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카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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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토니오 카사노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공격수, 특히 "판타시스타"로 불리며 동료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주로 수행했다. 바리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로마, 레알 마드리드, 삼프도리아, AC 밀란, 인테르나치오날레, 파르마, 엘라스 베로나 등 여러 클럽에서 활약했으며,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39경기 10골을 기록했다. 2001년과 2003년 세리에 A 올해의 영플레이어 상을 수상했으며, 2001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6-07 라리가, 2010-11 세리에 A, 2011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등에서 우승했다. 뛰어난 기술과 창의성에도 불구하고, 성격과 절제력 부족으로 인해 경기장 안팎에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안토니오 카사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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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로 2012에서 이탈리아 대표로 뛰는 카사노
본명안토니오 카사노
출생일1982년 7월 12일
출생지바리, 이탈리아
신장1.75m
포지션FW, 공격형 미드필더
주발오른발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바리 (1997–1998)
프로 클럽바리 (1999–2001)
로마 (2001–2006)
레알 마드리드 (2006–2008)
삼프도리아 (임대) (2007–2008)
삼프도리아 (2008–2011)
밀란 (2011–2012)
인테르 (2012–2013)
파르마 (2013–2015)
삼프도리아 (2015–2017)
엘라스 베로나 (2017)
클럽 출장 (골)바리: 48 (6)
로마: 118 (39)
레알 마드리드: 19 (2)
삼프도리아 (임대): 22 (10)
삼프도리아: 74 (25)
밀란: 33 (7)
인테르: 28 (7)
파르마: 53 (17)
삼프도리아: 24 (2)
엘라스 베로나: 0 (0)
총 출장 (골)419 (115)
국가대표 경력
청소년 국가대표이탈리아 U-15: 9 (2) (1998)
이탈리아 U-16: 2 (0) (1998)
이탈리아 U-18: 2 (0) (1999)
이탈리아 U-20: 8 (2) (2000)
이탈리아 U-21: 9 (3) (2000–2002)
국가대표이탈리아 (2003–2014): 39 (10)
기타 정보
별칭안토니오 일 테리빌레 (Antonio the terr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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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2.1. 바리

카사노는 바리 출신으로, 출생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부친이 가족을 두고 떠났다. 그는 산 니콜라 구의 구 바리 (Bari Vecchia) 지구에서 모친과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같은 시기에 거리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바리 스카우터에 포착되어 구단의 유소년부에 입단했고, 1999년 12월 11일, 인근 숙적 레체와의 경기에서 바리 선수로 세리에 A 신고식을 치렀다.

바리에서 활약하던 시절, 그는 세리에 A의 가장 촉망받는 유망주로 거듭났고, 1999년 12월 18일, 당시 17세였던 인테르나치오날레와의 안방 경기에서 2-1 결승골 (그의 세리에 A 1호골이기도 했다) 을 놀라운 개인기로 뽑아내면서 큰 관심을 불러모았다. 88분, 그는 발등으로 넘긴 공을 달려가 36미터 앞에서 발뒤꿈치로 받은 후 크리스티안 파누치로랑 블랑 두 명의 노장 수비수를 제치고 공을 끌고간 뒤 반대발로 쏘는 척 하며 파브리치오 페론을 농락한 뒤 안쪽 골대쪽으로 집어넣었다. 카사노는 기술적 능력, 일찍 완성된 능력, 인상적인 활약, 그리고 우아함과 창의성에 기인해 환상적인 안토니오 (Fantantonio)의 별칭을 얻었고, 디에고 마라도나의 별칭인 황금의 아이 (El Pibe de Oro)의 별칭을 따 바리의 아이 (El Pibe de Bari) 라는 별칭도 붙었다.

그는 바리에서 2시즌을 보내며 48번의 세리에 A 경기에 출전해 6골을 넣었는데, 이 중 첫 시즌에 21경기 출전 3골을 기록했고, 2년차에는 27경기 출전 3골을 기록했다. 2008년 11월 19일 발매된 자서전에서 1999년 인테르와의 경기에서 넣은 골이 인생을 바꾸었다고 하며, 만약 이 골이 없었다면 범죄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2.2. AS 로마

2001년, 19세의 카사노는 600억 ITL (약 €30M)에 세리에 A 정상에 오른 로마로 이적했다. 당시 이 이적료는 역대 10대 선수 최고 이적료 기록이었다. 첫 시즌에 5을 넣었으며,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1 우승에 공헌했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과 공개적으로 충돌했다가 국가대표팀 신고식을 치른 며칠 후에 훈련에서 제외되어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로마에서 활약하던 시절, 카사노는 2001년과 2003년에 세리에 A 올해의 신인 선수로 지목되었다.

밀란과의 코파 이탈리아 2002-03 결승전에서 주심의 결정에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했는데, 그는 축구장을 떠나면서 주심에게 검지와 소지를 올려 욕했다.

그는 격동의 2004-05 시즌체사레 프란델리와 루디 푈러를 이어 지휘봉을 잡은 시즌의 세 번째 감독인 루이지 델네리 감독에 의해 선수단에서 제외되었다. 시즌 도중 델네리가 사표를 내고 브루노 콘티가 후임으로 들어오면서, 카사노는 다시 선발로 복귀했고, 프란체스코 토티가 5경기 출장 정지 징계로 부재중인 가운데 카사노가 주장 완장을 찼다.

2005-06 시즌을 앞두고, 카사노는 2006년 6월 30일에 만료될 계약의 갱신을 두고 구단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2006년 1월, 그는 씁쓸하게 로마와 결별하고 레알 마드리드 €5M에 이적했다.

2.3. 레알 마드리드

카사노는 AS 로마의 전 동료 크리스티안 파누치에 이어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두 번째 이탈리아인이 되었다. 2006년 1월 18일, 레알 베티스와의 코파 델 레이 경기에서 후반 투입 3분 만에 데뷔골을 기록했다. 2006년 1월 3일,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5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이적했다. 그러나, 입단 직후에는 컨디션 난조를 보여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고, 언론으로부터 "마드리드는 브라질의 돼지(호나우두)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도 돼지(카사노)를 데려왔다"고 혹평을 받았다. 그는 구단에서 4달 째 보내기 시작한 시점부터 좋지 안좋은 식습관으로 체중이 불어, 결국 마드리드 측에서 불어난 몸무게를 그램 단위로 벌금을 메겼고, 작은 뚱뚱보 (Gordito) 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듬해 2006년 여름에 로마 시대의 은사인 카펠로가 신임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체중 문제를 해결하고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0월 30일, 마드리드 공식 웹사이트는 카사노가 2006-07 시즌을 앞두고 취임한 카펠로 감독을 "모욕"하여 징계를 받았다고 밝혔는데, 그는 탈의실에서 짐나스틱과의 경기 이후 선수단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언쟁을 벌였고, 직후 데이비드 베컴과 호나우두와 함께 대기석을 달구었다. 클럽에서는 반쯤 전력 외 취급을 받았고, 2007년 겨울 이적 시장에서 이적이 검토되었지만 결국 잔류하여, 경기장 밖에서 팀의 리그 우승을 지켜보았다. 로마의 라디오 방송에서, 카사노는 "걸어서 되돌아가" 로마와 재합류하고 싶다고 밝혔고, 로마로 떠나기 전에 다투었던 프란체스코 토티와 화해할 의사도 나타냈다. 그러나, 카사노는 2007년 1월의 이적 시장이 끝나면서 마드리드에 남았고, 시즌 남은 기간은 발목 부상으로 날려버렸다. 라리가 2006-07 우승을 거두었지만, 카사노는 7경기에 출장해 1골을 넣는데 그쳤다.

2007년 7월, 라몬 칼데론 레알 마드리드 회장은 카사노의 태도를 "최근 몇 달 동안 불안정적이었다"고 묘사했고, 그가 구단을 떠날 것임을 밝혔다.

2.4. 삼프도리아

삼프도리아는 2007년 8월 13일 카사노와 1년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카사노의 연봉 €4.2M 중 €1.2M는 삼프도리아가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그는 5일 후 약 2,500명의 팬들 앞에서 입단식을 가졌다. 카사노는 등번호 99번을 선택했는데, 이는 자신이 선호하는 18번을 블라디미르 코만이, 10번을 프란체스코 플라키가 이미 사용하고 있었고, 호나우두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9월 23일, 제노아와의 등대 더비에서 빈첸초 몬텔라와 교체 투입되어 삼프도리아 데뷔전을 치렀다. 1주일 후, 아탈란타와의 경기에서 리그 복귀 골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1월에는 3경기 연속 득점에 성공했고, 인테르나치오날레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의 무승부에 기여했다. 그러나 2008년 3월 2일, 토리노와의 경기에서 퇴장당한 뒤 주심에게 유니폼을 벗어 던져 5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시즌 후 삼프도리아는 UEFA컵 진출권을 획득했고, 카사노는 완전 이적했다.

삼프도리아의 주장 완장을 찬 카사노
삼프도리아의 주장 완장을 찬 카사노


두 번째 시즌에 카사노는 안젤로 팔롬보에 이어 부주장을 맡았다. 1월에 피오렌티나에서 잠파올로 파치니가 합류하면서, 카사노는 파치니와 훌륭한 호흡을 보이며 언론과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리카르도 가로네 회장은 이들을 잔루카 비알리와 로베르토 만치니 콤비에 비유하기도 했다. 카사노는 리그에서 12골을 넣었고,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 진출에 공헌했으나, 라치오와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첫 키커로 나서 실축하며 팀은 패배했다.

2009-10 시즌에도 파치니와의 좋은 활약을 이어갔고, 인테르전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제노아와의 경기에서 0-3으로 패배하는 등 부진으로 팀이 중위권으로 하락하자, 루이지 델네리 감독은 카사노를 선수단에서 제외했다. 2010년 1월 이적시장에서 피오렌티나로의 임대 이적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카사노는 삼프도리아 잔류를 선택했다. 이후 팀에 복귀한 카사노는 삼프도리아가 리그 4위를 기록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얻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팀은 베르더 브레멘에 패배하여 UEFA 유로파리그 2010-11로 가게 되었다.

2010-11 시즌 중이던 2010년 10월, 카사노는 시상식 불참으로 리카르도 가로네 회장과 갈등을 빚었고, 1군에서 제외되었다. 삼프도리아는 리그 중재위에 계약 해지를 요청했고, 카사노가 사과했음에도 승인되었다. 12월 16일, 중재위는 삼프도리아에 카사노의 1군 복귀를 명령했지만, 계약 해지 요청은 기각하고 카사노의 급여를 절반만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2.5. AC 밀란

2010년 12월 20일, 밀란은 삼프도리아와 선수 이적에 합의를 보았고, 카사노가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면서 붙은 인수 조항에 따라 스페인 구단에 €5M을 지불했다. 삼프도리아는 레알 마드리드에 €5M의 이적료를 전달했고, 밀란은 삼프도리아에 €3.33M을 지불했으며, 카사노는 밀란에서 급여를 삭감했다. 그는 호나우지뉴의 공백을 메웠다. 카사노는 칼리아리와의 경기에서 알렉산드르 메르켈과 교체 출전해 밀란 첫 경기를 치렀고, 파르마와의 경기에서 밀란 1호골을 기록했다. 그는 밀란에서 세리에 A 2010-11 우승을 차지하며 개인 첫 작은 방패를 수집했다. 숙적 인테르나치오날레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득점했지만 경고를 두 번 받아 퇴장당했다.

카사노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알레샨드리 파투, 호비뉴 등과 주전 경쟁을 했지만, 밀란에 남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11 우승을 도왔고, 2011-12 시즌 첫 경기에서 득점했다. 2011년 10월 29일, 로마에서 벌어진 경기 후 발작으로 입원했고, 11월 4일에 수술을 받았다. 2012년 4월 7일, 피오렌티나와의 경기에서 복귀했고, 4월 29일, 시에나와의 경기에서 수술 후 첫 골을 넣었다. 밀란은 유벤투스에 이어 세리에 A 준우승을 차지했고, 코파 이탈리아 준결승,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다.

카사노는 2010년 12월 21일 AC 밀란과 3년 반 계약을 맺었고, 이적료는 500만 유로였다. 2011년 1월 8일 칼리아리전에서 첫 출전하여 17경기에서 4골을 기록했고, 팀은 7시즌 만에 스쿠데토를 획득했다. 그러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출전 시간이 제한적이었고, 시즌 종료 후 이적설이 돌았다. 10월 29일 친정팀 로마전 이후 컨디션 난조로 입원, 난원공이 열려 있는 선천성 심장 질환으로 수술을 받았다. 2012년 4월 2일 훈련에 복귀했고, 4월 7일 피오렌티나전에서 복귀, 4월 29일 시에나전에서 골을 넣었다.

2.6.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란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치아구 시우바 등의 주축 선수의 매각한 데에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진 카사노는 이적을 요청했다. 2012년 8월 21일, 밀란과 인테르나치오날레 측은 잠파올로 파치니와 카사노의 교환을 놓고 합의를 보았고, 흑청 군단 측이 (파치니가 €13M이고 카사노가 €5.5M이 책정되었기에)€7.5M의 이적료를 받게 되었다. 그는 이튿날에 공식적으로 구단에 합류했다. 카사노는 구단과 2년 계약을 맺었다. 카사노의 2012-13 시즌은 부진했는데, 구단도 리그에서 침체되었었고, 자신도 리그에서 5골을 넣고 9번의 도움을 주는데 그쳤으며, 안드레아 스트라마키오니 감독과 자주 언쟁을 벌였다. 구단은 세리에 A 2012-13에서 9위를 차지했다.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뛴 모든 대회를 통틀어 39경기에 뛰며 9골 15도움을 기록했다. 2013년 4월 7일 아탈란타 BC전에서 햄스트링을 다쳐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2.7. 파르마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1년을 보낸 카사노는 2013년 7월 4일에 임시 계약으로 파르마에 합류했고, 예전에 거쳤던 구단에서 써오던 등번호 99번을 받았다. 그는 파르마에서 운동량, 체력, 그리고 절제력 모두 향상되었는데, 음식을 더 깐깐하게 조정하고 훈련을 준수해 10킬로그램의 체중을 감량했다. 11월 30일, 그는 볼로냐를 상대로 세리에 A 통산 100호골을 기록했고, 경기는 안방에서 1-1 무승부로 끝났다. 그는 파르마에서 기량을 되찾아 2013-14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구단은 리그에서 6위를 차지해 UEFA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얻었고, 개인적으로 13골 8도움을 모든 대회 통틀어 36경기에서 기록했고, 이 중 12골 7도움은 세리에 A에서 기록했다. 2014년 2월, 그는 세리에 2014-15 시즌에 유효한 파르마와의 사전계약을 체결했다.

2014-15 시즌 전반, 카사노는 파르마에서 20경기에 출전해 5골을 넣었는데, 소속 구단은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하면서 리그 최하위권으로 뒤쳐졌다. 2015년 1월 26일, 파르마는 카사노의 사전 계약 해지를 허락했고, 그에 따라 그는 자유 이적 상태가 되었다. 구단의 재정난으로 인해, 그는 2014년 6월부터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계약 만료 후,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로부터 복귀 제의를 받았었다.

2.8. 삼프도리아 복귀

2015년 1월 파르마에서 방출된 후, 카사노는 같은 해 8월 9일 친정 구단 삼프도리아에 세 번째로 재합류했다. 그는 2017년 6월 30일까지 유효한 2년 계약을 맺었다. 복귀 당시 갱생을 맹세했던 카사노였지만, 2016년 5월 8일 제37라운드 제노아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후, 회장의 측근인 구단 임원과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고 보도되었고, 구단 측으로부터의 계약 해지 이야기도 나왔다. 2016년 1월 10일, 그는 1-2로 패한 유벤투스와의 안방 경기에서 복귀 후 첫 골을 기록했다.

2016-17 시즌을 앞두고, 마시모 페레로 구단 회장은 카사노가 자신의 계획에서 제외되었음을 알렸고, 카사노는 삼프도리아 1군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시즌 종료 후 6월에 삼프도리아는 계약 해지를 통고했지만, 카사노는 이를 거부하고 잔류를 강행했기 때문에, 구단은 1군에서 제외하여 프리마베라로 보냈다. 카사노는 다수 타 구단들의 제의를 거절하고 삼프도리아 유소년부와의 훈련을 허락받았는데, 특히 유소년부의 골키퍼와 같이 훈련했다. 2016년 여름에 구단 측은 국내외 클럽에서 온 제의를 카사노에게 받아들일 것을 권했지만, 이 역시 카사노가 거부했기 때문에, 구단은 2016-17 시즌 선수 등록에서도 제외했고, 시설 사용도 제한하는 등 전력 외로 분류했다.

2017년 1월 25일, 카사노는 상호 계약 해지로 삼프도리아를 떠났다. 계약이 6개월 남은 시점에서 카사노 측이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구단과의 계약 해소에 응하면서, 양자 합의 하에 계약을 해소했다고 발표했다.

2.9. 엘라스 베로나와 은퇴

2017년 7월 10일, 카사노는 엘라스 베로나와 계약했다. 그는 그 다음 주에 여름 친선경기를 두 번 뛰었다. 그러나, 7월 18일, 가족을 보고싶다는 이유로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다가 같은 날 번복하고 베로나에서 "멋진 시즌"을 보내기를 기대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7월 24일, 그는 다시 결정을 번복해 구단을 떠나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35세인 저는 지금 동기를 불어넣을 필요가 있고, 제 우선순위는 자식들과 아내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7월 27일, 카사노의 베로나 계약은 상호 계약 해지로 백지화되었다. 7월 31일, 그는 현역에서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자택 인근에서 뛸 구단을 물색한다고 밝혔다. 이후 베로나와 갑작스런 결별에 대해 "불꽃이 없었다"며, "여자와 데이트하는데 더 이상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 떠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1년의 공백기를 거친 후, 2018년 8월 카사노는 축구 복귀를 모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18년 10월, 그는 과거에도 연루되었던 세리에 C 팀인 비르투스 엔텔라에서 훈련을 시작할 예정임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며칠 후 그는 공식적으로 축구에서 은퇴했음을 확인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안토니오 카사노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39경기에 출전해 10골을 기록했다. 2003년 11월 12일, 21세의 나이로 바르샤바에서 열린 폴란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이 경기에서 데뷔골도 기록했다.

UEFA 유로 2004에서 카사노는 이탈리아 선수단에 후보로 참가했지만, 덴마크와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 프란체스코 토티크리스티안 포울센에게 침을 뱉어 출장 정지 징계를 받게 되면서,스웨덴과의 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골을 넣었다. 불가리아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는 시모네 페로타의 동점골에 관여하고 막판 결승골을 넣어 2-1 승리를 이끌며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지만, 이탈리아는 스웨덴, 덴마크와 승점 5점으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3개국 간의 골득실차에서 밀려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카사노는 경기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부진한 시즌을 보낸 후,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2006년 FIFA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탈리아는 베를린에서 승부차기 끝에 프랑스를 꺾고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006년 9월, 카사노는 로베르토 도나도니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에 의해 리투아니아프랑스와의 UEFA 유로 2008 예선 경기를 앞두고 차출되었다. 그러나 다시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지 않았으나, UEFA 유로 2008 선수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대회에서 무득점으로 침묵했고, 이탈리아는 나중에 우승을 차지하는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다.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전을 앞두고 다시 지휘봉을 잡은 리피 감독은 카사노를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과 본선에 단 한 번도 차출하지 않았다. 2년 가량 푸른 군단에서 활동하지 못한 카사노는 언론으로부터 리피가 FIFA 월드컵 명단에서 그를 제외한 데에 비난을 받았고, 2010년 8월 6일, 체사레 프란델리 후임 감독에 의해 다시 국가대표 선수단 일원이 되었다. 코트디부아르와 8월 10일 런던 업턴 파크에서 치를 친선전을 앞두고 대표팀에 복귀했다. 거의 한 달 후, 카사노는 에스토니아와의 UEFA 유로 2012 예선전에서 동점골을 넣어 원정에서 2-1 승리를 견인했고, 레오나르도 보누치의 역전골을 발뒤꿈치로 도왔다. 카사노는 페널티 구역 외곽에서 골을 기록해 페로 제도와의 예선전에서 이탈리아가 5-0으로 이길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에스토니아와의 경기에서 또다시 득점에 성공해 이탈리아의 3-0 승리를 도왔다.

UEFA 유로 2012에서 카사노는 6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1골을 기록했는데, 이탈리아는 결승전까지 진출했지만 스페인에 0-4로 패하였다. 카사노는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마리오 발로텔리의 선제골을 도왔다. 카사노는 대회 본선에서 이탈리아의 등번호 10번을 착용했다. 2012년 7월 UEFA는 기자 회견에서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한 카사노에게 벌금령을 내렸다. 기자 회견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에 동성애 성향의 선수가 승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는 "그런 선수는 없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후 오해가 있었다는 해명문을 발표했다.

2014년 FIFA 월드컵 예선전에 불참한 카사노는 2014년 FIFA 월드컵의 본선에 이탈리아 선수단 일원으로 승선했다. 2014년 6월 20일, 31세의 카사노는 0-1로 패한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 교체로 들어가 FIFA 월드컵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는 이어지는 우루과이와의 6월 24일 조별 리그 최종전에도 교체로 출전했지만, 이탈리아가 0-1로 지면서 두 대회 연속으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카사노는 형편없는 활약과 운동량 부족으로 언론의 비판을 받았는데, 그는 선수단의 성적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선수단의 공격 상황에서 속도와 창조성을 불어넣지 못했다.

UEFA 유로 2012의 카사노
UEFA 유로 2012의 카사노

카사노, 이탈리아 대표팀과 함께
카사노, 이탈리아 대표팀과 함께

스콧 파커(오른쪽)와 경합하는 카사노 (2012년 6월 25일, 잉글랜드전)
스콧 파커(오른쪽)와 경합하는 카사노 (2012년 6월 25일, 잉글랜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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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출장득점
200321
200442
200520
200620
200700
200850
200900
201052
201184
201271
201300
201440
|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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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최일개최지상대 국가결과경기 개요
12003년 11월 12일바르샤바3–1국제 친선 경기
22004년 6월 18일리스본1–1UEFA 유로 2004
32004년 6월 22일기마랑이스2–1UEFA 유로 2004
42010년 9월 3일탈린1–2UEFA 유로 2012 예선
52010년 9월 7일피렌체5–0UEFA 유로 2012 예선
62011년 6월 3일모데나3–0UEFA 유로 2012 예선
72011년 9월 2일토르스하운1–0UEFA 유로 2012 예선
82011년 10월 11일페스카라3–0UEFA 유로 2012 예선
92011년 10월 11일페스카라3–0UEFA 유로 2012 예선
102012년 6월 18일그단스크2–0UEFA 유로 2012

4. 플레이 스타일

안토니오 카사노는 이탈리아어로 창조적 공격수를 뜻하는 판타시스타(fantasista)로 수식되며, 동료에게 도움을 공급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스스로도 득점보다는 도움을 선호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전방 바로 뒤나 양쪽 측면, 경기장 중앙 등 공격 지역 어디에서든 활약 가능하며, 전방 플레이메이커, 주 공격수, 가짜 9번, 측면 공격수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카사노는 "기술적이며 공을 지능적으로 다루는" 선수로 묘사되며, "넓은 시야와 골을 노리는 시도로 인상을 준다"는 평을 받았다. 공을 잡고 제어, 드리블, 배급, 정확한 패스에 강점을 보이며, 오른발잡이지만 양발 모두 공격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기술, 공 다루는 능력, 기교 외에도 강인한 상체와 균형감을 지녀, 공을 문전까지 끌고 가면서 밀집된 공간에서도 소유권을 유지하고, 기술과 가속력으로 수비를 제치고 1대1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페널티킥을 포함,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효율적이다.

우아함, 능력, 재능에도 불구하고, 현역 시절 성격 및 절제력 부족으로 경기장 안팎에서 비판받았고, 불필요한 경고를 받기도 했다. 활동량과 운동 부족으로 혹평받았고, 체중 증가로 인해 속도, 체력, 민첩성을 잃기도 했다. 로베르토 바조의 후계자로도 언급되며 큰 기대를 받았으나, 꾸준함 부족과 예측 불가능한 성격으로 인해 잠재력을 পুরোপুরি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5. 논란

카사노는 기술적 능력 외에도 성질, 태도, 그리고 부족한 절제력으로도 악명이 높다. 이로 인해 경기장 안과 밖에서 수 차례 사건사고에 휘말렸고, 언론과 그를 지도했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그의 행동을 카사나테라고 통칭했다.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문제 행동을 나타내는 "카사나타 (Cassanata)"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UEFA 유로 2012 기자 회견에서 카사노는 선수단에 동성애 선수가 없기를 바란다는 발언을 했고, 이때 경멸적인 어구를 사용했다. 그는 동성애 혐오 발언으로 UEFA로부터 벌금령을 받았다.

2013년 2월 1일, 카사노는 탈의실에서 당시 인테르 감독인 안드레아 스트라마키오니와 싸움을 벌였다. 이 사태는 금요일 훈련 도중에 일어났는데, 비교적 평범한 회의에서 시작되었지만, 둘 사이 언쟁에 불이 붙어 비속어를 남발했고, 이후 서로를 밀고 밀치는 것으로 악화되었고, 다른 선수들이 강제로 떼어놓기에 이르렀다.

2008년에는 8살 연하의 수구 선수 카롤리나 마르찰리스와 약혼을 발표하고, 2010년 6월 19일에 포르토피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카롤리나 부인과의 교제를 시작한 이후 품행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으며, 본인도 그녀의 존재가 "침착함과 균형"을 가져다주었다고 언급했다. 2009년 인터뷰에서 카사노는 파비오 카펠로 감독에게 과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했고, 카펠로도 이를 받아들여 카사노의 갱생을 기뻐하는 동시에 카롤리나 부인이 카사노에게 준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2017년 인터뷰에서 인생 최대의 후회에 대해 질문받은 카사노는 토티의 만류를 거절하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역 시절 발테르 마차리는 카사노에게 매우 말이 많은 사람이었던 듯하며, 은퇴 후 카사노 본인은 "2시간, 3시간,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말을 하니까 말이지"라고 회상했다. 이야기의 길이에 질린 카사노는 현역 시절에 여러 번 꾀병을 부려 긴 이야기를 피했다고 한다.

6. 수상 내역

AS 로마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1

레알 마드리드
* 라 리가: 2006-07

AC 밀란
* 세리에 A: 2010-1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11

개인
* 세리에 A 올해의 영 플레이어: 2001, 2003

6.1. 클럽

안토니오 카사노는 바리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1999년부터 2001년까지 활동했다. 1999-2000 시즌과 2000-01 시즌 동안 세리에 A에서 총 48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

2001년, 카사노는 로마로 이적하여 2005-06 시즌까지 활동하며, 세리에 A에서 118경기에 출전해 39골을 넣었다. 로마에서 뛰는 동안 2001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06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카사노는 2005-06 시즌과 2006-07 시즌 동안 라 리가에서 총 19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2006-07 라 리가 우승을 경험했다.

2007년, 삼프도리아로 임대 이적한 후 완전 이적하여 2010-11 시즌까지 세리에 A에서 총 96경기에 출전, 35골을 기록했다.

2010년, 밀란으로 이적한 카사노는 2010-11 시즌과 2011-12 시즌 동안 세리에 A에서 33경기에 출전해 7골을 넣었다. 밀란에서 2010-11 세리에 A 우승과 2011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차지했다.

2012-13 시즌에는 인테르 밀란에서 세리에 A 28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기록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파르마에서 활약하며 세리에 A 53경기에 출전, 17골을 기록했다. 이후 2015년 삼프도리아로 복귀하여 2016-17 시즌까지 세리에 A 24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6.2. 개인

안토니오 카사노는 세리에 A 올해의 신인 선수 상을 2001년과 2003년에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