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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인인의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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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데인인의 사적》은 1208년 이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덴마크의 역사서로, 삭소 그라마티쿠스가 라틴어로 저술했다. 이 책은 16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유럽 신화와 덴마크의 전설, 중세 역사를 다루고 있다. 특히 3권과 4권에 등장하는 암레트 왕자의 이야기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모티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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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인인의 사적
개요
제목게스타 다노룸
원어 제목Gesta Danorum
언어라틴어
저자삭소 그라마티쿠스
집필 시기12세기
주제덴마크의 역사
장르역사
구성16권

2. 집필 시기 및 배경

《데인인의 사적》의 집필 시기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학계에서는 대체로 1208년 이전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책의 마지막 권인 제16권의 내용과 서문에 언급된 사건들의 연대를 통해 추론할 수 있다.

제16권은 1186년 크누트 6세의 포모제 정복을 다루고 있지만, 안데르스 수네쇤 대주교에게 헌정된 서문에서는 1208년 덴마크의 엘베강 북안 정복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최소한 서문이 작성된 1208년 이후에 전체적인 집필 작업이 마무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책의 구성 순서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전체 분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제14권은 1178년 압살론 대주교 임명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책의 방대한 분량과 발데마르 1세보다 압살론을 더 중요하게 다루는 점을 고려하여 가장 먼저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발데마르 1세의 말년과 크누트 6세의 초년을 다룬 제15권과 제16권이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스벤 아게센의 《덴마크 왕국 약사》에는 삭소가 스벤 2세가 등장하는 제11권에서 제13권을 쓰기로 했다는 언급이 있어, 이 부분이 그 다음으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제1권에서 제10권이 쓰여졌다는 가설이 있는데, 이는 제16권의 마지막 사건(1186년)과 서문 작성 시기(1208년) 사이의 22년이라는 시간 간격을 설명해준다.

2. 1. 집필 시기 관련 논쟁

《데인인의 사적》의 집필 시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여러 연구를 통해 1208년 이후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책의 마지막 부분인 제16권은 1186년 크누트 6세가 보구스와프 1세가 다스리던 포모제를 정복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안데르스 수네쇤 대주교에게 헌정된 서문에서는 1208년 덴마크가 엘베강 북안을 정복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어, 최소 1208년 이후에 집필이 완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 분량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제14권은 1178년 압살론 대주교의 임명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은 분량이 매우 많고, 발데마르 1세보다 압살론을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 가장 먼저 쓰였고 처음에는 별개의 책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삭소는 발데마르 1세의 말년과 크누트 6세의 초반을 다룬 제15권과 제16권을 추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제11권, 제12권, 제13권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벤 아게센의 덴마크 역사서 《덴마크 왕국 약사》(''Brevis Historia Regum Dacie'', 1186년경 저술)에는 삭소가 스벤 2세가 등장하는 제11권에서 제13권에 해당하는 내용을 쓰기로 결정했다는 언급이 있다. 따라서 제1권부터 제10권까지는 가장 마지막에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가설은 마지막 책(제16권)의 마지막 사건(1186년)과 서문이 쓰여진 시기(1208년) 사이의 22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설명해준다.

2. 2. 집필 배경

《데인인의 사적》은 덴마크의 대주교 압살론의 후원과 의뢰로 집필되었다. 압살론은 덴마크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고, 덴마크 왕국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삭소 그라마티쿠스는 이러한 압살론의 의도에 따라 덴마크의 역사를 장대한 서사시 형태로 구성하였다.

《데인인의 사적》이 정확히 언제 쓰여졌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최소한 1208년 이전에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통설이다. 1186년에 보구스와프 1세가 다스리던 포모제를 크누트 6세가 정복한 것이 마지막 책인 제16권에서 다루는 마지막 사건인데, 안데르스 수네쇤 대주교의 말을 구술한 서문에서는 1208년에 덴마크가 엘베강 북안을 정복한 것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작품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분량의 제14권은 1178년에 압살론이 대주교로 임명되는 부분에서 끝난다. 이 책이 너무 큰데다 압살론 대주교가 국왕 발데마르 1세보다 훨씬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이 책이 가장 먼저 씌어졌으며 애초에 별개의 책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삭소가 이 책을 쓴 뒤, 계획을 확장하여 발데마르 1세의 말년과 크누트 6세의 초년을 다룬 제15권과 제16권을 저술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야 제11권에서 제13권까지를 저술한 것으로 생각된다. 스벤 아게센의 덴마크 역사서 《덴마크 왕국 약사》(''Brevis Historia Regum Dacie'', 1186년경 저술)에 보면 삭소가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는 언급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스벤 2세가 등장하는 제11권에서 제13권에 해당하는 듯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1권에서 제10권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 가설에 따르면 마지막 책의 마지막 사건(1186년)과 서문이 쓰여진 때(1208년) 사이에 22년이라는 간극이 존재하는 이유를 말끔히 설명할 수 있다.

3. 구성 및 내용

《데인인의 사적》은 총 16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권~9권은 북유럽 신화와 반(半)전설적인 덴마크 역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10권~16권은 중세 역사를 다루고 있다. 특히 마지막 3권(14~16권)은 발트 해 남쪽 해안에서의 덴마크 정복과 슬라브족과의 전쟁(북방 십자군)에 대해 묘사하고 있으며, 포라비 슬라브족, 포메라니아인 등 서슬라브족슬라브 신화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14권에는 뤼겐 섬의 사원에 대한 독특한 묘사가 담겨 있다.

3. 1. 제1부: 전설 시대 (제1권 ~ 제9권)

《데인인의 사적》은 대주교압살론의 의뢰로 쓰여진 책으로, 신화 시대부터 12세기 후반까지의 덴마크 역사를 다루고 있다. 주로 라틴어 산문으로 쓰여졌지만, 보충 설명으로 가 삽입된 부분도 있다.

전 16권 중 제1권부터 9권까지는 북유럽 신화와 반(半)전설적인 덴마크 역사를 다룬다. 9권은 고름 늙은왕에 관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각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는 불확실하지만, 5권의 기술을 통해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제1권에서는 덴마크 민족의 시조인 단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앙굴, 아들 훔블레로테르, 손자 스키올드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한다. 최초로 상세하게 묘사된 덴마크 왕은 그람으로, 그의 통치는 스웨덴과 핀란드를 정복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전투에서 죽는 것으로 끝난다. 1권의 대부분은 그람의 아들 하딩의 모험을 다루는데, 덴마크가 스웨덴에게 빼앗기고 하딩이 거인과 오딘의 도움을 받아 이를 되찾으려는 시도에 관한 것이다. 하딩의 후손들은 발트 해를 건너 잉글랜드까지 약탈을 감행하고, 여러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겪으며 결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한다.

제5권부터 9권까지는 암레트가 덴마크 왕의 손자로 소개되며, 그의 아버지의 죽음, 암레트의 복수, 브리튼 공주와의 결혼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프로토 3세의 제국 건설과 그의 고문 에릭 엘로퀀트에 대한 내용, 전설적인 영웅 스타르카드의 모험, 여러 사랑 이야기, 브라벨리르 전투 등이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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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왕들은 굵은 글씨로 표시하고 별표(*)로 표시합니다. 스웨덴 왕들은 단도(†)로 표시합니다.



이름 철자는 올리버 엘튼의 1905년 번역,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덴마크 역사 9권의 첫 번째 책'', 위키문헌에서 가져왔다.

3. 1. 1. 제1권 ~ 제4권

제1권은 덴마크 민족의 시조인 단과 그의 형제 앙굴, 단의 아들 훔블레로테르, 단의 손자 스키올드에 대해 간략하게 다룬다.[1] 그람은 최초로 상세하게 묘사된 덴마크 왕으로, 그의 통치는 스웨덴과 핀란드를 정복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전투에서 죽는 것으로 끝난다.[1] 1권의 대부분은 그람의 아들이자 핀란드 공주 시그네의 아들인 하딩의 모험을 다룬다.[1] 하딩의 모험은 덴마크가 스웨덴에게 빼앗기는 것과 하딩이 거인과 오딘의 도움을 받아 이를 되찾으려는 시도에 관한 것이다.[1] 1권은 하딩이 친구의 죽음을 듣고 자살하는 것으로 끝난다.[1]

하딩의 후손들은 발트 해를 건너 잉글랜드까지 약탈을 감행하고, 여러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겪으며 결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한다.[1]

3. 1. 2. 제5권 ~ 제9권

암레트는 덴마크 왕의 손자로, 그의 아버지는 윌란의 총독인 삼촌에게 살해당했다. 암레트는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을 두려워하여 바보인 척한다. 덴마크의 왕으로서 암레트의 지위를 확보하는 문제, 그가 브리튼으로 돌아가 브리튼 공주와 결혼하는 문제, 공주의 아버지가 암레트의 죽음을 꾸미는 문제, 그리고 모든 구혼자를 살해하는 것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여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프로토 3세의 제국 건설과 그의 뛰어난 노르웨이 출신 고문 에릭 엘로퀀트에 초점을 맞춘다. 결국 프로토는 브리튼, 스칸디나비아, 슬라브족, 훈족을 다스리게 된다. 삭소는 아우구스투스와 많은 유사점을 보인다.

전설적인 영웅 스타르카드의 모험을 따라가는데, 그는 프로토 3세의 타락한 후손들에게 실망한다.

단편적이고 관련 없는 여러 사랑 이야기 모음으로, 이들 중 다수는 방패 소녀를 특징으로 한다.

브라벨리르 전투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으며, 여기에는 하랄드 와르토스와 시구르드 링 간의 전투가 묘사되어 있다. 또한 샤를마뉴에 대항한 작센 전쟁에서 덴마크의 참전, 비아르미아로의 항해, 그리고 스타르카드의 죽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3]

3. 2. 제2부: 역사 시대 (제10권 ~ 제16권)

10세기 이후 덴마크의 역사를 다루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이 주를 이룬다.[3] 발트해 남쪽 해안에서의 덴마크의 정복 활동과 슬라브족과의 전쟁(북방 십자군)에 대한 내용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3] 서슬라브족(폴라비 슬라브족, 포메라니아인)과 슬라브 신화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3] 특히, 14권에는 뤼겐섬의 사원에 대한 독특한 묘사가 담겨 있다.[3]

4. 판본 및 번역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원본 필사본은 거의 소실되었고, 안게르스 파편, 라센 파편, 칼-라스무센 파편, 플레스너 파편 이렇게 네 개의 파편만 남아 있다. 이 중 안게르스 파편이 가장 분량이 많으며, 삭소의 친필임이 유일하게 확인되었다. 다른 파편들은 1275년경에 만들어진 사본으로 추정된다. 네 파편 모두 덴마크 코펜하겐덴마크 왕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원본은 소실되었지만 그 내용은 살아남았다. 1510년 ~ 1512년, 파리에서 일하던 덴마크인 번역가 크리스티에른 페데르센은 삭소의 원전 사본을 찾기 위해 덴마크 방방곡곡을 뒤졌다. 당시 삭소의 원전은 거의 모두 소실되었고, 그 내용 대부분은 《윌란 연대기》에 실려 있는 컴펜디움 삭소니스라는 요약문을 통해서 알려져 있었다. 《데인인의 사적》이라는 제목 자체도 그 요약문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삭소 본인이 자신의 저술에 어떤 제목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크리스티에른 페데르센은 룬드(현 스웨덴 룬드)의 비르게르 군네르센 대주교의 수집품 속에서 마침내 사본을 발견했고, 대주교는 기꺼이 페데르센에게 사본을 빌려주었다. 인쇄공 조도쿠스 바디우스의 도움으로 《데인인의 사적》은 개정 및 인쇄될 수 있었다.

4. 1. 필사본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원본 필사본은 거의 소실되었고, 안게르스 파편, 라센 파편, 칼-라스무센 파편, 플레스너 파편 이렇게 네 개의 파편만이 남아 있다. 이 중 안게르스 파편이 가장 분량이 많으며, 유일하게 삭소의 친필임이 확인되었다. 다른 파편들은 1275년경에 만들어진 사본으로 추정된다. 네 파편 모두 덴마크 코펜하겐덴마크 왕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필사본 파편
파편 이름분량특징소장처
안게르스 파편가장 큼삭소의 친필로 확인됨덴마크 왕립도서관
라센 파편1275년경 사본덴마크 왕립도서관
칼-라스무센 파편1275년경 사본덴마크 왕립도서관
플레스너 파편1275년경 사본덴마크 왕립도서관


4. 2. 인쇄본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데인인의 사적》 원본은 거의 소실되었고, 안게르스 파편, 라센 파편, 칼-라스무센 파편, 플레스너 파편의 네 파편만 남아있다.[4] 이 중 안게르스 파편이 가장 분량이 많으며, 삭소의 친필임이 유일하게 확인되었다.[4] 다른 파편들은 1275년경 만들어진 사본으로 추정된다.[4] 네 파편 모두 코펜하겐덴마크 왕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4]

최초의 인쇄본은 1514년 크리스티에른 페데르센이 파리에서 출판한 라틴어판 《Danorum Regum heroumque Historiaela》(데인인의 임금과 영웅들의 역사)이다.[4] 크리스티에른 페데르센은 룬드의 대주교 비르게르 군네르센에게서 사본을 빌려 조도쿠스 바디우스의 도움을 받아 이 책을 출판했다.[4] 이후 《데인인의 사적》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여러 판본이 출판되고 있다.

4. 2. 1. 라틴어 판본

크리스티에른 페데르센의 1514년 파리 판본 제1면


크리스티에른 페데르센이 1514년 3월 15일 프랑스 파리에서 조도쿠스 바디우스를 통해 펴낸 라틴어 판본이 삭소의 저술을 최초로 온전히 인쇄한 것이다. 출간 당시 제목은 《데인인의 임금과 영웅들의 역사》(Danorum Regum heroumque Historiaela)였다.[4] 판권장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4]

> ''impressit in inclyta Parrhisorum academia Iodocus Badius Ascensius Idibus Martiis. MDXIIII. Supputatione Romana.'' (the Ides of March, 1514).

제1면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4]

Danorum Regum heroumque Historiae stilo eleganti a Saxone Grammatico natione Zialandico necnon Roskildensis ecclesiae praeposito, abhinc supra trecentos annos conscriptae et nunc primum literaria serie illustratae tersissimeque impressae.la

이는 한국어로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4]

> 삼백여 년도 더 전에 셸란섬의 주민이자 로스킬레 교회의 주임 사제셨던 삭소 그라마티쿠스 옹의 유려한 문체로 쓰여졌으며, 이제 최초로 정통 학술서로서 올바르게 도해를 넣고 인쇄한 데인인의 임금들과 영웅들의 사적.

1510년에서 1512년 사이, 파리에서 활동하던 덴마크 번역가 크리스티에른 페데르센은 삭소의 작품 사본을 찾기 위해 덴마크 전역을 수색했으나, 당시 삭소의 작품은 거의 모두 유실된 상태였다.[4] 당시 삭소 작품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은 약 1342년경의 ''Chronica Jutensis''에 수록된 요약본 ''Compendium Saxonis''에서 나왔으며, 이 요약본에서 Gesta Danorumla이라는 이름이 발견되었다.[4] 삭소 본인이 자신의 작품에 사용한 제목은 알려져 있지 않다.[4]

크리스티에른 페데르센은 마침내 룬드의 대주교 비르거 군네르센 소장품에서 사본을 발견했고,[4] 스코네(당시 덴마크 영토, 현재 스웨덴령)의 비르거 군네르센은 기꺼이 사본을 빌려주었다.[4] 이후 인쇄업자 요도쿠스 바디우스의 도움으로 Gesta Danorumla이 정제되어 인쇄되었다.[4]

현존하는 모든 번역본과 새로운 판본의 출처는 크리스티에른 페데르센의 라틴어본 《데인인의 사적》(Danorum Regum heroumque Historiae)이다.[4]

출판 연도저자제목기타
1514크리스티에른 페데르센Danorum Regum heroumque Historiae[https://archive.org/stream/den-kbd-pil-130017585852-001#page/n426 ]
1534요하네스 오포리누스Saxonis Grammatici Danorum Historiae Libri XVI[https://www.e-rara.ch/bau_1/content/titleinfo/889377 ]
1576필리프 로니케르Danica Historia Libris XVI[https://opacplus.bsb-muenchen.de/Vta2/bsb10143750/bsb:BV001546433?page=9 ]
1645스테판 한센 스테파니우스Saxonis Grammatici Historiæ Danicæ Libri XVI[https://books.google.com/books?id=EVN4cgiYw8kC ]
1771크리스티안 아돌프 클로츠Saxonis Grammatici Historiae Danicae libri XVI
1839페테르 에라스무스 뮐러Saxonis Grammatici Historia Danica
1886알프레드 홀더Saxonis Grammatici Gesta Danorum[https://archive.org/details/saxonisgrammati01saxogoog ]
1931외르겐 올리크, 한스 뢰더Saxonis Gesta Danorum
2005카르스텐 프리이스-옌센Gesta Danorum


4. 2. 2. 덴마크어 번역

크리스티에른 페데르센이 1540년경 덴마크어 번역을 시도했으나 미간행 되었고, 현재는 소실되었다.[4] 욘 투르손스 또한 1555년경 번역을 시도했으나 마찬가지로 미간행 및 소실되었다.[4]

이후 안데르스 쇠렌센 베델이 1575년 ''덴 덴스케 크로니케(Den Danske Krønicke)''라는 제목으로 최초의 덴마크어 번역본을 출판했다.[4] 세이에르 쇼우스볼레는 1752년 ''삭소니스 그라마티키 히스토리아 다니카(Saxonis Grammatici Historia Danica)''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을 출판했다.[4]

N. F. S. 그룬트비는 1818년에서 1822년에 걸쳐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덴마크 연대기(Danmarks Krønike af Saxo Grammaticus)''를 출판했고,[4] 프레데릭 빈켈 혼은 1898년 ''삭소 그라마티쿠스: 덴마크 연대기(Saxo Grammaticus: Danmarks Krønike)''를 출판했다.[4] 외르겐 올리크는 1908년에서 1912년에 걸쳐 ''삭세스 다네사가(Sakses Danesaga)''를 출판했다.[4]

페테르 제에베르그는 2000년에 ''삭소스 단마르크스히스토리(Saxos Danmarkshistorie)''라는 제목으로 덴마크어 완역본을 출판했다.[4]

다음은 덴마크어 번역본 목록이다.

번역자번역 연도제목비고
크리스티에른 페데르센1540년경미간행, 소실
욘 투르손스1555년경미간행, 소실
안데르스 쇠렌센 베델1575년덴 덴스케 크로니케(Den Danske Krønicke)
세이에르 쇼우스볼레1752년삭소니스 그라마티키 히스토리아 다니카(Saxonis Grammatici Historia Danica)
N. F. S. 그룬트비1818년~1822년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덴마크 연대기(Danmarks Krønike af Saxo Grammaticus)
프레데릭 빈켈 혼1898년삭소 그라마티쿠스: 덴마크 연대기(Saxo Grammaticus: Danmarks Krønike)
외르겐 올리크1908년~1912년삭세스 다네사가(Sakses Danesaga)
페테르 제에베르그2000년삭소스 단마르크스히스토리(Saxos Danmarkshistorie)


4. 2. 3. 한국어 번역

현재까지 《데인인의 사적》 전체가 한국어로 완역된 판본은 없다. 다만, 햄릿의 원형이 되는 암레트 왕자 이야기 등 일부 내용이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다.

5. 햄릿과의 관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은 《데인인의 사적》 제3권과 제4권에 등장하는 암레트 왕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1][4] 삭소의 판본에서 오르벤딜과 펭기 형제는 덴마크 왕 뢰리크 슬린게본드에게 유틀란트 통치권을 받는다.[4] 오르벤딜은 뢰리크 왕의 딸 게루트(''햄릿''의 거트루드)와 결혼하여 아들 암레트를 낳는다.[4]

펭기는 형의 결혼과 유틀란트 단독 통치권을 차지하기 위해 오르벤딜을 살해하고, 짧은 애도 기간 후 게루트와 결혼한다.[4] 암레트는 아버지의 복수를 계획하고 유틀란트의 왕이 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삼촌을 죽인 직후 죽지만, 삭소의 암레트는 살아남아 왕국을 다스리며 다른 모험을 떠난다는 점이 다르다.[4]

5. 1. 삭소의 암레트 이야기

암레트는 덴마크 왕의 손자로, 그의 아버지는 윌란의 총독이었으나 삼촌 펭에게 살해당했다.[2] 암레트는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을 두려워하여 바보인 척했다.[2]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은 『데인인의 사적』 3권과 4권에 걸쳐 나오는 덴마크 왕자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며, 주인공 "햄릿"(Hamlet)의 이름은 『데인인의 사적』의 주인공 "암레트"(Amleth, 英語版)의 아나그램으로 여겨진다.[4]

『데인인의 사적』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오웬딜(Orvendil)과 펭기(Fengi)라는 두 형제가 덴마크 왕 로릭 슬륑게본드(Rørik Slyngebond)에게서 유틀란트를 물려받는다. 얼마 후 오웬딜은 로릭의 딸 게루타(Geruth)와 결혼하고, 암레트는 그들의 장남이자 외동아들이었다.[4] 펭기는 형의 결혼에 분개했고, 유틀란트의 지배권을 혼자 차지하고자 오웬딜을 살해한다. 짧은 상을 치른 후 펭기는 게루타와 결혼하고 유틀란트의 단독 지배를 선언한다.[4]

암레트는 이 악행을 알고 몸을 지키기 위해 어리석은 척했다. 말에 탈 때 엉덩이를 향해 앉고 꼬리를 고삐 삼아 잡았다. 어머니와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보낸 스파이를 알아채고 죽여 토막 내어 배수구에 버렸다.[4] 펭기는 암레트를 브리타니아 왕에게 보내 죽이라는 서신을 신하에게 보냈으나, 암레트는 밤중에 그 편지를 신하들을 죽이도록 고쳐 쓴다. 암레트의 총명함을 알아챈 브리타니아 왕은 딸을 아내로 주어 그와 결혼시킨다.[4] 1년 후 귀국한 암레트는 자신의 장례식에 오물투성이로 참석하여 사람들을 웃게 한다. 모두에게 술을 권해 취하게 한 뒤, 연회장에 불을 질러 몰살하고, 경비가 없는 펭기의 침실로 가서 복수한다.[4]

그러나 브리타니아 왕과 펭기 사이에는 동맹이 있었다. 아내를 잃은 지 얼마 안 된 브리타니아 왕은 마음에 안 드는 구혼자를 처형하는 스코틀랜드 여왕에게 결혼을 청하는 위험한 사절로 암레트를 보낸다. 그런데 여왕은 용맹한 암레트와 결혼한다. 귀환한 암레트는 브리타니아 왕과 교전하여 왕을 전사시키고, 두 아내를 데리고 유틀란트로 귀국한다.[4]

5. 2. 셰익스피어의 햄릿

Gesta Danorum영어의 특정 측면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기초를 형성했다. 삭소의 버전은 3권과 4권에 언급되어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매우 유사하다.

삭소의 버전에서 오르벤딜과 펭기라는 두 형제가 덴마크의 왕 뢰리크 슬린게본드에 의해 유틀란트를 통치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르벤딜은 뢰리크 왕의 딸 게루트(''햄릿''의 거트루드)와 결혼한다. 암레트는 그들의 첫째이자 외동아들이다.

펭기는 형의 결혼에 불만을 품게 되었고, 또한 유틀란트를 단독으로 통치하기를 원했기에 오르벤딜을 살해한다. 아주 짧은 애도 기간을 거친 후, 펭기는 게루트와 결혼하여 스스로 유틀란트의 단독 통치자임을 선언한다. 결국 암레트는 아버지의 죽음에 복수하고 삼촌을 살해할 계획을 세워 유틀란트의 새롭고 정당한 왕이 된다. 하지만 햄릿이 셰익스피어 버전에서는 삼촌의 죽음 직후에 죽는 반면, 삭소의 버전에서는 암레트가 살아남아 왕국을 다스리기 시작하여 다른 모험을 계속한다.

『데인인의 사적』은 윌리엄 셰익스피어비극햄릿』의 토대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1] 『햄릿』은 『데인인의 사적』의 3권에서 4권에 걸쳐 이야기되는 덴마크 왕자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며, 주인공 "햄릿"(Hamlet)의 이름은 『데인인의 사적』의 주인공 "암레트"(Amleth, 英語版)의 아나그램으로 여겨진다.[1]

『데인인의 사적』에서 덴마크 왕자 암레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1] 우선 오웬딜(Orvendil)과 펭기(Fengi)라는 두 형제가 등장한다.[1] 그들은 덴마크 왕 로릭 슬륑게본드(Rørik Slyngebond)로부터 유틀란트를 물려받는다.[1] 얼마 지나지 않아 오웬딜은 로릭의 딸 게루타(Geruth)와 결혼한다.[1] 암레트는 그들의 장남이자 외동아들이었다.[1] 펭기는 그들의 결혼에 분개했고, 또한 유틀란트의 지배권을 혼자 차지하기 위해 오웬딜을 살해한다.[1] 짧은 상을 치른 후 펭기는 게루타와 결혼하고 유틀란트의 단독 지배를 선언한다.[1]

이 악행을 알게 된 암레트는 몸을 지키기 위해 어리석은 척한다.[1] 말에 탈 때 엉덩이를 향해 앉고 꼬리를 고삐 삼아 잡았다.[1] 어머니와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스파이가 보내졌지만, 암레트는 이를 알아채고 스파이를 죽여 토막 내어 배수구에 버린다.[1] 펭기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처리하려 암레트를 브리타니아 왕에게 보내 그를 죽이라는 서신을 신하에게 들려 보낸다.[1] 암레트는 그 편지를 밤중에 신하들을 죽이도록 고쳐 쓴다.[1] 암레트의 총명함을 알아챈 브리타니아 왕은 딸을 아내로 주어 그와 결혼시킨다.[1] 1년 후 귀국한 암레트는 자신의 장례식에 오물투성이로 참석하여 참석자들을 웃게 한다.[1] 모두에게 술을 권해 취하게 한 뒤, 연회장에 불을 질러 몰살한다.[1] 그리고 경비가 없는 펭기의 침실로 가서 복수를 한다.[1]

그러나 브리타니아 왕과 펭기 사이에는 동맹이 있었다.[1] 아내를 잃은 지 얼마 안 된 브리타니아 왕은 마음에 안 드는 구혼자를 처형하는 스코틀랜드 여왕에게 결혼을 청하는 위험한 사절로 암레트를 세운다.[1] 그런데 여왕은 용맹한 암레트와 결혼한다.[1] 귀환한 암레트는 브리타니아 왕과 교전하여 왕을 전사시킨다.[1] 암레트는 두 아내를 데리고 유틀란트로 귀국한다.[1]

5. 3. 두 이야기의 차이점

『데인인의 사적』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토대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햄릿』은 『데인인의 사적』 3권과 4권에 걸쳐 나오는 덴마크 왕자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며, 주인공 "햄릿"(Hamlet)의 이름은 『데인인의 사적』의 주인공 "암레트"(Amleth, 英語版)의 아나그램으로 여겨진다.[4]

삭소의 판본에서는 오르벤딜과 펭기라는 두 형제가 덴마크 왕 뢰리크 슬린게본드에게 유틀란트 통치권을 받는다. 얼마 후 오르벤딜은 뢰리크 왕의 딸 게루트(''햄릿''의 거트루드)와 결혼하고, 둘 사이에서 외아들 암레트가 태어난다.[4]

펭기는 형의 결혼과 유틀란트 단독 통치권을 차지하기 위해 오르벤딜을 살해한다. 짧은 애도 기간 후, 펭기는 게루트와 결혼하여 유틀란트의 단독 통치자가 된다. 암레트는 아버지의 복수를 계획하고 유틀란트의 왕이 되지만,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삼촌을 죽인 직후 죽는 반면, 삭소의 암레트는 살아남아 왕국을 다스리며 다른 모험을 떠난다.[4]

암레트는 악행을 숨기기 위해 어리석은 척하며, 말에 거꾸로 타고 꼬리를 고삐 삼아 잡았다. 어머니와의 대화를 엿듣던 스파이를 발견하고 죽여 토막 내 배수구에 버린다. 펭기는 암레트를 브리타니아 왕에게 보내 죽이려 하지만, 암레트는 편지를 바꿔 써 신하들을 죽게 만든다. 브리타니아 왕은 암레트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딸과 결혼시킨다. 1년 후, 암레트는 자신의 장례식에 나타나 사람들을 취하게 하고 불을 질러 몰살시킨 뒤, 펭기의 침실로 가 복수한다.[4]

브리타니아 왕은 펭기와 맺은 동맹 때문에 암레트를 스코틀랜드 여왕에게 보내지만, 여왕은 암레트와 결혼한다. 암레트는 브리타니아 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두 아내와 함께 유틀란트로 돌아온다.[4]

6. 한국의 관점에서의 의의

《데인인의 사적》은 중세 덴마크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지만, 한국의 관점에서는 직접적인 관련성은 적다.

6. 1. 비교사적 연구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데인인의 사적》(라틴어: Gesta Danorumla)에 나오는 특정 이야기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기초가 되었다. 삭소의 판본은 3권과 4권에 언급되어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매우 유사하다. 삭소의 판본에서 오르벤딜과 펭기라는 두 형제가 덴마크의 왕 뢰리크 슬린게본드에 의해 유틀란트를 통치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르벤딜은 뢰리크 왕의 딸 게루트(''햄릿''의 거트루드)와 결혼한다. 암레트는 그들의 첫째이자 외동아들이다.

펭기는 형의 결혼에 불만을 품었고, 유틀란트를 단독으로 통치하기를 원했기에 오르벤딜을 살해한다. 아주 짧은 애도 기간 후, 펭기는 게루트와 결혼하여 스스로 유틀란트의 단독 통치자임을 선언한다. 결국 암레트는 아버지의 죽음에 복수하고 삼촌을 살해할 계획을 세워 유틀란트의 새롭고 정당한 왕이 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버전의 햄릿은 삼촌을 죽인 직후에 죽는 반면, 삭소의 버전에서는 암레트가 살아남아 왕국을 다스리기 시작하여 다른 모험을 계속한다.

참조

[1] 논문 Friendship and Politics in Saxo Grammaticus' Gesta Danorum https://www.persee.f[...] 2005
[2] 논문 Harthgrepa (from Saxo Grammaticus, Gesta Danorum, Book I) https://doi.org/10.3[...] 2007-07-01
[3] 논문 The otherworld journeys of the eighth book of Gesta Danorum https://www.torrossa[...] 1992
[4] 간행물 Cultura Aetatis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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