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철 (1940년)
1. 개요
황인철은 1940년 충청남도 대덕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법조인이다.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1970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며, 1970~80년대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와 함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민청학련 사건, 지학순 주교 사건 등 굵직한 시국 사건들을 변론했으며,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며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창립했으며, 1993년 지병으로 사망하여 천주교 수원교구 안성공원 묘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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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 (1971년 대한민국) 당원 -
한영수 (정치인)
한영수는 충청남도 서산군 출신의 정치인으로, 5·9·10·11·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신민당 대변인, 민한당 정책위 의장, 국회 국방위원장 등을 지냈으나 잦은 당적 변경과 간통 혐의로 비판받았다. -
국민당 (1971년 대한민국) 당원 -
신상초
신상초는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에 참여하고 해방 후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 교수, 연구원 대표 등을 역임했다. -
대한민국의 판사 -
추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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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판사 -
이상민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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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출신 -
김수장 (법조인)
김수장은 1945년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임용되어 검사장까지 승진, 주요 검찰 요직을 역임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과 법무부 검찰인사위원장을 지냈으나 권인숙 성고문 사건 관련 논란이 있었다. -
대전광역시 출신 -
민형기
민형기는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판사로 임용되어 서울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대법원 등에서 근무하고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하며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 의장직무대행을 맡았으며, 퇴임 후에는 법무법인(유한) 로고스 상임고문변호사, 롯데그룹 컴플라이언스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 생애
황인철은 1940년 1월 24일 충청남도 대덕군(현재의 대전광역시 유성구 세동 702번지)에서 태어나 1993년 1월 20일 사망하기까지 인권 변호사로서 한국 사회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61년 제13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판사로 재직하다 1970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며, 주로 1970~80년대 시국사건을 변론하였다.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1970~80년대 4대 인권 변호사로 꼽힌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 대표 등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했으며, 계간 《문학과지성》 창간과 '문학과지성사' 창사에도 참여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세례명: 세바스티아노)로서 '계명복지회'를 설립, 자폐 아동들의 교육과 복지에 힘썼고,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창립했다. 1990년부터 지병으로 투병하다 1993년 1월 20일 강남성모병원에서 별세, 천주교수원교구 안성공원 묘원에 안장되었다.
2.1. 유년 시절과 교육
1940년 1월 24일 충청남도 대덕군(현재의 대전광역시 유성구 세동 702번지)에서 태어났다. 1957년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61년 제13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6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2.2. 법조인 경력
1961년 제13회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서울형사지방법원과 서울민사지방법원(현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하다가 1970년부터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다.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1970~80년대 네 명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꼽히는 그는, 죽을 때까지 인권변호사로서 독재 정권은 물론 세상의 불의와의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였다.
그가 변론을 맡은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 민청학련 사건
* 지학순 주교 사건
*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
* 3·1 구국 선언 사건
* 동아·조선투위 사건
* 청계피복노조 사건
* 한승헌 필화사건
* 동일방직노동 사건
* YH사건
*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 원풍모방 사건
* 강원대학교 성조기 방화 사건
* 오송회 간첩 사건
* 대우어패럴 사건
* 서울 미문화원 사건
* 건국대학교 사건
* 부천서 성고문 사건
* 박종철 사건
* 임수경, 문규현 방북 사건
* 윤석양 사건
2.3. 인권 변호사로서의 활동
황인철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주요 시국 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인권 변호사로서 활동했다. 그는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1970~80년대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 4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독재 정권과 세상의 불의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했다.
그가 변론을 맡은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 민청학련 사건
* 지학순 주교 사건
*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
* 3·1 구국 선언 사건
* 동아·조선투위 사건
* 청계피복노조 사건
* 한승헌 필화사건
* 동일방직노동 사건
* YH사건
*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 원풍모방 사건
* 강원대학교 성조기 방화 사건
* 오송회 간첩 사건
* 대우어패럴 사건
* 서울 미문화원 사건
* 건국대 사건
* 부천서 성고문 사건
* 박종철 사건
* 임수경·문규현 방북 사건
* 윤석양 사건
2.4. 사회 활동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 대표 등 정의 실현과 인권 회복을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계간 《문학과지성》 창간 및 문학과지성사 창사에 참여했다.
2.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창립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창립에 참여했다.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독재 정권과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웠으며,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1970년~1980년대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 4인으로 꼽힌다.
2.6. 투병과 사망
1990년부터 지병으로 투병하다가 1993년 1월 20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별세하였고, 천주교수원교구 안성공원 묘원에 안장되었다.
3. 종교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세바스티아노이다.
3.1. 천주교 신앙 활동
천주교 신자이며, 세례명은 세바스띠아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