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만석
1. 개요
하만석은 5세부터 유학을 배우고 경서에 능통했던 인물이다. 진양 하씨 사직공파 제23세손이자 사천조동 문중의 제4세 장손으로, 인의예지를 가르치고 충과 효를 중시하는 가풍을 진작하는 데 기여했다. 효종과 영조 시대에 가선대부와 지중추부사를 역임했다. 하만석의 증조부는 하태원이며, 아버지 하응철은 가선대부였다. 후손으로는 하재세와 하승무 등이 있다.
-
1658년 출생 -
이이명
이이명은 조선 숙종, 경종, 영조 시대의 문신으로, 노론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연잉군(영조)을 지지했고, 서양 문물에 개방적인 입장을 보였다. -
1658년 출생 -
김창업
김창업은 조선 시대 문인이자 화가로,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이며 기사환국 이후 은둔하며 시문과 그림에 몰두했고, 단원 김홍도의 스승 중 한 명이자 숙종 때 연행록을 저술했다. -
1737년 사망 -
낙천군
조선 영조 시대 왕족 낙천군은 선조의 서자 경창군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나 숙종의 아들 연령군의 양자로 입양되었고 요절하여 후사가 없어 양자 문제와 제사 봉행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
1737년 사망 -
윌리엄 웨이크
윌리엄 웨이크는 잉글랜드의 성직자이자 캔터베리 대주교로, 프랑스 성직 관련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프랑스 가톨릭 교회와의 통합을 모색했고 비국교도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취했으며, 성공회 서품을 옹호하고 에라스투스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영국 교회와 성직자의 상태... 역사적으로 고찰》 등의 저서를 남겼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하만석은 효종과 영조 대에 가선대부를 거쳐 정2품 지중추부사를 역임했다.
2.1. 가학
하만석은 부친 하응철 선생에게 5세부터 유학의 근본을 배워, 관례 나이에 학문이 출중하여 경서에 대한 이해와 필체가 뛰어났다. 진양하씨 사직공파 23세손이자 사천조동 문중의 제4세 장손으로 문중을 빛냈다.
그는 평소 자녀들에게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가르치고, 하문(河門)이 삼한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충(忠)과 효(孝)를 근본으로 하는 가풍과 가훈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드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2.2. 가르침
하만석은 부친인 하응철 선생에 의해 5세부터 유학의 근본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관례의 나이에 이를 즈음에 학문이 출중하여 경서에 대한 깨우침과 필서가 뛰어났다. 그는 진양하씨 사직공파 제23세손이자 사천조동 문중의 제4세 장손으로 문중을 현달케 했다. 그는 평소에 자녀들에게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교육하고 하문(河門)이 삼한시대부터 고려에 이어 조선에 이르기까지 충과 효를 근본으로 하는 가풍과 가훈의 정신을 진작(振作)하고 고양(高揚)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2.3. 관직
하만석은 효종과 영조 대에 가선대부를 거쳐 정2품 지중추부사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