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UEFA 슈퍼컵
1. 개요
1977년 UEFA 슈퍼컵은 1976-77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팀인 리버풀과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우승팀인 함부르크 SV 간의 대결로 치러졌다. 1차전은 함부르크에서 1-1 무승부로 끝났고, 2차전에서 리버풀이 6-0으로 승리하며 합산 점수 7-1로 우승을 차지했다. 리버풀의 테리 맥더멋은 2차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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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2월 -
1977년 전미 비평가 협회상
1977년 전미 비평가 협회상은 1977년 영화계의 뛰어난 작품과 배우들의 공로를 기리는 상으로, 작품상은 《애니 홀》, 감독상은 루이스 부뉴엘, 남우주연상은 아트 카니, 여우주연상은 다이안 키튼이 수상했다. -
1977년 12월 -
1977년 로스앤젤레스 영화 비평가 협회상
1977년 로스앤젤레스 영화 비평가 협회상은 1977년 영화를 대상으로 작품상에 《스타워즈》, 감독상에 허버트 로스, 남녀주연상에 리처드 드라이퍼스와 시시 스페이섹 등을 선정했다. -
함부르거 SV 경기 -
1983년 UEFA 슈퍼컵
1983년 UEFA 슈퍼컵은 함부르크 SV와 애버딘 FC 간의 대회로, 1, 2차전 합계 2-0으로 애버딘 FC가 우승하였다. -
함부르거 SV 경기 -
DFB-슈퍼컵 1987
1987년 DFB-슈퍼컵은 바이에른 뮌헨이 함부르크 SV를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경기로, 위르겐 베그만이 2골을 넣고 함부르크에서는 미로슬라프 오코인스키가 득점했다. -
1977년 11월 -
이리역 폭발 사고
1977년 한국화약 소속 화물열차 폭발로 발생한 이리역 폭발 사고는 직원의 부주의와 급행료 관행이 겹쳐 40톤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 이리역 주변 건물 파괴, 인명 피해를 야기하며 사회적 충격을 주고 철도 안전 관리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낸 대형 참사이다. -
1977년 11월 -
제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실시된 제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이 100% 투표율과 지지율로 전체 의석을 차지했다.
2. 배경
유럽 슈퍼컵은 1970년대 초, 유럽 최고의 팀을 결정하고 당시 최강의 클럽 팀이었던 아약스에 도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창설되었다. 네덜란드 언론인 안톤 위트캄프의 제안은, 유러피언컵과 컵 위너스컵 우승팀 간의 축구 경기를 개최하는 것이었지만, 최근 컵 위너스컵 우승팀인 레인저스가 유럽 대회 출전 금지 처분을 받으면서 UEFA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위트캄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여 1973년 1월에 아약스와 레인저스 간의 2차전 경기를 진행했다. 이 대회는 1년 후 UEFA의 승인을 받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리버풀은 1976-77 유러피언컵 우승팀 자격으로 슈퍼컵에 진출했다. 그들은 결승전에서 독일 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3-1로 꺾고 유러피언컵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리버풀은 슈퍼컵에 처음 출전했다. 함부르크는 1976-77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우승팀 자격으로 대회에 진출했다. 안데를레흐트를 2-0으로 꺾고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함부르크 또한 슈퍼컵 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이 경기의 또 다른 이야깃거리는 함부르크의 공격수 케빈 키건이 지난 시즌 떠났던 클럽을 상대로 경기를 펼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키건은 리버풀의 유러피언컵 우승 이후 500000GBP에 함부르크로 이적했다. 같은 해 5월의 챔피언스컵 결승에서 리버풀의 일원으로서 이 대회 우승을 달성한 키건은 함부르크의 일원으로서 친정팀과 대결하게 되었다.
3. 경기
UEFA 슈퍼컵은 1970년대 초, 유럽 최고의 팀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최강팀이었던 아약스에 도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네덜란드 언론인 안톤 위트캄프가 유러피언컵과 컵 위너스컵 우승팀끼리 경기를 하는 방식을 제안했지만, UEFA는 당시 컵 위너스컵 우승팀 레인저스가 유럽 대회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위트캄프는 1973년 1월에 아약스와 레인저스의 경기를 성사시켰고, 1년 후 UEFA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1976-77 유러피언컵에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3-1로 꺾고 우승한 리버풀과, 1976-77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서 안데를레흐트를 2-0으로 이기고 우승한 함부르크는 각각 처음으로 슈퍼컵에 진출했다.
두 팀은 경기가 열릴 당시 각자 리그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리버풀은 1차전 직전 브리스톨 시티와 1-1로 비겨 리그 6위였고, 함부르크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1-2로 패해 리그 순위가 좋지 않았다. 특히 함부르크 공격수 케빈 키건은 지난 시즌까지 뛰었던 리버풀을 상대하게 되어 관심이 쏠렸다. 키건은 리버풀의 유러피언컵 우승 후 500000GBP에 함부르크로 이적했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 "함부르크는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지만, 리버풀은 지쳐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1차전은 1-1 무승부, 2차전에서는 테리 맥더모트의 해트트릭 등에 힘입어 리버풀이 6-0으로 승리했다. 종합 점수 7-1로 리버풀이 우승컵을 차지했다.
3.1. 1차전
1977년 11월 22일, 서독 함부르크의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에서 열린 1차전은 함부르크의 켈러가 선제골을 넣었으나, 리버풀의 페어클러가 동점골을 기록하며 1-1 무승부로 끝났다.
가디언의 패트릭 바클레이는 이 경기를 양 팀 모두 많은 득점 기회를 만들지 못한 "평범하고 모험심 없는 전반전"이었다고 묘사했다. 전반 29분, 클라우스 자치크의 패스를 받은 페르디난트 켈러가 레이 클레멘스 골키퍼를 넘기는 슛으로 함부르크에게 선제골을 안겼다. 3분 뒤, 조이 존스가 장거리 슛을 시도하다 허벅지 부상을 입어 토미 스미스와 교체되었다.
후반전 첫 번째 기회는 페어클러프에게 찾아왔지만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58분, 지미 케이스가 데이비드 존슨과 교체되었다. 함부르크는 63분과 64분에 만프레트 칼츠와 펠릭스 마가트를 안드레아스 카로프, 호르스트 베르틀로 교체했다. 1분 뒤, 케니 달글리시의 크로스를 베르틀이 헤딩했으나 슈타르 골키퍼를 빗나갔고, 페어클러프가 헤딩으로 밀어 넣어 동점을 만들었다.
경기 후, 리버풀 감독 밥 페이즐리는 결과에 만족했다. 반면, 케빈 키건은 함부르크의 경기력에 대해 "우리는 형편없었다. 지난 2주 동안 우리는 잘했지만, 오늘 밤은 끔찍했다. 리버풀은 꽤 잘했고 경기가 진행되면서 더 나아졌다."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3.1.1. 1차전 상세 정보
1977년 11월 22일, 함부르크의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에서 열린 1차전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가디언의 패트릭 바클레이는 양 팀 모두 많은 득점 기회를 만들지 못한 "평범하고 모험심 없는 전반전"이었다고 묘사했다. 전반 29분, 클라우스 자치크의 패스를 받은 페르디난트 켈러가 레이 클레멘스 골키퍼를 넘기는 슛으로 함부르크에게 선제골을 안겼다. 3분 뒤, 조이 존스가 장거리 슛을 시도하다 허벅지 부상을 입어 토미 스미스와 교체되었다.
후반전 첫 번째 기회는 페어클러프에게 찾아왔지만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58분, 지미 케이스가 데이비드 존슨과 교체되었다. 함부르크는 63분과 64분에 만프레트 칼츠와 펠릭스 마가트를 안드레아스 카로프, 호르스트 베르틀로 교체했다. 1분 뒤, 케니 달글리시의 크로스를 베르틀이 헤딩했으나 슈타르 골키퍼를 빗나갔고, 페어클러프가 헤딩으로 밀어 넣어 동점을 만들었다.
경기 후, 리버풀 감독 밥 페이즐리는 결과에 만족했다.
3.2. 2차전
1977년 12월 6일, 잉글랜드 리버풀의 안필드에서 1977년 UEFA 슈퍼컵 2차전 경기가 개최되었다. 리버풀은 필 톰프슨의 선제골, 테리 맥더모트의 해트트릭, 페어클러와 케니 달글리시의 추가골로 함부르크를 6-0으로 크게 이겼다.
이 경기는 울프 에릭손 (스웨덴) 심판의 주관 하에 34,931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3.2.1. 2차전 상세 정보
리버풀은 21분, 스티브 헤이웨이의 코너킥 이후 공이 필 톰슨에게 연결되었고, 톰슨의 슛이 골대를 맞고 들어가면서 선제골을 기록했다. 40분에는 테리 맥더모트가 레이 케네디의 패스를 가슴으로 트래핑한 후 페널티 구역 오른쪽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리드를 더욱 벌렸다. 후반 시작과 함께 헤이웨이는 존슨으로 교체되었고, 10분 후 리버풀은 세 번째 골을 넣었다. 맥더모트는 공을 가로채 오른쪽 측면으로 질주한 후 함부르크 골대 오른쪽 상단 구석으로 슛을 날려 다시 한번 득점했다. 1분 뒤 맥더모트는 왼쪽 측면에서 케네디의 패스를 받아 경기의 세 번째 골이자 리버풀의 네 번째 골을 넣었다. 맥더모트는 UEFA 슈퍼컵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리버풀은 경기 막바지에 페어클러프의 헤더와 2분 뒤 달글리시의 골로 두 골을 더 추가했다.
경기 MVP는 테리 맥더모트 (리버풀)이다.
4. 경기 후
케빈 키건은 2차전 이후 자신의 전 소속팀이었던 리버풀을 칭찬하며 "리버풀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제가 지켜본 바로는 그들에게 별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균열도 없었고, 예전보다 더 강해 보였습니다."라고 말했다. 테리 맥더모트는 2차전에서의 자신의 활약이 리버풀 선수 경력의 전환점이었다고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군가 부상을 당했는데, 아마 이안 캘러한이었을 겁니다. 저는 오른쪽 측면이 아닌 중앙으로 이동했습니다.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존 토샥이 '그게 네 자리야'라고 말했던 것을 항상 기억합니다. 그의 말에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는 아마 기억 못 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기억합니다."
1977년 UEFA 슈퍼컵 이후, 리버풀은 1977-78 유러피언컵에서 계속 경쟁하여 결승전에 진출, 클럽 브뤼게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하며 지난 시즌에 획득한 타이틀을 유지했다. 그러나 1977-78 1부 리그에서는 우승하지 못하고 최종 우승팀인 노팅엄 포레스트에 7점 뒤진 2위로 마감했다.
한편, 함부르크는 1977-78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2라운드에서 최종 우승팀인 벨기에의 안데를레흐트에게 패배하며 탈락했다. 또한 1977-78 분데스리가에서는 1. FC 쾰른에 14점 뒤진 10위로 시즌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