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세
1. 개요
하재세는 사천조동 출신의 유학자로, 일제강점기 창씨개명과 부일 협력을 거부하며 유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유림의 지도자로서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며 국권 회복을 위해 독립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하재세의 직계 선조는 하연이며, 그의 아들 하치호는 군인으로 훈장을 수훈했고, 손자 하승무는 역사신학자이자 시인으로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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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한국 -
창씨개명
창씨개명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내선일체를 명분으로 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천황 중심의 국가 체계에 통합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
대한제국의 유학자 -
최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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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유학자 -
여운홍
여운홍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하고 해방 후 과도입법의원과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친일 행적 의혹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정치인이다. -
문화 동화 -
외래어
외래어는 다른 언어에서 유입되어 특정 언어에 정착한 단어 또는 표현으로,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며 발음, 의미, 형태 등이 변화하고 외국어, 차용어, 부분 바꿈, 번역 차용, 신조어, 뜻 차용 등의 형태로 수용되면서 원래 의미와 다르게 사용되기도 하며, 각 언어는 외래어 수용에 대한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외래어 순화 운동을 통해 사용을 제한하기도 한다. -
문화 동화 -
창씨개명
창씨개명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내선일체를 명분으로 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천황 중심의 국가 체계에 통합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2. 생애
하재세는 사천조동의 명망 있는 유학자 가문 출신으로, 조부와 부친의 지도 아래 7세부터 유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성년에 이르러 모든 경서(經書)에 통달했다. 그는 격동기 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의 폭압과 강요 속에서도 지역 유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서 갖은 고초를 겪었다. 끝까지 창씨 개명과 부일 협력을 거부하다가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일제의 식민지 근대교육을 거부했으며 유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학자로 전통교육 현장의 학구(學究)로서 교육자의 자세를 끝까지 견지했다.
2.1. 창씨개명 관련 논란
하재세는 사천조동의 명망 있는 유학자 가문 출신으로, 조부와 부친의 지도 아래 7세부터 유학을 배워 성년에 이르러 모든 경서(經書)에 통달했다. 그는 격동기 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의 폭압 속에서도 지역 유림 지도자로서 고초를 겪었다. 끝까지 창씨 개명과 부일 협력을 거부하다가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제의 식민지 근대교육을 거부하고 유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유학자로서 교육자의 자세를 견지했다.
일설에는 하재세가 1940년 8월 10일 창씨개명 신고일 마지막 날을 넘겨 일제에 의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창씨개명으로 신고한 천황폐하진양하(天皇陛下晉陽河) 사건의 당사자로 추정된다고 한다.
2.2. 독립운동 관련 활동
하재세는 사천조동의 명망있는 유학자 가문 출신으로, 조부와 부친의 지도 아래 7세부터 유학을 배워 성년에 이르러 모든 경서(經書)에 통달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도 지역 유림의 지도자로서 창씨 개명과 부일 협력을 거부하다가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제의 식민지 근대교육을 거부하고 유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유학자이자 교육자로서의 자세를 끝까지 지켰다.
일설에 따르면 하재세는 1940년 8월 10일 창씨개명 신고 마지막 날을 넘겨 일제에 의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창씨개명으로 신고한 천황폐하진양하(天皇陛下晉陽河) 사건의 당사자로 추정된다고 한다.
한편, 당시 사천조동 문중에서는 하재세가 독자로서 장손의 책무 때문에 직접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지는 않았으나, 평소 유교 교육 현장에서 일경과 그들 앞잡이의 눈을 피해가며 국권회복을 역설하고 특히 독립자금을 비밀리에 지원하였다고 한다.
3. 가계
| 구분 | 내용 |
|---|---|
| 부 | 하장수(유학자, 서예가, 사회운동가) |
| 출계부 | 하천수(유학자) |
| 모 | 김해 김씨 백림 |
| 출계모 | 동성 이씨 |
| 배우자 | 밀양 박씨 연순 |
* 자녀 및 후손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자녀 및 후손" 하위 섹션을 참조.
3.1. 자녀 및 후손
* 부 : 하장수(河長水, 유학자, 서예가, 사회운동가)
* 출계부 : 하천수(河千水, 유학자)
* 모 : 김해김씨백림(金海金氏伯林)
* 출계모 : 동성이씨
* 배우자 : 밀양박씨연순(密陽朴氏連順)
* 자 : 하치호(河致鎬, 전 군인)
인헌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월남 엽성무공훈장 수훈
* 자부 : 강숙순(姜淑順, 일명 姜淑姬)
* 장손 : 하홍술(河洪述)
인헌무공훈장
월남 엽성무공훈장 수훈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수영구지회) 자문위원
* 차손 : 하홍순(河洪順)
前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대의원
* 손녀 : 하미숙(무니)
한국상화연 대표(사회체육지도자)
* 삼손 : 하승무(河承武, 역사신학자, 시인)
국회의장 공로장(2024년)
제10회 자랑스런 대한국민대상(2020년)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부산지부 유공표창(2020년)
제34회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2018년)
2018 한국신학교육자상
제14회 병역명문가 병무청장 표창(2017년)
제14회 병역명문가 가문 선정(2017년)
외교부 재외동포재단 금상(2006년)
전국포럼연합 21세기분당포럼 공로패(2006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원우회 공로패(1997년)
부산크리스찬문학가협회 최우수작품상(1995년)
제3회 한겨레문학 신인상(1994년)
육군두루미교회 공로감사패(1987년)
제1방공포병여단 여단장상(2회 1985,86년)
제1방공포병여단 제133대대장상(2회 1985,86년)
前 통일부 전문위원
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前 통일부 통일교육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