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청 (양)
1. 개요
태청은 양 무제가 547년 5월 25일(음력 4월 21일)에 제정한 연호이다. 547년부터 549년까지 사용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양나라는 후경의 난과 같은 주요 사건들을 겪었다. 동위, 북제, 서위 등 다른 정권에서도 각기 다른 연호를 사용했으며, 신라는 건원과 개국 연호를 사용했다.
2. 연호 사용 배경
547년 5월 25일(음력 4월 21일)에 태청(太淸)으로 연호를 개원하였다. 550년 1월 간문제가 대보로 개원하였으나, 양양왕 소역(원제)은 간문제 및 후경의 기년을 인정하지 않고 552년(태청 6년) 11월까지 태청 연호를 사용했다.
3. 주요 사건
* 중대동 2년 547년 5월 25일(음력 4월 21일)에 양나라에서 연호를 태청(太淸)으로 개원했다.
* 태청 4년 550년 2월 2일(음력 1월 1일)에 간문제가 연호를 대보(大寶)로 개원했다.
* 태청 6년 552년 5월 16일(음력 4월 8일)에 무릉왕 소기가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천정(天正)으로 개원했다.
* 태청 6년 552년 12월 13일(음력 11월 12일)에 하동왕 소역이 황제에 즉위한 후 연호를 승성(承聖)으로 개원했다.
* 소역은 간문제 및 후경의 기년을 인정하지 않고, 552년 11월까지 태청 연호를 사용했다.
3.1. 후경의 난 (548년 ~ 552년)
548년부터 552년까지 지속된 후경의 난 기간 중, 550년 1월에 간문제는 연호를 대보로 변경했다. 그러나 양양왕 소역(원제)은 간문제와 후경의 연호를 인정하지 않고, 552년(태청 6년) 11월까지 태청 연호를 계속 사용하였다.
3.2. 양나라 분열과 내란
547년 4월 21일(5월 25일) 양나라 무제가 연호를 태청(太淸)으로 개원하였다. 550년 1월 1일(2월 2일) 간문제가 연호를 대보(大寶)로 개원하였으나, 소역(원제)은 간문제 및 후경의 기년을 인정하지 않고, 552년(태청 6년) 11월까지 태청 연호를 사용했다.
552년 4월 8일(5월 16일) 무릉왕 소기가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천정(天正)으로 개원하였고, 같은 해 11월 12일(12월 13일) 하동왕 소역이 황제에 즉위한 후 연호를 승성(承聖)으로 개원하였다.
4. 연대 대조표
550년 1월, 간문제가 대보로 개원했으나, 양양왕 소역(원제)은 간문제 및 후경의 기년을 인정하지 않고, 552년(태청 6년) 11월까지 태청 연호를 사용했다.
5.1. 남조
550년 1월에 간문제에 의해 대보로 개원되었으나, 양양왕 소역(원제)은 간문제 및 후경의 기년을 인정하지 않고, 552년(태청 6년) 11월까지 태청 연호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