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판 데르 엘스트
1. 개요
프랑수아 판 데르 엘스트는 벨기에의 전 축구 선수로, 미드필더, 공격수, 측면 수비수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1969년부터 1980년까지 RSC 안데를레흐트에서 활약하며 두 번의 리그 우승과 네 번의 벨기에 컵 우승을 이끌었고, 두 번의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을 차지했다. 1976-77 시즌에는 벨기에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뉴욕 코스모스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벨기에 국가대표팀으로 44경기 출전하여 유로 1980 준우승을 달성했다. 은퇴 후에는 스누커 당구장을 운영하다가 2017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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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François Van der Elst |
|---|---|
| 출생일 | 1954년 12월 1일 |
| 출생지 | 오프베이크 |
| 사망일 | 2017년 1월 11일 |
| 사망지 | 알스트 |
| 키 | 172cm |
| 포지션 | 측면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연도 | 1965–1969 1969–1971 |
|---|---|
| 유소년 클럽 | 마젠젤러 안데를레흐트 |
| 클럽 연도 | 1971–1980 1980–1981 1981–1983 1983–1986 |
| 클럽 | 안데를레흐트 뉴 욕 코스모스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로케런 |
| 클럽 출장수 (골) | RSC 안데를레흐트: 243 (82) 뉴 욕 코스모스: 43 (12)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62 (14) KSC 로케런: 57 (12) 합계: 405 (120) |
| 국가대표팀 연도 | 1973–1983 |
| 국가대표팀 | 벨기에 |
| 국가대표팀 출장수 (골) | 44 (14) |
| 감독 연도 | 해당사항 없음 |
|---|---|
| 감독 클럽 | 해당사항 없음 |
| 메달 | 메달 국가: 벨기에 메달 스포츠: 남자 축구 메달 경기: 유럽 선수권 대회 2위: 1980 이탈리아 (단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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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코스모스 (1970년)의 축구 선수 -
펠레
펠레는 에드손 아란치스 두 나시멘토라는 본명으로 브라질에서 태어나, 산토스 FC와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FIFA 월드컵 3회 우승과 1,000골 이상 기록을 세운 "축구 황제"로 불린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다. -
뉴욕 코스모스 (1970년)의 축구 선수 -
프란츠 베켄바워
프란츠 베켄바워는 "Der Kaiser"라는 별명으로 불린 독일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감독, 행정가로, 바이에른 뮌헨과 서독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발롱도르 수상, 월드컵 우승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은퇴 후에도 독일 축구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미국에 거주한 벨기에인 -
다미앵 신부
벨기에 출신 로마 가톨릭 사제이자 예수 성심 성모 수도회 소속 선교사인 다미앵 신부는 하와이 몰로카이섬에서 한센인들을 16년간 헌신적으로 돌보며 사목 활동을 펼치다 자신도 한센병에 감염되었으나 봉사를 이어갔고, 사후 시성되어 소외된 이들을 위한 봉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미국에 거주한 벨기에인 -
야니서 케망
야니서 케망은 벨기에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간판스타로 150경기 이상 출전하여 48골을 기록, 2016년 알가르브컵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엑셀시오르 카르트, 올랭피크 리옹 등 다양한 클럽에서 활약하며 USL W리그, NWSL, UEFA 여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한 다수의 트로피를 획득하고 현재 레스터 시티에서 활동 중인 벨기에 여자 축구 선수이다. -
잉글랜드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손흥민
손흥민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윙어 또는 스트라이커로 뛰며 함부르크 SV,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거쳐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활약, 아시아 선수 최초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 등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세계적인 축구 스타이다. -
잉글랜드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마크 슈워처
마크 슈워처는 독일계 호주인 골키퍼로,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109경기에 출전했고, 미들즈브러에서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첼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레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2. 어린 시절
프랑수아 "스바트" 판 데르 엘스트는 플람스-브라반트 주 오프베이크 출신이다. 그는 인근 유소년 구단에서 축구를 시작할 당시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공몰이와 골 결정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3. 구단 경력
판 데르 엘스트는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안데를레흐트에서 활약하며 벨기에 프로 리그에서 82골을 기록하는 등 주요 선수로 활약했고, 1976년과 1978년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에 기여했다.
1982년 1월, 뉴욕 코스모스를 거쳐 웨스트햄과 400000GBP의 계약을 맺고 70경기에 출전해 17골을 기록했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로케런에 입단했지만, 1985-86 시즌 도중에 종아리뼈 골절을 당하면서 은퇴했다.
3.1. 안데를레흐트
그는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안데를레흐트에서 활약했다. 16세에 1군 무대 신고식을 치렀다. 여러 보직(공격수, 우측 미드필더, 측면 수비수)을 돌아가며 맡던 판 데르 엘스트는 이후 벨기에 프로 리그에서만 82골을 기록했고, 모든 대회를 통틀어 100번 넘게 골망을 흔들었다. 판 데르 엘스트는 결정적인 득점을 기록한 것으로 찬사를 받았다. 1976년, 1975-76 시즌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을 우승할 당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와의 결승전에서 2골을 넣어 4-2 승리에 일조했고, 그 다음 시즌 리그에서 21골로 리그 득점왕에 올랐지만, 브뤼셀 연고 구단은 시즌을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 1971년부터 1980년까지 안데를레흐트 소속으로 리그를 2번, 컵대회를 4번 우승했다. 판 데르 엘스트는 1976년과 1978년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에서 2번 우승했고, 해당 대회에서 통산 18골을 기록해 역대 최다 득점 4위에 올랐다.
3.4. KSC 로케런
판 데르 엘스트는 고국으로 돌아와 로케런에 입단했지만, 1985-86 시즌 도중에 종아리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하면서 은퇴했다.
4. 국가대표팀 경력
판 데르 엘스트는 벨기에 국가대표팀 경기에 44번 출전하여 14골을 기록했고, 유로 1980 준우승에 일조했다. 그는 1982년 월드컵 선수단에도 이름을 올려 엘체에서 1-0으로 이긴 엘살바도르와의 1차 조별 리그 후반전과 바르셀로나에서 0-3으로 패한 폴란드와의 2차 조별 리그 경기에 출전했다.
5. 사생활과 최후
판 데르 엘스트의 동생 레오도 프로 축구 선수였다. 둘은 벨기에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다.
은퇴 후, 판 데르 엘스트는 고향 오프베이크에서 스누커 당구장을 운영했다. 2017년 새해 첫날, 판 데르 엘스트는 심근경색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열흘 후, 새벽 3시에 그는 병원에서 향년 62세로 심정지로 사망했다고 발표되었다.
6. 수상
6.1. 안데를레흐트
* 벨기에 1부 리그: 1971–72, 1973–74
* 벨기에 컵: 1971–72, 1972–73, 1974–75, 1975–76
* 벨기에 리그컵: 1973, 1974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 1975–76, 1977–78
준우승: 1976–77
* 유러피언 슈퍼컵: 1976, 1978
* 암스테르담 투르노이: 1976
* 투르누아 드 파리: 1977
* 트로페 쥘 파파에르: 1977
* 벨기에 스포츠 공로상: 1978
6.2. 뉴욕 코스모스
* 북미 사커 리그: 1980
6.3. 벨기에 국가대표팀
판 데르 엘스트는 벨기에 국가대표팀 경기에 44번 출전하여 14골을 기록했고, 유로 1980 준우승에 일조했다. 1982년 월드컵에도 참가하여 엘살바도르와의 1차 조별 리그 경기(1-0 승, 엘체) 후반전과 폴란드와의 2차 조별 리그 경기(0-3 패, 바르셀로나)에 출전했다.
6.4. 개인
| 기록 | 내용 |
|---|---|
| 벨기에 1부 리그 득점왕 | 1976-77 (21골) |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득점왕 | 1977-78 (6골) |
| 발롱도르 후보 | 19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