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최고사령부
1. 개요
해군최고사령부는 독일 해군의 최고 사령부로, 해군 최고 사령관이 지휘했다. 1935년 에리히 레더가 초대 해군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카를 되니츠, 한스게오르크 폰 프리데부르크, 발터 바르체하가 그 뒤를 이었다. 해군최고사령부는 해군 최고 사령관, 해전 사령부, 해군 사령부 등 여러 부서로 구성되었으며, 해군의 작전, 무기 개발, 행정 등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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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명칭 | Oberkommando der Marine독일어 |
|---|---|
| 번역 | 해군 최고 사령부 |
| 약칭 | OKM |
| 창설 | 1936년 1월 11일 |
|---|---|
| 해체 | 1945년 7월 22일 |
| 군종 | 독일 해군 |
| 본부 | 셸 하우스 |
| 사령관 | 독일 해군 총사령관 목록 참조 |
|---|
| 상위 부대 | 국방군 최고 사령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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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쟁해군의 사령부 -
해전지휘부
해전지휘부는 독일 제국 해군과 나치 독일 해군에서 해상 전투 계획 및 실행을 지도하고 전력 분배를 담당했던 조직으로, 1918년 설치되었다가 해군성으로 흡수되었고, 1937년 재설치되어 제2차 세계 대전 중 해군최고사령부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
독일 전쟁해군의 사령부 -
구축함지도자
구축함지도자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해군 구축함 부대를 지휘하는 직책으로, 총 7명이 역임했으며 레오 크라이슈가 가장 오랫동안 직책을 수행했다. -
독일 국방군의 사령부 -
공군최고사령부
공군최고사령부(OKL)는 1935년 독일 공군의 최고 사령부로 창설되어 육군 및 해군과 동등한 지위를 가졌으며, 헤르만 괴링이 최고 지휘관을 맡았다. -
독일 국방군의 사령부 -
남부최고지휘관
남부최고지휘관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공군의 제2항공군을 지휘한 지휘관으로 알베르트 케셀링, 하인리히 폰 비팅호프, 지크프리트 베스트팔 등이 주요 지휘관이었으며, 휘하에 참모장과 작전 장교 등의 주요 직책이 있었다. -
1936년 설립 -
동북항일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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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설립 -
아메리칸 하키 리그
아메리칸 하키 리그(AHL)는 북미의 프로 아이스하키 리그이자 NHL의 최상위 마이너 리그로서, NHL 팀들의 선수 육성 및 팜 시스템 역할을 하며, 30개 팀으로 구성되어 칼더컵을 놓고 경쟁하고 올스타전을 개최한다.
2. 역대 지휘관
해군최고사령부(OKM)의 총수 직함은 해군최고지휘관(Oberbefehlshaber der Marine독일어)이라고 했다. 초대 최고지휘관인 에리히 레더 대제독은 바렌츠 해전 패배의 책임을 지고 1943년 1월 30일 사임하였다. 사임 후 그는 해군 최고참으로서 예우 차원에서 실권 없는 전쟁해군 제독총감(Admiralinspekteur der Kriegsmarine독일어) 직책에 임명되었다. 레더의 뒤를 이어 카를 되니츠, 한스게오르크 폰 프리데부르크, 발터 바르체하가 차례로 지휘관직을 맡았다.
2.1. 해군최고사령관 목록
OKM의 총수 직함은 해군최고지휘관(Oberbefehlshaber der Marine독일어)이라고 했다.
| 순서 | 초상화 | 계급 | 이름 | 재임 시작 | 재임 종료 |
|---|---|---|---|---|---|
| 1 | -- | Großadmiral독일어 | 에리히 레더 | 1935년 6월 1일 | 1943년 1월 30일 |
| 2 | -- | Großadmiral독일어 | 카를 되니츠 | 1943년 1월 30일 | 1945년 5월 1일 |
| 3 | -- | Generaladmiral독일어 | 한스게오르크 폰 프리데부르크 | 1945년 5월 1일 | 1945년 5월 23일 |
| 4 | -- | Generaladmiral독일어 | 발터 바르체하 | 1945년 5월 23일 | 1945년 7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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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해군총사령부 참모장
| 이름 | 계급 | 재임 기간 |
|---|---|---|
| 헤르만 덴쉬 | 해군 소장 | 1936년 1월 - 1936년 9월 |
| 헤르만 모츠 | 해군 대령/해군 소장 | 1936년 10월 - 1939년 1월 |
| 에리히 슐테 뫼팅 | 해군 소장 | 1939년 1월 - 1944년 2월 |
| 한스 폰 다비드손 | 해군 대령 | 1944년 2월 - 1945년 4월 |
| 하인리히 게를라흐 | 해군 대령 | 1945년 5월 |
3. 조직
해군최고사령부(OKM)는 최고 사령관(Oberbefehlshaber der Marine독일어, OBdM)과 그의 직속 참모진을 정점으로 하여, 해상 작전, 무기 개발, 행정, 함선 건조 등 각 분야를 담당하는 여러 주요 부서로 구성되었다. 또한 크릭스마리네 함대 사령관( Flottenchef독일어 ) 역시 OKM의 현역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다.
3.1. 주요 부서
해군최고사령부(OKM)는 크게 6개의 부서로 나뉘었다.
* 해군 최고 사령관(Oberbefehlshaber der Marine독일어, OBdM): 최고 사령관과 그의 참모진으로 구성되었다. 국방군 최고 사령부(OKW)와의 연락, 계획 수립, 기술, 공학, 의학, 경제, 연구, 선전 및 인사 관련 업무를 총괄했다.
* [[해전 사령부]](Seekriegsleitung독일어, SKL): 1937년 4월 1일에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해군 최고 사령관(OBdM) 및 해군 사령부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운영되었다. 당시 OBdM은 SKL의 최고 사령관을 겸임했고, 해군 사령부의 최고 책임자는 SKL 참모장 역할을 함께 수행했다. 그러나 1939년 8월 23일부터 두 조직은 분리되었고, 해군 사령부는 SKL에 종속되어 자체적인 최고 책임자와 참모진을 갖게 되었다. SKL은 해상 전투의 계획과 실행을 주도하고 해군력 배치를 지휘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전쟁 중에는 그 권한이 독일 국내 해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제한되었으며, 1943년 2월 되니츠가 OBdM으로 임명된 이후에는 U보트 작전에 대한 통제권도 상실했다. 1944년 5월 1일부로 SKL 참모장은 '해전 사령부의 참모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부서는 수송선, 봉쇄 돌파선, 보조 순양함 및 보급 선박으로 운용되는 함대 부대의 지휘도 담당했다.
* 해군 사령부(Marinekommandoamt독일어): 해군최고사령부(OKM)가 설립된 1936년 1월 11일에 함께 만들어졌지만, 그 뿌리는 1920년부터 존재했던 '해군 지도부'에 두고 있다. 처음에는 해군 최고 사령관(OBdM)에게 직접 보고하는 체계였으며, 1937년 4월부터는 해군 사령부의 최고 책임자가 SKL 참모장을 겸임했다. 1939년 중반, 두 조직이 분리되면서 해군 사령부는 SKL 참모장에게 종속되는 새로운 최고 책임자를 맞이했다. 1942년부터는 '병참 참모부'(Quartiermeisteramt독일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고, 1943년 4월 20일에는 최고 책임자의 명칭이 '해군 병참총장'(Admiralquartiermeister독일어)으로 변경되었다. 최종적으로 1944년 5월 1일, 이 부서는 공식적으로 '병참 참모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해군 사령부는 해상 작전 지원 외에도 인력 관리, 보급, 정보 수집, 훈련, 해안 방어 및 대공 방어에 대한 책임을 맡았다.
* 해군 무기 부(Marinewaffenamt독일어): 1934년에 설립되었다. 이후 1939년에는 '해군 무기 총괄 부'(Marinewaffenhauptamt독일어)로, 1944년에는 '해군 군비'(Kriegsmarine-Rüstung독일어)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부서는 모든 종류의 해군 무기 개발, 시험, 생산 과정을 감독했으며, 전자전 및 무선 통신 기술 분야도 담당했다.
* 해군 일반 부(Allgemeines Marineamt독일어): 1936년 1월에 설립되었다. 1939년 11월에는 '해군 일반 총괄 부'(Allgemeine Marinehauptamt독일어)로, 1944년에는 '해군 방위'(Kriegsmarine-Wehr독일어)로 다시 명칭이 변경되었다. 주로 행정적인 업무를 처리했으며, 법률, 의학, 경제, 건설 및 수출 관련 부서를 포함하고 있었다.
* 건설 부(Konstruktionsamt독일어): 1936년에 설립되었다. 1939년에는 '군함 건설 부'(Amt Kriegsschiffsbau독일어)로, 같은 해 말에는 '군함 건설 총괄 부'(Hauptamt Kriegsschiffsbau독일어)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944년에 다시 원래 이름인 건설 부로 돌아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부서는 해군을 위한 새로운 함선의 건조를 책임졌으며, 선박 및 U보트의 설계와 엔지니어링을 담당하고, 부품 공급업체 및 조선소와의 협력, 군수 및 전쟁 생산 관련 부서와의 연락 업무를 수행했다.
또한, 크릭스마리네 함대 사령관( Flottenchef독일어 ) 역시 해군최고사령부(OKM)의 현역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다.
3.2. 함대 사령관
크리그스마리네 함대 사령관(Flottenchef독일어) 또한 OKM의 현역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다.
4. 해군 최고사령관기
(내용 없음)
4.1. 변천사
1935년 11월 7일,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국방부 장관이자 국방군 최고 사령관은 해군 최고 사령관이 사용할 새로운 형태의 기를 도입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 기는 흰색 사각형 바탕에 커다란 검은색 철십자 훈장이 그려져 있었고, 그 뒤에는 밝은 노란색의 칼날이 곧은 두 개의 칼이 칼집 없이 서로 직각으로 교차된 형태로 배치되었다.
1939년 4월 1일, 에리히 레더가 Großadmiral독일어(대제독)으로 승진하면서 기가 수정되었다. 이후 1943년 1월 30일 카를 되니츠가 이 직책을 맡았을 때에도 이 기는 계속 사용되었으나,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기존의 교차된 칼은 두 개의 제독 지휘봉이 직각으로 교차된 모습으로 대체되었고, 교차된 지휘봉과 철십자 훈장 위에는 깃대 쪽을 향하는 금색의 Wehrmachtsadler독일어(국방군 독수리)가 추가되었다.
같은 날인 1943년 1월 30일에는 Admiralinspekteur독일어(해군 감찰관)로서의 에리히 레더 대제독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한 특별한 기도 도입되었다. 이 기는 해군 최고 사령관의 기와 동일한 디자인이었지만, 넓은 연한 파란색 테두리가 추가된 점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