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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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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레이야는 고대 노르드 신화의 사랑, 미, 풍요, 전쟁, 죽음의 여신으로, '여인, 여주인'을 의미한다. 그녀는 바니르 신족 출신으로, 아시르 신족과의 전쟁 이후 아스가르드로 이주하여 세이드를 전파했다. 프레이야는 브리싱가멘 목걸이, 고양이가 끄는 마차, 멧돼지 힐디스비니, 매의 깃털 옷 등을 소유하며, 폴크방에서 전사자들의 절반을 오딘과 나눈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에서 숭배받았으며, 현대에는 아사트루 신봉자들에게 다산, 풍요, 아름다움의 여신으로 존경받고, 대중문화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2. 어원 및 다른 이름

프레이야는 '여주인'을 의미하며, 게르만 조어 *fraw(j)ōn(en)에서 유래했다. frūaosx, frouwagoh와 어원 동족어이다.[1] 프레이야라는 이름은 원래 다른 신의 이름을 대체하기 위해 사용된 형용 어구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2]

고대 노르드어 자료에는 프레이야를 부르는 다른 이름들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이름 (고대 노르드어)의미출전참고
게프 (Gef)주는 자[3]길피의 속임수, 나프나줄루르게프는 "번영이나 행복을 주는 자"를 의미하며, 여신 게피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게프-욘의 어근 게프-게프의 어근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된다. 학자 리처드 노스는 게르만 여신 가비아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고 이론화한다.
회른 (Hörn)아마[4]길피의 속임수, 나프나줄루르스웨덴 지명 예르노산드, 예르네비에 나타난다. 나프나줄루르에서 트롤 여성의 이름으로도 나타난다.
마르돌 (Mardöll)바다를 밝게 하는 자 또는 바다를 솟아오르게 하는 자[5]길피의 속임수, 나프나줄루르헤임달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스칼프 (Skjálf)흔드는 자[6]나프나줄루르잉글링가 사가에서 핀란드 왕의 딸의 이름이기도 하다.
시르 (Sýr)암퇘지[7]길피의 속임수, 스칼드샤파르말, 나프나줄루르돼지는 바니르와 제사 행위(블로트)의 중요한 상징이었다.
트뢰옹 (Thröng)군중[8]스칼드샤파르말
트룽바 (Thrungva)군중[9]나프나줄루르
발프레이야 (Valfreyja)죽은 자의 프레이야, 죽은 자의 여인니알의 사가니알의 사가에 포함된 시의 케이닝에서 나타난다.
바나디스 (Vanadís)바니르의 디스[10]스칼드샤파르말화학 원소 바나듐은 프레이야의 이름에서 따왔다.


2. 1. 어원

'프레이야'라는 이름은 고대 노르드어로 '여인, 여주인'을 의미한다.[1] 원시 게르만어 여성 명사 *''frawjōn'' ('여인, 여주인')에서 유래되었으며, 동족어로는 고대 작센어 ''frūa'' ('여인, 여주인') 또는 고대 고지 독일어 frouwagoh ('여인'; cf. 현대 독일어 Fraude)가 있다. ''프레이야''는 또한 고대 노르드어로 '주인'을 의미하는 신 ''프레이르''의 이름과 어원적으로 가깝다. 따라서 신명 ''프레이야''는 현재 증명되지 않은 개인 이름을 대체하는 기원의 칭호로 여겨진다.

프레이야의 머리카락—''Polygala vulgaris''—''Polygala''속의 한 종


몇몇 식물은 프레이야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데, 예를 들어 ''프레이야의 눈물''과 ''프레이야의 머리카락''(Polygala vulgaris)이 있다. 하지만 기독교화 과정에서 여신의 이름은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기독교 이전 시대에는 오리온자리 별자리가 프리그의 물레 또는 프레이야의 물레라고 불렸다(스웨덴어 ''Frejerock'').

노르웨이스웨덴의 지명은 여신에 대한 숭배를 반영하는데, 노르웨이 지명 Frøihov(원래 *''Freyjuhof'', 문자 그대로 "프레이야의 호프")와 스웨덴 지명 Frövi(*''Freyjuvé'', 문자 그대로 "프레이야의 베")가 있다.[9] 노르웨이 지명에 대한 조사에서, M. 올센은 ''프레이야''와 결합된 지명이 최소 20~30개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이 지명 중 3개는 *''Freyjuhof''('프레이야의 호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여신의 이름은 '초원'(예: ''-þveit'', -''land'') 및 유사한 지형을 나타내는 단어와 자주 결합된다. 이러한 지명은 서해안에서 가장 흔하게 확인되지만, 남동부에서도 높은 빈도로 발견된다.

''프레이야''가 포함된 지명은 스웨덴에서 더욱 다양하고 많으며,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특히 업랜드에서는 여러 개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일부는 위에 언급된 ''*Freyjuvé''와 *''Freyjulundr''('프레이야의 성스러운 숲')에서 유래하며, 이는 프레이야에 대한 공공 예배를 나타내는 지명이다. 다양한 지명(예: ''Frøal''과 ''Fröale'')은 고트어 ''alhs''와 고대 영어 ''ealh''("사원")과 관련된 요소가 포함된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이러한 지명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또한, ''Frejya''는 들판, 초원, 호수, 바위와 같은 자연물과 같은 다양한 지리적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와 결합된 요소로 나타난다.

프레이야의 이름 ''Hörn''은 스웨덴 지명 Härnevi와 Järnevi에 나타나며, 재구성된 고대 노르드어 지명 ''*Hörnar-vé''(의미: "Hörn의 베")에서 유래한다.[10]

:자세한 내용은 "프레이야의 명칭 목록"을 참조.

프레이야라는 이름은 "부인"이라는 의미이며, 최종적으로는 게르만 조어의 *fraw(j)ōn()에서 유래한다. 프레이야는 고대 작센어에서 "부인, 여주인"을 의미하는 frūa 또는 (현대 독일어의 "부인"을 의미하는 Frau에 대응하는) 고대 고지 독일어의 frouwa와 어원 동족어이다. 프레이야라는 신의 이름은, 오늘날에는 더 이상 증명할 수 없는 신의 개인명을 대체하기 위해 사용된 형용 어구에서 기원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체의 결과, 원래 이름은 완전히 금기가 되었거나, 다른 이미 알려진 여신에게 옮겨지거나, 하위에 놓이는 등의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2. 2. 다른 이름

프레이야는 '여주인'을 의미하며, 게르만 조어 *fraw(j)ōn에서 유래했다. frūaosx, frouwagoh와 어원동족어이다.[2] 프레이야라는 이름은 원래 다른 신의 이름을 대체하기 위해 사용된 형용어구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3]

고대 노르드어 자료에는 프레이야를 부르는 다른 이름들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이름 (고대 노르드어)의미출전
게프 (Gef)주는 자[4]길피의 속임수, 나프나줄루르
회른 (Hörn)아마의[5]길피의 속임수, 나프나줄루르
마르돌 (Mardöll)바다를 밝게 하는 자 또는 바다를 솟아오르게 하는 자[6]길피의 속임수, 나프나줄루르
스칼프 (Skjálf)흔드는 자[7]나프나줄루르
시르 (Sýr)암퇘지[8]길피의 속임수, 스칼드샤파르말, 나프나줄루르
트뢰옹 (Thröng)군중[9]스칼드샤파르말
트룽바 (Thrungva)군중[10]나프나줄루르
발프레이야 (Valfreyja)죽은 자의 프레이야, 죽은 자의 여인니알의 사가
바나디스 (Vanadís)바니르의 디스[11]스칼드샤파르말


3. 특징 및 상징

프레이야는 사랑, 아름다움, 풍요, 마법, 그리고 전쟁과 죽음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다양한 상징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프레이야는 자신의 거처인 폴크방에 넓은 방 세스룸니르를 가지고 있으며, 그곳에서 전사자들을 선택한다고 전해진다.[35][36] 이동 수단으로는 두 마리의 거대한 고양이가 끄는 마차를 사용하며,[36][38] 힐디스비니라는 멧돼지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는데, 이는 애인인 오타르가 변신한 모습이라고도 한다.[39] 돼지는 다산하여 풍요의 여신인 프레이야의 성수(聖獸)로 여겨진다.

스웨덴 국립 고고학 박물관(Stockholm)에 전시된 Hagebyhöga에서 발견된 펜던트


프레이야는 브리싱가멘(고대 노르드어: Brísingamen)이라는 아름다운 황금 목걸이를 소유하고 있다.[37] 이 목걸이는 외스테르예틀란드(Östergötland)의 Hagebyhöga에서 발견된 여사제 무덤에서 출토된 은 펜던트에도 묘사되어 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 펜던트를 프레이야와 브리싱가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11]

프레이야는 매의 깃털로 만들어진 망토를 가지고 있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 로키는 이 망토를 빌려 요툰헤임으로 날아가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되찾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1][2] 또한 세이드라는 마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속였으며,[31] 오딘에게 가르쳤다고 한다.[50]

3. 1. 폴크방과 세스룸니르

프레이야는 자신의 거처인 폴크방에 넓은 방 세스룸니르를 가지고 있으며, 그곳에서 전사자를 선택한다고 전해진다.[35][36]

3. 2. 고양이와 멧돼지

프레이야는 두 마리의 거대한 고양이가 끄는 마차를 이동 수단으로 사용한다.[36][38] 이 고양이들의 이름은 베이글과 트리에글이며, 고대 노르드어로 각각 꿀과 호박을 의미하지만, 다이애나 루실 팩슨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창작이다. 프레이야는 힐디스비니라는 멧돼지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타고 이동하기도 하는데, 애인인 오타르가 변신한 모습이라고도 한다.[39]

프레이야는 자신의 멧돼지 힐디스비니 위에 앉아 로렌츠 프뢸리히의 삽화(1895)에 등장하는 힌들라를 방문한다.


프레이야는 멧돼지 힐디스비니에게 젖은 채 로렌츠 프뢸리히의 삽화(1895)에서 요툰에게 손짓한다.


''힌들랴의 시''에서 프레이야는 자신의 충실한 하인 오타르가 자신의 상속을 주장할 수 있도록 그의 조상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을 돕는다. 프레이야는 오타르를 멧돼지 힐디스비니로 변신시키고, 아첨과 불로 죽이겠다는 위협을 통해 요툰 힌들라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얻어낸다. 프레이야는 시 전체에서 오타르가 회르그(돌로 만든 제단)를 건설하고 자주 블로트(희생)를 바친 것을 칭찬한다.

''산문 에다''의 ''길피의 속임수'' 24장에서 하이는 프레이야에게 세스룸니르라는 크고 아름다운 홀이 있으며, 프레이야가 여행할 때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끄는 전차를 타고 다닌다고 설명한다. 49장에서는 발드르의 장례식에 프레이야가 고양이 전차를 몰고 참석했다고 묘사한다.

''시어법'' 20장에서는 프레이야를 지칭하는 시적 표현으로 "쓰러진 자와 세스룸니르 및 고양이의 소유자"를 제시한다.

돼지는 다산인 것에서 유래하여 풍요의 여신인 프레이야의 성수(聖獸)로 여겨진다.

3. 3. 브리싱가멘

프레이야와 로키말다툼은 로렌츠 프뢸리히의 삽화(1895)에 묘사되어 있다.


프레이야의 고양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신 토르는 엘머 보이드 스미스의 그림 ''아, 얼마나 사랑스러운 처녀인가!''(1902)에서 불행하게도 프레이야로 변장했다.


닐스 블로메르의 ''헤임달이 프레이야에게 브리싱가멘 목걸이를 돌려준다''(1846)


'''브리싱가멘'''(고대 노르드어: Brísingamen)은 프레이야 여신의 목걸이이다.[37] '''브리징가멘'''[26]이라고도 불리며, 신마저 매료시키는 황금(혹은 호박) 목걸이이다.

''트림의 시''에서 토르는 자신의 망치 묠니르가 사라진 것을 알고 로키와 함께 프레이야를 찾아간다. 토르는 프레이야에게 깃털 망토를 빌려달라고 부탁하고, 프레이야는 이를 승낙한다.







로키는 깃털 망토를 이용해 요툰헤임으로 날아가 트림을 만난다. 트림은 묠니르를 숨겨두었고 프레이야를 아내로 맞이해야만 돌려주겠다고 한다. 로키는 돌아와 토르에게 이 사실을 전한다.[15]

토르와 로키는 프레이야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프레이야는 분노하여 브리싱가멘 목걸이가 떨어질 정도였다.







''길피의 속임수'' 29장에서 하이는 프리그 다음으로 프레이야가 서열이 높으며 브리싱가멘을 소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18]

''시어법'' 8장에서는 헤임달을 "로키의 적, 프레이야의 목걸이를 되찾은 자"라고 칭하는데, 이는 헤임달이 로키로부터 브리싱가멘을 되찾는 신화를 암시한다.[19] 20장에서는 프레이야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브리싱가멘의 소유자가 사용된다.[20]

외스테르예틀란드(Östergötland)의 Hagebyhöga에서 발견된 여사제 무덤에는 목걸이를 두른 여성을 묘사한 은 펜던트가 있었다. 이 목걸이는 철기 시대 귀부인들만 착용했으며, 일부 학자들은 이를 브리싱가멘으로 해석하고 펜던트 자체를 프레이야로 보기도 한다.[11]

3. 4. 매의 깃털 옷

프레이야는 로키의 말다툼에서 로키가 프레이야의 깃털 망토를 빌려 요툰 트림을 속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토르가 망치 묠니르를 잃어버리자 프레이야에게 깃털 망토를 빌려달라고 부탁했고, 프레이야는 "그것은 당신의 것이오, 비록 밝은 은이라도, 그리고 나는 그것을 주겠소, 비록 금이라도."라며 승낙했다.[1] 로키는 이 망토를 이용해 요툰헤임으로 날아가 트림이 묠니르를 숨겼다는 사실을 알아냈다.[2]

''시어법''에서 요툰 토지에게 납치된 이둔을 구출하기 위해 로키는 프레이야에게 "매 모양"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프레이야는 이를 허락했고, 로키는 이 "매 모양"을 이용해 이둔을 성공적으로 되찾아온다.[3]

3. 5. 세이드 마법

프레이야는 세이드라는 마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속였으며,[31] 오딘에게 가르쳤다고 한다.[50] 세이드는 사람의 영혼을 조종하고, 영을 불러 예언을 받거나 자신의 육체에서 영혼을 분리하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을 알 수 있게 하는 마법이다. 세이드 사용자는 여성으로 여겨졌으며, 남성이 사용하는 것은 불쾌하게 여겨졌다. (예를 들어, ''로키의 말다툼''에서 로키가 오딘의 세이드 사용을 여성스럽다고 비난한다.)

4. 관련 신화 및 전설

프레이야는 시의 에다의 여러 시에서 언급되거나 등장한다.


  • '''볼룬스파''': 프레이야는 "오드의 소녀"로 칭해지며, 남편 오드르의 아내로 언급된다. 이름 없는 건축가(후에 요툰으로 밝혀져 토르에게 살해당함)에게 약속되었던 이야기가 나온다.[43]
  • '''그림니르의 말''': 오딘(그림니르로 변장)은 프레이야가 매일 그녀의 홀 폴크방에서 죽은 자들의 절반에게 자리를 할당하고, 오딘이 나머지 절반을 소유한다고 말한다.[43]
  • '''로키의 말다툼''': 로키는 프레이야를 포함한 거의 모든 여성에게 난잡하거나 불성실하다고 비난하며 프레이야와 격렬한 말다툼을 벌인다. 프레이야는 로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하며, 신들과 여신들이 그에게 분노하여 패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로키는 프레이야를 악의적인 마녀라고 부르며, 그녀가 오빠 위에 올라타 있던 상황을 언급하며 조롱한다. 뇨르드르가 끼어들어 상황을 중재한다.[43]

  • '''트림의 시''': 로키는 프레이야의 깃털 망토를 빌리고, 토르는 프레이야로 변장하여 요툰 트림을 속인다. (자세한 내용은 #묠니르 도난 사건 참고)
  • '''오드룬의 탄식''': 오드룬은 보르그니가 쌍둥이를 낳도록 돕고, 보르그니는 바에티르, 프리그, 프레이야 및 기타 신들에게 감사를 표한다.[43]
  • '''힌들랴의 시''': 프레이야는 자신의 충실한 하인 오타르가 조상의 정보를 찾도록 돕는다. 프레이야는 오타르를 멧돼지 힐디스비니로 바꾸고, 요툰 힌들라에게서 정보를 얻어낸다. 프레이야는 오타르가 회르그(돌 제단)를 건설하고 블로트(희생)를 바쳤다고 칭찬한다.[43]


프레이야는 ''에길의 사가'', ''냘스의 사가'', ''할프 사가 오크 할프스레카'', ''쇠를라 사트르''에서도 언급된다.

  • '''에길의 사가''': 에길 스칼라그림손이 음식을 거부하자, 그의 딸 토르게르는 자신도 굶어 죽어 프레이야를 만날 것이라고 말한다.[43]
  • '''할프 사가 오크 할프스레카''': 알레크 왕의 아내 시그니는 프레이야에게 기도하여 맥주 경연 대회에서 승리한다.[43]


''난쟁이의 동굴 속의 프레이야'' (1891)

  • '''쇠를라 사트르''': 프레이야는 오딘의 첩이었고, 네 난쟁이에게 성관계를 제공하고 황금 목걸이를 얻었다. 로키가 이 사실을 오딘에게 알리고, 오딘은 로키에게 목걸이를 훔치게 한다. 프레이야는 오딘에게 목걸이를 돌려달라 요구하지만, 오딘은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만 돌려주겠다고 한다.[43]


학자들은 프레이야와 폴크방발키리와 관련 있다고 본다. 브리트-마리 내스트룀은 프레이야가 전사자의 절반을 받는다는 점을 들어 폴크방을 "전사의 들판"으로 해석하고, 세스룸니르가 발할라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추정한다. 그녀는 프레이야가 전쟁 여신이며, 발키리로서도 등장한다고 본다.[43] 지크프리드 안드레스 도바트는 프레이야가 발키리와 디스의 신화적 모델이라고 언급했다.[43]

4. 1. 아시르-바니르 전쟁

프레이야는 바니르 신족 출신으로, 아시르 신족과 바니르 신족 간의 항쟁(아시르-바니르 전쟁)이 끝난 후 화해하는 과정에서 인질로 아버지, 오빠와 함께 아스가르드로 이주하여[24] 아시르 신족에게 세이즈를 전파했다.

학자 가브리엘 터빌-페트레를 비롯하여 루돌프 시멕, 앤디 오차드, 존 린도 등은 ''시적 에다'' 시 "볼룬다"에 등장하는 굴베이그가 세 번 불태워졌지만 세 번 모두 다시 태어났으며, 세 번째 부활 후 헤이드르로 알려졌고, 이 사건이 아시르-바니르 전쟁을 촉발한 것으로 보았다. 이들은 굴베이그/헤이드르가 프레이야와 동일 인물이며, 그녀와 아시르의 연관성이 아시르-바니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13]

4. 2. 오드와의 결혼과 이별

프레이야는 오드와 결혼했는데, 그는 먼 여행을 떠나고 둘은 호스라는 매우 아름다운 딸을 낳았다. 오드가 부재중일 때 프레이야는 슬픔에 잠겨 붉은 금 눈물을 흘린다. 프레이야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프레이야가 오드를 찾고 "낯선 민족들 사이"를 여행할 때 그 이름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이 이름에는 '게픈', '호른', '마르돌', '시르', '바나디스'가 포함된다.[40]

4. 3. 묠니르 도난 사건



''트림의 시''는 로키가 프레이야의 깃털 망토를 빌리고 토르가 프레이야로 변장하여 욕심 많은 요툰 트림을 속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에서 토르는 강력한 망치 묠니르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깨어난다. 토르는 로키에게 망치가 없어진 것을 말하고, 둘은 프레이야의 아름다운 궁정으로 간다. 토르는 프레이야에게 망치를 찾기 위해 그녀의 깃털 망토를 빌려줄 수 있는지 묻는다. 프레이야는 동의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나는 당신에게 그것을 주겠소, 비록 금으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 그리고 당신에게 그것을 맡기겠소, 비록 은으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43]

로키는 깃털 망토를 휘날리며 날아가 요툰헤임의 땅에 도착한다. 그는 트림이 분구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트림은 토르의 망치를 땅 깊숙이 숨겨두었고 프레이야가 자신의 아내로 오지 않으면 아무도 망치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힌다. 로키는 망토를 휘날리며 다시 날아가 신들의 궁정으로 돌아온다. 로키는 토르에게 트림의 조건을 말한다.[43]

둘은 아름다운 프레이야를 만나러 간다. 토르가 프레이야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은 그녀에게 옷을 입고 신부의 머리 장식을 하라는 것이고, 그들은 요툰헤임으로 갈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프레이야는 격노하고, 신들의 홀이 흔들리고, 그녀는 분노에 찬 숨을 내쉬고, 여신으로부터 목걸이 브리싱가멘이 떨어진다. 분개한 프레이야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 나를 가장 음탕한 여자라고 생각하시오,

> 만약 내가 당신과 함께 요툰헤임으로 간다면.[43]

신들과 여신들은 팅에 모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논의한다. 신 헤임달은 토르에게 신부 복장, 머리 장식, 딸랑거리는 열쇠, 보석, 그리고 유명한 브리싱가멘을 포함하여 신부로 변장하는 것을 제안한다. 토르는 반대하지만 로키는 그에게 망치가 돌아오지 않으면 망치의 새로운 소유자들이 곧 신들의 땅에 정착할 것이라고 상기시키며 그를 조용하게 한다. 토르는 계획대로 옷을 입고 로키는 하녀로 옷을 입는다. 토르와 로키는 요툰헤임으로 간다.[43]

그동안 트림은 하인들에게 뇨르드르의 딸이 도착할 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프레이야"가 아침에 도착하자 트림은 그녀의 행동에 놀란다. 그녀의 엄청난 식욕과 미드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 트림이 "프레이야"의 베일 아래로 키스를 하려고 할 때 "그녀"의 눈이 끔찍하다는 것을 알고 홀에서 뛰어내렸다. 변장한 로키는 신부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변명하며, 그녀가 단지 8일 동안 먹거나 잠을 자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변장은 요트나르를 성공적으로 속이고, 토르는 그것을 보자마자 힘으로 망치를 되찾는다.[43]

거인 스륌이 아스 신의 토르가 가진 최강의 무기인 묠니르를 훔쳐, 반환 조건으로 내건 것은 자신과 프레이야와의 결혼이었다.[43]

4. 4. 굴베이그와의 관계

무녀의 예언에 등장하는 굴베이그는 "황금의 힘"을 의미하며[47] 황금의 의인화, 또는 황금의 힘이 여성의 모습을 취한 존재로 여겨진다.[48] 굴베이그는 헤이드르와 동일 인물이며, 프레이야와 동일시 되기도 한다. 가브리엘 터빌-페트레를 시작으로 루돌프 시멕, 앤디 오차드, 존 린도와 같은 학자들은 굴베이그/헤이드르가 프레이야와 동일한 인물이며, 그녀가 아시르와 연루된 것이 아시르-바니르 전쟁의 사건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이론화했다.[13]

4. 5. 기타

굴베이그는 "세이드"라는 마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속였다고 하며[31], 프레이야도 세이드를 사용할 수 있었고 오딘에게 가르쳤다고 한다[50]。 세이드의 본질은 사람의 영혼을 조종하는 데 있으며, 영을 불러 예언을 받거나 자신의 육체에서 영혼을 분리하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세이드 사용자는 여성으로 여겨졌으며, 남성이 사용하는 것은 불쾌하게 여겨졌다(예를 들어, 『로키의 말다툼』에서 오딘이 세이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로키가 여성스러운 방식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행방불명된 오드를 찾는 동안 프레이야는 다양한 이명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마르돌(Mardöll), 회른(Hörn), 게븐(Gefn), 쉬르(Sýr) 등이 알려져 있다[26]

여신 게피온은 프레이야와 공통점을 보인다. 프레이야의 별명 중에는 "게븐"(Gefn)이라는 "게피온"과 비슷한 이름이 있다. 또한 프레이야가 여성의 죽은 자를 맞이하듯이, 게피온도 처녀로 죽은 여성을 맞이하고 있다. 야마무로 시즈카는 두 사람을 동일한 신격으로 간주하기에는 자료가 불충분하다고 보았지만[51], 힐다 엘리스 데이비드슨(Hilda Ellis Davidson)은 "게푼"과 게피온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52]

5. 프레이야 숭배와 현대적 의의

프레이야 숭배는 기독교화 이후에도 스칸디나비아 민속에 남아 지속되었다. 브리트-마리 네스스트룀은 프레이야가 성적인 특성 때문에 기독교화 과정에서 특히 표적이 되었으며, 그녀의 많은 기능은 성모 마리아에게 이전되었다고 언급한다.[7] 그러나 프레이야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18세기 후반까지 아이슬란드에서 마법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거나, 19세기 후반 스웨덴 농촌에서 다산의 여신으로 역할을 유지했다.[7]

고대 노르드 시 'Þrymskviða'는 스칸디나비아 민요로 이어져 변형되었는데, 스웨덴의 'Torvisan'에서는 'Freyja'가 'Frojenborg'로 묘사되기도 한다.[7] 스몰란드 지방에서는 프레이야와 얇은 번개를 연결하는 이야기가 있었고, 베렌드에서는 크리스마스 밤에 사과나무를 흔들어 풍작을 기원하며 사과를 남겨두는 풍습이 있었다.[7]

스웨덴어Det var den väna Frojenborg
Britt-Mari Näsström 번역It was the fair Frojenborg



현대에 이르러 프레이야는 아사트루 신봉자들에게 다산, 풍요, 아름다움의 여신으로 존경받으며, 사랑과 관련된 음식을 굽거나 가정 폭력 상황에서 보호를 기원하는 의식이 행해진다.[8]

프레이야는 스웨덴 문학에서 로마의 비너스에 해당하는 인물로, 칼 미카엘 벨만은 매춘부들을 "프뢰야의 아이들"이라 불렀고, 19세기 낭만주의는 에로틱한 특성보다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신의 이미지에 집중했다.[14] 아담 고틀롭 외렌슐레거의 덴마크 국가 ''아름다운 나라''에 언급되었고, 희극 ''프레이야의 제단''과 시 ''프레이스의 홀''에도 등장한다.[15][16]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 등장하는 프레이야(이둔과의 결합)—아서 래컴의 삽화(1910)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는 이둔과 결합된 여신 ''프레이아''가 등장하며,[16]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북유럽에서 많은 예술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작가작품명종류년도
H. E. 프로인트프레이야조각상1821–1822
닐스 블로메르프레야가 남편을 찾음그림1852
Carl Ehrenberg (Maler)|카를 에렌베르크|Carl Ehrenbergde신들 중의 프레이야의 숭배목탄화1881
Carl Ehrenberg (Maler)|카를 에렌베르크|Carl Ehrenbergde프리그; 프레이야드로잉1883
카를 에밀 됩플러 주니어프레이야1901
J. 도일 펜로즈프레이야와 브리싱가멘그림1862–1932

[16]

프레이야의 이름 중 ''바나디스''는 화학 원소 바나듐의 어원이 되었고,[14] 1990년대부터 '프레이야' 파생형이 여자 이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14]

프레이야는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 ''스마이트'', ''갓 오브 워'' 등 여러 비디오 게임에 등장하고,[17][18][19][20][21] 더 소드의 노래 "프레이야"는 ''기타 히어로 II''에 수록되었다.[22][23]

5. 1. 고대 스칸디나비아에서의 숭배

헤임스크링글라의 책 잉글링가 사가는 프레이야를 포함한 신들의 기원에 대한 유헤메리즘적 설명을 제공한다. 프레이야는 바니르의 일원, 프레이르의 여동생, 뇨르드와 그의 여동생(이름은 언급되지 않음)의 딸로 소개된다. 아시르-바니르 전쟁이 교착 상태로 끝나자 오딘은 프레이르와 뇨르드를 제물에 대한 사제로 임명한다. 프레이야는 희생 제물의 여사제가 되었고, 이전에는 바니르만 사용했던 세이드의 관행을 아시르에게 소개했다.[9]

프레이르가 죽은 후, 프레이야는 아시르와 바니르 중에서 마지막 생존자가 된다. 프레이야는 희생 제사를 계속 수행하며 유명해진다. 프레이야의 명성 때문에 모든 지위의 여성들이 그녀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즉, 자신의 재산의 여주인인 여성은 ''프루보르''("여인")로, 부동산을 소유한 여성은 ''프레이야'', ''후스프레이야''("집의 여인")로 불린다.[9] 또한 그녀와 그녀의 남편 오드르에게는 게르세미와 흐노스라는 매우 아름다운 두 딸이 있었는데, "그들이 우리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에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9]

몇몇 식물은 프레이야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데, 예를 들어 ''프레이야의 눈물''과 ''프레이야의 머리카락''(Polygala vulgaris)이 있지만, 기독교화 과정에서 여신의 이름은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대체되었다.[9] 기독교 이전 시대에는 오리온자리 별자리가 프리그의 물레 또는 프레이야의 물레라고 불렸다.[9]

노르웨이스웨덴의 지명은 여신에 대한 숭배를 반영하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국가지명어원설명
노르웨이Frøihov*Freyjuhof'프레이야의 호프'
스웨덴Frövi*Freyjuvé'프레이야의 베'



노르웨이 지명에 대한 조사에서, M. 올센은 ''프레이야''와 결합된 지명이 최소 20~30개에 달한다고 집계한다. 이러한 지명은 서해안에서 가장 흔하게 확인되지만, 남동부에서도 높은 빈도로 발견된다.[10] ''프레이야''가 포함된 지명은 스웨덴에서 더욱 다양하고 많으며,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특히 우플란드에서는 여러 개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일부는 *''Freyjuvé''와 *''Freyjulundr''('프레이야의 성스러운 숲')에서 유래하며, 이는 프레이야에 대한 공공 예배를 나타내는 지명이다. 다양한 지명은 고대 고트어 ''alhs''와 고대 영어 ''ealh''("사원")과 관련된 요소가 포함된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또한, ''Frejya''는 들판, 초원, 호수, 바위와 같은 자연물과 같은 다양한 지리적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와 결합된 요소로 나타난다.[10]

프레이야의 이름 ''Hörn''은 스웨덴 지명 Härnevi와 Järnevi에 나타나며, 재구성된 고대 노르드어 지명 ''*Hörnar-vé''(의미: "Hörn의 베")에서 유래한다.[11]

바이킹 시대의 오세베르그 선박 매장지에서 발견된 재건된 마차로, 아홉 마리의 고양이를 묘사하고 있다


1000년경 외스테르예틀란드(Östergötland)의 Hagebyhöga에서 여사제가 상당한 화려함으로 매장되었다. 그녀는 지팡이와 함께 매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말, 마차, 아라비아 청동 주전자 등 막대한 재산을 받았다. 또한 목에 넓은 목걸이를 두른 여성을 묘사한 은 펜던트가 있었다. 이러한 종류의 목걸이는 철기 시대에 가장 저명한 여성들만 착용했으며, 일부는 그것을 프레이야의 목걸이 브리싱가멘으로 해석했다. 펜던트는 프레이야 자신을 나타낼 수 있다.[12]

현재 독일 북서부의 에슈베게(Eschwege)에 있는 "전사 무덤"에서 발견된 7세기 팔레라에는 두 개의 큰 땋은 머리를 가진 여성 인물이 두 "고양이 같은" 존재에 의해 양쪽으로 호위되고 지팡이 같은 물체를 들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 인물은 프레이야로 해석되었다.[12] 이 이미지는 또한 여신을 묘사할 수 있는 다양한 B형 브락테아테와 관련이 있을 수 있으며, 이를 퓌르스텐베르크형이라고 한다. 이들은 "짧은 치마와 이중 고리 머리를 한 여성 인물이 오른손에 지팡이나 홀을, 왼손에 이중 십자가 특징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12]

10세기 오세베르그 선박 매장지는 발견 당시 의례용 마차를 포함하고 있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마차의 한쪽 면에는 아홉 마리의 고양이가 묘사되어 있다. 학자들은 이 묘사를 프레이야의 고양이 마차와 바니르와 마차 사이의 더 넓은 연관성과 연결시켰다.[13]

12세기의 한 묘사에는 큰 고양이를 타고 있는 망토를 두른 나체의 여성이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 북독일(Northern Germany)의 슐레스비히 대성당 벽에 나타난다. 그녀 옆에는 마찬가지로 망토를 두른 나체의 여성이 물레를 타고 있다. 문헌 기록과의 도상학적 유사성으로 인해, 이 인물들은 각각 프레이야와 프리그를 묘사한 것으로 이론화되었다.[13]

5. 2. 기독교화 이후

헤임스크링글라의 책 잉글링가 사가는 프레이야를 포함한 신들의 기원에 대한 유헤메리즘적 설명을 제공한다. 프레이야는 바니르의 일원, 프레이르의 여동생, 뇨르드와 그의 여동생(이름은 언급되지 않음)의 딸로 소개된다. 아시르-바니르 전쟁이 교착 상태로 끝나자 오딘은 프레이르와 뇨르드를 제물에 대한 사제로 임명한다. 프레이야는 희생 제물의 여사제가 되었고, 이전에는 바니르만 사용했던 세이드의 관행을 아시르에게 소개했다.[7]

프레이르가 죽자, 프레이야는 아시르와 바니르 중에서 마지막 생존자가 된다. 프레이야는 희생 제사를 계속 수행하며 유명해진다. 사가는 프레이야의 명성 때문에 모든 지위의 여성들이 그녀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즉, 자신의 재산의 여주인인 여성은 ''프루보르''("여인")로, 부동산을 소유한 여성은 ''프레이야'', ''후스프레이야''("집의 여인")로 불린다.[7] 프레이야는 매우 영리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그녀의 남편 오드르에게 게르세미와 흐노스라는 매우 아름다운 두 딸이 있었는데, "그들이 우리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에 이름을 붙였다"고 덧붙인다.[7]

프레이야는 사가인 ''에길의 사가'', ''냘의 사가'', ''할프 사가 오크 할프스레카'', 그리고 ''쇠를라 사트르''에서 언급된다. ''에길의 사가''에서, 에길 스칼라그림손이 음식을 거부하자 그의 딸 토르게르는 자신도 음식을 먹지 않고 굶어 죽어 여신 프레이야를 만날 것이라고 말한다.[7]

14세기 전설적인 사가인 ''할프 사가 오크 할프스레카''의 첫 번째 장에서, 알레크 왕은 게이르힐드와 시그니라는 두 명의 아내를 두고 있었지만, 둘 다 데리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여름에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그에게 더 좋은 맥주를 끓이는 여자를 데리고 있을 것이라고 두 여자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경쟁했고 맥주를 끓이는 과정에서 시그니는 프레이야와 전에 만난 남자, 호트("후드")에게 기도했다(사가의 앞부분에서 오딘으로 변장한 것으로 밝혀짐). 호트는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여 그녀의 효모에 침을 뱉었다. 시그니의 맥주가 대회에서 우승했다.[7]

''쇠를라 사트르''는 ''올라프 사가 트뤼그바손''의 짧은 14세기 후반의 이야기로, ''플라테이르보크'' 필사본에서 신들에 대한 유머화된 이야기가 제공된다. 이 이야기에서 프레이야는 오딘의 첩이었고, 네 명의 난쟁이에게 성관계를 거래하여 황금 목걸이를 얻었다고 묘사된다. 에시르는 한때 "아시아랜드 또는 아시아홈"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위치한 아스가르드라는 도시에서 살았다. 오딘은 그 왕국의 왕이었고, 뇨르드와 프레이르를 사원 사제로 만들었다. 프레이야는 뇨르드의 딸이었고, 오딘의 첩이었다. 오딘은 프레이야를 깊이 사랑했고, 그녀는 "그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프레이야는 아름다운 방을 가지고 있었고, 문이 닫히면 프레이야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7]

어느 날 프레이야가 난쟁이들이 사는 열린 돌을 지나갔다. 네 명의 난쟁이가 황금 목걸이를 만들고 있었고 거의 완성되었다. 목걸이를 보면서 난쟁이들은 프레이야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그녀는 목걸이를 가장 탐냈다. 프레이야는 은, 금, 그리고 다른 가치 있는 물건으로 그들에게 목걸이를 사겠다고 제안했다. 난쟁이들은 돈이 부족하지 않으며, 목걸이에 대해 그녀가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들 각각과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이야는 그 조건에 동의했고, 네 명의 난쟁이 각각과 하룻밤을 보냈다. 조건이 충족되었고 목걸이는 그녀의 것이 되었다. 프레이야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의 방으로 돌아갔다.[7]

오딘의 하인인 로키는 프레이야의 행동을 알아채고 오딘에게 말했다. 오딘은 로키에게 목걸이를 가져와 그에게 가져오라고 말했다. 로키는 프레이야의 방에 그녀의 의지 없이 아무도 들어갈 수 없으므로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지만, 오딘은 목걸이를 얻을 방법을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고 말했다. 울부짖으며, 로키는 돌아서서 프레이야의 방으로 갔지만 문이 잠겨 있었고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로키는 파리로 변신했고, 아주 작은 입구조차 찾기 어려웠지만, 그는 박공 꼭대기의 작은 구멍을 찾을 수 있었지만, 여기에서도 들어가기 위해 억지로 들어가야 했다.[7]

프레이야의 방으로 들어간 로키는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고, 프레이야가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녀의 침대에 앉았고, 그녀가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고, 걸쇠가 아래로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로키는 벼룩으로 변해서 프레이야의 뺨으로 뛰어들어 그녀를 물었다. 프레이야는 움직이며 돌아서서 다시 잠들었다. 로키는 벼룩의 모습을 벗고 그녀의 목걸이를 풀고 방을 열고 오딘에게 돌아갔다.[7]

다음 날 아침 프레이야는 깨어나 자신의 방의 문이 열려 있지만 부서지지 않았고, 그녀의 소중한 목걸이가 없어졌다는 것을 보았다. 프레이야는 누가 책임자인지 짐작했다. 그녀는 옷을 입고 오딘에게 갔다. 그녀는 오딘에게 그가 그녀에게 허용한 악의와 그녀의 목걸이 도난에 대해 말했고, 그에게 그녀의 보석을 돌려달라고 말했다.[7]

오딘은 그녀가 그것을 얻은 방식을 고려할 때, 그녀는 결코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그녀는 두 명의 왕을 싸우게 할 수 있다면, 그들은 각각 20명의 왕을 다스릴 수 있고, 그들이 전투에서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 싸우도록 하는 마법을 걸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특정 지위의 사람이 전투에 들어가 그들을 치지 않는 한 영원히 계속되어야 하고, 그때만 죽은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프레이야가 동의했다.[7]

북유럽의 익은 호밀


스칸디나비아의 기독교화는 토착 신들을 악마화하려 했지만, 프레이야를 포함한 신들에 대한 믿음과 숭배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고 스칸디나비아 민속으로 융합되었다. Britt-Mari Näsström|브리트-마리 네스스트룀sv은 프레이야가 기독교화 과정에서 특히 표적이 되었다고 언급한다. 프레이야의 에로틱한 특성은 무성적인 처녀가 이상적인 여성으로 여겨지는 새로운 종교의 손쉬운 표적이 되었다. 프레이야는 성직자들과 선교사들에 의해 "창녀"와 "매춘부"라고 불렸으며, 그녀가 식물을 보호하고 출산을 돕는 등 남녀의 일상생활에서 수행하던 많은 기능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이전되었다.[7]

그러나 프레이야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슬란드에서는 18세기 후반까지 아이슬란드 마법 지팡이를 통해 프레이야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며, 19세기 후반까지 프레이야는 농촌 스웨덴인들 사이에서 다산의 여신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7] 고대 노르드 시 'Þrymskviða'(또는 그 원천)는 스칸디나비아 민요 전통으로 이어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역되고 변형되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이 시가 'Þrylur'로 알려졌고, 덴마크에서는 'Thor af Havsgaard'로, 스웨덴에서는 'Torvisan' 또는 'Hammarhämtningen'으로 알려졌다.[7] 스웨덴의 'Torvisan'의 한 구절에서는 'Freyja'가 "아름다운"(''den väna'') 'Frojenborg'로 변형되어 묘사된다.

스웨덴의 스몰란드 지방에서는 프레이야와 얇은 번개(sheet lightning)를 연결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작가 요한 알프레드 굇(Johan Alfred Göth)은 1880년 일요일, 남자들이 들판을 걸으며 거의 익어가는 호밀을 바라보며 카리드의 만스(Måns in Karryd)가 "이제 프레이야가 호밀이 익었는지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던 것을 회상했다. 굇은 시골에서 프레이야에 대한 또 다른 언급을 회상한다.[7]

스웨덴의 베렌드에서는 프레이야가 크리스마스 밤에 나타나 풍작을 위해 사과나무를 흔들었고, 그 결과 사람들은 그녀를 위해 나무에 사과를 남겨두었다. 그러나 쟁기를 밖에 두는 것은 위험했는데, 프레이야가 그 위에 앉으면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7]

오늘날 많은 아사트루 신봉자들은 프레이야를 다산, 풍요, 아름다움의 여신으로 존경한다. 현대 프레이야 숭배자들의 일반적인 의식은 사랑과 관련된 음식을 굽는 것인데, 예를 들어 초콜릿이 있다. 프레이야는 또한 보호를 위해, 대개 가정 폭력 상황에서 기원된다.[8]

5. 3. 현대의 재조명

스칸디나비아의 기독교화는 토착 신들을 악마화하려 했지만, 프레이야를 포함한 신들에 대한 믿음과 숭배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고 스칸디나비아 민속(Scandinavian folklore)으로 융합되었다. 브리트-마리 네스룀(Britt-Mari Näsström)은 프레이야가 기독교화 과정에서 특히 표적이 되었다고 언급한다.[7] 프레이야의 에로틱한 특성은 무성적인 처녀가 이상적인 여성으로 여겨지는 새로운 종교의 손쉬운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프레이야는 성직자들과 선교사들에 의해 "창녀", "매춘부"라고 불렸으며, 그녀가 식물을 보호하고 출산을 돕는 등 남녀의 일상생활에서 수행하던 많은 기능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이전되었다.[7]

그러나 프레이야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슬란드에서는 18세기 후반까지 아이슬란드 마법 지팡이를 통해 프레이야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며, 19세기 후반까지 프레이야는 농촌 스웨덴인들 사이에서 다산의 여신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7]

고대 노르드 시 'Þrymskviða'(또는 그 원천)는 스칸디나비아 민요 전통으로 이어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역되고 변형되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이 시가 'Þrylur'로 알려졌고, 덴마크에서는 'Thor af Havsgaard'로, 스웨덴에서는 'Torvisan' 또는 'Hammarhämtningen'으로 알려졌다.[7] 스웨덴의 'Torvisan'의 한 구절에서는 'Freyja'가 "아름다운"(''den väna'') 'Frojenborg'로 변형되어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스웨덴어Det var den väna Frojenborg
Britt-Mari Näsström 번역It was the fair Frojenborg



스웨덴의 스몰란드 지방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프레이야와 얇은 번개(sheet lightning)를 연결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작가 요한 알프레드 굇(Johan Alfred Göth)은 1880년 일요일, 남자들이 들판을 걸으며 거의 익어가는 호밀을 바라보며 카리드의 만스(Måns in Karryd)가 "이제 프레이야가 호밀이 익었는지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던 것을 회상했다. 이와 더불어 굇은 시골에서 프레이야에 대한 또 다른 언급을 회상한다.

> 어렸을 때 올드 프라우드-카트리나를 방문했을 때, 나는 그 시절의 모든 소년들처럼 번개를 무서워했다. 얇은 번개가 밤에 번쩍였을 때, 카트리나는 "얘야, 무서워하지 마라, 그것은 프레이야가 호밀이 익었는지 보기 위해 강철과 부싯돌로 불을 피우러 나온 것뿐이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봉사하기 위해서만 그렇게 하는 것이지, 토르처럼 기분 내키는 대로 사람과 가축을 죽이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나중에 나는 여러 노인들이 같은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7]

스웨덴의 베렌드에서는 프레이야가 크리스마스 밤에 나타나 풍작을 위해 사과나무를 흔들었고, 그 결과 사람들은 그녀를 위해 나무에 사과를 남겨두었다. 그러나 쟁기를 밖에 두는 것은 위험했는데, 프레이야가 그 위에 앉으면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7]

오늘날 많은 아사트루 신봉자들은 프레이야를 다산, 풍요, 아름다움의 여신으로 존경한다. 현대 프레이야 숭배자들의 일반적인 의식은 사랑과 관련된 음식을 굽는 것인데, 예를 들어 초콜릿이 있다. 프레이야는 또한 보호를 위해, 대개 가정 폭력 상황에서 기원된다.[8]

5. 4. 대중문화 속 프레이야

현대에 이르러 프레이야는 스웨덴 문학에서 로마의 비너스에 해당하는 스칸디나비아의 인물로 취급되었으며, 로맨틱한 사랑과 연관되거나 "욕망과 힘"의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했다.[14] 18세기에 스웨덴 시인 칼 미카엘 벨만은 그의 ''프레드만 서한''에서 스톡홀름의 매춘부들을 "프뢰야의 아이들"이라고 불렀다.[14] 19세기 스웨덴 낭만주의는 프레이야의 에로틱한 특성보다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우는 여신"의 이미지에 더 집중했다.[14]

프레이야는 19세기 덴마크 시인 아담 고틀롭 외렌슐레거가 1819년에 쓴 덴마크의 국가인 ''아름다운 나라''의 첫 번째 연 ("그것은 낡은 덴마크라고 불리며 프레야의 홀이다")에 언급되어 있다.[15] 또한 외렌슐레거는 희극 ''프레이야의 제단''(1818)과 여신을 묘사한 시 ''프레이스의 홀''을 썼다.[16]

19세기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는 이둔과 결합된 여신 ''프레이아''가 등장한다.[16]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북유럽에서 프레이야는 많은 예술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작가작품명종류년도
H. E. 프로인트프레이야조각상1821–1822
닐스 블로메르프레야가 남편을 찾음그림1852
Carl Ehrenberg (Maler)|카를 에렌베르크|Carl Ehrenberg (illustrator)de신들 중의 프레이야의 숭배목탄화1881
Carl Ehrenberg (Maler)|카를 에렌베르크|Carl Ehrenberg (illustrator)de프리그; 프레이야드로잉1883
카를 에밀 됩플러 주니어프레이야1901
J. 도일 펜로즈프레이야와 브리싱가멘그림1862–1932

[16]

다른 북유럽 여신들처럼, 그녀의 이름은 스칸디나비아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예를 들어 "과자나 튼튼한 역마차"에도 사용되었다.[14]

프레이야의 이름 중 하나인 ''바나디스''는 여러 가지 색상의 화합물 때문에 이름이 붙여진 화학 원소 바나듐의 이름의 어원이다.[14]

프리가(때로는 프레이야라고도 불림)는 1963년부터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가상의 캐릭터이다. 이 캐릭터는 특히 북유럽 신화의 여신 프레이야를 바탕으로 한다.[15]

1990년대 초부터 '프레이야'의 파생형이 여자 이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14] 중앙 통계청의 노르웨이 이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약 500명의 여성이 '프뢰야'(여신의 현대 노르웨이어 표기)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또한 '프뢰이디스'라는 2부분으로 된 이름의 첫 번째 요소와 같은 유사한 이름도 여러 개 있다.[16]

프레이야는 여러 비디오 게임에 등장한다.

게임명제작사년도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앙상블 스튜디오2002
스마이트2014
갓 오브 워산타 모니카 스튜디오2018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2022

[17][18][19][20][21]

"프레이야"는 미국의 헤비 메탈 밴드 더 소드가 2006년에 발매한 데뷔 앨범 ''에이지 오브 윈터스''의 수록곡이다.[22] 같은 해에 발매된 ''기타 히어로 II''에는 플레이 가능한 커버 버전이 수록되었다.[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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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적
[3] 서적
[4] 서적
[5] 서적
[6] 간행물 Ueber das Vanadin, ein neues Metall, gefunden im Stangeneisen von Eckersholm, einer Eisenhütte, die ihr Erz von Taberg in Småland bezieht https://zenodo.org/r[...] 1831
[7] 서적
[8] 문서 "Freyja – Goddess of Abundance, Fertility and War." Learn Relig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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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적 Vikingaliv Fälth & Hässler, Värnamo
[12] 문서
[13]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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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웹사이트 Culturetrip:How pop culture revived Norse mythology https://theculturetr[...] 2018-05-17
[16] 웹사이트 Names http://www.ssb.no/en[...] Statistics Norway
[17] 웹사이트 Age of Mythology https://archive.org/[...]
[18] 웹사이트 Age of Mythology Reference Manual https://archive.org/[...]
[19] 웹사이트 Gods https://www.smitegam[...]
[20] 웹사이트 Freya is the Real Villain of God of War https://screenrant.c[...] 2020-07-15
[21] 웹사이트 God of War: Ragnarok Villains Are Thor and Freya, Game Includes All 9 Realms https://gamerant.com[...] 2021-09-10
[22] 웹사이트 The Sword – Age of Winters https://www.allmusic[...] All Media Network
[23] 뉴스 Guitar Hero II Final Tracklist Revealed http://www.ign.com/a[...] Ziff Davis 2006-10-09
[24] 서적
[25] 문서
[26]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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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서적 デイヴィッドソン, 米原他訳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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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서적 スノッリ, 谷口訳注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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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서적 山室 (1982)
[47] 서적 ネッケル他編, 谷口訳 (1973)
[48] 서적 ノルダル, 菅原訳 (1993)
[49] 서적 山室 (1982)
[50] 서적 山室 (1982)
[51] 서적 山室 (1982)
[52] 서적 デイヴィッドソン, 米原他訳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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