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복원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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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흥복원부인은 홍주 홍씨 가문 출신으로, 고려 태조 왕건의 후궁이다. 홍규의 딸로, 927년 태조가 운주성을 점령했을 때 태조에게 시집갔다. 태조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으며, 아들 왕직은 후손이 없고, 딸은 태자 왕태와 혼인했다.

흥복원부인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흥복원부인
원래 이름흥복원부인
본명미상
다른 이름미상
대관식흥복원부인
별명미상
출생일생년 미상
출생지충청남도 홍성군
사망일몰년 미상
사망지충청남도 홍성군
매장지미상
종교불교
가족 관계
부군태조
자녀왕직, 부인 홍씨
부친홍규
모친미상
가문
출신 가문홍주 홍씨
왕조고려
지위
작위고려 태조의 후궁
재위미상
전임자천안부원부인
후임자대량원부인
기타
시호미상
로마자 표기Heungbokwon Buin
한자 표기興福院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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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본관은 홍주이다. 충청남도 홍성군(당시 홍주 또는 운주) 출신으로, 삼중대광을 지낸 홍주 홍씨의 시조 홍규의 딸이다. 홍규의 원래 이름은 긍준(兢俊)이었으며, 운주 성주를 지냈다.

927년(태조 10년) 음력 3월, 태조 왕건이 운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자 당시 성주였던 홍규는 자신의 딸을 태조에게 바쳤는데, 이가 바로 흥복원부인이다. 당시 운주(홍주)는 중국 사신들이 드나드는 중요한 항구이기도 했다.

고려사》 등에는 그녀의 출신과 자녀에 대한 기록 외에 자세한 생애는 전해지지 않는다. 호는 흥복원부인(興福院夫人)이다. 남편 태조와의 사이에서 아들 태자 왕직과 딸 하나를 낳았다. 아들 왕직은 후손이 없었다. 딸의 이름이나 호는 전해지지 않으나, 태조의 제3비인 신명순성왕후의 아들 태자 왕태에게 시집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후 왕위를 신명순성왕후의 다른 아들들인 정종과 광종이 이은 것으로 보아, 사위인 태자 왕태는 일찍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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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복원부인 홍씨의 가계
구분이름비고
아버지홍규(洪規)홍주 홍씨 시조, 삼중대광
남편제1대 태조(太祖)고려의 초대 국왕
아들태자 왕직(太子 王稷)후사 없음
공주 (이름 미상)태조와 신명순성왕후의 아들 태자 왕태와 혼인

3.1. 아버지

흥복원부인의 아버지는 홍주 홍씨의 시조인 홍규이다. 홍규는 충청남도 홍성군인 홍주(또는 운주) 출신으로, 삼중대광을 지냈다. 그의 원래 이름은 긍준(兢俊)이었으며, 운주의 성주를 지냈다.

927년(태조 10년) 음력 3월, 태조 왕건은 운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때 운주 성주였던 긍준(홍규)은 자신의 딸을 왕건에게 바쳤는데, 이 딸이 바로 흥복원부인이다. 당시 운주(홍주)는 중국 사신들이 오가는 중요한 항구였다.

3.2. 남편

흥복원부인의 남편은 고려를 건국한 제1대 왕 태조(877~943, 재위: 918~943)이다. 927년(태조 10년) 음력 3월, 태조가 운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했을 때, 당시 성주였던 홍규가 자신의 딸을 태조에게 바쳤는데, 그녀가 바로 흥복원부인이었다. 태조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태자 왕직이며 후손은 없었다. 딸은 이름이나 호가 전해지지 않으며, 태조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소생의 장남이자 이복 오빠인 태자 왕태에게 시집갔다.

3.3. 자녀

남편 태조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낳았다. 아들은 태자 왕직이며, 딸은 태조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소생의 장남인 태자 왕태와 혼인하였다.

3.3.1. 아들

태조와의 사이에서 아들인 태자 왕직(太子 王稷)을 낳았다. 왕직은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

3.3.2. 딸

흥복원부인과 태조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이름이나 호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녀는 이복 오빠이자 태조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소생의 장남인 태자 왕태와 혼인하였다. 그러나 남편인 왕태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그의 동생들인 정종과 광종이 차례로 왕위를 계승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일찍 사망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