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독일 대통령 선거
1. 개요
1925년 독일 대통령 선거는 결선투표제 방식으로 치러졌으며,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해 실시되었다. 1차 투표에서는 카를 야레스, 오토 브라운, 빌헬름 마르크스, 에른스트 텔만 등이 후보로 나섰으나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2차 투표가 진행되었다. 2차 투표에서는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48.3%를 얻어 45.3%를 얻은 빌헬름 마르크스를 꺾고 당선되었다. 공산당의 텔만 후보가 2차 투표에도 출마한 것이 마르크스의 패배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좌파 세력의 분열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 국가 | 바이마르 공화국 |
|---|---|
| 선거 유형 | 대통령 선거 |
| 이전 선거 | 1919년 독일 대통령 선거 |
| 이전 선거 연도 | 1919년 |
| 다음 선거 | 1932년 독일 대통령 선거 |
| 다음 선거 연도 | 1932년 |
| 선거 날짜 | 1925년 3월 29일 (1차 투표) 1925년 4월 26일 (2차 투표) |
| 투표율 | 68.87% (1차 투표) 77.56% (2차 투표) |
| 후보 1 | 파울 폰 힌덴부르크 |
|---|---|
| 소속 정당 | 무소속 지원 정당: |
| 지원 정당 목록 | DNVP DVP BVP NSDAP WP BB DHP Stahlhelm JDO |
| 득표수 | 14,655,641 |
| 득표율 | 4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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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2 | 빌헬름 마르크스 |
|---|---|
| 소속 정당 | 중앙당 지원 정당: |
| 지원 정당 목록 | SPD 중앙당 DDP |
| 득표수 | 13,751,605 |
| 득표율 | 4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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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3 | 에른스트 텔만 |
|---|---|
| 소속 정당 | 독일 공산당 |
| 득표수 | 1,931,151 |
| 득표율 | 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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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책 | 대통령 |
|---|---|
| 선거 전 대통령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
| 선거 전 소속 정당 | 독일 사회민주당 |
| 선거 후 대통령 | 파울 폰 힌덴부르크 |
| 선거 후 소속 정당 | 무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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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통령 선거 -
1932년 독일 대통령 선거
1932년 독일 대통령 선거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파울 폰 힌덴부르크의 재선 도전, 아돌프 히틀러와 에른스트 텔만 등 주요 지도자들의 출마로 혼전 끝에 힌덴부르크가 재선에 성공했으나, 히틀러의 높은 득표율은 나치당의 부상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불안한 미래를 보여주었다. -
독일의 대통령 선거 -
2017년 독일 대통령 선거
2017년 독일 대통령 선거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가 사회민주당 등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어 2017년 3월 19일에 취임하였다. -
파울 폰 힌덴부르크 -
타넨베르크 전투 (1914년)
1914년 동프로이센에서 독일 제8군이 러시아 제2군을 격파하며 러시아군의 침공을 저지한 타넨베르크 전투는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를 스타로 만들었으나 서부 전선의 취약성을 드러냈고 러시아군의 보급 및 지휘 문제와 독일군의 정보전이 승패에 영향을 미쳤다. -
파울 폰 힌덴부르크 -
LZ 129 힌덴부르크
LZ 129 힌덴부르크는 독일 제펠린 회사에서 제작한 대형 여객 비행선으로, 수소 가스를 이용해 대서양 횡단 운송에 사용되었으나, 1937년 화재로 파괴되어 비행선 여객 운송 시대가 종말을 맞았다. -
바이마르 공화국의 선거 -
1932년 독일 대통령 선거
1932년 독일 대통령 선거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파울 폰 힌덴부르크의 재선 도전, 아돌프 히틀러와 에른스트 텔만 등 주요 지도자들의 출마로 혼전 끝에 힌덴부르크가 재선에 성공했으나, 히틀러의 높은 득표율은 나치당의 부상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불안한 미래를 보여주었다. -
바이마르 공화국의 선거 -
1919년 독일 대통령 선거
1919년 독일 대통령 선거에서 프리드리히 에베르트가 73.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며, 투표율은 89.6%였다.
2. 선거 제도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 선거는 결선 투표제였으나, 결선 후보들은 후보직을 양보할 수 있었고, 원하는 이는 결선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 1차 투표에서는 과반수의 득표가 있어야 당선될 수 있었지만, 2차 투표에서는 최다 득표자가 당선될 수 있었다. 1차 투표의 후보가 아니더라도, 2차 투표에 후보로 입후보하는 것이 가능했다.
3. 배경
1925년 2월 28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3월 9일 독일 국회는 1차 투표를 3월 29일에, 2차 투표를 4월 26일에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3월 10일에는 발터 지몬스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선출되었다. 이번 선거는 독일에서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첫 번째 선거였다.
1차 투표에서는 과반수 득표를 해야 당선될 수 있었지만, 2차 투표에서는 최다 득표자가 당선될 수 있었다. 1차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후보도 2차 투표에 입후보할 수 있었다.
1차 투표 결과, 카를 자레스 부총리가 전쟁 영웅이었던 힌덴부르크 장군을 지지하며 사퇴했다. 왕당파였던 힌덴부르크는 빌헬름 2세를 만난 뒤 국방군의 종용으로 출마를 결심했고, 독일 인민당, 독일 국가인민당, 바이에른 인민당 등 보수 정당들이 그를 지지하며 사퇴하였다.
이에 맞서 사회민주당, 중앙당, 독일 민주당은 힌덴부르크의 표를 분산시키기 위해 중앙당의 빌헬름 마르크스 전 총리를 단일 후보로 내세웠다. 그러나 독일 공산당의 에른스트 텔만 후보는 2차 투표에도 참여하였다.
4. 후보
1925년 독일 대통령 선거에는 여러 정당과 후보들이 참여했다. 주요 후보와 지지 정당은 다음과 같다.
1차 투표에서 1위였던 카를 자레스는 파울 폰 힌덴부르크를 지지하며 사퇴했다. 빌헬름 2세를 만난 힌덴부르크는 국방군의 종용으로 출마했고, 독일인민당, 독일국민당, 바이에른 인민당 등 보수 정당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에 맞서 사회민주당, 중앙당, 민주당은 빌헬름 마르크스 전 총리를 단일 후보로 내세웠으나, 공산당의 에른스트 텔만은 2차 투표에도 참여했다.
4.1. 1차 투표
1차 투표에서는 어떤 후보도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했다. 1차 투표에서 당선되려면 절대 다수, 즉 과반수 득표가 필요했다.
독일 공산당(KPD)은 처음으로 후보를 지명했다. 중앙 위원회는 3월 3일에 에른스트 텔만을 선출했다. 카를 야레스는 3월 12일 독일 인민당(DVP)과 독일 국가인민당(DNVP)의 공동 후보로 지명되었다.
대부분의 우익 민족주의 운동 정당들은 타협 후보로 야레스를 지지했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당이 에리히 루덴도르프를 지지하도록 했다. 히틀러는 나중에 힌덴부르크를 지지했다. 1925년 5월, 히틀러는 자신의 결정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정당들을 처벌하며 나치당이 그들과 협력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후보인 오토 브라운은 전 프로이센 총리였으며, 잘 알려지고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독일 중앙당(중앙당)의 후보인 빌헬름 마르크스는 당의 의장이자 전 독일 총리였다. 다른 중요한 후보는 독일 민주당(DDP)의 빌리 헬파흐였다. 독일 민족 자유당(DVFP)은 에리히 루덴도르프를 내세웠지만, 투표에서 미미한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4.2. 2차 투표
--
공산당이 후보를 계속 내세우면서 진보 진영이 분열되었고, 결국 왕당파인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1차 투표 이후, 사회민주당, 중앙당, 민주당(바이마르 연합)은 1차 투표 결과 득표수가 많은 오토 브라운 보다 전 총리이자 지명도가 높은 빌헬름 마르크스가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그를 단일 후보로 결정했다. 한편, 국가인민당 등 우익 세력은 바이마르 연합이 단결하는 것에 우려하여, 이미 은퇴한 전 참모총장이자 국민적 영웅인 힌덴부르크에게 출마를 요청했다. 힌덴부르크는 처음에는 네덜란드에 있던 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를 배려하여 출마를 거절했지만, 빌헬름 2세의 허가가 떨어지자 2차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의사를 굳혔다.
바이에른 인민당은 같은 가톨릭인 중앙당과 우호 관계에 있었고(양당 모두 원래 하나의 정당이었다), 가톨릭 신자인 마르크스를 지원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당내 보수층에 밀려 개신교 신자인 힌덴부르크(참고로 그의 조상 중에는 마르틴 루터가 있다)를 지지하게 되었다. 나치당 등 국수주의 세력은 1차 투표에서는 루덴도르프를 지지했지만, 힌덴부르크 지지로 돌아섰다. 공산당은 바이마르 연합과의 협력 없이 텔만을 다시 후보로 내세웠다.
5. 1차 투표 결과
| 대통령 후보 | 정당 | 득표수 | 지지율 |
|---|---|---|---|
| 카를 자레스 | 독일 인민당-독일 국가인민당 | 10,416,658 | 38.8% |
| 오토 브라운 | 독일 사회민주당 | 7,802,497 | 29.0% |
| 빌헬름 마르크스 | 독일 중앙당 | 3,887,734 | 14.5% |
| 에른스트 텔만 | 독일 공산당 | 1,871,815 | 7.0% |
| 빌리 헬파흐 | 독일 민주당 | 1,568,398 | 5.8% |
| 하인리히 헬트 | 바이에른 인민당 | 1,007,450 | 3.7% |
| 에리히 루덴도르프 | 독일 민족자유당 | 285,793 | 1.1% |
| 기타 | 25,761 | 0.1% | |
| 무효/기권 | 150,654 | 0.6% | |
| 합계 | 26,866,106 | 100.0% | |
| 등록유권자/투표율 | 39,226,138 | 68.5% | |
| 출처: Nohlen & Stöver | |||
| 선거구 | 공산당 | 사민당 | 민주당 | 중앙당 | 바이에른 인민당 | 인민당 | 민족자유당 | 기타 |
|---|---|---|---|---|---|---|---|---|
| 텔만 | 브라운 | 헬파치 | 마르크스 | 헬트 | 자레스 | 루덴도르프 | ||
| 동프로이센 | 4.8 | 24.2 | 3.5 | 7.4 | 0.3 | 58.4 | 1.2 | 0.2 |
| 베를린 | 16.6 | 36.5 | 11.1 | 5.2 | 0.1 | 30.1 | 0.4 | 0.0 |
| 포츠담 II | 9.6 | 29.7 | 13.4 | 4.3 | 0.1 | 42.3 | 0.5 | 0.0 |
| 포츠담 I | 9.8 | 33.5 | 6.9 | 3.1 | 0.2 | 45.9 | 0.6 | 0.1 |
| 프랑크푸르트/오데르 | 3.0 | 29.2 | 3.6 | 6.6 | 0.2 | 56.5 | 0.8 | 0.1 |
| 포메른 | 4.0 | 25.8 | 3.2 | 1.3 | 0.3 | 63.9 | 1.3 | 0.1 |
| 브레슬라우 | 2.1 | 35.1 | 3.7 | 18.6 | 0.3 | 39.5 | 0.6 | 0.1 |
| 레그니챠 | 2.0 | 35.9 | 10.4 | 8.5 | 0.3 | 42.3 | 0.5 | 0.1 |
| 오펠른 | 9.6 | 9.8 | 1.9 | 46.6 | 0.4 | 30.6 | 1.0 | 0.2 |
| 마그데부르크 | 4.5 | 40.3 | 4.4 | 2.1 | 0.2 | 47.7 | 0.8 | 0.1 |
| 메르제부르크 | 20.4 | 21.5 | 5.0 | 1.6 | 0.2 | 49.9 | 1.3 | 0.1 |
| 튀링겐 | 10.0 | 30.2 | 4.2 | 4.7 | 0.2 | 49.1 | 1.6 | 0.1 |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5.3 | 33.0 | 6.0 | 1.5 | 0.2 | 53.2 | 0.8 | 0.1 |
| 베저-엠스 | 3.2 | 28.8 | 6.9 | 21.3 | 0.8 | 38.0 | 0.8 | 0.1 |
| 오스트-하노버 | 3.3 | 32.8 | 3.3 | 1.7 | 7.1 | 50.9 | 0.8 | 0.2 |
| 쥬트-하노버-브라운슈바이크 | 3.1 | 40.8 | 4.0 | 5.7 | 3.9 | 41.5 | 0.9 | 0.1 |
| 베스트팔렌-노드 | 5.1 | 23.8 | 2.4 | 39.6 | 0.4 | 28.0 | 0.7 | 0.1 |
| 베스트팔렌-쥬트 | 9.3 | 27.5 | 4.5 | 30.1 | 0.3 | 27.5 | 0.7 | 0.1 |
| 헤센-나사우 | 4.1 | 32.7 | 7.6 | 18.2 | 0.4 | 36.1 | 0.8 | 0.1 |
| 쾰른-아헨 | 6.4 | 17.8 | 3.2 | 53.7 | 0.5 | 17.5 | 0.8 | 0.1 |
| 코블렌츠-트리어 | 2.6 | 12.3 | 2.4 | 59.7 | 0.5 | 21.3 | 0.8 | 0.2 |
| 뒤셀도르프-오스트 | 17.4 | 18.4 | 2.8 | 26.1 | 0.2 | 34.1 | 0.8 | 0.1 |
| 뒤셀도르프-베스트 | 9.9 | 16.9 | 2.0 | 44.5 | 0.4 | 25.6 | 0.7 | 0.1 |
| 오버바이에른-슈바렌 | 3.0 | 21.6 | 2.5 | 1.3 | 43.8 | 23.5 | 4.0 | 0.3 |
| 니더바이에른 | 2.1 | 13.1 | 1.9 | 3.0 | 66.4 | 10.7 | 2.6 | 0.3 |
| 프랑켄 | 2.4 | 28.7 | 3.8 | 1.4 | 23.5 | 36.7 | 3.3 | 0.1 |
| 팔츠 | 7.7 | 28.4 | 6.4 | 12.9 | 14.0 | 29.3 | 1.2 | 0.1 |
| 드레스덴-바우첸 | 4.0 | 40.1 | 9.7 | 1.9 | 0.2 | 43.4 | 0.6 | 0.0 |
| 라이프치히 | 10.1 | 41.2 | 6.6 | 1.0 | 0.3 | 40.1 | 0.7 | 0.0 |
| 켐니츠-츠비카우 | 12.3 | 36.0 | 4.5 | 0.9 | 0.3 | 44.3 | 1.7 | 0.0 |
| 뷔르템베르크 | 5.6 | 20.6 | 13.6 | 24.1 | 0.4 | 34.7 | 0.9 | 0.1 |
| 바덴 | 4.5 | 22.7 | 10.1 | 33.8 | 0.4 | 27.6 | 0.7 | 0.2 |
| 헤센-다름슈타트 | 3.7 | 37.2 | 7.5 | 17.4 | 0.3 | 33.3 | 0.6 | 0.0 |
| 함부르크 | 11.6 | 37.0 | 11.3 | 2.1 | 0.3 | 36.9 | 0.8 | 0.1 |
| 메클렌부르크 | 3.5 | 38.1 | 3.7 | 0.9 | 0.4 | 52.1 | 1.3 | 0.1 |
1925년 3월 29일에 1차 투표가 실시되었으며 투표율은 68.9%였다. 카를 야레스는 1차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과반수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6. 2차 투표 결과
공산당의 출마 강행으로 진보 진영이 분열되면서 왕당파인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선거구 | 공산당 | 중앙당 | 무소속 | 기타 |
|---|---|---|---|---|
| 텔만 | 마르크스 | 힌덴부르크 | ||
| 동프로이센 | 4.7 | 28.3 | 66.9 | 0.1 |
| 베를린 | 12.2 | 55.3 | 32.5 | 0.0 |
| 포츠담 II | 7.4 | 48.4 | 44.2 | 0.0 |
| 포츠담 I | 8.0 | 42.7 | 49.2 | 0.0 |
| 프랑크푸르트/오데르 | 2.9 | 35.5 | 61.5 | 0.0 |
| 포메른 | 4.6 | 24.3 | 71.1 | 0.0 |
| 브레슬라우 | 2.3 | 52.3 | 45.3 | 0.0 |
| 레그니챠 | 2.6 | 46.9 | 50.5 | 0.0 |
| 오펠른 | 8.2 | 51.9 | 39.8 | 0.1 |
| 마그데부르크 | 4.3 | 43.5 | 52.2 | 0.0 |
| 메르제부르크 | 19.6 | 23.0 | 57.4 | 0.0 |
| 튀링겐 | 9.8 | 35.0 | 55.2 | 0.1 |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4.8 | 35.4 | 59.8 | 0.1 |
| 베저-엠스 | 3.2 | 49.8 | 47.0 | 0.0 |
| 오스트-하노버 | 3.0 | 32.8 | 64.1 | 0.1 |
| 쥬트-하노버-브라운슈바이크 | 2.9 | 46.1 | 50.9 | 0.0 |
| 베스트팔렌-노드 | 4.4 | 60.1 | 35.4 | 0.0 |
| 베스트팔렌-쥬트 | 7.3 | 57.0 | 35.7 | 0.0 |
| 헤센-나사우 | 3.8 | 51.2 | 45.0 | 0.0 |
| 쾰른-아헨 | 5.2 | 71.9 | 22.8 | 0.0 |
| 코블렌츠-트리어 | 2.6 | 66.8 | 30.6 | 0.1 |
| 뒤셀도르프-오스트 | 14.8 | 44.2 | 41.1 | 0.0 |
| 뒤셀도르프-베스트 | 7.9 | 59.2 | 32.8 | 0.0 |
| 오버바이에른-슈바렌 | 2.8 | 31.8 | 65.4 | 0.1 |
| 니더바이에른 | 2.3 | 29.6 | 68.0 | 0.1 |
| 프랑켄 | 2.2 | 39.0 | 58.7 | 0.0 |
| 팔츠 | 6.0 | 48.6 | 45.3 | 0.0 |
| 드레스덴-바우첸 | 6.6 | 41.9 | 51.5 | 0.0 |
| 라이프치히 | 11.9 | 40.0 | 48.0 | 0.1 |
| 켐니츠-츠비카우 | 15.2 | 31.1 | 53.6 | 0.1 |
| 뷔르템베르크 | 4.8 | 49.4 | 45.7 | 0.1 |
| 바덴 | 3.9 | 60.4 | 35.6 | 0.1 |
| 헤센-다름슈타트 | 3.5 | 55.2 | 41.3 | 0.0 |
| 함부르크 | 10.7 | 43.6 | 45.6 | 0.1 |
| 메클렌부르크 | 3.6 | 36.8 | 59.5 | 0.0 |
7. 평가 및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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