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키우스 페스투스
1. 개요
포르키우스 페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유대 속주 총독으로, 58년에서 60년 사이에 임기를 시작하여 61년까지 재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유대인들의 시민 면책 특권 문제와 성전 벽 건설로 인한 헤로데 아그립파 2세와 예루살렘 제사장 간의 갈등을 해결해야 했다. 페스투스는 사도 바울로를 심문하고 황제에게 항소할 기회를 제공했으며, 바울의 항소로 인해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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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위 | 유대 총독 |
|---|---|
| 임기 시작 | 59년 |
| 임기 종료 | 62년 |
| 이전 | 안토니우스 펠릭스 |
| 이후 | 루케이우스 알비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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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이아 총독 -
루시우스 퀴에투스
루시우스 퀴에투스는 베르베르 출신으로 로마 시민권을 얻고 기병대 장교, 유대 총독 등을 역임했으나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살해당했다. -
유다이아 총독 -
가이우스 율리우스 콰드라투스 바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콰드라투스 바수스는 페르가몬 출신으로 아탈로스 왕조 및 갈라티아 대족장 가문 출신인 로마 제국의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게미나 제13군단의 트리부누스 밀리툼으로 시작해 여러 속주의 관직과 군단 레가투스를 거쳐 유대 속주 총독, 집정관, 여러 지역의 총독을 역임하다 다키아 반란 당시 다키아 속주의 황제 총독으로 사망했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신약성경의 인물 -
엘리사벳
사가리아의 아내이자 세례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친척으로, 오랫동안 불임이었으나 고령에 요한을 임신하여 마리아 방문 시 성령의 인도로 축복의 말을 전했으며, 이는 아베 마리아 기도의 일부가 되었다. -
신약성경의 인물 -
사탄
사탄은 원래 "적대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였으나,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에서 악마, 유혹자, 또는 인간 내면의 부정적인 면모를 상징하는 존재로 다양하게 해석되며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악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2. 임기
페스투스의 정확한 근무일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직무를 시작한 연도를 서기 55-61년부터 61년까지 비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는 58년부터 60년 사이에 임기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F. F. 브루스(Bruce)는 비록 포르키우스 페스투스가 임기를 시작한 연도는 논란중에 있지만, 네로 5년에 발생했던 지방화폐 개혁은 그의 임기를 59년으로 비정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고 말한다. 코니베어(Conybeare)와 하우슨(Howson)은 이 연도를 60년으로 추정한다.
페스투스가 집무한 정확한 기간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임기 시작에 대한 가장 이른 추정 날짜는 대략 서기 55~56년이며, 가장 늦은 시기는 61년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시기는 큰 지지를 얻지 못했으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서기 58년에서 60년 사이의 시기를 선호한다. F. F. Bruce는 "그[펠릭스]의 소환과 포르키우스 페스투스의 교체 시기는 논쟁의 대상이지만, 유대 지방의 주화 변화가 네로의 다섯 번째 해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서기 59년임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한다. 코니베어와 하우슨은 60년에 교체가 이루어졌다는 확장된 주장을 펼친다.
3. 통치
페스투스는 전임자로부터 유대인에 대한 시민 면책 특권 문제와, 궁정 경관을 해치던 성전 벽을 허무는 문제에 대한 아그립파 2세와 예루살렘의 제사장 사이의 갈등 상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시민 면책 특권 문제로 인해 로마에 상당한 적개심을 보였으며, 이는 제1차 유대-로마 전쟁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도 바울로는 페스투스 앞에서 마지막 심리(사도행전 24장 27절)를 받았다. 사도행전 25장에서 페스투스는 예루살렘에서 법정을 열어 바울을 데려왔는데, 여기서 바울은 황제에게 항소했다. 바울은 석방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행 26:31) 이 항소로 인해 로마로 압송되었다.
3.1. 유대인과의 관계
페스투스는 전임자로부터 유대인에 대한 시민 면책 특권 문제와, 궁정 경관을 해치던 성전 벽을 허무는 문제에 대한 아그립파 2세와 예루살렘의 제사장 사이의 갈등 상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 갈등은 아그립파 궁전의 새 날개 시야를 가리기 위해 성전에 세운 벽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시민 면책 특권 문제로 인해 로마에 상당한 적개심을 보였다. 이러한 감정은 제1차 유대-로마 전쟁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도 바울로는 페스투스 앞에서 마지막 심리(사도행전 24장 27절)를 받았다. 사도행전 25장에서 페스투스는 예루살렘에서 법정을 열어 바울을 데려왔는데, 여기서 바울은 황제에게 항소했다. 이 항소로 인해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었으며, 석방될 수도 있었다(행 26:31).
3.2. 사도 바울과의 관계
페스투스는 전임자로부터 유대인에 대한 시민 면책 특권 문제와, 궁정 경관을 해치던 성전 벽을 허무는 문제에 대한 아그립파 2세와 예루살렘의 제사장 사이의 갈등 상황을 물려받았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시민 면책 특권 문제로 인해 로마 제국에 상당한 적개심을 보였고, 이러한 감정은 제1차 유대-로마 전쟁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사도 바울로는 페스투스 앞에서 마지막 심리(사도행전 24장 27절)를 받게 된다. 사도행전 25장에서 페스투스는 예루살렘에서 법정을 열어 바울로를 데리고 오는데, 여기서 바울로는 황제에게 항소를 한다. 바울로는 석방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행 26:31) 이 항소로 인해 바울로는 로마로 압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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