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슈마커
1. 개요
할 슈마커는 1930년대 뉴욕 자이언츠에서 활약한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이다. 1931년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32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 1933년 팀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34년 23승을 기록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통산 158승 121패, 평균자책점 3.36을 기록했다. 1935년과 1936년 올스타로 선정되었으며, 은퇴 후에는 뉴욕주 쿠퍼스타운에서 거주하다가 위암으로 사망했다.
| 이름 | 할 슈마커 |
|---|---|
| 원어 이름 | Harold Henry Schumacher |
| 별칭 | 프린스 할 (Prince Hal)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포지션 | 투수 |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 신장 | 183cm |
| 체중 | 86kg |
| 출생일 | 1910년 11월 23일 |
| 출생지 | 미국 뉴욕주 힝클리 |
| 사망일 | 1993년 4월 21일 |
| 사망지 | 미국 뉴욕주 쿠퍼스타운 |
| 데뷔 (MLB) | 1931년 4월 15일 |
|---|---|
| 마지막 경기 (MLB) | 1946년 9월 25일 |
| 소속 팀 | 뉴욕 자이언츠 (1931–1942, 1946) |
| 승패 기록 | 158–121 |
|---|---|
| 평균자책점 | 3.36 |
| 탈삼진 | 906 |
| 올스타 선정 | 2회 (1933, 1935) |
|---|---|
| 월드 시리즈 우승 | 193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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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투수 -
다코타 허드슨
다코타 허드슨은 미시시피 주립 대학교 출신의 미국 프로 야구 투수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콜로라도 로키스를 거쳐 현재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소속이며, 97마일의 싱커를 던지는 땅볼 유도형 투수이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투수 -
호세 카페얀
호세 카페얀은 미국과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으며, 메이저 리그와 KBO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15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내셔널 리그 올스타 -
톰 글래빈
톰 글래빈은 메이저리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투구와 타격 능력으로 다승왕, 실버 슬러거 상 등을 수상하고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 300승을 달성한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좌완 투수이다. -
내셔널 리그 올스타 -
데이비드 저스티스
데이비드 저스티스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뛰어난 타격 능력으로 활약하며 신인왕, 실버 슬러거 상, 챔피언십 시리즈 MVP 등을 수상하고 두 차례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야구 선수이자, 은퇴 후 야구 해설가로도 활동했으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나 미첼 보고서에 언급되어 명예의 전당 입성에는 실패했다. -
1910년 출생 -
박태원 (1909년)
박태원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로, 모더니즘 소설을 주로 썼으며,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하다 사망했다. -
1910년 출생 -
오히라 마사요시
오히라 마사요시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제68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외무대신 시절 한일 및 중일 국교 정상화에 기여했으며, 총리 재임 중 환태평양 연대 구상을 제시하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으나 총선 직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2. 선수 경력
할 슈마커는 세인트로렌스 대학교 재학 중이던 1931년 뉴욕 자이언츠와 계약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마이너 리그에서 짧은 기간을 거친 후 1932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으며, 이듬해인 1933년에는 팀의 내셔널 리그 우승과 월드 시리즈 제패에 기여했다. 1934년에는 23승을 거두며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후 1936년과 1937년에도 자이언츠 소속으로 내셔널 리그 우승을 경험하며 월드 시리즈 무대에 섰다. 1938년부터 1942년까지 꾸준히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로 활약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태평양 전선에서 복무하며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세 시즌 동안 선수 생활을 중단했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에 잠시 복귀하여 시즌 초반 두 번의 선발 등판에서 모두 완투승을 거두었으나, 6월 중순 이후 등판 횟수가 줄어들었고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슈마커는 선수 시절 뛰어난 투수였을 뿐만 아니라 타격과 주루 능력도 갖춘 선수였으며, 수비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올스타전 역사상 초창기 멤버로 선정되기도 했다.
2.1. 초기 경력 및 뉴욕 자이언츠 (1931-1942)
슈마커는 세인트로렌스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1년, 처음 뉴욕 자이언츠와 계약을 맺었다. 그는 마이너 리그에서 단 8경기만 소화한 후 1932년 자이언츠의 투수진에 합류했다. 이듬해인 1933년(세인트로렌스에서 학위를 받은 해), 슈마커는 자이언츠가 내셔널 리그 페넌트와 1933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19승, 258⅔ 이닝, 21완투, 7완봉, 2.16 평균자책점 기록은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좌완 투수 칼 허벨에 이어 팀 내 2위에 해당했다. 1933년 월드 시리즈에서 그는 선발 투수로 워싱턴 세네터스를 상대로 두 경기에 등판했다. 2차전에서는 6–1 완투승을 거두며 5안타만 허용했고, 3득점을 올렸다. 또한 결정적인 5차전에도 선발 등판하여 6이닝 동안 3실점(3-3 동점)을 기록한 후 구원 투수 아돌포 루케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자이언츠는 연장전 끝에 4–3으로 승리했고, 루케가 승리 투수가 되었다.
슈마커는 1934년 23승을 거두며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 3년간 그는 61승 31패의 기록과 12완봉을 기록했지만, 1933년 우승 이후 자이언츠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34)와 시카고 컵스(1935)에 밀려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다. 이후 자이언츠는 1936년과 1937년에 내셔널 리그 페넌트를 연속으로 획득했다. 슈마커의 정규 시즌 기록은 이 2년간 24승 25패로 다소 평범했지만, 그는 월드 시리즈에서 세 번 더 선발 등판했다. 1936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강력한 타선을 자랑하는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두 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2차전에서는 3회 초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강판당하며 4실점했고, 팀은 18–4로 대패했다. 그러나 5차전에서는 10이닝 동안 양키스 타선을 3자책점으로 막아내며 5–4 승리를 이끌어 팀의 희망을 이어갔다. 하지만 양키스가 6차전에서 승리하며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년 뒤인 1937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3차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5–1 패를 기록했다.
그는 1938년부터 1942년까지 자이언츠의 선발 로테이션을 계속 맡았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태평양 전선에서 복무하기 위해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세 시즌(1943-1945) 동안 야구계를 떠나 있었다.
2.2. 통산 기록
슈마커는 투수 경력 동안 통산 158승 121패, 평균자책점 3.36을 기록했다. 총 400경기에 등판하여 329경기에 선발 투수로 나섰으며, 137번의 완투와 26번의 완봉승을 거두었다. 드물게 불펜으로 등판하여 7세이브를 추가하기도 했다. 통산 2,482.1 이닝 동안 2,424개의 안타와 902개의 볼넷을 허용했으며, 906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월드 시리즈에서는 통산 4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2승 2패, 평균자책점 4.13을 기록했다. 32.2 이닝 동안 35개의 안타와 19개의 볼넷을 내주고 17개의 삼진을 잡았다.
타자로서도 재능을 보여, 투수 포지션 외에도 61번의 메이저 리그 경기에 대주자, 대타 또는 중견수로 출전했다. 통산 타율 .202 (896타수 181안타)를 기록했으며, 15개의 홈런을 쳤다. 특히 1934년에는 한 시즌 6개의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수비에서도 평균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며, 자신의 포지션에서 리그 평균보다 11포인트 높은 .971의 수비율을 기록했다.
슈마커는 올스타전 역사상 처음 세 번의 경기에 내셔널 리그 대표로 선발되었다. 1933년 처음 열린 올스타전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았다. 1935년 올스타전에서는 클리블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경기에 등판하여 4이닝 동안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팀은 아메리칸 리그에 4-1로 패배했다.
2.3. 올스타전
슈마커는 역대 올스타전 중 처음 세 번의 경기에 내셔널 리그 대표로 선발되었다. 1933년에 처음 열린 올스타전에도 선발되었으나,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았다. 이후 1935년에 다시 내셔널 리그 올스타팀에 뽑혔고, 클리블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경기에서 4이닝 동안 1실점을 기록했다. 이 경기는 아메리칸 리그가 4–1로 승리했다.
3. 은퇴 이후
슈마허는 1993년 4월 21일 위암으로 뉴욕주 쿠퍼스타운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