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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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상태는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계 보건 기구(WHO)에서 활동하며 국제적인 보건 전문가로 성장했다. 그는 보건사회부 공무원으로 시작하여, 세계 보건 기구 서사모아 고문관, 서태평양지역사무처 과장, 국장, 사무차장, 사무총장 특별대표를 거쳐, 한국인 최초로 서태평양지역 사무처장(1989-1999)을 역임했다. 사무처장 재임 기간 중 소아마비 박멸과 결핵 퇴치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여 캄보디아에서 소아마비 박멸을 달성하고, 필리핀의 결핵 치료율을 향상시키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1999년에는 세계 보건 기구 서태평양사무처 명예사무처장으로 추대되었으며,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필리핀 수교훈장 시카투나 라칸장 등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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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한상태(韓相泰) |
명칭 | 세계 보건 기구 서태평양 지역 사무처 사무처장 |
![]() | |
국가 | 유엔 |
국기 연도 | 해당 없음 |
대수 | 4 |
취임일 | 1989년 2월 1일 |
퇴임일 | 1999년 1월 31일 |
부통령 | 해당 없음 |
부통령 명칭 | 해당 없음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
사망지 | 해당 없음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장문로 27 |
정당 | 없음 |
학력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미네소타 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 석사 서울대학교 의학박사 |
배우자 | 장인수 |
자녀 | 1남 2녀 아들 한제희, 딸 한준희, 딸 한지현 |
부모 | 부 한길수, 모 이담숙 |
서명 | 해당 없음 |
전임 | 히로시 나카지마 |
전임 대수 | 3 |
후임 | 시게루 오미 |
후임 대수 | 5 |
웹사이트 | 해당 없음 |
2. 생애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928년 ~ 1955년)
1928년 11월 29일 일제 강점기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나, 경복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계 보건 기구 장학생으로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 서울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어려서부터 영어교수였던 선친의 영향으로 영어에 남다른 관심과 소질을 보였는데,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유엔사령부 의무관 통역을 맡으며 발군의 영어실력을 발휘하였다. 1.4 후퇴 당시 중공군이 한국 전쟁에 가담하면서 유엔군이 남하함에 따라, 함흥에서 철수,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함경남도에서 온 피난민은 거제도에 임시로 마련된 피난민 수용소에 수용되었는데, 그는 유엔군과 함께 거제도로 이동, 거제도에 수용된 함경남도 피난민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주사, DDT 살포 등의 의료 구호사업에 종사하였다. 이 후 거제도를 떠나 서울로 돌아와 유엔과 정부의 협력사업으로 이루어진 서울시 상수도 복구사업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후 1953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복학, 1955년 졸업하였다.
2. 2. 대한민국 보건사회부 공무원 (1955년 ~ 1967년)
보건사회부 차관이었던 고모부(정진욱)의 권유로 차관비서로서 보건사회부에서의 활동(1955년-1967년)을 시작한다.[1] 이후 보건사회부 통계계, 위생과, 보건과(1955년-1960년), 보건사회부 시설과장(1960년-1961년), 보건사회부 나병(한센병) 이동진료반장(1961년-1962년), 보건사회부 기획관(1962년-1964년), 보건사회부 방역과장(1964년-1966년), 보건사회부 의정국장(1966년-1967년), 보건사회부 보건국장(1967년)을 차례로 역임하였다.[1] 빠르고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젊은 엘리트 공무원으로 주목받으며 수차례 언론에 보도되었으며, 시립병원 및 도립병원의 설립, 결핵퇴치 운동 전개, 가족계획 시행 등을 추진하였다.[1] 당시 대한민국의 취약했던 공중보건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958년 한국 최초 보건소망 설립에 참여하였고, 1961년 공의(보건지소), 보건소, 시도립병원 및 국립병원을 포함하는 보건의료망 체계화에 힘을 썼다. 그 결과 현재의 1차, 2차, 3차 의료체계를 제시하여 의료체계 기초를 설립함으로써 공중보건의 기초를 세우는 데에 기여하였다. 한센병 음성환자의 사회복지 및 사회재활에 대한 기안을 했으며, 이 사업은 세계적으로도 선례가 없었던 인권존중사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1964년 보건사회부 방역과장 재직시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아마비 경구예방접종을 정부사업으로 실시하였다. 이는 그가 추후의 소아마비 박멸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된다. 1966년 보건사회부 의정국장 재임시 보건소의 인적자원의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결핵관리요원, 가족계획요원, 조산원을 각 시, 도, 군 및 면 에까지 배치하도록 함으로써 보건의료망을 강화하였다.
보건사회부 근무 당시 대한민국에는 국제원조기관이 많았고, 그는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많은 국제회의에 보건사회부를 대표하여 참여하였다. 이는 세계 보건 기구 관계자들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세계 보건 기구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2. 3. 세계 보건 기구 활동 (1967년 ~ 1999년)
한상태는 1967년 세계 보건 기구(WHO) 서사모아 주재 보건개발사업담당 고문관으로 활동을 시작했다.[2] 서사모아에서 상피병 퇴치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서사모아 정부로부터 '명예추장' 직위를 받았다.[2]1970년, 세계 보건 기구 서태평양지역사무처에 한국인 최초로 부임하여 지방보건사업담당 과장(1970년-1973년)을 역임하며 보건의료망 확충에 기여했다.[2] 이후 가정보건국장(1973년-1978년)을 맡아 회원국의 보건인력 개발, 모자보건증진, 가족계획사업 강화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2] 1979년에는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사무차장(1979년-1988년)으로 임명되어 보건사업을 지원하는 전문기술책임자로 활동했다.[2] 나카지마 히로시 세계 보건 기구 사무총장의 지명으로 1988년 7월부터 1989년 1월까지 사무총장 특별대표를 역임했다.[2][3][4][5][6]
1989년, 한상태는 세계 보건 기구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사무처장으로 선출되었다.[2] 이는 당시 한국인이 유엔에서 맡은 가장 높은 지위였다. 재임 기간 동안 한센병, 결핵, 급성전염병 등 각종 전염병 퇴치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소아마비 박멸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여, 회원국 예방접종사업 지원을 통해 1997년 3월 19일 캄보디아에서의 환자를 마지막으로 서태평양지역에서 소아마비를 박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2]
2. 4. 세계 보건 기구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사무처장 (1989년 ~ 1999년)
1988년 9월 15일, 제39회 세계 보건 기구 지역위원회에서 한상태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 보건 기구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사무처장에 당선되었다.[8][9][10][11] 1989년 2월 1일부터 사무처장으로서의 업무를 시작했다.[22][23] 1992년 9월 열린 제 43회 세계 보건 기구 지역위원회에서 단독출마 및 만장일치로 재선되어,[24][25][26] 1999년 1월 31일까지 사무처장직을 수행했다.그는 1975년 세계 보건 기구 사무총장의 지역회의 연설 제목이었던 ‘[https://en.wikipedia.org/wiki/Health_For_All 2000년까지 모두에게 건강을]’을 강조하며, 1994년 제45차 서태평양지역회의에서 ‘보건의 새로운 지평’ 을 제안했다. 이는 보건을 생애 준비과정, 생애 보호, 노년의 삶의 질로 나누어 목적, 목표, 지표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을 다루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전략이었다. 그는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개인, 가족, 지역사회, 국가가 함께 참여해야 하며, 경제 발전이 보건과 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건강한 결정을 돕고, 정책적으로 이를 보호 및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태는 결핵 퇴치 사업에 힘을 기울였는데, 특히 필리핀에 중점을 두어 [https://en.wikipedia.org/wiki/Directly_Observed_Therapy_%E2%80%93_Short_Course DOTS(Directly Observed Treatment - Short-Course)]를 도입하여 필리핀에서의 결핵 치료율을 크게 향상시켰다.[24] 이러한 공로로 1999년 1월 6일 필리핀 정부로부터 시카투나 수교 훈장을 받았다. 또한, 그는 소아마비 박멸사업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여, 세계 보건 기구 서태평양지역 회원국의 전국적 예방접종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1993년 12월 5일과 6일 양일간 아동 8,000만명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하였으며, 캄보디아와 필리핀에서는 내전 상황에서도 예방접종을 위한 정전 협의를 통해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그 결과, 1997년 3월 19일 캄보디아에서의 환자를 마지막으로 서태평양지역에서 소아마비를 박멸하는 업적을 달성했다.
2. 5. 이종욱 전 세계 보건 기구 사무총장과의 인연
한상태는 전 세계 보건 기구 사무총장인 이종욱 박사와 인연이 깊었다.[7] 상관이자 선배, 멘토로서 故 이종욱 박사가 처음 세계 보건 기구에 발을 들인 1983년부터 약 15년간 세계 보건 기구 서태평양지역사무처에서 함께 일했다.[7] 당시 한센병 자문관으로 세계 보건 기구에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던 故 이종욱 박사는 이후 사무처장인 그의 지시아래 현재 세계 보건 기구의 기준으로 사용되는 한센병 지표를 만들기도 하는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7]3. 세계 보건 기구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사무처장 이후 (1999년 ~ 현재)
3. 1. 명예사무처장 추대
1998년 9월 15일 제49차 서태평양 지역위원회에서는 한상태가 서태평양지역의 보건에 바친 지대한 헌신과 공헌을 인정하여 세계 보건 기구 서태평양사무처 명예사무처장(1999년 2월 - 현재)으로 추대하기로 결의한다.4. 주요 업적
4. 1. 대한민국 공중보건 발전 기여
4. 2. 서태평양 지역 보건 증진
1994년 열린 제45차 서태평양지역회의에서 ‘모두에게 건강을’에 대한 전략 혁신의 일환으로 ‘보건의 새로운 지평’을 제안한다. ‘보건의 새로운 지평’을 통해 그는 보건을 크게 생애 준비과정, 생애 보호, 노년의 삶의 질로 나누어 목적, 목표, 지표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을 다루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세계 보건 기구의 건강에 대한 정의를 먼저 언급하고, 개인과 정부의 역할을 이전보다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상황임을 설명하며 그 동안 세워진 지표, 목표 그리고 방향을 재평가할 것을 주문한다. 또한 건강에 지지적인 환경속에서의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였으며, 건강문제를 풀기위해서는 복잡하고 서로 연관된 환경의 맥락에서 개인, 가족, 지역사회, 국가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의 경제적인 발전이 보건과 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건강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정책 또한 이를 보호 및 지지하며, 인적개발 문제 또한 다학제적, 상호지지적, 그리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서문에 기술하고 있다.
4. 3. 소아마비 박멸
한상태는 세계 보건 기구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사무처장으로 재임하면서 소아마비 박멸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였다. 당시 서태평양 지역에서는 연간 5,000여 명의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하고 있었다.한상태는 서태평양지역 회원국의 전국적인 예방접종사업을 적극 지원했다. 이 사업은 대상 아동 전원에 대한 동시 접종을 목표로 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1993년 12월 5일과 6일 양일간 8,000만 명의 아동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하였다. 캄보디아에서는 전국적인 예방접종사업을 통해 정부의 잠재능력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캄보디아와 필리핀에서는 내전 상황에서도 예방접종을 위한 정전 협의를 이끌어내어 일시적인 평화를 가져온 사례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97년 3월 19일 캄보디아에서의 환자를 마지막으로 서태평양지역에서 소아마비가 박멸되었다. 이는 한 지역 내의 질병을 완전히 퇴치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4. 4. 결핵 퇴치
한상태는 여러 회원국에서 결핵 퇴치 사업에 힘을 기울였으며, 특히 필리핀에 중점을 두어 사업을 진행하였다. [https://en.wikipedia.org/wiki/Directly_Observed_Therapy_%E2%80%93_Short_Course DOTS(Directly Observed Treatment - Short-Course)] 도입은 필리핀에서의 결핵 치료율을 60%에서 80%로 증가시켰다. 그는 결핵 퇴치 사업을 비롯한 필리핀에서 시행한 여러 사업과 협력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1월 6일 필리핀 정부로부터 시카투나 수교 훈장을 받았다.5. 수상 경력
2012년 제9회 서재필 의학상을 수상했다. 2007년에는 의협-화이자 국제협력상을, 2002년에는 서울대의대동창회 제3회 함춘대상을 수상했다. 1999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으며, 같은 해 필리핀 수교훈장 시카투나 라칸장을 수훈했다. 1999년 일본 토카이대학 명예교수, 1998년 중국 심양의학대학교 명예교수, 1998년 몽골국립의학대학교 명예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중국 통지대학교 명예교수, 1993년 홍콩공중보건학회 명예 평의원으로 위촉되었으며, 1990년 하와이대학교 임상교수로 활동했다. 1981년 대한민국 수교훈장 흥인장을 수훈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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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출세한 해외근무 한국인
주간조선
199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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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Dr. S. T. Han Designated DS's Special Representative for WPR
HEALTH & DEVELOPMENT, A publication of WHO Western Pacific Region
198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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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representative named
MANILA BULLETIN
198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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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special representative
EVENING STAR
198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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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director general's representative
The Manila Chron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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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S.T. Han Temporary Chair WHO Office of Western Pacific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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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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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tackles health problems of adolesc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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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is WHO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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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서태지역 사무처장 한상태박사 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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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서태평양사무처장 한상태씨 피선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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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서태평양 사무처장에 한상태 박사 피선
의계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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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Elected as Director Of WHO Regional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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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평양 지역 WHO 사무처장 한상태씨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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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regional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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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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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LA BULLE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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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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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 & DEVELOPMENT, A Publication of WHO Western Pacific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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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 for All by the Year 2000
ASIAN HOSPITAL
199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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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역의 보건개발을 위한 보건의료 전문 교육기관의 역할
의학신문
198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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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Health for All by Year 2000 soon attainable, WHO experts predict
PHILIPPINE TIMES JOURNAL
199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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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록
Minutes of WHO EB 103rd Session
199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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