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원
1. 개요
하태원은 온화한 성품으로 칭송받았으며, 사천조동으로 이주하여 사천조동 문중을 창문하였다. 그는 《진양인물고》와 《잠서록》을 저술했으나 후손들이 보존하지 못해 멸실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조정에 출사하며 문무신과 유학자를 배출했으며, 10세손 하재세와 12세손 하승무가 있다.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진양 하씨 -
하태경
1968년 부산 출생의 하태경은 학생운동과 북한 민주화 운동가 활동 후 2011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개혁보수를 표방하는 정치인이다. -
진양 하씨 -
하대돈
하대돈은 부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 행정관, 국회 운영위원회 행정실장, 국무총리 정보비서관, 제10대 국회의원,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행정가이다. -
조선의 교육인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조선의 교육인 -
성혼
성혼은 조광조의 제자이자 이이와 도의를 맺고 이황을 사사한 조선 중기 문신으로, 사림파 서인에 속하여 정여립의 난과 임진왜란 시기에 활동했으며, 이황의 이기이원론을 지지하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
사천시 출신 -
정태호 (1963년)
-
사천시 출신 -
여영국
2. 생애
하태원은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너그러워 친인척은 물론, 주위 사람들과 다툼이 전혀 없었다. 논쟁이 나면 먼저 양보하고 물러서는 등 주위 사람들은 그를 사천조동의 도학군자(道學君子)라고 칭송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하문(河門)의 본거지에서 어떤 문제로 논란이 일어났을 때, 그 당시 하태원은 집안의 논란에 관여하기 싫어서 가솔(家率) 전체를 이끌고 사천 조동으로 이사하면서 사천조동 문중(泗川槽洞 門中)이 창문(創門)되기에 이르렀다.
그의 후손들은 사천 조동에서 번창하여 새로운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또한 그의 자손들 중에는 계속해서 조정에 출사하는 등 문무신과 유학자가 배출되었다.
한편 그는 선조들의 행적과 유산을 상고하여 정리한 《진양인물고》(晉陽人物考)와 자신의 주요 시서(詩書)와 수행문을 정리한 《잠서록》(箴書錄)을 집필하여 남겼다. 그러나 격동기였던 대한제국 시기에 이르러 후손들이 이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여 망실한 탓에, 하문이 고려 시대에 이어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보다 더 상고하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