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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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양길은 장저우 출신의 학자이자 관료로, 44세에 진사에 급제했다. 가경제 시기 부패한 관리 화신을 비판하고 관료 기구 개혁을 촉구하다가 유배되었으나, 이후 사면되어 고향에서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민중의 고통 개선, 부패 개선을 호소하고, 사학, 지리학, 훈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었으며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홍양길은 인구 증가에 따른 사회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의 정책적 노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서로는 《동진강역지》, 《의견》 등이 있다.
홍양길은 금문 학문의 지지자였으며, 당대의 다른 많은 철학자들처럼 정치적 간언을 자신의 유교적 의무로 여겼다. 그는 인구 통제, 지리, 중국 고전, 정부 부패 등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인구 증가가 훌륭한 정부의 징표라는 일반적인 중국의 통념을 비판적으로 재평가했다.
2. 생애

홍양길은 장저우에서 태어나 44세에 진사에 합격하였다.[1] 19세기 초 가경제를 비판하기 전까지 작은 관직을 역임했다. 그는 부패한 관리인 화신을 제거하지 못하고, 그가 권력을 잡도록 허용한 관료 기구를 개혁하지 못한 점을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선의에서 비롯되었고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원래 참수형이 내려질 예정이었다. 이후 가경제에 의해 일리로 유배형으로 감형되었다.[1]
2. 1. 가경제 비판과 유배
洪良吉|홍양길중국어은 1790년 진사가 되었고, 한림원 편수, 국사관 편찬관, 귀주 학정을 역임했다. 1796년 중앙으로 소환되었으나, 상소가 가경제의 노여움을 사서 이리 지방으로 유배되었다. 1800년 사면된 후에는 향리에서 저술에 전념했다.
2. 2. 사면 이후
1800년 사면된 후 고향에서 저술에 전념했다.[1]
홍양길은 평생 민중의 고통 개선에 관심을 가졌으며, 부패 개선을 호소하고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미신을 배척한 것으로 유명하다.[1] 사학, 지리학, 훈고학에도 성과를 거두었으며,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1]
3. 사상
3. 1. 인구론
홍양길의 시대는 중국 역사상 인구가 가장 빠르게 팽창한 시기 중 하나였다. 신대륙 작물인 옥수수 등의 보급으로 중국 인구는 1651~1661년 사이 1억 명에서 1790년 3억 명으로 세 배나 증가했다. 인구 급증은 일련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야기했고, 만주족 관리들 사이에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1] 1791년, 건륭제는 조정 관리들에게 자원이 증가하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1] 2년 후, 홍양길은 자신의 문집인 《의언》(意言|의언중국어)의 26번째 논문인 《치평편》(''Zhi Ping Pian'')을 발표했다.[1]
《치평편》에서 홍양길은 생존 수단 증가와 인구 증가 사이의 긴장에 주목하며, 이 긴장이 재해, 기근, 역병으로 완화될 것이라고 썼다.[1]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구의 수를 말하자면... 백 년 전보다 20배나 많다... 어떤 사람들은 경작할 황무지가 있고 주택을 지을 공간이 충분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두 배나 세 배로 늘어날 수 있을 뿐, 기껏해야 다섯 배까지 증가할 수 있지만, 인구는 동시에 열 배에서 스무 배나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주택과 농지는 부족해지기 쉽고, 인구는 항상 과도한 경향을 보인다. 어떤 가구가 독점자가 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춥고 배고픔에 시달리고 심지어 여기저기서 죽어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늘은 어떻게 이 긴장에 대처하는가? 홍수, 가뭄, 역병은 하늘이 문제를 완화하는 수단이다.|중국어[1]
홍양길은 정부가 세금 조정, 식민지 개척 장려, 사회 안전망 강화와 같은 정책을 통해 문제를 중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1] 그러나 그는 그러한 내재된 구조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있어 인간 정책의 한계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1]
홍량길은 《치평편》에서 청나라의 급격한 인구 증가(1651~1661년 사이 약 1억 명에서 1785~1791년 사이 3억 명)에 대해 언급하며, 경작지 증가가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해 "토지는 항상 부족하고, 가구 수는 항상 넘쳐난다"라고 말했다. 당시 인구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의 혜안을 엿볼 수 있다.[1]
홍양길의 인구론은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1798년)보다 5년 앞선 1793년에 완성된 《치평편》에 나타나 있으며, 그 내용이 우연히도 일치한다.[1]
4. 저서
홍양길은 여러 권의 에세이, 산문, 시를 포함하여 20권이 넘는 책을 출판한 다작 작가였다. 철학 저작 외에도 홍양길은 역사 지리학 연구로 유명한 역사학자이기도 했다.[2]
참조
[1]
웹사이트
The Search for Modern China. 3d ed
http://dx.doi.org/10[...]
2023-11-17
[2]
웹인용
二十五史補編. 3 / 二十五史刊行委員會 編.
https://hflib.kr/#/s[...]
동북아역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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