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황후 (발해)
1. 개요
효의황후는 발해 문왕의 왕비로, 묘지석 발굴을 통해 존재가 알려졌다. 776년 문왕의 왕비가 사망했다는 《속일본기》 기록이 있으나, 이 인물이 효의황후인지는 불분명하다. 2004년~2005년 사이 룽터우산 고분군에서 발굴된 무덤 중 M12가 효의황후의 능으로 추정되며, 정혜공주와 정효공주의 어머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묘지석 등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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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문왕 -
대흥 (발해)
대흥은 발해 고왕 대조영 이후 713년부터 737년까지 사용된 연호로, 발해의 정치적 안정과 국제적 위상 강화, 당나라로부터의 공식적인 인정 및 그에 따른 간섭, 신라의 견제 속에서 발해의 독자적인 국가임을 천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
발해 문왕 -
정혜공주묘
정혜공주묘는 중국 지린성 둔화시 육정산 고분군에 위치한 발해 문왕의 둘째 딸 정혜공주의 무덤으로, 고구려 건축 양식을 계승한 돌방봉토무덤이며 묘비명을 통해 정혜공주가 정효공주의 언니임이 밝혀졌으나, 중국 정부의 소홀한 관리로 훼손되어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가 있다. -
8세기 한국 사람 -
연남산
연남산은 연개소문의 아들로, 639년에 태어나 701년에 사망했으며, 아들로 천광부를 두었다. -
8세기 한국 사람 -
김암
김암은 신라의 학자이자 관료, 군사 지도자로, 김유신의 후손이며 당나라 유학 후 음양학 연구와 저술, 여러 주의 태수 역임, 패강진두상 활동, 천문, 풍수지리, 군사 분야 업적, 일본 사신 파견 등의 활동을 했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발해의 제3대 국왕인 문왕의 아내로, 묘지석이 발굴되어 그 존재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문왕의 딸인 정혜공주와 정효공주의 어머니인지는 알 수 없다.
일본의 역사서인 《속일본기》에는 776년 문왕의 왕비가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기록 속의 왕비가 효의황후인지 또 다른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속일본기》의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2.1. 왕비 책봉과 활동
발해의 제3대 국왕 문왕의 왕비로, 묘지석이 발굴되어 그 존재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문왕의 딸인 정혜공주와 정효공주의 어머니인지는 알 수 없다.
일본의 역사서인 《속일본기》에는 776년 문왕의 왕비가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기록 속의 왕비가 효의황후인지 또 다른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十二月乙巳、渤海國、遣獻可大夫、司賓少令、開國男史都蒙等一百八十七人、來賀即位、兼告國母薨去。方到我岸、卒逢暴風、破柁絕帆、漂沒死者衆焉。所存唯四十六人。即安置越前國加賀郡、給其賑恤。일본어
2.2. 정혜공주와 정효공주의 어머니 여부
효의황후는 발해의 제3대 국왕 문왕의 아내로, 묘지석이 발굴되어 그 존재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문왕의 딸인 정혜공주와 정효공주의 어머니인지는 알 수 없다.
일본의 역사서인 《속일본기》에는 776년 문왕의 왕비가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기록 속의 왕비가 효의황후인지 또 다른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2.3. 《속일본기》 기록
《속일본기》에는 호키 7년(776년) 12월 22일에 문왕의 왕비가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기록 속 왕비가 효의황후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인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속일본기》의 해당 기록은 다음과 같다.
3. 무덤 발굴
2004년~2005년 사이 지린성 허룽시 룽터우산 고분군에서 발해 시대 무덤 14기가 발굴되었다. 중국 정부는 이 중 M12 무덤을 효의황후의 능이라고 밝혔다. 무덤은 대형 돌방무덤 형태이다. 이 근처에서는 1949년 9월 정혜공주묘가, 1980년 10월에는 정효공주묘가 발굴되었다. 정혜공주와 정효공주는 문왕의 딸들이지만, 효의황후와의 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 정부는 묘지석 등 관련 유물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는 효의황후가 문왕의 황후이며 시호가 '효의(孝懿)'라는 것 외에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3.1. 룽터우산 고분군 발굴
2004년~2005년 사이 지린성 허룽시 룽터우산 고분군에서 발해 시대의 무덤 14기가 발굴되었다. 중국 정부는 룽터우산 고분군에서 발굴된 14기 중 M12와 M3으로 명명한 두 기의 무덤이 각각 효의황후와 간왕의 황후인 순목황후의 능이라고 밝혔다. 무덤은 대형 돌방무덤의 형태이다. 이 근방에서는 1949년 9월 정혜공주묘가 발굴되었고 1980년 10월에는 정효공주묘가 발굴되었다. 정혜공주와 정효공주는 각각 문왕의 둘째 딸과 넷째 딸이며, 이들이 효의황후의 자녀인지는 알 수 없다.
중국 정부는 현재까지 묘지석을 비롯하여 관련 유물이나 비문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는 2009년 학술지 〈고고(考古)〉에서 순목황후가 건흥 12년(830년)에 사망했고, 성이 태씨(泰氏)라고 밝힌 것과 달리, 효의황후에 관해서는 문왕의 황후이며 시호가 '효의(孝懿)'라는 것 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3.2. 무덤의 형태
지린성 허룽시 룽터우산 고분군에서 2004년~2005년 사이 발해 시대의 무덤 14기가 발굴되었다. 중국 정부는 룽터우산 고분군에서 발굴된 14기 중 M12와 M3으로 명명한 두 기의 무덤이 각각 효의황후와 간왕의 황후인 순목황후의 능이라고 밝혔다. 무덤은 대형 돌방무덤의 형태이다. 이 근방에서는 1949년 9월 정혜공주묘가, 1980년 10월에는 정효공주묘가 발굴되었다. 정혜공주와 정효공주는 각각 문왕의 둘째 딸과 넷째 딸이며, 이들이 효의황후의 자녀인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