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잉카
1. 개요
파울루 잉카는 우아이나 카팍의 아들이자 우아스카르, 아타우알파 등의 이복형제이다. 그는 초기에는 망코 잉카를 지지하여 스페인 원정대에 협력했으나, 망코 잉카가 반란을 일으키자 스페인 편에 가담했다. 스페인 편에서 여러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고, 총독으로 임명받았으며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파울루 잉카는 1549년에 사망했으며, 쿠스코에 묻혔다. 그는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그의 후손들은 잉카 제국 멸망 후에도 스페인 사회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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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 잉카 -
아타우알파
아타우알파는 잉카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내전에서 승리했으나 스페인 군대에 포로로 잡혀 처형당하며 잉카 제국의 멸망을 가져왔고, 오늘날 안데스 지역에서는 저항의 상징 또는 왕위를 찬탈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사파 잉카 -
투팍 잉카 유팡키
투팍 잉카 유팡키는 15세기 잉카 제국의 황제로서, 젊은 나이에 군대를 지휘하여 제국을 확장하고 내정을 정비했으며, 태평양 탐험 항해를 통해 폴리네시아의 섬들을 방문했다는 전설도 있다. -
잉카 제국 사람 -
투팍 잉카 유팡키
투팍 잉카 유팡키는 15세기 잉카 제국의 황제로서, 젊은 나이에 군대를 지휘하여 제국을 확장하고 내정을 정비했으며, 태평양 탐험 항해를 통해 폴리네시아의 섬들을 방문했다는 전설도 있다. -
잉카 제국 사람 -
로퀘 유팡키
로퀘 유팡키는 평화로운 통치와 쿠스코 공설 시장 건설, 그리고 젊은 여성들을 위한 기관인 '아클라와시' 설립으로 알려진 잉카 제국의 세 번째 사파 잉카이다.
2. 생애
파울루 잉카는 우아이나 카팍의 아들이며, 우아스카르, 아타우알파, 투팍 우알파, 망코 잉카 유팡키의 이복형제였다.
초기에 파울루 잉카는 망코 잉카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나, 쿠스코 포위전에서 망코 잉카가 패배하자 스페인 측에 가담하여 새로운 황제(사파 잉카)에 오르게 된다. 그는 스페인을 도와 남아메리카 정복과 안정화에 협력하였고, 카를 5세로부터 총독으로 임명받고 감사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1543년에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크리스토발'이라는 세례명을 받았으며, 1549년에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여 쿠스코의 성당 지하실에 묻혔다.
2.1. 초기 생애와 망코 잉카 지지
파울루 잉카는 우아이나 카팍의 아들이자, 우아스카르, 아타우알파, 투팍 우알파, 망코 잉카 유팡키의 이복형제이다.
망코 잉카 즉위 직후, 파울루 잉카는 그의 열성적인 지지자였다. 1535년 망코 잉카는 그와 대사제 빌라크 우마크에게 디에고 데 알마그로의 칠레 원정에 동행할 것을 명령했다. 이들은 투피사에서 알마그로에게 칠레 공물로 받은 많은 양의 금을 전달했다. 그러나 주주이에서 빌라크 우마크는 탈출하여 페루로 돌아가 망코 잉카의 사주를 받아 스페인에 대한 봉기를 선동했다.
2.2. 스페인 측 가담과 망코 잉카와의 대립
망코 잉카가 쿠스코를 포위 공격했을 때, 파울루 잉카는 스페인 편에 섰다. 스페인에 협력한 대가로 그는 형 우아스카르의 재산을 받았다. 망코 잉카가 포위전에서 패배하고 후퇴하자, 스페인인들은 파울루 잉카를 새로운 황제(사파 잉카)로 추대했다.
파울루 잉카는 스페인 군대를 도와 알론소 데 알바라도의 군대를 격파했고, 살리나스 전투에는 6,000명의 잉카 군을 이끌고 참전했다. 1539년에는 곤살로 피사로와 함께 차르카스의 잉카 반란군을 진압하는 등 남아메리카 지역 정복과 안정화에 기여했다.
2.3. 스페인의 남아메리카 정복 협력
파울루 잉카는 스페인의 남아메리카 정복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그는 아반카이 전투에서 디에고 데 알마그로를 도와 알론소 데 알바라도의 군대를 물리칠 때 잉카 군을 이끌었으며, 살리나스 전투에도 6,000명의 잉카 군을 이끌고 참전했다. 1539년에는 곤살로 피사로와 함께 차르카스 지역에서 잉카 저항 세력을 진압하는 데 참여했다.
2.4. 스페인으로부터의 인정과 가톨릭 개종
카를 5세는 파울루 잉카를 총독으로 추천했고,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1543년 파울루 잉카는 '크리스토발'이라는 이름으로 가톨릭 세례를 받고 개종했다.
3. 자손
파울루 잉카는 수없이 많은 자식들을 남겼지만, 이들에게 큰 관심이나 애정을 쏟지는 않았다. 왕실 칙령에 의해 많은 사생자들이 적자로 인정받고 "사파 잉카" 칭호가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파울루는 여러 명의 사생자들을 유언장에서 제외했다. 파울루 잉카의 자손으로는 카를로스 잉카, 멜초르 카를로스 잉카, 후안 멜초르 카를로스 잉카 등이 있다.
3.2. 멜초르 카를로스 잉카
카를로스 잉카의 아들 멜초르 카를로스 잉카는 1582년, 11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그는 쿠스코에 살면서 산티아고 기사단으로 봉사했으며, 그의 아들인 후안 멜초르 카를로스 잉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3.3. 후안 멜초르 카를로스 잉카
멜초르 카를로스 잉카의 아들 후안 멜초르 카를로스 잉카는 스페인으로 이주하여 군 복무 중 바르셀로나에서 사망했으며, 후손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