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1. 개요
1919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대회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우루과이가 참가했다. 각 팀이 서로 한 번씩 겨루는 풀 리그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승리 시 2점, 무승부 시 1점, 패배 시 0점을 얻었다. 브라질과 우루과이가 승점 5점으로 동률을 이루어, 플레이오프 경기를 통해 브라질이 1-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득점왕은 4골을 기록한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와 네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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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축구 -
코파 델 레이 1919
코파 델 레이 1919는 스페인 축구 토너먼트 대회로 아레나스 게초가 FC 바르셀로나를 꺾고 우승했으며, 각 지역 선수권 대회를 통해 참가 자격을 얻은 여러 구단들이 참가했고 결승전에서 아레나스 게초가 첫 우승을 달성했다. -
1919년 축구 -
1919 코파 델 레이 결승전
1919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은 FC 바르셀로나와 아레나스 클럽 데 게초 간의 축구 경기로, 바르셀로나가 승리하여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했다. -
1919년 5월 -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은 제1차 세계 대전 패배 후 바이에른에서 수립된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았지만, 바이마르 공화국 군대에 의해 1919년 붕괴되었다. -
1919년 5월 -
1919년 5월 29일 일식
1919년 5월 29일 일식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관측되었으며, 중력에 의한 빛의 휨 현상을 관찰하여 이론을 증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브라질에서 개최된 국제 축구 대회 -
1950년 FIFA 월드컵
1950년 FIFA 월드컵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브라질에서 개최되었으며, 13개국이 참가하여 조별 리그 후 최종 리그를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 우루과이가 브라질을 꺾고 우승하여 '마라카낭의 비극'을 낳았다. -
브라질에서 개최된 국제 축구 대회 -
201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1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은 FIFA 주관으로 브라질에서 개최되어 브라질, 각 대륙 선수권 우승팀, 2010년 FIFA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 등 8개국이 참가하여 브라질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으며, 골라인 기술이 처음 사용되고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는 등 여러 화제를 낳았다.
2. 대회 형식
본선 예선은 없었으며,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우루과이가 참가하였다. 모든 팀은 단일 리그에서 서로 경쟁했으며, 승리 시 2점, 무승부 시 1점, 패배 시 0점이 주어졌다. 순위표에서 동점이 발생할 경우, 우승팀을 결정하기 위해 플레이오프 경기가 개최될 예정이었다.
4. 참가 선수 명단
참가 팀 전체 명단은 1919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선수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5. 경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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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5월 11일: 브라질 6 – 0 칠레 (리우데자네이루)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Arthur Friedenreich포르투갈어 19분, 38분, 76분
네코/Neco포르투갈어 21분, 83분
하롤두 도밍게스/Haroldo Domingues포르투갈어 79분
* 1919년 5월 13일: 아르헨티나 2 – 3 우루과이 (리우데자네이루)
카를로스 이사기레 34분
마누엘 바렐라 79분 (자책골)
카를로스 스카로네 19분
엑토르 스카로네 23분
이사벨리노 그라딘 85분
* 1919년 5월 17일: 우루과이 2 – 0 칠레 (리우데자네이루)
카를로스 스카로네 31분
호세 페레스 43분
* 1919년 5월 18일: 브라질 3 – 1 아르헨티나 (리우데자네이루)
에이토르 22분
아밀카르 바르부이 57분
아돌포 밀론 주니오르 77분
카를로스 이사기레 65분
* 1919년 5월 22일: 아르헨티나 4 – 1 칠레 (리우데자네이루)
에드윈 클라르케 10분, 23분, 62분
카를로스 이사기레 13분
알프레도 프랑스 33분
* 1919년 5월 26일: 우루과이 2 – 2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이사벨리노 그라딘 13분
카를로스 스카로네 17분
네코/Neco포르투갈어 29분, 6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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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은 다른 각 팀과 한 번씩 경기를 치렀다. 승리 시에는 2점, 무승부 시에는 1점, 패배 시에는 0점을 부여했다.
1919년 5월 29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플레이오프 경기가 열렸다. 연장전 끝에 프리덴라이히의 득점으로 브라질이 1-0으로 승리했다. 경기는 에스타지우 다스 라란제이라스에서 진행되었으며, 심판은 후안 P. 바르베라 (아르헨티나)였다.
5.1. 풀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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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5월 11일: 브라질 6 – 0 칠레 (리우데자네이루)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Arthur Friedenreich포르투갈어 19분, 38분, 76분
네코/Neco포르투갈어 21분, 83분
하롤두 도밍게스/Haroldo Domingues포르투갈어 79분
* 1919년 5월 13일: 아르헨티나 2 – 3 우루과이 (리우데자네이루)
카를로스 이사기레 34분
마누엘 바렐라 79분 (자책골)
카를로스 스카로네 19분
엑토르 스카로네 23분
이사벨리노 그라딘 85분
* 1919년 5월 17일: 우루과이 2 – 0 칠레 (리우데자네이루)
카를로스 스카로네 31분
호세 페레스 43분
* 1919년 5월 18일: 브라질 3 – 1 아르헨티나 (리우데자네이루)
에이토르 22분
아밀카르 바르부이 57분
아돌포 밀론 주니오르 77분
카를로스 이사기레 65분
* 1919년 5월 22일: 아르헨티나 4 – 1 칠레 (리우데자네이루)
에드윈 클라르케 10분, 23분, 62분
카를로스 이사기레 13분
알프레도 프랑스 33분
* 1919년 5월 26일: 우루과이 2 – 2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이사벨리노 그라딘 13분
카를로스 스카로네 17분
네코/Neco포르투갈어 29분, 6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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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은 다른 각 팀과 한 번씩 경기를 치렀다. 승리 시에는 2점, 무승부 시에는 1점, 패배 시에는 0점을 부여했다.
5.1.1. 상세 경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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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5월 11일: 브라질 6 – 0 칠레 (리우데자네이루)
* 1919년 5월 13일: 아르헨티나 2 – 3 우루과이 (리우데자네이루)
* 1919년 5월 17일: 우루과이 2 – 0 칠레 (리우데자네이루)
* 1919년 5월 18일: 브라질 3 – 1 아르헨티나 (리우데자네이루)
* 1919년 5월 22일: 아르헨티나 4 – 1 칠레 (리우데자네이루)
* 1919년 5월 26일: 우루과이 2 – 2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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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은 다른 각 팀과 한 번씩 경기를 치렀다. 승리 시 2점, 무승부 시 1점, 패배 시 0점을 부여했다.
* 1919년 5월 11일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Arthur Friedenreich포르투갈어 19분, 38분, 76분
네코/Neco포르투갈어 21분, 83분
하롤두 도밍게스/Haroldo Domingues포르투갈어 79분
* 1919년 5월 13일
카를로스 이사기레 34분
마누엘 바렐라 79분 (자책골)
카를로스 스카로네 19분
엑토르 스카로네 23분
이사벨리노 그라딘 85분
* 1919년 5월 17일
카를로스 스카로네 31분
호세 페레스 43분
* 1919년 5월 18일
에이토르 22분
아밀카르 바르부이 57분
아돌포 밀론 주니오르 77분
카를로스 이사기레 65분
* 1919년 5월 22일
에드윈 클라르케 10분, 23분, 62분
카를로스 이사기레 13분
알프레도 프랑스 33분
* 1919년 5월 26일
이사벨리노 그라딘 13분
카를로스 스카로네 17분
네코/Neco포르투갈어 29분, 63분
5.2. 플레이오프
1919년 5월 29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플레이오프 경기가 열렸다. 연장전 끝에 프리덴라이히의 득점으로 브라질이 1-0으로 승리했다. 경기는 에스타지우 다스 라란제이라스에서 진행되었으며, 심판은 후안 P. 바르베라 (아르헨티나)였다.
7. 득점 선수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왼쪽)와 네코, 최다 득점자
4골
*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 네코
3골
* 에드윈 클라르케
* 카를로스 이사기레
* 카를로스 스카로네
2골
* 이사벨리노 그라딘
1골
* 아밀카르
* 하롤두
* 헤이토르
* 밀론
* 알프레도 프랑스
* 호세 페레스
* 엑토르 스카로네
자책골
* 마누엘 바렐라 (아르헨티나)
8. 기타
결승전 다음 날, 우루과이 골키퍼 로베르토 체리는 칠레와의 경기에서 골을 막으려다 부상을 입어 리우데자네이루의 병원에서 탈장으로 사망했다. 당시에는 교체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체리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로 경기의 나머지 시간을 소화해야 했다.
브라질과 우루과이는 1919년 6월 19일에 친선 경기("코파 리오 브랑코")를 계획했지만, 체리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우루과이 팀은 경기를 거절했다.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 팀을 대신할 것을 제안했고, 브라질 축구 연맹은 이를 수락하여 고(故) 우루과이 골키퍼를 기리는 "코파 로베르토 체리"로 경기가 열렸다.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의 전통적인 하늘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고, 브라질은 우루과이 클럽 페냐롤의 유니폼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