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철 (1940년)
1. 개요
황인철은 1940년 충청남도 대덕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법조인이다.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1970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며, 1970~80년대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와 함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민청학련 사건, 지학순 주교 사건 등 굵직한 시국 사건들을 변론했으며,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며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창립했으며, 1993년 지병으로 사망하여 천주교 수원교구 안성공원 묘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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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출생 -
콘스탄티노스 2세
콘스탄티노스 2세는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로, 재위 기간 중 정치적 혼란과 군사 쿠데타, 왕정 폐지를 겪었으며, 올림픽 요트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
1940년 출생 -
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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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황씨 -
황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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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황씨 -
황정순
황정순은 1940년 연극배우로 데뷔하여 1941년 영화계에 데뷔한 대한민국의 배우로, 다양한 영화, 드라마, 광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한국 영화사에 족적을 남겼고, 청룡영화상, 부일영화상, 대종상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며 연기력과 공헌을 인정받았다. -
1993년 사망 -
백두진
백두진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정치인, 금융인으로, 조선은행 이사장, 한국은행 이사장, 재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국회의장, 유신정우회 의장 등을 지냈다. -
1993년 사망 -
김동하 (1918년)
김동하는 일제강점기 만주군 장교이자 대한민국 해병대 창설에 참여한 군인, 정치인으로,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역임했으나 반혁명사건에 연루되었고, 만주군 복무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2. 생애
황인철은 1940년 1월 24일 충청남도 대덕군(현재의 대전광역시 유성구 세동 702번지)에서 태어나 1993년 1월 20일 사망하기까지 인권 변호사로서 한국 사회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61년 제13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판사로 재직하다 1970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며, 주로 1970~80년대 시국사건을 변론하였다.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1970~80년대 4대 인권 변호사로 꼽힌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 대표 등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했으며, 계간 《문학과지성》 창간과 '문학과지성사' 창사에도 참여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세례명: 세바스티아노)로서 '계명복지회'를 설립, 자폐 아동들의 교육과 복지에 힘썼고,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창립했다. 1990년부터 지병으로 투병하다 1993년 1월 20일 강남성모병원에서 별세, 천주교수원교구 안성공원 묘원에 안장되었다.
2.1. 유년 시절과 교육
1940년 1월 24일 충청남도 대덕군(현재의 대전광역시 유성구 세동 702번지)에서 태어났다. 1957년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61년 제13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6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2.2. 법조인 경력
1961년 제13회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서울형사지방법원과 서울민사지방법원(현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하다가 1970년부터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다.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1970~80년대 네 명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꼽히는 그는, 죽을 때까지 인권변호사로서 독재 정권은 물론 세상의 불의와의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였다.
그가 변론을 맡은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 민청학련 사건
* 지학순 주교 사건
*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
* 3·1 구국 선언 사건
* 동아·조선투위 사건
* 청계피복노조 사건
* 한승헌 필화사건
* 동일방직노동 사건
* YH사건
*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 원풍모방 사건
* 강원대학교 성조기 방화 사건
* 오송회 간첩 사건
* 대우어패럴 사건
* 서울 미문화원 사건
* 건국대학교 사건
* 부천서 성고문 사건
* 박종철 사건
* 임수경, 문규현 방북 사건
* 윤석양 사건
2.3. 인권 변호사로서의 활동
황인철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주요 시국 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인권 변호사로서 활동했다. 그는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1970~80년대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 4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독재 정권과 세상의 불의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했다.
그가 변론을 맡은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 민청학련 사건
* 지학순 주교 사건
*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
* 3·1 구국 선언 사건
* 동아·조선투위 사건
* 청계피복노조 사건
* 한승헌 필화사건
* 동일방직노동 사건
* YH사건
*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 원풍모방 사건
* 강원대학교 성조기 방화 사건
* 오송회 간첩 사건
* 대우어패럴 사건
* 서울 미문화원 사건
* 건국대 사건
* 부천서 성고문 사건
* 박종철 사건
* 임수경·문규현 방북 사건
* 윤석양 사건
2.4. 사회 활동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 대표 등 정의 실현과 인권 회복을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계간 《문학과지성》 창간 및 문학과지성사 창사에 참여했다.
2.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창립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창립에 참여했다.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독재 정권과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웠으며,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1970년~1980년대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 4인으로 꼽힌다.
2.6. 투병과 사망
1990년부터 지병으로 투병하다가 1993년 1월 20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별세하였고, 천주교수원교구 안성공원 묘원에 안장되었다.
3. 종교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세바스티아노이다.
3.1. 천주교 신앙 활동
천주교 신자이며, 세례명은 세바스띠아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