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창 (전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후창(전한)은 하후시창에게 사사하고 맹경의 문하에서 여구경과 함께 《예기》를 익혔으며, 《시경》과 《예기》에 통달하여 박사가 된 인물이다. 소부를 역임했으며, 익봉, 소망지, 광형, 문인통한, 대덕, 대성, 경보 등을 제자로 두었다. 그는 《후씨곡대기》를 저술하고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본시 2년(기원전 72년)에 소부에 이르렀다.

후창 (전한)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전한의 유학자 - 육가
    육가는 전한 초기의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유방의 천하통일에 기여하고 혜제와 여태후 시대에 은퇴 후에도 활약했으며, 문제 시대에는 남월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공헌했고, 『신어』를 통해 무위 사상을 유가적으로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전한의 유학자 - 공승
    공승은 전한 말기 왕망의 찬탈에 저항한 인물로, 진옹생에게 사사받고 공사와 함께 명성을 떨쳤으며, 애제의 신임을 받아 간대부와 우부풍을 지냈으나, 왕망 집권 후 그의 제안을 거부하고 굶어 죽음으로써 충절을 지킨 인물이다.
  • 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하후시창과 맹경 밑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특히 《시경》과 《예기》에 능통하였다. 박사소부 관직을 역임하였고, 익봉, 소망지, 광형, 문인통한, 대덕, 대성, 경보 등 여러 제자를 길러냈다.

2.1. 학문적 업적

처음에는 하후시창에게 사사하였으며, 맹경의 문하에서는 여구경과 함께 《예기》를 익혔다. 스승 하후시창은 오경 전반에 능통했고, 맹경은 예경(禮經)에 밝았다. 후창은 이들의 가르침을 받아 《시경》과 《예기》에 통달하였다. 특히 예(禮)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수만 자에 달하는 논의를 담은 『후씨곡대기』(后氏曲臺記)를 저술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성취를 인정받아 박사가 되었으며, 본시 2년(기원전 72년)에는 소부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후창은 많은 제자를 길러냈는데, 주요 제자들은 다음과 같다.
* 《시경》 중 제시(齊詩) 전수: 익봉, 소망지, 광형
* 『후씨곡대기』 전수: 문인통한, 대덕, 대성, 경보

2.2. 제자 양성

하후시창에게서 오경 전반을 배웠고, 맹경의 문하에서는 여구경과 함께 《예기》를 익혔다. 이를 통해 《시경》과 《예기》에 통달하였으며, 특히 예(禮)에 대해서는 수만 자에 달하는 논의를 담은 『후씨곡대기』(后氏曲臺記)를 저술하였다. 학문적 성취를 인정받아 박사(博士)가 되었고, 본시 2년(기원전 72년)에는 소부의 자리에 올랐다.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주요 제자와 가르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좌우로 밀어서 보기
제자가르친 내용
익봉, 소망지, 광형《시경》 중 제시(齊詩)
문인통한, 대덕, 대성, 경보『후씨곡대기』

2.3. 관직 경력

박사 관직을 지냈다. 본시 2년(기원전 72년)에 사악성의 뒤를 이어 소부로 임명되었고, 기원전 71년까지 재임하다 으로 교체되었다.

3. 참고 문헌

* 반고,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권88 유림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