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우리베
1. 개요
호세 우리베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전 야구 선수로, 유격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그는 1980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하며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1984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8시즌 동안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1987년과 1989년 팀의 지구 우승과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1993년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0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그의 사촌은 역시 메이저 리그 선수였던 후안 우리베이다.
| 이름 | 호세 우리베 |
|---|---|
| 원어 이름 | José Uribe |
| 출생일 | 1959년 1월 21일 |
| 출생지 | 산크리스토발, 도미니카 공화국 |
| 사망일 | 2006년 12월 8일 |
| 사망지 | 산토도밍고, 도미니카 공화국 |
| 포지션 | 유격수 |
| 타격 | 스위치 |
| 투구 | 우투 |
| 데뷔 리그 | MLB |
|---|---|
| 데뷔 날짜 | 1984년 9월 13일 |
| 데뷔 팀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마지막 리그 | MLB |
| 마지막 날짜 | 1993년 10월 3일 |
| 마지막 팀 | 휴스턴 애스트로스 |
| 소속 팀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8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85–1992) 휴스턴 애스트로스 (1993) |
| 타율 | 0.241 |
|---|---|
| 홈런 | 19 |
| 타점 | 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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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크리스토발주 출신 -
하이로 어센시오
하이로 어센시오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야구 선수로, MLB와 KBO 리그에서 투수로 활동했으며,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도미니카 공화국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
산크리스토발주 출신 -
프랭키 몬타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야구 선수 프랭키 몬타스는 2009년 프로 데뷔 후 여러 팀을 거쳐 현재 뉴욕 메츠 소속 투수로 활동하며, 금지 약물 복용으로 징계를 받기도 했지만 2021년 사이 영 상 투표에서 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
1959년 출생 -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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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출생 -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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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수 -
다코타 허드슨
다코타 허드슨은 미시시피 주립 대학교 출신의 미국 프로 야구 투수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콜로라도 로키스를 거쳐 현재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소속이며, 97마일의 싱커를 던지는 땅볼 유도형 투수이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수 -
레드 쇼인딘스트
레드 쇼인딘스트는 "레드"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미국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감독, 코치로, 뛰어난 수비력과 양손 타격 능력으로 10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선수와 감독으로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고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이다.
2. 선수 경력
우리베는 도미니카 공화국 산크리스토발에서 태어나 1977년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지만, 마이너 리그 경기를 한 번도 치르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1980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하여 4시즌 동안 팜 시스템에서 활약했다.
1985년 2월, 잭 클라크를 상대로 데이비드 그린, 데이브 라포인트, 게리 라지치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다. 이적 전에 "야구에는 곤잘레스가 너무 많아서!"라는 이유로 자신의 이름을 호세 곤잘레스 우리베에서 호세 우리베로 변경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8시즌 동안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1987년 내셔널 리그 서부 디비전 우승과 1989년 내셔널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1988년에는 정신과 리더십을 기리는 윌리 맥 어워드를 수상했다. 1991년 부상으로 고전한 우리베는 1992년 로이스 클레이턴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캔들스틱 파크에서 팬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으며, 홈 관중들은 타격이 약한 그에게 독특한 응원을 보냈다. 그가 타석에 들어설 때 경기장 한쪽 팬들은 "OOH!"를 외쳤고, 다른 쪽 팬들은 "REE-bay!"로 응답했다. 자이언츠 팬들은 나중에 호세의 사촌인 후안 우리베에게도 같은 응원을 했다.
우리베의 통산 성적은 다음과 같다.
2.1. 마이너 리그 시절
도미니카 공화국 산크리스토발에서 태어난 우리베는 1977년에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지만, 구단에서 마이너 리그 경기를 한 번도 뛰지 못한 채 곧 방출되었다. 그는 결국 1980년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했고, 4시즌 동안 팜 시스템에서 활약했다.
2.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84)
도미니카 공화국 산크리스토발에서 태어난 우리베는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지만, 구단에서 마이너 리그 경기를 한 번도 뛰지 못한 채 곧 방출되었다. 그는 결국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했고, 4시즌 동안 팜 시스템에서 활약한 후 9월에 콜업되었다. 카디널스에서 8경기 동안, 우리베는 .211의 타율과 3개의 타점, 4개의 득점을 기록했다.
2.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85-1992)
1985년 2월, 우리베는 데이비드 그린, 데이브 라포인트, 게리 라지치와 함께 잭 클라크를 상대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다. 이적하기 전, 그는 자신의 이름을 호세 곤잘레스 우리베에서 호세 우리베로 변경했는데, 그 이유는 "야구에는 곤잘레스가 너무 많아서!"라고 말했다. 그는 재치 있게 "추후 지명 선수", 때로는 로키 브리지스 코치의 말로 "궁극의 추후 지명 선수"라고 불렸다.
우리베는 8시즌 동안 자이언츠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으며, 1987년 내셔널 리그 서부 디비전 우승과 1989년 내셔널 리그 페넌트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89년 시즌에는 85개의 병살타로 리그 1위를 기록했다. 1987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 2회에는 만루 상황에서 2타점 적시타를 쳐 팀에게 4-3 리드를 안겨주었다. 이후 3루 도루에도 성공하며 팀의 6-3 승리와 함께 시리즈를 3-2로 앞서나가게 했지만, 아쉽게도 샌프란시스코는 최종 2경기를 모두 패했다. 그는 1988년에 그의 정신과 리더십을 기리는 윌리 맥 어워드를 수상했다.
1991년 시즌에 부상으로 고전한 우리베는 1992년에 로이스 클레이턴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통산 성적은 다음과 같다.
2.3.1. 팬들의 응원
우리베는 캔들스틱 파크에서 팬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선수였는데, 홈 관중들은 타격이 약한 편인 이 내야수에게 독특한 응원을 보냈다. 그가 타석에 들어설 때, 경기장 한쪽 팬들은 "OOH!"를 외쳤고, 다른 쪽 팬들은 "REE-bay!"로 응답했다. 자이언츠 팬들은 나중에 호세의 사촌인 후안 우리베에게도 같은 응원을 했다. 그는 또한 "결승타"라는 스탯이 공식 기록이었을 때 ESPN 해설자 크리스 버먼으로부터 "결승타" 호세 우리베라는 특이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4. 1990년 플리어 야구 카드 논란
1990년 호세 우리베의 플리어 야구 카드는 수년간 대량 생산된 야구 세트에서 흔한 카드로 여겨졌다. 그러나 2018년에 이 카드 중 일부가 희귀하다는 주장과 함께 이베이에서 수십만 달러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베이 판매 목록 데이터에 따르면 이 카드의 일부 사본이 엄청난 가격에 판매되었지만, 베켓 미디어에 따르면 해당 판매는 의심스럽다. 베켓은 이 카드에 희귀하거나 특이한 점이 전혀 없으며, 일부 경매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요구 가격은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5. 사망
우리베는 2006년 12월 8일 47세의 나이로, 고향인 도미니카 공화국 팔렌케 인근에서 오전 3시경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두 번째 부인 웬디 게레로와 4명의 자녀를 남겼으며, 전 메이저 리그 내야수 후안 우리베의 사촌이었다. 그의 첫 번째 부인 사라는 27세의 나이에 셋째 아이를 낳은 지 이틀 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6. 가족 관계
우리베는 첫 번째 부인 사라와 사이에 세 자녀를 두었으나, 사라는 셋째 아이를 출산한 지 이틀 만에 27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후 재혼한 두 번째 부인 웬디 게레로와는 네 자녀를 두었다. 우리베는 2006년 4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전 메이저 리그 내야수 후안 우리베의 사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