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룽그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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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흐룽그니르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으로, '싸움꾼' 또는 '덩치 큰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산문 에다》에 따르면, 오딘과의 말 경주에서 아스가르드까지 들어온 후 술에 취해 신들을 모욕하다 토르와 결투를 벌였다. 토르의 망치 묠니르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 그의 머리에 박힌 숫돌 조각은 무녀 글로아의 주술로 제거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흐룽그니르 이야기는 《고 에다》와 스칼드 시에도 언급되며, 토르의 케닝(칭호)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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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룽그니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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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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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이름
흐룽그니르(Hrungnir)라는 고대 노르드어 이름은 '싸움꾼'[1] 또는 '덩치 큰 사람, 강한 남자', '소란 피우는 자'로 번역된다.[2]3. 신화 기록
고 에다의 〈하르바르드의 노래〉 제14절에는 토르가 흐룽그니르를 쓰러뜨린 후 그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난 적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7] 〈로키의 말다툼〉 제61절에서 토르는 묠니르를 "흐룽그니르 살해자"라고 부른다.[9] 〈시구르드리파의 말〉 제15절에는 "룽그니르의 수레 밑에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일부 연구자들은 이를 흐룽그니르와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한다.[8]
9세기 스칼드 시인 브라기 보다손은 흐룽그니르를 "스루드(토르의 딸)의 도둑"이라고 칭하고, 그의 방패를 "스루드의 도둑의 발바닥 잎"이라고 표현했는데,[12] 이는 흐룽그니르가 스루드를 납치하려 했음을 암시한다. 10세기 스칼드 시인 흐빈의 푤돌프는 《하우스롱》에서 토르와 흐룽그니르의 결투를 묘사하며, 이 싸움이 우주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시사한다. "땅은 낮아졌고"(지구) "우박으로 짓눌렸고" "모든 매의 성소"(하늘)는 불타고 있으며, "스볼니르의 과부"(오딘의 배우자, 요르드(지구))는 거의 찢어졌다.[4] 《코르마크의 사가》에서는 방패를 "거인 룽그니르의 발판"이라고 표현한다.[13]
〈그로티의 노래〉 제9절에는 흐룽그니르 자신과 그의 아버지도 강했다는 내용이 있다.[6]
3. 1. 산문 에다
스노리 스투를라손이 13세기에 저술한 《산문 에다》 제2부 《시어(Skáldskaparmál)》에는 흐룽그니르와 토르의 결투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4]흐룽그니르는 오딘의 말 슬레이프니르와 자신의 말 글라파크시(금빛 갈기)로 경주를 벌이다 발할라 궁에 들어가게 된다. 오딘은 그를 손님으로 대접했지만, 흐룽그니르는 프레이야의 술에 취해 폭언을 했다. 이에 토르가 불려와 격노하여 흐룽그니르와 결투를 벌이게 된다. 흐룽그니르는 토르에게 비무장인 자신을 죽이는 것은 비겁하다고 하며, 후일의 결투를 약속한다. 결투 장소는 아스가르드와 요툰헤임의 경계인 그리요투나가르다르(Grjóttúnagarðarnon)였다.
요툰헤임의 거인들은 흐룽그니르를 위해 점토로 거대한 인간 모클칼비를 만들었지만, 모클칼비는 토르를 두려워했다. 흐룽그니르는 머리가 돌, 심장은 삼각형 숫돌로 만들어졌으며, 숫돌 외에 방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토르의 하인 샤르비의 말을 믿고 방패를 땅에 놓고 그 위에 섰다.
토르가 묠니르 망치를, 흐룽그니르가 숫돌을 서로에게 던지자, 망치는 공중에서 숫돌을 파괴하고 흐룽그니르의 두개골을 부쉈다. 흐룽그니르의 다리에 깔린 토르는 태어난 지 3일 된 아들 마그니의 도움으로 빠져나왔다. 토르는 마그니를 칭찬하고 글라파크시를 상으로 주었다.
이때 파괴된 숫돌 조각이 토르의 머리에 박혀, 무녀 글로아가 조각을 제거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세한 내용은 토르 항목 참조) 또한, 이때 파괴된 흐룽그니르의 숫돌 조각은 각지에 흩어져 숫돌 채석장이 되었다고 한다.
3. 2. 고 에다
《고 에다》의 〈그로티의 노래〉 제9절에는 흐룽그니르 자신과 그의 아버지도 강했다는 내용이 있다.[6] 같은 책의 〈하르바르드의 노래〉 제14절에는 토르가 흐룽그니르를 쓰러뜨린 후 그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난 적이 없다는 취지의 기술이 있다.[7] 《고 에다》의 〈시구르드리파의 말〉 제15절에는 "'''룽그니르'''의 수레 밑에서"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를 흐룽그니르와 동일 인물로 보는 연구자도 있다.[8]《고 에다》의 〈로키의 말다툼〉 제61절에서 토르는 묠니르를 "흐룽그니르 살해자"라고 부른다.[9]
3. 3. 스칼드 시가
9세기 스칼드 시인 브라기 보다손은 흐룽그니르를 "스루드(토르의 딸)의 도둑"이라고 칭하며,[12] 그의 방패를 "스루드의 도둑의 발바닥 잎"이라고 표현했다.[12] 이는 흐룽그니르가 스루드를 납치하려 했음을 암시한다.10세기 스칼드 시인 흐빈의 푈돌프는 《하우스롱》에서 토르와 흐룽그니르의 결투를 묘사하며, 이 싸움이 우주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시사한다. "땅은 낮아졌고"(지구) "우박으로 짓눌렸고" "모든 매의 성소"(하늘)는 불타고 있으며, "스볼니르의 과부"(오딘의 배우자, 요르드(지구))는 거의 찢어졌다.[4]
《코르마크의 사가》에서는 방패를 "거인 룽그니르의 발판"이라고 표현한다.[13]
4. 해석 및 이론
학자 존 린도우는 하우스트롱그에 묘사된 토르와 흐룽그니르의 결투가 우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해석한다.[1] 됴돌프가 ''하우스트롱그''에서 언급하지 않은 결투의 동기는 브라기의 케닝('트루드의 도둑의 발바닥 잎[방패]')을 통해 토르의 딸 트루드의 납치 미수 사건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2]
조르주 뒤메질은 이 이야기가 점토로 만들어진 괴물을 죽이는 과정에서 토르에 의한 푈피의 입문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3]
참조
[1]
서적
『エッダ 古代北欧歌謡集』などにみられる表記
[2]
서적
『北欧の神話』にみられる表記
[3]
서적
『北欧神話と伝説』
新潮社
1971
[4]
서적
『「詩語法」訳注』24-27頁、『エッダ 古代北欧歌謡集』74頁
[5]
서적
『北欧の神話』63頁
[6]
서적
『エッダ 古代北欧歌謡集』213頁
[7]
서적
『エッダ 古代北欧歌謡集』70頁
[8]
서적
『エッダ 古代北欧歌謡集』145、148頁
[9]
서적
『エッダ 古代北欧歌謡集』86頁
[10]
서적
『「詩語法」訳注』17頁
[11]
서적
『「詩語法」訳注』19頁
[12]
서적
『「詩語法」訳注』71頁
[13]
서적
『スカルド詩人のサガ コルマクのサガ/ハルフレズのサガ』
学校法人東海大学出版会
2005
[14]
서적
Orchard (1997:91)
1997
[15]
서적
The Encyclopedia of Mythology
Hermes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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