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파트리스 탈롱은 베냉의 정치인이자 사업가이다. 그는 우이다에서 태어났으며, 2016년과 2021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현재 베냉의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다. 탈롱은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6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며, 2021년 선거에서는 86% 이상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면화 사업으로 '면화왕'으로 불리며, 야이 보니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으나, 이후 관계가 악화되어 암살 음모 혐의로 프랑스로 망명하기도 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에는 정치적 탄압 논란이 있었으며, 2024년에는 쿠데타 시도가 발생하기도 했다.
탈롱은 폰족 출신으로 우이다에서 태어났으며, 노예 상인의 후손이다. 그의 아버지는 우이다 출신이고, 어머니는 아보메의 게데베 가문 출신이다. 그는 세네갈의 다카르에서 바칼로레아 학위를 취득했다. 다카르 대학교에서 과학 학사 학위를 받은 후,파리에 있는 국립민간항공학교로 옮겼다. 조종사가 되는 꿈을 꾸었지만, 건강 검진에서 불합격하여 꿈을 접어야 했다.
1983년, 탈롱은 포장재 및 농업 투입재 거래 사업에 뛰어들었다. 1985년 베냉으로 돌아와 면화 생산자들에게 농업 투입재를 공급하는 인터콘티넨탈 유통 회사(Société Distribution Intercontinentale프랑스어)를 설립했다. 1990년, 세계은행의 권고에 따라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 자유화가 진행되면서 베냉 정부가 면화 생산 분야에서 철수하게 되자, 탈롱은 베냉에 3개의 면화 가공 공장을 설립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면화 산업에 깊이 관여하면서 "면화의 왕"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베냉 정치계와의 관계를 통해 사업 제국을 건설했다.
탈롱은 토마 보니 야이 대통령의 주요 재정 후원자 중 한 명으로, 2006년과 2011년 대선에서 그의 선거 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그의 회사인 베냉 컨트롤은 2009년 소데코(Sodeco)와 2011년 PVI라는 두 개의 국영 기업을 인수했다. 2011년에는 코토누 항의 수입품 관리권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보니 야이 대통령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18 이상의 세금을 횡령한 혐의와 보니 야이 암살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프랑스로 도피했다. 그는 2014년에 사면되었다. 2015년 《포브스》는 탈롱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15번째로 부유한 인물로 선정했으며, 당시 그의 재산은 약 400로 추정되었다.
3. 대통령직
탈롱은 2016년 3월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1차 투표에서 당시 베냉의 총리였던 리오넬 진수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나, 2차 결선 투표에서 65%의 득표율로 승리하였다. 진수는 선거 당일 밤 패배를 인정했다. 당선 후 탈롱은 "최우선적으로 헌법 개혁에 임할 것"이라며,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제로 제한하여 "자만심"과 싸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한 정부 규모를 28명에서 16명으로 축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탈롱은 2016년 4월 6일에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의 내각은 총리직을 두지 않았으며, 선거 과정에서 탈롱을 지지했던 경쟁 후보였던 파스칼 쿠파키와 압둘라예 바이오찬이 각각 대통령 비서실장과 기획개발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탈롱은 5년 임기 동안 베냉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프랑스와의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으며, 행정부 권한 축소와 대통령 5년 단임제 도입을 주요 정책 목표로 내세웠다. 그는 총 22명의 장관을 임명했으며, 그중 4명은 여성이었다.
2017년 4월 4일, 국회는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하는 탈롱의 헌법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통과에 필요한 63표에 미치지 못하는 60표를 얻는 데 그쳤다. 탈롱은 투표 결과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결과를 수용하고 더 이상 해당 개헌안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탈롱은 202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86% 이상의 득표율로 재선되었다. 그러나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베냉의 민주주의적 명성은 하락했다는 평가가 있으며, 특히 야권 인사들에 대한 탄압 논란이 제기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정치적 탄압 논란 참조)
2021년 9월, 탈롱은 전임 대통령이자 과거 정치적 후원자였던 야이 보니와 만나 정치범 석방 등 보니가 제시한 여러 요구 사항에 대해 논의했다.
2023년 7월, 이웃 국가 니제르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자 탈롱은 축출된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지지하며 쿠데타를 규탄했다.
3.1. 정치적 탄압 논란
파트리스 탈롱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베냉의 민주주의적 명성은 하락했다는 평가가 있다. 특히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탄압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2018년,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3위를 차지했던 상대 후보 세바스티앙 아자본이 "마약 밀매"와 "위조 및 사기" 혐의로 궐석재판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202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대통령 후보 자격 요건이 변경되어, 후보자는 국회의원 16명의 지지를 받아야 했다. 당시 국회의원은 거의 모두 탈롱을 지지하는 정당 소속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탈롱에게 유리한 구도였다. 이로 인해 탈롱이 실질적인 경쟁 없이 재선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으며, 실제로 유력한 경쟁 후보들이 출마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국외로 망명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탈롱은 해당 선거에서 86% 이상의 득표율로 재선되었다.
2021년 12월에는 몇몇 야권 주요 인사들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전 법무부 장관 레크야 마두구는 "테러" 혐의로 20년형을, 법학 교수 조엘 아이보는 "자금 세탁" 및 "국가 안보 훼손"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언론인이자 교수인 프란시스 크파틴데는 탈롱의 정책으로 인해 베냉의 인권과 파업권이 약화되었다고 비판했다.
2024년 9월, 베냉 당국은 탈롱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 시도가 적발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쿠데타 시도는 탈롱의 오랜 동맹이자 사업가인 올리비에 보코가 주도했으며, 전 스포츠부 장관 오스왈드 호메키와 공화국 경비대 사령관도 공모자로 지목되었다. 보코와 호메키는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