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브르다리치
1. 개요
토마스 브르다리치는 독일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VfB 슈투트가르트에서 분데스리가 데뷔 후,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SC 포르투나 쾰른을 거쳐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레버쿠젠에서 두 번의 분데스리가 준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경험했으며, 하노버 96 임대 후 VfL 볼프스부르크를 거쳐 하노버 96으로 복귀했다. 선수 은퇴 후 1. FC 우니온 졸링엔, TSG 노이슈트렐리츠, VfL 볼프스부르크 II, KF 슈켄디야 등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독일 국가대표팀으로도 활약했으며, 2002년 데뷔하여 UEFA 유로 2004,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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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Thomas Brdarić |
|---|---|
| 출생일 | 1975년 1월 23일 (49세) |
| 출생지 | 뉘르팅엔, 서독 |
| 신장 | 1.87m |
| 포지션 | 공격수 |
| 유소년 클럽 | VfB 노이펜 |
|---|---|
| FV 뉘르팅엔 | |
| 슈투트가르트 키커스 | |
| VfL 키르히하임/테크 | |
| 클럽 | VfL 키르히하임/테크 (1992–1993) / 12경기 (4골) |
| VfB 슈투트가르트 (A) (1993–1994) / 26경기 (9골) | |
| VfB 슈투트가르트 (1993–1994) / 10경기 (1골) | |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94–1996) / 30경기 (1골) | |
| 포르투나 쾰른 (1996–1999) / 80경기 (24골) | |
| 바이어 레버쿠젠 (1999–2004) / 82경기 (14골) | |
| 하노버 96 (임대) (2003–2004) / 28경기 (12골) | |
| VfL 볼프스부르크 (2004–2005) / 32경기 (12골) | |
| 하노버 96 (2005–2008) / 42경기 (15골) | |
| 총 경기 수 | 342경기 (102골) |
| 국가대표팀 | 독일 U-21 (1993–1998) / 12경기 (3골) |
|---|---|
| 독일 (2002–2005) / 8경기 (1골) | |
| 현재 클럽 | 블라즈니아 (감독) |
|---|---|
| 감독 | 1. FC 우니온 졸링엔 (2009) |
| KFC 우어딩겐 U-19 (2011) | |
| 디나모 민스크 (스포르팅 디렉터) (2011) | |
| 부뇨드코르 (스포르팅 디렉터) (2012) | |
| TSG 노이슈트렐리츠 (2013–2014) | |
| VfL 볼프스부르크 II (2014–2015) | |
| TSV 슈타인바흐 (2015–2017) | |
| KF 슈켄디야 (2017) | |
|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 (2017–2018) | |
| 로트바이스 에르푸르트 (2018–2019) | |
| 블라즈니아 (2020–2022) | |
| 첸나이 (2022-2023) | |
| 알아라비 (2023) | |
| 블라즈니아 (2024-) | |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3위 (2005년) |
-
VfL 키르히하임/테크의 축구 선수 -
크리스티안 겐트너
크리스티안 겐트너는 독일의 축구 선수 출신으로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VfB 슈투트가르트와 VfL 볼프스부르크에서 분데스리가 우승을 경험했고, 은퇴 후 VfB 슈투트가르트의 프로 선수 부서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
1. FC 우니온 졸링엔의 축구 감독 -
게르트 체베
게르트 체베는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300경기 이상 출전, DFB-포칼 우승,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준우승을 경험한 은퇴한 독일 축구 선수이자, 서독 국가대표로 UEFA 유로 1980 예선에 출전했으며, 우니온 졸링엔 등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북마케도니아의 외국인 축구 감독 -
존 토샥
존 토샥은 웨일스 출신의 축구 선수 및 감독으로, 선수 시절 리버풀 등에서 다양한 우승을 경험했고 웨일스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며, 은퇴 후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
북마케도니아의 외국인 축구 감독 -
슬로보단 산트라치
슬로보단 산트라치는 유고슬라비아와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및 감독으로, OFK 베오그라드에서 전설적인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득점왕을 네 차례 차지했고,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1998년 FIFA 월드컵 진출을 이끌었다.
2. 클럽 경력
VfB 슈투트가르트 소속으로 1993년 8월 29일에 FC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그의 두 번째 출전 경기인 SG 바텐샤이트 09전에서 첫 골을 득점하여 4-2 승리에 일조하였다. 데뷔 시즌에 10경기 출전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꾸준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으로 인해 2. 분데스리가의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 매각되었다.
그는 이 라인란트 연고의 클럽에 2년 동안 속해 있었으며, 뒤셀도르프의 1부리그 승격과 잔류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그는 뒤셀도르프 소속으로의 득점 기록은 한 골에 그쳤고, 이후 2. 분데스리가의 라이벌 클럽인 포르투나 쾰른으로 방출되었다. 그는 포르투나 쾰른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었고, 1군 주전 자리를 꿰차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특히 1998-99 시즌에는 29경기에 출전하여 13골을 기록하였다.
그의 기량은 분데스리가 클럽인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눈도장을 찍었고, 레버쿠젠은 1999년 여름에 그를 데려오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많은 득점을 내지는 못하였으나, 주전 자리를 안정적으로 차지하였고, 그의 현역 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레버쿠젠 소속으로, 두 차례의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거두었으며, DFB-포칼 2001-02 결승전에도 출전하였다. 뿐만 아니라, 토너먼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레알 마드리드 CF에 석패했던 2002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출전하였다. 브르다리치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총 18경기를 출전하였고, 이 18경기동안 한 골 (2001-02 시즌, 3-1로 승리한 유벤투스 FC전에서 기록) 을 득점하였다.
브르다리치의 레버쿠젠 전성기는 2002-03 시즌으로 넘어가면서 끝나갔는데, 이 시즌에 브르다리치는 북부 레기오날리가의 리저브 팀 일원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그 다음 시즌, 그는 같은 리그의 팀인 하노버 96으로 임대되기도 하였는데, 임대 기간 동안 그는 12골을 득점하여 개인 한 시즌 1부리그 최다골 기록을 세웠다.
그의 활약은 2004년 7월 VfL 볼프스부르크의 이적제안으로 이어졌고, 그는 €1M의 가격에 3년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는 2004-05 시즌 동안 12골을 득점하며 개인 한 시즌 1부리그 최다골 기록 동률을 기록하였으나, 그 자신에게 있어서는 주전보다 교체선수로 활약하였던 치욕스러운 시즌이었다. 그는 교체요원으로 활약한 것에 불만을 느껴 팀원들, 보드진들과 관계가 멀어졌다. 토마스 슈트룬츠 매니저는 브르다리치를 팀을 생각하기보다 자기 중심으로만 모든 것을 맞추려고만 하는 "이기주의자"로 낙인찍었다.
파란만장했던 1년이 지나고, 그는 하노버 96에 팔렸고, 이전에 임대로 활약했던 적이 있던 클럽과 3년 계약을 맺으며 복귀하였다. 하지만, 그는 "스트라이커로서, 너는 득점의 욕망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4-4로 비긴 경기에서 너가 4골을 득점한게 팀이 승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라고 페터 노이루러 감독을 비꼬며 인터뷰를 한 것으로 인해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브르다리치는 주전자리를 빼앗겼고, 출전 기회도 줄어들었다.
이 브르다리치의 인터뷰 문제는 페터 노이루러 감독이 2006년 8월에 경질되면서 종결되었고, 그에 대하여 브르다리치는 노이루러 감독을 "못되고 양심없는" 감독이라며 여과 없이 분노를 표출하였고, 선수 관계가 불량하고 리더쉽이 부족한 감독이라고 비판하였다. 디터 헤킹 감독하에 그는 덜 괴팍해졌고, 2006-07 시즌에 11경기 출전, 5골을 기록하였으나, 무릎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그의 무릎 문제는 결국 현역 은퇴로 이어졌다.
2.1. 초기 경력
VfB 슈투트가르트 소속으로 1993년 8월 29일에 FC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그의 두 번째 출전 경기인 SG 바텐샤이트 09전에서 첫 골을 득점하여 4-2 승리에 일조하였다. 데뷔 시즌에 10경기 출전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꾸준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으로 인해 2. 분데스리가의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 매각되었다.
그는 이 라인란트 연고의 클럽에 2년 동안 속해 있었으며, 뒤셀도르프의 1부리그 승격과 잔류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그는 뒤셀도르프 소속으로의 득점 기록은 한 골에 그쳤고, 이후 2. 분데스리가의 라이벌 클럽인 포르투나 쾰른으로 방출되었다. 그는 포르투나 쾰른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었고, 1군 주전 자리를 꿰차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특히 1998-99 시즌에는 29경기에 출전하여 13골을 기록하였다.
그의 기량은 분데스리가 클럽인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눈도장을 찍었고, 레버쿠젠은 1999년 여름에 그를 데려오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많은 득점을 내지는 못하였으나, 주전 자리를 안정적으로 차지하였고, 그의 현역 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레버쿠젠 소속으로, 두 차례의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거두었으며, DFB-포칼 2001-02 결승전에도 출전하였다. 뿐만 아니라, 토너먼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레알 마드리드 CF에 석패했던 2002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출전하였다. 브르다리치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총 18경기를 출전하였고, 이 18경기동안 한 골 (2001-02 시즌, 3-1로 승리한 유벤투스 FC전에서 기록) 을 득점하였다.
브르다리치의 레버쿠젠 전성기는 2002-03 시즌으로 넘어가면서 끝나갔는데, 이 시즌에 브르다리치는 북부 레기오날리가의 리저브 팀 일원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그 다음 시즌, 그는 같은 리그의 팀인 하노버 96으로 임대되기도 하였는데, 임대 기간 동안 그는 12골을 득점하여 개인 한 시즌 1부리그 최다골 기록을 세웠다.
그의 활약은 2004년 7월 VfL 볼프스부르크의 이적제안으로 이어졌고, 그는 €1M의 가격에 3년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는 2004-05 시즌 동안 12골을 득점하며 개인 한 시즌 1부리그 최다골 기록 동률을 기록하였으나, 그 자신에게 있어서는 주전보다 교체선수로 활약하였던 치욕스러운 시즌이었다. 그는 교체요원으로 활약한 것에 불만을 느껴 팀원들, 보드진들과 관계가 멀어졌다. 토마스 슈트룬츠 매니저는 브르다리치를 팀을 생각하기보다 자기 중심으로만 모든 것을 맞추려고만 하는 "이기주의자"로 낙인찍었다.
파란만장했던 1년이 지나고, 그는 하노버 96에 팔렸고, 이전에 임대로 활약했던 적이 있던 클럽과 3년 계약을 맺으며 복귀하였다. 하지만, 그는 "스트라이커로서, 너는 득점의 욕망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4-4로 비긴 경기에서 너가 4골을 득점한게 팀이 승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라고 페터 노이루러 감독을 비꼬며 인터뷰를 한 것으로 인해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브르다리치는 주전자리를 빼앗겼고, 출전 기회도 줄어들었다.
이 브르다리치의 인터뷰 문제는 페터 노이루러 감독이 2006년 8월에 경질되면서 종결되었고, 그에 대하여 브르다리치는 노이루러 감독을 "못되고 양심없는" 감독이라며 여과 없이 분노를 표출하였고, 선수 관계가 불량하고 리더쉽이 부족한 감독이라고 비판하였다. 디터 헤킹 감독하에 그는 덜 괴팍해졌고, 2006-07 시즌에 11경기 출전, 5골을 기록하였으나, 무릎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그의 무릎 문제는 결국 현역 은퇴로 이어졌다.
2.2.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 쾰른
토마스 브르다리치는 VfB 슈투트가르트 소속으로 1993년 8월 29일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두 번째 출전 경기인 SG 바텐샤이트 09전에서 첫 골을 기록하여 4-2 승리에 기여했다. 데뷔 시즌에 10경기에 출전하였으나, 꾸준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여 2. 분데스리가의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로 이적했다.
브르다리치는 뒤셀도르프에서 두 시즌 동안 활약하며 팀의 1부 리그 승격과 잔류에 기여했다. 그러나 뒤셀도르프 소속으로는 한 골에 그쳤고, 이후 2. 분데스리가의 포르투나 쾰른으로 이적했다. 포르투나 쾰른에서는 주전 자리를 꿰차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특히 1998-99 시즌에는 29경기에 출전하여 13골을 기록했다.
2.3. 바이어 04 레버쿠젠
토마스 브르다리치는 VfB 슈투트가르트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1993년 8월 29일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프리츠 발터를 대신하여 교체 선수로 출전하며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단 두 번째 경기인 SG 바텐샤이트 09와의 경기에서 그는 4-2 승리를 거두며 첫 골을 기록했다. 데뷔 시즌에 총 10경기에 출전했지만, 팀 내 입지를 굳히지 못하고 2. 분데스리가의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로 이적했다.
그는 라인란트 클럽에서 두 시즌을 보냈고, 팀이 1부 리그로 승격하는 데 기여했으며, 1부 리그 잔류에도 힘을 보탰다. 하지만 그는 그 기간 동안 단 한 골만을 기록했고, 다시 포르투나 쾰른으로 이적하며 2. 분데스리가로 돌아갔다. 이곳에서의 그는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고, 특히 1998-99 시즌에는 29경기에서 13골을 기록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성공적인 시기를 보냈다.
이러한 활약은 분데스리가 클럽인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눈길을 끌었고, 1999년 여름 그를 영입했다. 그는 레버쿠젠에서 정기적으로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주로 주전 자리를 지키며 선수 경력의 가장 큰 무대에서 뛰는 것을 즐겼다. 클럽에서 활약하는 동안 리그에서 두 번 준우승을 차지했고, 2002 DFB 포칼 결승전에 출전했으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2002년)에 출전하여, 토너먼트에서 파란을 일으킨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했다. 브르다리치는 총 18번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2002년 유벤투스 FC와의 경기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한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브르다리치가 레버쿠젠에서 보낸 시간은 2002-03 시즌 초반부터 쇠퇴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레기오날리가 북부의 아마추어 팀에서 뛰기도 했다.
2.4. 하노버 96 (임대)
토마스 브르다리치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하노버 96으로 임대되어 2003-04 시즌 동안 12골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1부 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2.5. VfL 볼프스부르크
토마스 브르다리치는 2004년 7월 VfL 볼프스부르크와 3년 계약을 맺고 이적료 100만 유로에 합류했다. 2004-05 시즌에 12골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 득점 타이를 기록했지만, 주전보다는 교체 선수로 더 많이 출전했다. 그는 교체 선수로 기용되는 것에 불만을 품고 팀 동료 및 구단 관계자들과 마찰을 빚었다. 당시 볼프스부르크의 단장이었던 토마스 슈트룬츠는 브르다리치를 "팀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이유로 1년 만에 하노버 96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2.6. 하노버 96 복귀
1993년 VfB 슈투트가르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브르다리치는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프리츠 발터를 대신하여 교체 투입되며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SG 바텐샤이트 09와의 경기에서 4-2 승리와 함께 첫 골을 기록했다. 데뷔 시즌에 총 10경기에 출전했지만, 팀 내 입지를 굳히지 못하고 2. 분데스리가의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로 이적했다.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전성기를 보낸 후, 2002-03 시즌에 북부 레기오날리가의 리저브 팀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2003-04 시즌에는 하노버 96으로 임대되어 12골을 기록하며 개인 한 시즌 1부리그 최다골 기록을 세웠다.
VfL 볼프스부르크에서 1년을 보낸 후, 2005-06 시즌을 앞두고 하노버 96으로 복귀하였다. 하지만, 페터 노이루러 감독을 비꼬는 인터뷰로 인해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주전 경쟁에서 밀려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2006년 8월 페터 노이루러 감독이 경질되면서 인터뷰 문제는 종결되었고, 브르다리치는 노이루러 감독을 "못되고 양심없는" 감독이라며 비판하였다. 디터 헤킹 감독 하에서는 덜 괴팍한 모습을 보였지만, 2006-07 시즌에 무릎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무릎 문제로 인해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브르다리치는 2002년 3월 27일, 로스토크에서 열린 미국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UEFA 유로 2004 조별 리그 라트비아전에서는 교체 선수로 출전했다.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도 참가했으나,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2004년 10월 9일 이란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에서의 유일한 골을 기록했다.
4. 감독 경력
1. FC 우니온 졸링엔의 스포르팅 디렉터로 2009년 3월 24일에 선임되었으며, 이후 감독직을 수행했다. 2009년 8월 17일에 경질되었다. 2013년에는 TSG 노이슈트렐리츠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2013-14 시즌 레기오날리가 노르도스트 우승을 차지했지만, FSV 마인츠 05 II와의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패하였다. 이후 VfL 볼프스부르크 II의 감독을 맡았다. 2017년 5월에는 KF 슈켄디야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