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귀
1. 개요
한용귀는 조선 순조 때 활동한 문신이다. 영조 때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정조 때 문과에 급제했고, 이후 이조참판, 평안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순조 때 공조판서, 형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서매수, 남공철 등과 함께 노론 시파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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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 출생 -
레오폴트 2세 (신성 로마 황제)
레오폴트 2세는 계몽주의 영향을 받아 토스카나 대공으로서 사회 개혁을 추진했으며, 이후 신성 로마 황제가 되어 제국 내 혼란을 수습하고 프랑스 혁명에 대한 신중한 외교 정책을 펼쳤다. -
1747년 출생 -
난부 노부요리
난부 노부요리는 제5대 번주 난부 노부오키의 적남으로 가문을 계승하여 무예를 장려했으나 흉작과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장남에게 가독을 물려준 뒤 35세로 사망했다. -
19세기 한국 사람 -
손병희
손병희는 조선 말 동학의 지도자이자 대한제국의 종교인, 독립운동가로서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3·1 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며 인내천 사상을 강조했다. -
19세기 한국 사람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
청주 한씨 -
한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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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한씨 -
한승헌
2. 초기 관직 생활
영조 때 관직 생활을 시작해서, 정조 때 문과에 급제해서, 정언, 응교와 부사과를 지냈다. 이후 이조참의와 대사간, 이조참의, 동부승지,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이조참판이 되었다.
2.1. 초기 관직
영조 때 관직 생활을 시작해서, 정조 때 문과에 급제해서, 정언, 응교와 부사과를 지냈다. 이후 이조참의와 대사간, 이조참의, 동부승지,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이조참판이 되었다.
3. 후기 관직 생활
순조 때 재상에 올랐다. 공조판서, 형조판서, 우참찬, 좌참찬, 빈전제조, 예조판서, 이조판서, 대사헌, 수원유수, 실록청당상, 전라도관찰사, 약방제조, 옥보전문서사관, 개명정서사관, 판의금부사 등을 지내고, 이후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른다. 서매수, 남공철 등과 노론 시파 세력 중 한 명이다.
3.1. 주요 관직
한용귀는 조선 순조 때 공조판서, 형조판서, 우참찬, 좌참찬, 빈전제조, 예조판서, 이조판서, 대사헌, 수원유수, 실록청당상, 전라도관찰사, 약방제조, 옥보전문서사관, 개명정서사관,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서매수, 남공철 등과 함께 노론 시파 세력 중 한 명이었다.
3.2. 최고위 관직
한용귀는 순조 때 공조판서, 형조판서, 우참찬, 좌참찬, 빈전제조, 예조판서, 이조판서, 대사헌, 수원유수, 실록청당상, 전라도관찰사, 약방제조, 옥보전문서사관, 개명정서사관, 판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이후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서매수, 남공철 등과 함께 노론 시파 세력 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