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순성왕후
1. 개요
신명순성왕후는 고려 태조 왕건의 제3비로, 충주 유씨 가문 출신이다. 유긍달의 딸로, 왕건과의 정략 결혼을 통해 고려 왕실에 들어왔으며, 광종 때 신명순성왕태후로 추존되었다. 슬하에 5명의 왕자와 2명의 공주를 두었으며, 정종과 광종 두 왕의 어머니이다. 그녀의 자녀들은 고려 초기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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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의 왕비 -
신성왕후
신성왕후는 신라 왕족 출신으로 태조 왕건의 다섯 번째 왕후이며, 경순왕의 사촌누이로서 그의 항복 후 태조와 혼인하여 아들 왕욱을 낳았고, 왕욱의 아들 현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태후로 추존되었다. -
고려 태조의 왕비 -
신혜왕후
신혜왕후 류씨는 고려 태조 왕건의 왕후이며, 고려 건국을 보필하고 국사 보좌에 기여했으며, 태조와 합장된 현릉에 묻혔다. -
충주 유씨 -
유애리
유애리는 1981년 KBS 8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하여 다양한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KBS 주요 보직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건국대학교 등에서 활동하며 방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여러 상을 수상한 대한민국의 아나운서이다. -
충주 유씨 -
유진룡
유진룡은 대한민국의 행정가이자 학자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장관을 역임하며 진보적인 문화 정책을 추진했고, 장관직 이후에는 대학교 교수 및 부총장, 수림문화재단 이사장, 예술의전당 이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
고려의 왕태후 -
순경태후
순경태후는 김약선의 딸이자 최우의 외손녀로 고려 원종의 왕비이며 충렬왕의 어머니로, 사후 왕후와 태후로 추존되었고 원나라로부터 '고려 왕비' 칭호를 받았으며 능은 강화 가릉이다. -
고려의 왕태후 -
안혜왕후
안혜왕후는 고려 희종과 성평왕후의 딸로 고종의 왕비가 되었으며, 고종과의 사이에서 원종 등을 낳고 1232년 사망 후 안혜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아들 원종의 즉위 후 왕태후로 추존되었다.
2. 생애
유(劉)씨이며,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본관은 충주로, 후삼국시대 충주 지역의 호족이었던 유긍달(劉兢達)의 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호족 혼인동맹 정책에 따라 정략결혼을 하였다. 만약 신명순성왕후가 900년생이라면 왕건과의 혼인 시기는 왕건이 태조로 즉위한 이후가 가장 유력하며, 물론 즉위 이전에 혼인했을 가능성도 있다.
신명왕후(神明王后)로도 알려져 있으며, 광종 때 신명순성왕태후(神明順成王太后)로 추존되었다. 왕후로서의 시호는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시호의 왕태후에서 왕후로 바꿔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 고려사에는 간혹 신명왕태후로 기록된 경우도 있다(고려사 열전 종실 편). 시호가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에 대한 기록은 없고 대부분의 역사서에서 신명순성왕태후라 기록되어 있기에 처음 받은 시호가 신명왕태후였는지는 확인할 사료가 부족하다. 이 때문인지 2000년 이후로는 신명왕후보다 신명순성왕후로 표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고려사 세가 정종 편과 고려사 열전 신명순성왕태후 편에는 순성(順成)과 발음이 같은 순성(順聖)으로 표기된 기록도 있다. 고려사는 조선시대에 쓰여졌으며 사료가 부족해 인명의 오류와 누락이 상당히 많다.
3. 두 군주의 어머니
슬하에 왕자 5명과 공주 2명을 두었는데, 왕건의 29명의 부인 중 가장 많은 자식을 둔 왕후이다. 왕건에게 가장 많은 총애를 받은 부인이었던 듯하며, 충주 유씨 가문은 같은 호족 출신인 혜종의 가문에 비해 가문의 위세가 훨씬 강했다. 충주 유씨 가문은 다른 가문과의 혼인 결합을 통해 가문의 세력을 키워나갔다.
태자 왕태는 919년에서 944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별다른 기록이 없어 요절한 것으로 보인다. 흥복원부인의 딸과 혼인했으나, 후사가 없어 적어도 15세 이후에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차남 왕요는 고려 제3대 왕 정종이며, 3남 왕소는 고려 제4대 왕 광종으로서 국가의 기반을 확립한 왕이다.
혜종의 재위 기간이 3년이 채 되지 않아, 태조에 이어 국가를 정비할 역할이 그녀의 소생들에게 넘어갔다. 두 아들 모두 국가 쇄신에 진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종은 요절해 뜻을 다 이루지 못했지만, 광종은 초기 고려의 체제를 확립한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4남 왕정은 경종의 장인이 되어 사후 문원대왕으로 추존되었다. 태조 왕건의 제6비 정덕왕후의 장녀 문혜왕후와 혼인했다.
5남은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 증통국사로 불렸다.
장녀 낙랑공주는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에게 시집갔다. 935년~936년에 경순왕에게 시집간 것으로 추정되어 낙랑공주가 왕요나 왕소보다 나이가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요절한 왕태보다 나이가 많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차녀 흥방궁주는 태조 왕건의 제6비 정덕왕후 류씨의 삼남이자 이복 오빠인 원장태자와 혼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