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산 궁씨
1. 개요
토산 궁씨는 태원 출신인 궁흠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토산 궁씨는 중국 기원을 가지며, 은나라가 망하자 기자와 함께 고조선으로 와서 토산에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토산 궁씨는 황해북도 동남부에 위치한 토산군을 본관으로 하며, 고려 시대에는 궁제, 조선 시대에는 궁원일과 같은 인물을 배출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 궁달초, 궁억로, 궁현섭, 궁인성 등이 있었으며, 현대에는 궁선영, 궁석웅, 궁인 등이 있다. 토산 궁씨는 평안남도 개천군과 순천군에 주로 세거했으며, 2015년에는 39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 기원
토산 궁씨는 태원(太原) 출신인 궁흠(弓欽)이 시조라고 전해진다. 궁흠은 은나라가 망하자 기자를 따라 고조선으로 와서 토산(兎山)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궁씨는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
3. 역사
『토산궁씨세보(兎山弓氏世譜)』에 따르면, 토산 궁씨는 세계가 소실되어 정확한 계보를 알 수 없다. 이에 토산에 세거해 온 궁계신(弓繼信)을 1세조로 하고, 관향을 토산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4. 본관
토산 궁씨의 본관인 토산군(兎山)은 황해북도 동남부에 위치한 지역이다. 백제와 고구려 시대에는 오사함달현(烏斯含達縣) 또는 월성현(月城縣)으로 불렸으며, 신라 경덕왕 때 토산(兎山)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장단현(長湍縣)에 속했다가 개성(開城)의 직할이 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황해도에 속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토산군(兎山郡)으로 승격되었으나,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일부는 신계군(新溪郡)에, 나머지는 금천군(金川郡)에 편입되었다. 1952년에 금천군의 일부 지역을 독립시켜 토산군을 신설하였다.
5. 인물
* 궁제(弓濟) : 고려 숙종 때 우문감(右門監)을 지냈다.
* 궁원일(弓元日) : 조선 고종 때 관찰사(觀察使)를 지냈다.
* 궁달초(弓達楚)·궁억로(弓億魯)·궁현섭(弓顯燮) : 구한말의 독립 운동가.
* 궁인성(弓寅聖) : 독립운동가. 호는 만취(晩翠). 평안북도 순천군 출신. 의병장 유인석(柳麟錫)의 휘하에서 독립운동에 참가하였고, 3·1운동 후에는 독립단 평남 지단장으로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15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중국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병사하였다.
* 궁선영(1972년 5월 12일 ~ ) : 1993년 미스코리아 진.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대우교수. 성균관대학교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연구교수
* 궁석웅(弓錫雄) : 前 북한 외무부 부상.
* 궁인(1971년 5월 11일 ~ ) : 2017년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우수상. <리액션> 저자. 한국 지구촌교회 목사 역임, 호치민 지구촌교회 담임목사, 미국 휴스턴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5.3. 구한말 및 일제 강점기
궁달초(弓達楚), 궁억로(弓億魯), 궁현섭(弓顯燮)은 구한말의 독립 운동가들이다. 궁인성(弓寅聖)은 호가 만취(晩翠)이며 평안북도 순천군 출신으로, 의병장 유인석(柳麟錫)의 휘하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3·1운동 후에는 독립단 평남 지단장으로 활약하다 체포되어 15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중국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