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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경산 열차 추돌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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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1년 경산 열차 추돌 사고는 1981년 5월 14일 경상북도 경산군 고산면 매호동 경부선 상행선 매호건널목에서 발생한 열차 추돌 사고이다. 부산발 서울행 특급열차가 건널목에 버려진 오토바이와 충돌 후, 후진하던 중 뒤따르던 부산발 대구행 보통 급행열차가 추돌하면서 특급열차 7호 객차와 급행열차 기관실 등이 파손되고, 특급열차 2량이 탈선하여 55명이 사망하고 233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수습을 위해 경찰, 군인, 공무원 등 1천여 명이 동원되었으며, 관련자 처벌과 철도청장의 사임이 있었다. 사고 이후 매호건널목에 지하도가 건설되었으나, 가천역 신설로 인해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보통급행열차는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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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경산 열차 추돌 사고
사고 개요
제목경산 열차 추돌 사고
날짜1981년 5월 14일
위치경상북도 경산군 고모역 부근 매호 건널목
노선경부선
운영자대한민국 철도청
사고 종류열차간 충돌
원인오토바이와의 충돌 이후 후속 조치 미흡, 통제실 미공고
열차특급열차 1
사망55
부상233

2. 사고 개요

1981년 5월 14일, 경상북도 경산군 고산면 매호동(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 경부선 상행선 매호건널목에서 열차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부산발 서울행 제116호 특급열차가 건널목에 있던 오토바이와 충돌한 후, 기관사가 통제실에 알리지 않고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서행으로 후진하던 중 뒤따라오던 부산발 대구행 보통 급행열차와 추돌했다.[2]

이 사고로 열차들이 파손되고 일부 객차가 탈선하여 철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으며, 50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또한 경부선 상·하행선 운행이 하루 동안 중단되었다.[2]

2. 1. 사고 발생 과정

1981년 5월 14일, 경상북도 경산군 고산면 매호동 경부선 상행선 매호건널목에서 사고 발생 5분 전, 부산발 서울행 제116호 특급열차가 건널목에 버려진 오토바이와 충돌했다.[2] 사고를 낸 특급 열차 기관사는 통제실에 알리지 않은 채 오토바이와 충돌한 현장을 확인하고자 서행으로 후진했다.[2] 이 과정에서 뒤이어 오던 부산발 대구행 보통 급행열차가 후진하던 특급열차 뒷부분을 추돌했다.[2]

이 사고로 특급열차 7호 객차 및 보통 급행열차 기관실 동력차가 크게 파손되었고, 특급 열차 8호, 9호 객차 2량이 탈선하여 5m 철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2]

2. 2. 피해 상황

특급열차의 7호 객차 및 보통 급행열차 기관실 동력차가 크게 파손되고, 특급 열차 8호, 9호 객차 2량이 탈선, 5m 철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 결과 54명이 사망하고 243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으며, 경부선 상·하행선이 하루 동안 불통되었다.[2]

3. 후속 조처

사고 직후 경찰, 군인, 공무원 등 1천여 명과 헬기 3대, 구급차 50대가 동원되어 구조 작업이 진행되었다. 경부선은 다음 날인 5월 15일 복구되었고, 합동 분향소가 설치되었다.[3]

현장 검증 결과, 열차 기관사 두 명과 오토바이를 버리고 간 운전자 등 관련자 5명이 구속되어 도로운송차량법 위반, 업무상 과실 기차 교통 방해, 중과실 기차 교통 방해, 업무상 과실 기차 전복,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처벌받았다.[3]

철도청장 황해중은 이 사고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사고 발생 지점인 매호건널목에는 지하도가 건설되었으나, 2005년 가천역 신설과 함께 일대가 대대적으로 정비되면서 현재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사고를 계기로 이듬해 보통급행열차는 폐지되었다.[3]

3. 1. 구조 및 수습

사고가 나자 경찰, 군인, 공무원 등 1천여 명과 헬기 3대, 구급차 50대가 동원되어 구조 작업에 나섰다. 경부선은 다음 날인 5월 15일 소통되었고 합동 분향소도 설치되었다.[3]

3. 2. 관련자 처벌 및 철도청장 사임

열차 기관사 두 명과 오토바이를 버리고 간 오토바이 운전자 등 관련자 5명이 구속되었고, 이들은 도로운송차량법위반, 업무상과실기차교통방해, 중과실기차교통방해, 업무상과실기차전복,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처벌받았다.[3]

황해중 철도청장은 이 사고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3]

3. 3. 사고 이후 변화

사고 이후 경찰, 군인, 공무원 등 1천여 명과 헬기 3대, 구급차 50대가 동원되어 구조 작업이 진행되었다. 경부선은 다음 날인 5월 15일 복구되었고, 합동 분향소도 설치되었다.[3]

열차를 동원한 현장 검증 결과, 열차 기관사 두 명과 오토바이를 버리고 간 운전자 등 관련자 5명이 구속되었다. 이들은 도로운송차량법 위반, 업무상 과실 기차 교통 방해, 중과실 기차 교통 방해, 업무상 과실 기차 전복,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죄로 처벌받았다.[3]

철도청장 황해중은 이 사고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사고 발생 지점인 매호건널목에는 지하도가 건설되었으나, 2005년 가천역 신설과 함께 일대가 대대적으로 정비되면서 현재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사고를 계기로 이듬해 보통급행열차는 폐지되었다.[3]

참조

[1] 서적 철도주요연표 한국철도공사 2010
[2] 웹인용 어제下午(하오)4시 列車追突(열차추돌) 大慘事(대참사) 京釜線(경부선) 慶山(경산)서 https://newslibrary.[...] 2019-05-19
[3] 웹인용 선고 82도781 판결 https://casenote.kr/[...] 198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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