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푸를러
1. 개요
한스 푸를러는 독일의 법학자이자 정치인으로, 1925년 법학 시험에 합격하고 1928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변호사, 특허법 강사로 활동했으며, 1932년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에서 교수 자격을 얻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952년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에 입당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 1953년부터 1972년까지 독일 연방의회 의원을 지냈다. 또한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 및 유럽 공동체의 유럽 의회 의원, 유럽 운동 독일 위원회 의장 등을 역임하며 유럽 통합에 기여했다. 1975년 아헨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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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한스 푸를러 |
|---|---|
| 출생일 | 1904년 6월 5일 |
| 출생지 | 라르, 독일 제국 |
| 사망일 | 1975년 6월 29일 |
| 사망지 | 아헨, 서독 |
| 소속 정당 |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유럽 인민당 |
| 직업 | 변호사, 정치인 |
| 직책 | 유럽 의회 의장 |
|---|---|
| 임기 시작 (1차) | 1956년 11월 27일 |
| 임기 종료 (1차) | 1958년 3월 19일 |
| 이전 의장 (1차) | 주세페 펠라 |
| 다음 의장 (1차) | 로베르 쉬망 |
| 임기 시작 (2차) | 1960년 3월 18일 |
| 임기 종료 (2차) | 1962년 3월 27일 |
| 이전 의장 (2차) | 로베르 쉬망 |
| 다음 의장 (2차) | 가에타노 마르티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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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유럽 의회 의원 -
빌리 브란트
빌리 브란트는 서독의 사회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총리 재임 시절 동방정책을 통해 독일의 분단 극복에 기여하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나, 기욤 사건으로 사퇴한 후에도 독일 재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 사회복지 정책을 통해 서독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독일의 유럽 의회 의원 -
한스 모드로
한스 모드로는 1928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동독 공산당에서 정치 경력을 시작하여 동독 총리를 역임하고 독일 재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독일 연방의회 및 유럽 의회 의원을 거쳐 2023년 사망한 독일의 정치인이다. -
1904년 출생 -
덩샤오핑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사후 중국 최고지도자가 되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 중국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나 톈안먼 사건 무력 진압 등 비판도 받으며, 실사구시와 선부론을 통해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일국양제 원칙을 제시한 중국의 정치가이자 개혁가이다. -
1904년 출생 -
살바도르 달리
스페인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정교한 기술과 몽환적인 이미지,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논란적인 행보로도 알려져 있다. -
1975년 사망 -
사토 에이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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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사망 -
장준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정치인인 장준하는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 후 탈출하여 광복군에서 활동, 해방 후 김구의 비서를 지냈고, 《사상계》를 창간하여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으며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나 의문사했고 그의 삶과 죽음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2. 생애
한스 푸를러는 독일의 법학자이자 정치인이다. 프라이부르크 임 브라이스가우, 베를린,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와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1952년 기독교민주연합(CDU)에 입당하여 정치 경력을 시작했으며, 독일 연방의회 의원 및 유럽 의회 의장을 역임하며 유럽 통합에 기여했다.
그의 생애는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 초기 생애 및 교육: 바덴 대공국 슈바르츠발트 지역 라알 출생, 프라이부르크, 베를린, 하이델베르크에서 법학 공부, 박사 학위 취득, 변호사 및 특허법 강사 근무.
* 학문 및 법조 경력: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 교수 자격 취득 및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교수 재직.
* 서독 정치 경력: 1952년 기독교민주연합 입당, 독일 연방의회 의원 역임.
* 유럽 통합 활동: 유럽 의회 및 전신 기구 의원 및 의장 역임, 유럽 운동 독일 위원회 의장 역임.
* 사망: 1975년 아헨에서 사망.
2.1. 초기 생애 및 교육
한스 푸를러는 바덴 대공국 슈바르츠발트 지역 라알에서 태어났다. 라르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프라이부르크, 베를린, 하이델베르크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925년 제1차 국가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28년에는 "경찰의 긴급 조치와 국가의 배상 의무"(Das polizeiliche Notrecht und die Entschädigungspflicht des Staates독일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8년 12월 심사관 시험에 합격하여 포르츠하임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1930년부터 특허법 강사로 근무했다.
1932년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했고, 1940년 산업 재산·저작권 원외 교수로 임명되었다. 1938년 나치당 당원이었다. 나치 독일 붕괴 후 1945년부터 1948년 비나치화 종료 때까지 의붓 부모 소유 제지 공장 고문 변호사로 근무했다. 1948년 프라이부르크에 법률 사무소를 개설했고, 1950년부터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2.2. 학문 및 법조 경력
한스 푸를러는 프라이부르크, 베를린, 하이델베르크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1925년에는 제1차 국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28년에는 《경찰의 긴급 조치와 국가의 배상 의무》(Das polizeiliche Notrecht und die Entschädigungspflicht des Staates독일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대학으로부터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12월에는 판사 보조 시험에 합격하여 포르츠하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30년에는 특허법 강사로 근무했다.
1932년에는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했고, 1940년에는 산업 재산·저작권 원외 교수로 임명되었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는 제지 공장의 고문 변호사로 근무했고, 1948년에는 프라이부르크에서 법률 사무소를 개설했다. 1950년부터 알베르트 루드비히 대학교 프라이부르크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2.3. 서독 정치 경력
1952년 기독교민주연합에 입당했으며 바덴 지부의 경제 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53년부터 1972년까지 오펜부르크 선거구에서 선출된 독일 연방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1957년까지 산업 재산·저작권 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고, 1957년에는 잠시 '공동 시장/유라톰' 특별 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59년부터 1960년까지는 '외무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4. 유럽 통합 활동
1953년부터 1972년까지 독일 연방의회 의원(오펜부르크 선거구)을 역임한 한스 푸를러는 1955년부터 1973년까지 유럽 의회의 전신인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 '공동 의회'(1955년–1958년)와 유럽 공동체 '유럽 의회'(1958년–1973년)의 의원이었다. 그는 1956년부터 1958년까지, 1960년부터 1962년까지 이 기구의 의장을, 1962년부터 1973년까지 부의장을 역임했다.
1958년부터 1966년까지는 유럽 운동 독일 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2.5. 사망
아헨에서 1975년 6월 29일에 사망했다.
3. 저서
* Polizeinotverordnung und Entschädigungspflicht des Staates독일어, 법학 박사 학위 논문, 하이델베르크 1928
* Parlament aus übernationaler Sicht. Werden, Stand und Aussichten in Europa독일어, in: Die Politische Meinung독일어, 1957, 제11호, 17~28쪽.
* Reden und Aufsätze 1953–1957독일어, o.O. (바덴바덴), o.J. (1958?)
* Im neuen Europa. Erfahrungen des Europaparlaments독일어, 프랑크푸르트/마인 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