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복원부인
1. 개요
흥복원부인은 홍주 홍씨 가문 출신으로, 고려 태조 왕건의 후궁이다. 홍규의 딸로, 927년 태조가 운주성을 점령했을 때 태조에게 시집갔다. 태조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으며, 아들 왕직은 후손이 없고, 딸은 태자 왕태와 혼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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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고려의 왕비 -
희비 윤씨
희비 윤씨는 고려 충혜왕의 후궁이자 충정왕의 생모로, 아들 충정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외척인 민씨 가문이 권력을 얻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조선 왕실에 영향을 미친 파평 윤씨 가문 출신이다. -
고려의 왕비 -
순화원비
고려 충선왕의 비인 순화원비는 남양 홍씨로 남양부원군 홍규의 딸이자 공원왕후의 언니이며 자녀는 없었고, 그녀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고려사》에 남아있지 않다. -
홍성군 출신 -
김좌진
김좌진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한국독립당 회장을 역임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훈받았다. -
홍성군 출신 -
한용운
한용운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의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로, 3.1 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불교 혁신과 민족 독립을 위해 헌신했으며, 시집 《님의 침묵》을 통해 저항 문학을 대표했다.
2. 생애
본관은 홍주이다. 충청남도 홍성군(당시 홍주 또는 운주) 출신으로, 삼중대광을 지낸 홍주 홍씨의 시조 홍규의 딸이다. 홍규의 원래 이름은 긍준(兢俊)이었으며, 운주 성주를 지냈다.
927년(태조 10년) 음력 3월, 태조 왕건이 운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자 당시 성주였던 홍규는 자신의 딸을 태조에게 바쳤는데, 이가 바로 흥복원부인이다. 당시 운주(홍주)는 중국 사신들이 드나드는 중요한 항구이기도 했다.
《고려사》 등에는 그녀의 출신과 자녀에 대한 기록 외에 자세한 생애는 전해지지 않는다. 호는 흥복원부인(興福院夫人)이다. 남편 태조와의 사이에서 아들 태자 왕직과 딸 하나를 낳았다. 아들 왕직은 후손이 없었다. 딸의 이름이나 호는 전해지지 않으나, 태조의 제3비인 신명순성왕후의 아들 태자 왕태에게 시집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후 왕위를 신명순성왕후의 다른 아들들인 정종과 광종이 이은 것으로 보아, 사위인 태자 왕태는 일찍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3. 가족 관계
3.1. 아버지
흥복원부인의 아버지는 홍주 홍씨의 시조인 홍규이다. 홍규는 충청남도 홍성군인 홍주(또는 운주) 출신으로, 삼중대광을 지냈다. 그의 원래 이름은 긍준(兢俊)이었으며, 운주의 성주를 지냈다.
927년(태조 10년) 음력 3월, 태조 왕건은 운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때 운주 성주였던 긍준(홍규)은 자신의 딸을 왕건에게 바쳤는데, 이 딸이 바로 흥복원부인이다. 당시 운주(홍주)는 중국 사신들이 오가는 중요한 항구였다.
3.2. 남편
흥복원부인의 남편은 고려를 건국한 제1대 왕 태조(877~943, 재위: 918~943)이다. 927년(태조 10년) 음력 3월, 태조가 운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했을 때, 당시 성주였던 홍규가 자신의 딸을 태조에게 바쳤는데, 그녀가 바로 흥복원부인이었다. 태조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태자 왕직이며 후손은 없었다. 딸은 이름이나 호가 전해지지 않으며, 태조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소생의 장남이자 이복 오빠인 태자 왕태에게 시집갔다.
3.3.1. 아들
태조와의 사이에서 아들인 태자 왕직(太子 王稷)을 낳았다. 왕직은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