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로드의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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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흘로드의 서사시는 14세기와 15세기에 기록된 두 개의 주요 필사본을 통해 전해지는 고대 북유럽 시가이다. 이 시는 29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헤르바르의 사가와 헤이드레크의 사가'에 포함되어 보존되었다. 원래는 독립된 이야기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위드시스', '오르바르-오드의 사가', '데인인의 사적' 등과 유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주요 내용은 고트족 왕 헤이드레크의 두 아들, 적통인 앙간튀르와 사생아인 흘로드 사이의 왕위 계승 분쟁과 고트족과 훈족 간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역사적 배경과 관련하여서는 19세기 이후 학문적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정확한 역사적 사건과의 일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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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로드의 서사시 | |
---|---|
개요 | |
제목 | 흘로드의 서사시 |
원어 제목 | Hlǫðskviða |
다른 이름 | Hunnenfall (훈족의 몰락) |
유형 | 영웅시 |
언어 | 고대 노르드어 |
내용 | |
배경 | 고트족과 훈족 간의 전투 |
주요 인물 | 헤르보르 (Hervor) 흐로드(Hlǫðr) 앙간티르(Angantýr) 훔리(Humli) 기주르(Gizurr) 구드문드(Guðmundr) 티를링(Tyrfingr) |
역사적 맥락 | |
시기 | 4세기 |
지역 | 체르냐호프 문화 해당 지역 (현재의 우크라이나) |
특징 | |
특징 | 서사시 형식 고트족과 훈족 간의 갈등 묘사 게르만족의 영웅주의 강조 |
기타 | |
중요성 | 게르만족의 역사와 신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 |
2. 텍스트, 역사성 및 분석
사가의 주요 자료는 14세기 초 호크스보크 (A.M. 544)의 "H"와 15세기 양피지(MS 2845) "R" 두 가지이다. ''흘로드스크비다''를 포함한 사가의 마지막 부분은 H에는 없고 R에서는 잘려 있는데, 나머지 텍스트는 이 작품들의 17세기 종이 사본에서 더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시는 원래 사가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작품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영국의 ''위드시스'', ''오르바르-오드의 사가'', ''데인인의 사적'' 등과 내용 면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고트족과 훈족의 전투"의 역사성은 19세기 이후 학문적으로 연구되었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배경 장소로는 카르파티아 산맥 주변이 제안되며, 실제 전투는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가설 | 내용 |
---|---|
카탈라우눔 전투 |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와 테오도리크 1세 휘하의 서고트족, 아틸라 휘하의 훈족 간의 전투 (451년) |
고트족-게피드족 전투 | 고트족 왕 오스트로고타와 게피드 왕 파스티다 간의 전투 |
랑고바르드-불가르족 전투 | 롬바르드 왕 아겔문두스(아겔문드)가 사망한 랑고바르드와 불가레스(불가르족) 간의 전투 |
게피드족-훈족 전투 | 게피드족 아르다리크 통치 기간 동안 게피드족과 훈족 간의 아틸라 사후(453년) 충돌 |
또 다른 해석은 고트족을 크림 고트족으로 보며, 전투는 386년 오도테우스 휘하의 민족 파괴 사건으로 도나우강 전투에서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사가의 이야기와 네다오 전투 사이의 유사성도 언급되었다. 시에 등장하는 인물과 역사적 인물의 동일시 또한 혼란스러우며, "고트족과 훈족의 전투"의 역사적 날짜는 사가에 기록된 그 이전의 사건보다 수 세기 앞선다.
2. 1. 텍스트 자료 및 판본
사가의 주요 자료는 14세기 초 호크스보크 (A.M. 544)의 "H"와 15세기 양피지(MS 2845) "R"이다.[1] ''흘로드스크비다''를 포함한 사가의 마지막 부분은 H에는 없고 R에서는 잘려 있는데, 나머지 텍스트는 이 작품들의 17세기 종이 사본에서 더 잘 보존되어 있다.[1]이 시는 원래 사가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작품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1] 이 시는 영국의 ''위드시스'', ''오르바르-오드의 사가'', ''데인인의 사적'' 등 유사하거나 관련 내용이 포함된 몇 가지 유사성을 가진다.[1]
2. 2. 구성 및 연대
이 시는 29개의 개별적인 연 또는 연의 부분으로 보존되어 있으며, ''헤르바르의 사가와 헤이드레크의 사가'' 텍스트 사이에 산재해 있다. 이 중 대부분은 연설이 아닌 이야기체이다. 사가의 많은 부분이 현재 산문 형태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운문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산문 텍스트에는 운문 원본의 증거가 일부 남아 있다. 크리스토퍼 톨킨은 이 시가 현재 사가에서 발견되는 맥락과는 별개로, 원래는 그 자체로 완결된 이야기를 형성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2]일부 손상된 구절은 서로 다른 편집자에 의해 다르게 기록되었으며, 텍스트는 텍스트의 다른 부분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작곡되었거나 기록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아틀라크비다'' 또는 ''함디스마을''과 같은 초기 에다 시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한 풍부한 구절이 있는 반면, 다른 행은 덜 풍부하다.[2]
대부분의 판본에서는 연의 번호를 매기지만, 이 번호 매기기는 시가 아닌 사가에서 첫 번째 시적 연부터 시작될 수 있다.[2]
2. 3. 역사적 배경 및 해석
이 시는 원래 사가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작품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트족과 훈족의 전투"의 역사성, 특히 인물, 장소 및 사건의 식별은 19세기 이후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배경으로 제안된 장소에는 카르파티아 산맥 주변의 여러 장소가 포함되며, 실제 전투는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와 테오도리크 1세 휘하의 서고트족, 그리고 아틸라 휘하의 훈족 간의 카탈라우눔 전투 (451년)이거나, 고트족 왕 오스트로고타와 게피드 왕 파스티다 간의 전투, 또는 롬바르드 왕 아겔문두스(아겔문드)가 사망한 랑고바르드와 불가레스(불가르족) 간의 전투, 또는 게피드족 아르다리크의 통치 기간 동안 게피드족과 훈족 간의 아틸라 사후(453년) 충돌로 추정된다. 또 다른 해석은 고트족을 크림 고트족으로 본다. 이 전투는 3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오도테우스 휘하의 민족 파괴 사건으로 도나우강 전투에서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사가에 나오는 이야기와 네다오 전투 사이의 유사성도 언급되었다. 시에 등장하는 인물과 역사적 인물과의 동일시 또한 혼란스럽다. 또한 "고트족과 훈족의 전투"의 역사적 날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확한 귀속에 관계없이)는 사가에 기록된 그 이전의 사건보다 수 세기 앞선다.3. 줄거리
고트족의 왕 헤이드레크에게는 앙간튀르와 흘로드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흘로드는 후믈리의 딸 시프카를 강간하여 낳은 아들로 사생아 취급을 받았고, 헤르게르드와의 사이에 낳은 앙간튀르가 적통이었다. 헤이드레크가 사망하자 앙간튀르가 부왕의 모든 재산과 영토를 상속받았다.[1]
흘로드는 어머니의 조국인 훈족 사이에서 태어나 자랐고, 헤이드레크가 죽자 이복동생 앙간튀르에게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다. 앙간튀르는 이를 거부하고 3분의 1만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헤이드레크의 양부인 기주르(기트인의 왕)는 노예의 자식에게는 그것도 과하다고 흘로드를 모욕했다. 흘로드가 훈족 땅으로 돌아가자, 그의 할아버지 훔리는 이 모욕에 분노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훈족 군대는 고트족을 압도했고, 전쟁 중에 앙간튀르의 누이 헤르보르가 죽었다. 그러나 열세에도 불구하고 앙간튀르는 마검 티르핑의 힘을 빌려 훈족을 물리쳤다. 앙간튀르는 이복형의 시체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저주받은 운명을 한탄했다.[1]
흘로드가 상속을 요구한 대상에는 고트족과 훈족 경계에 있는 숲과 "성스러운 무덤"이 있었는데, 이는 고트족의 중요한 성소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배경은 알려져 있지 않다.[2]
흘로드가 요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hrís þat it mæra,
er Myrkviðr heitir,
grǫf þá ina helgu,
er stendr á Goðþjóðu,
stein þann inn fagra,
er stendr á stǫðum Danpar,
hálfar herváðir,
þær er Heiðrekr átti,
lǫnd ok lýða
ok ljósa bauga.|미르크우드라고 불리는
유명한 숲,
고트족 땅에 있는
성스러운 무덤,
드네프르 강가에 있는
아름다운 돌,
헤이드레크가 소유했던
갑옷의 절반,
땅과 신하들,
그리고 빛나는 반지!non[2]
이 이야기는 454년 네다오 전투에서 동고트인들이 훈족에게 승리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1]
앙간티르가 죽은 형제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는 끝맺는다.
Bǫlvat es okkr, bróðir,
bani em ek þinn orðinn;
þat mun æ uppi,
illr er dómr norna.|우리는 저주받았네, 형제여,
내가 네 살해자가 되었네!
그것은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니;
노른의 운명은 사악하네.non[2]
첫 구절들은 여러 민족과 그들의 지배자들을 묘사하는데, 예아츠(가우타르)와 그들의 왕 기주르가 훈족 바로 다음에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2]
Ár kváðu Humla
Húnum ráða,
Gizur Gautum,
Gotum Angantý,
Valdarr Dǫnum,
en Vǫlum Kjár,
Alrekr inn frœkni
enskri þjóðu.|예전에는 훔리가
훈족을 다스리고,
기주르가 가우타르를,
앙간티르가 고트족을 다스렸고,
발다르가 데인족을 다스렸고,
발리르는 키아르를,
용감한 알레크는
영국 민족을 다스렸다.non[2]
3. 1. 왕위 계승 분쟁
헤이드레크에게는 앙간튀르와 흘로드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흘로드는 헤이드레크가 후믈리의 딸 시프카를 강간하여 낳은 아들로 사생아 취급을 받았다. 헤르게르드와의 사이에 낳은 앙간튀르가 적통이었고, 헤이드레크가 사망하자 앙간튀르가 부왕의 모든 재산과 영토를 상속받았다.[1]흘로드는 훈족 사이에서 태어나 자랐고, 헤이드레크가 죽자 이복동생 앙간튀르에게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다. 앙간튀르는 이를 거부하고 3분의 1만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헤이드레크의 양부인 기주르(기트인의 왕)는 노예의 자식에게는 그것도 과하다고 흘로드를 모욕했다. 흘로드가 훈족 땅으로 돌아가자, 그의 할아버지 훔리는 이 모욕에 분노하여 훈족 군대를 모은다.[1] [2]
앙간티르는 흘로드에게 왕국의 3분의 1을 제안하고, 헤이드레크의 옛 양아버지인 기주르는 이것이 노예의 아들에게는 충분한 양이라고 말한다.[2]
이 시는 앙간티르가 죽은 형제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난다.[2]
3. 2. 고트족과 훈족의 전쟁
헤이드레크에게는 앙간튀르와 흘로드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흘로드는 헤이드레크가 훈족의 왕 후믈리의 딸 시프카를 강간하여 낳은 아들이었고, 앙간튀르는 가르다리키(러시아)의 롤라우그 왕의 딸인 헤르게르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헤이드레크가 자기 노예에게 살해당하자 앙간튀르가 부왕의 모든 재산과 영토를 상속받았다.[1]흘로드는 훈족 사이에서 태어나 자랐고, 헤이드레크가 죽자 이복동생 앙간튀르에게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다. 앙간튀르는 이를 거부하고 3분의 1만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헤이드레크의 양부인 기주르(기트인의 왕)는 흘로드를 모욕했다. 흘로드가 훈족의 땅으로 돌아간 뒤 이 이야기를 들은 후믈리는 분노하여 전쟁을 일으킨다. 훈족의 군세는 고트인들을 압도했고, 전쟁 와중에 앙간튀르의 누이 헤르보르가 죽는다. 그러나 열세에도 불구하고 앙간튀르는 마검 티르핑의 힘을 빌어 훈족을 물리친다. 마지막 제32절에서 앙간튀르는 이복형의 시체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저주받은 운명을 한탄한다.[1]
이 이야기는 454년 네다오 전투에서 동고트인들이 훈족에게 승리를 거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1]
4. 주요 등장인물
헤이드레크는 고트인의 왕으로, 앙간튀르와 흘로드의 아버지였다. 헤이드레크는 자신의 노예에게 살해당했다.[1]
앙간튀르는 헤이드레크의 적자로,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했다. 이복형 흘로드와 왕위 계승 분쟁을 벌였다. 앙간튀르는 마검 티르핑의 힘을 빌어 훈족을 물리쳤다.[1]
흘로드는 헤이드레크의 서자로, 훈족의 왕 후믈리의 외손자이다. 앙간튀르에게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고, 기주르(기트인의 왕)에게 모욕을 당했다. 흘로드는 훈족 군대를 이끌고 고트족을 공격했지만 패배하고 죽었다.[1]
헤르보르는 앙간튀르의 누이로, 훈족과의 전쟁에서 사망한다.[2]
기주르는 헤이드레크의 양부이자 기트인의 왕이다.[1] 흘로드를 모욕하여 훈족의 분노를 샀다.[1]
후믈리는 훈족의 왕이자 흘로드의 외할아버지이다.[1] 흘로드가 앙간튀르에게 유산 상속을 거부당하고 모욕까지 당하자, 분노하여 고트인을 공격한다.[1]
4. 1. 헤이드레크
헤이드레크는 고트인의 왕으로, 앙간튀르와 흘로드의 아버지였다. 헤이드레크는 자신의 노예에게 살해당했다.[1]4. 2. 앙간튀르
헤이드레크의 적자로,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한다. 헤이드레크가 자기 노예에게 살해당하자 부왕의 모든 재산과 영토를 상속받았다.[1] 이복형 흘로드와 왕위 계승 분쟁을 벌였는데, 흘로드가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지만 앙간튀르는 이를 거부하고 3분의 1만 주겠다고 했다.[1] 앙간튀르는 마검 티르핑의 힘을 빌어 훈족을 물리쳤다.[1] 마지막 제32절에서 앙간튀르는 이복형의 시체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저주받은 운명을 한탄한다.[1]4. 3. 흘로드
헤이드레크의 서자이며, 훈족의 왕 후믈리의 외손자이다. 앙간튀르에게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기주르(기트인의 왕)는 노예의 자식에게는 그것도 과하다고 흘로드를 모욕했다. 흘로드는 훈족 군대를 이끌고 고트족을 공격했지만 티르핑의 힘을 빌린 앙간튀르에게 패배하고 죽었다.[1]4. 4. 헤르보르
앙간튀르의 누이로, 훈족과의 전쟁에서 사망한다.[2]4. 5. 기주르
헤이드레크의 양부이자 기트인의 왕이다.[1] 흘로드를 모욕하여 훈족의 분노를 샀다.[1]4. 6. 후믈리
후믈리는 훈족의 왕이자 흘로드의 외할아버지이다.[1] 흘로드가 이복동생 앙간튀르에게 유산 상속을 거부당하고 모욕까지 당하자,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고트인을 공격한다.[1] 훈족 군대는 고트족을 압도했지만, 앙간튀르는 마검 티르핑을 사용하여 훈족을 물리친다.[1]5. 시의 내용 (발췌)
hrís þat it mæra,|er Myrkviðr heitir,|grǫf þá ina helgu,|er stendr á Goðþjóðu,|stein þann inn fagra,|er stendr á stǫðum Danpar,|hálfar herváðir,|þær er Heiðrekr átti,|lǫnd ok lýða|ok ljósa bauga.non
이는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미르크우드라고 불리는 유명한 숲, 고트족 땅에 있는 성스러운 무덤, 드네프르 강가에 있는 아름다운 돌, 헤이드레크가 소유했던 갑옷의 절반, 땅과 신하들, 그리고 빛나는 반지!한국어
흘로드는 헤이드레크가 죽은 후 고트족 왕국의 절반을 상속받기 위해 아르헤이마르로 간다. 흘로드는 고트족과 훈족의 경계에 있는 숲과 "성스러운 무덤"을 요구했는데, 이는 고트족의 중요한 성소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배경은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는 저주받았네, 형제여,[1] 내가 네 살해자가 되었네![1] 그것은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니;[1] 노른의 운명은 사악하네.[1]한국어
5. 1. 민족과 지배자들
예전에 훔리는 훈족을 다스리고, 기주르는 가우타르를, 앙간티르는 고트족을 다스렸고, 발다르는 데인족을, 발리르는 키아르를, 용감한 알레크는 영국 민족을 다스렸다.여러 민족과 그들의 지배자들을 묘사하는 첫 구절에서 예아츠(가우타르)와 그들의 왕 기주르가 훈족 바로 다음에 나오는 점이 흥미롭다. 논리적으로는 고트족과 그들의 왕 앙간티르가 등장해야 할 위치이다.[1] 발다르는 구드룬아르크비다 II에서 데인족의 왕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5. 2. 흘로드의 요구
헤이드레크가 죽은 후, 흘로드는 고트족 왕국의 절반을 상속받기 위해 아르헤이마르로 간다. 그의 요구는 고트족과 훈족의 경계에 있는 숲과 "성스러운 무덤"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는 고트족의 중요한 성소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배경은 알려져 있지 않다.hrís þat it mæra,|er Myrkviðr heitir,|grǫf þá ina helgu,|er stendr á Goðþjóðu,|stein þann inn fagra,|er stendr á stǫðum Danpar,|hálfar herváðir,|þær er Heiðrekr átti,|lǫnd ok lýða|ok ljósa bauga.non
이는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미르크우드라고 불리는 유명한 숲, 고트족 땅에 있는 성스러운 무덤, 드네프르 강가에 있는 아름다운 돌, 헤이드레크가 소유했던 갑옷의 절반, 땅과 신하들, 그리고 빛나는 반지!한국어
5. 3. 앙간튀르의 탄식
우리는 저주받았네, 형제여,[1] 내가 네 살해자가 되었네![1] 그것은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니;[1] 노른의 운명은 사악하네.[1]참조
[1]
간행물
Reallexikon der germansichen Altertumskunde
https://books.google[...]
Walter de Gruyter
[2]
서적
Tolk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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