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조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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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효조슈는 가마쿠라 막부와 무로마치 막부에서 정치 기구로 운영되었다. 가마쿠라 막부에서는 1225년 싯켄 호조 야스토키가 유력 고케닌들로 구성한 정치 합의체로 시작되었으며, 싯켄이 의장을 맡고 호조 씨가 주도했다. 후기에 호조 씨가 권력을 독점하면서 유명무실해졌고, 무로마치 막부에서는 형식적인 기구로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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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효조슈는 1199년 가마쿠라 막부에서 십삼인의 합의제로 시작되었다. 1225년 호조 야스토키가 고케닌들을 모아 만든 정치적 합의체가 효조슈의 원형이 되었으며, 싯켄이 의장을 맡고 호조 씨가 이 지위를 독점했다. 그러나 가마쿠라 막부 후기에 도쿠소 중심으로 권력이 넘어가면서 효조슈는 유명무실해졌다.[1]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도 효조슈는 존재했지만 실권은 없었고, 아시카가 씨 일족의 명예직처럼 여겨졌다. 기라 씨나 하타케야마 씨 같은 쇼군 가문과 가까운 집안이 효조슈를 맡았고, 이들 외의 효조슈는 '출세 효조슈'라고 불렸다.[1]
2. 1. 가마쿠라 막부
호조(北條) 씨를 비롯한 가마쿠라 막부의 창업 공신들인 고케닌(御家人)들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2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이에(源頼家)의 권력을 제한하고 실권을 차지하기 위해 쇼지(正治) 원년(1199년) '십삼인의 합의제'(十三人の合議制)를 설치한 것이 시초다.'효조슈'라는 정식 기구 명칭이 된 것은 1225년 고셋케로부터 양자로써 제4대 세이이타이쇼군 자리에 앉은 구조 요리쓰네(九條頼経)를 보좌하기 위해 싯켄 호조 야스토키가 유력 고케닌 집안 사람들로 구성된 정치적 합의체를 운영한 것이 그 원형이 되었다.
효죠슈가 설치됐던 해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부인 호조 마사코와 오오에노 히로모토가 사망한 해이기도 하였고, 가마쿠라 막부의 창업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전체적으로 정계 은퇴를 하는 시점이기도 했다.[1]
가마쿠라 막부 공신 2세대로 구성된 새로운 정치적 협의체제인 '효조슈'는 싯켄(執権)을 그 의장으로 하였으며, 가마쿠라 막부 탄생에 공이 컸던 호조 씨가 내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성립 시점에서의 석차 수석은, 막부의 원훈인 나카하라 지카요시·오오에노 히로모토의 친족으로, 쇼군 요리쓰네의 시독이었던 나카하라 모로카즈가 맡았다. 이후 석차 상위도 호조 씨가 독점하게 되었지만, 모로카즈는 비 호조 씨로서는 최고의 석차를 유지했다.
쇼군은 효조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결정 사항을 열람하기만 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가마쿠라 막부는 가마쿠라 도노(쇼군)와 개별 고케닌의 주종 관계에 의해 성립되어 있다는 사정이 있다. 호조 씨도 가마쿠라 도노의 가신 중 하나에 불과하며, 수많은 고케닌의 으뜸일지라도 주군이 아니었다. 따라서 가마쿠라 도노가 명목상, 형식상의 존재가 되었을 때, 대신 막부를 주재하는 것이 유력 고케닌의 합의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를 통해, 싯켄의 지위를 독점하는 호조 씨의 실질적인 권력은 점차 증대해 갔고, 막부의 최고 권력자는 막부의 공적 지위인 싯켄이 아닌, 호조 일문의 최상위로, 본래는 호조 일족 내에서의 지위에 불과한 도쿠소로 옮겨 가게 된다. 가마쿠라 시대 후기에는, 도쿠소를 중심으로 한 요리아이슈(요리아이)가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하여, 그들에게 선의권을 빼앗긴 효조슈는 형해화되어 간다.
2. 2. 무로마치 막부
1225년 고셋케에서 양자로써 제4대 세이이타이쇼군 자리에 앉은 구조 요리쓰네를 보좌하기 위해 싯켄 호조 야스토키가 유력 고케닌 집안 사람들로 구성된 정치적 합의체인 '효조슈'는 싯켄(집권)을 그 의장으로 하였으며, 가마쿠라 막부 탄생에 공이 컸던 호조 씨가 내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후기에 들어서자 호조 씨 본종가인 도쿠소가 막부 기관인 효조슈의 합의 과정을 무시하고 권력을 독점하기 시작했고, 효조슈는 유명무실해졌다.[1]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한 뒤, 새로 들어선 무로마치 막부에도 효조슈는 막부의 정치 기관으로 존재는 했으나 실질적인 힘은 없었고, 아시카가 일족에 대한 명예직의 하나로 붙여지는 경향이 강하였으며, 정치 기구로서 효조슈가 아니라 관직 이름으로서 효조슈를 내려줬으므로 따로 싯켄은 존재하지 않았다.[1]
관직으로써의 효조슈는 아시카가 씨의 친족인 기라 씨(吉良氏)나 하타케야마 씨 같이 아시카가 일족 중에서도 세이이타이쇼군과 가장 가까웠던 두 집안 가운데 하나가 맡았으며, 이 두 집안 출신이 아닌 효죠슈를 따로 '출세 효조슈'로 불러 구별하였다.[1]
3. 가마쿠라 막부 시대 효조슈 명단
다음은 가마쿠라 막부 시대 효조슈 명단이다.
(주: 연도는 생몰년이 아닌 효조슈 재임 기간, 명단 이름은 싯켄 포함 효조슈 전체 명단)
4. 무로마치 막부 시대 효조슈
무로마치 막부 시대의 효조슈는 쇼군 직할 기관인 도코로 부교의 상위 기관으로, 내담중(内談衆)이라고도 불렸다. 시키 씨는 기라 씨이며, 그 외에도 셋쓰 씨, 니카이도 씨, 하타노 씨, 오타 씨, 마치노 씨 등이 효조슈를 맡았다.
4. 1. 시키 효조슈
시키는 기라씨이다.4. 2. 기타 효조슈
- 셋쓰 씨
- 니카이도 씨
- 하타노 씨
- 오타 씨
- 마치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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