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원
1. 개요
하태원은 온화한 성품으로 칭송받았으며, 사천조동으로 이주하여 사천조동 문중을 창문하였다. 그는 《진양인물고》와 《잠서록》을 저술했으나 후손들이 보존하지 못해 멸실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조정에 출사하며 문무신과 유학자를 배출했으며, 10세손 하재세와 12세손 하승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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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하태원은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너그러워 친인척은 물론, 주위 사람들과 다툼이 전혀 없었다. 논쟁이 나면 먼저 양보하고 물러서는 등 주위 사람들은 그를 사천조동의 도학군자(道學君子)라고 칭송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하문(河門)의 본거지에서 어떤 문제로 논란이 일어났을 때, 그 당시 하태원은 집안의 논란에 관여하기 싫어서 가솔(家率) 전체를 이끌고 사천 조동으로 이사하면서 사천조동 문중(泗川槽洞 門中)이 창문(創門)되기에 이르렀다.
그의 후손들은 사천 조동에서 번창하여 새로운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또한 그의 자손들 중에는 계속해서 조정에 출사하는 등 문무신과 유학자가 배출되었다.
한편 그는 선조들의 행적과 유산을 상고하여 정리한 《진양인물고》(晉陽人物考)와 자신의 주요 시서(詩書)와 수행문을 정리한 《잠서록》(箴書錄)을 집필하여 남겼다. 그러나 격동기였던 대한제국 시기에 이르러 후손들이 이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여 망실한 탓에, 하문이 고려 시대에 이어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보다 더 상고하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