을 수 있지만, 결국 13세기까지 서로 동화되었다. 실제로 쿠만족의 동부 집단은 ''Qanglı''(라틴어: ''Cangle'')로 알려졌다.[12]
많은 캉글리 전사들이 11세기에 호라즘 제국에 합류했다. 1175년에 그들 중 일부는 발하슈 호 북쪽에 살았으며, 카라 키타이 (서요)에서 금나라로 충성을 옮겼다.[13]
1219-1223년 몽골의 중앙아시아 정복 동안 칭기즈 칸의 군대에 의해 정복당했다. 부하라에 있던 캉글리 중 수레보다 키가 큰 사람들은 몽골인들에게 살해당했다. 1225년에 키르기스인과 킵차크 스텝 지역에 여전히 살고 있던 잔존 세력을 제압했다. 호라즘의 캉글리 잔존 세력은 자랄 앗딘 밍부르누가 장군 초르마칸과 총독 친테무르에 맞서 오랫동안 저항한 후 대칸 오고타이에게 항복했다. 몽골 정복 이후, 남은 캉글리들은 다른 튀르크 민족과 몽골인에게 흡수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원나라에서 복무하면서 카르친이 되었다.
카자흐인, 우즈베크인, 키르기스인, 바시키르인, 노가이인, 카라칼팍인 및 야쿠트인(사하) 사이에도 캉글리 씨족이 있다.
'''캉글리 출신 주요 인물'''
5. 주요 인물
참조
[1]
웹사이트
"康曷利馬。印宅。" Kangheli's horses; tamga [resembles] [character] 宅
https://ctext.org/wi[...]
[2]
웹사이트
"哈麻,字士廉,康里人" "Hama, courtesy name Shilian, a man of the Kangli (tribe)"
https://ctext.org/wi[...]
[3]
논문
On the origins and emergence of the Qaŋlï Turks
https://www.cambridg[...]
2023
[4]
서적
Türk dilinin etimolojik sözlüğü
[5]
서적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the Turkic People
Otto Harrassowitz, Wiesbaden
[6]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Early Inner Asia, Volume 1
[7]
논문
Prelude to the western campaigns: Mongol military operations in the Volga- Ural region, 1217- 1237
[8]
서적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the Turkic People
Otto Harrassowitz, Wiesbaden
[9]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Early Inner Asia, Volume 1
[10]
서적
Nomads and their Neighbours in the Russian Steppe: Turks, Khazars and Qipchaqs
[11]
문서
"'''康國馬'''。'''康居國'''也。是'''大宛馬'''種。形容極大。武德中,康國獻四千匹。今時官馬。猶是其種。" sec. 113 "'''康曷利馬'''。印宅。"
[12]
서적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the Turkic People
Otto Harrassowitz, Wiesbaden
[13]
서적
Empire of the Kara Kitai
[14]
웹사이트
金史 巻121 列伝第59 忠義1 粘割韓奴伝
https://zh.wikisourc[...]
[15]
문서
キプチャクと共に「2つのエメク(Iki-Ämäk)」(キマク Kīmāk)を形成した遊牧民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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