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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고성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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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6년 고성 산불은 1996년 4월 23일 강원도 고성군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다. 육군 부대 사격장에서 발생한 불로 인해 강풍과 건조한 날씨, 험준한 지형 등의 악조건 속에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3,834헥타르의 산림이 소실되고 140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며, 군 당국의 소극적인 대응과 늦어진 헬기 지원 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후 정부는 피해 지역 주민에게 국가 배상을 결정하고, 산불 방지 종합 대책을 수립했다. 산불의 원인 제공자는 실화 혐의로 구속되었지만, 미흡한 처벌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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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고성 산불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제목1996년 고성 산불
위치대한민국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날짜1996년 4월 23일 ~ 4월 25일
시간대KST
피해 규모
비용227억 1천 7백만 원
면적3,834헥타르
토지 이용임야, 마을, 농경지
건물227동
원인
원인TNT 폭발로 인해 생긴 불꽃의 확산

2. 경과

1996년 고성 산불은 여러 날에 걸쳐 강원도 고성군 일대를 휩쓴 대형 산불이었다.


  • 4월 23일: 낮 12시 22분경,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에서 산불이 시작되었다. 육군 부대 내에 임시 대책본부가 설치되었고, 산림청 헬기 지원이 요청되었으나 다른 지역 산불로 인해 투입이 지연되었다. 저녁에는 현내면 명파리 고향봉 북방한계선에서도 산불이 발생하여 통일전망대 시설 일부가 소실되었다.[1]

  • 4월 24일: 강풍으로 산불이 민가로 번지면서 주민 대피가 이루어졌다. 송지호 해수욕장 인근 통신 케이블 소실로 시외전화가 14시간 동안 두절되기도 했다.[2] 산불은 해안과 남쪽으로 번져 토성면 운봉, 학야, 도원리까지 확산되었다. 군 당국은 관광객 출입을 통제하고,[3] 주민들을 긴급 대피시켰다.[4] 밤에는 강풍으로 불길이 더욱 빠르게 번졌고, 간성읍 탑동에서는 주민들이 맞불을 놓기도 했다.

  • 4월 25일: 헬기 20대와 1만여 명의 인력이 투입되어 진화 작업에 총력을 기울였다.[5] 김영삼 대통령은 이수성 총리에게 현장 방문 및 피해 복구 지원을 지시했고,[6] 최각규 강원 지사는 화재지역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할 것을 요청했다. 오후 4시 20분경 큰 불길을 잡는 데 성공했고, 6시 10분에는 진화 헬기가 모두 철수했다.

  • 4월 26일: 뒷불 감시 요원이 철수하고, 가진리 공설묘지 인근 논에서 발생한 작은 불이 진화된 후 추가적인 산불은 발생하지 않았다.

2. 1. 4월 23일

4월 23일 낮 12시 22분경,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낮 12시 40분 육군 제6123부대 내에 임시 산불진화 대책본부가 설치되었다. 오후 2시 30분, 심우석 부군수는 산림청 헬기 전량 지원을 요청했으나, 건조한 날씨로 인해 같은 시간 평창, 양구, 인제에서도 산불이 발생하여 헬기 투입이 지연되었다. 오후 3시 10분 산림청 헬기 1대가 최초로 도착하여 진화를 시작했으며, 군부대 헬기 및 소방차가 계속 추가 투입되었으나 진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저녁 8시 30분경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고향봉 북방한계선에서도 산불이 발생하여 임야 120ha를 태웠고, 다음 날인 24일 오후 5시에 진화에 성공했다. 이 산불로 통일전망대 시설 일부가 소실되었다.[1]

2. 2. 4월 24일

자정 즈음에는 초속 20m의 강풍이 불었고, 이내 민가로 불이 번지자 산림, 공익 요원들과 면사무소 직원들은 주민 대피에 총력을 기울였다. 새벽 2시 경, 불이 번지자 대책본부도 죽왕면 사무소로 이전하였다. 또한 송지호 해수욕장 북쪽 주차장으로 불이 옮겨 붙어 산 능선에 있던 속초와 고성을 잇는 통신 케이블이 타버렸다. 이로 인해 시외전화가 14시간 동안 두절되었다.[2] 불길은 북서풍을 타고 해안과 남쪽으로 번지면서 토성면 운봉, 학야, 도원리로 번졌다.

군 당국은 오전 10시부터 관광객의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3] 또한 대책본부는 산불이 번질 것으로 예상되는 인정리, 삼포리, 운봉, 학야리 지역 농가 162명의 주민을 긴급 대피시켰다.[4] 산불이 넓은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한정된 수의 헬기로는 진화하는데 역부족이었다. 또한 낙엽으로 인해 불씨가 다시 살아나 큰 어려움을 겪었다. 불은 발화지점으로부터 북쪽과 남쪽으로 각각 번지면서 밤 사이 죽왕면 대부분 지역을 태웠다. 설상가상으로 초속 30m의 강풍이 불어 불이 옮겨붙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오후 11시 15분 경, 간성읍 탑동의 산불이 인근 지역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맞불을 놓자는 의견이 주민들 사이에서 나왔고, 이에 소방대의 도움을 받아 맞불을 놓았다.

2. 3. 4월 25일

고성군은 오전 5시 30분부터 경찰과 군 헬기 11대를 추가로 지원받아 총 20대의 헬기를 현장에 투입하였다. 진화 인력도 늘어나 1만여 명이 불길을 잡는데 동참하였다.[5] 대책본부는 불이 새로 옮겨 붙은 지역인 도원리와 학야2리, 선유실리 등 인근 마을 주민 27가구 80여 명을 친척집, 군부대 막사, 노인회관 등으로 대피시켰다.

오전 김영삼 대통령은 이수성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산불 현장에 가서 진화 작업 및 피해 규모 조사, 복구 지원, 민심 수습을 할 것을 지시했다.[6] 오후 2시 30분에는 이수성 총리가 탑동 지역에 도착하여 화재 상황을 둘러보았고, 최각규 강원 지사는 화재지역 일대를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할 것을 총리에게 요청하였다. 또한 집이 불탄 주민들을 위해 농촌주택융자자금 지원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대책본부는 설악산 국립공원 근처 토성면 도원리 일대와 간성읍 탑동리 지역에 군병력 및 지역 주민들을 합쳐 4천여 명과 헬기 25대를 동원, 진화 작업을 하여 오후 4시 20분 경 큰 불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 6시 10분에는 진화에 참여하던 헬기가 모두 철수하였고, 대책본부는 진화 완료를 최종 통보하였다. 뒷불을 예방하기 위해 공무원 170명과 소방차 15대를 취약 지역에 배치하여 감시토록 하였다.

2. 4. 4월 26일

공무원들의 피로 누적과 더불어 뒷불 발생 가능성이 낮아지자 오전 1시 30분 뒷불 감시 요원 전원을 철수시켰다. 6시 30분에는 가진리 소재 공설묘지 인근 논에서 작은 불이 발생하여 진화하였다. 그 후 더 이상의 불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투입 인력 및 장비 대부분을 철수시켰다.

3. 피해

1996년 고성 산불로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삼포1리 마을은 전체 50가구 중 38가구가 완전히 불에 타 큰 피해를 입었다.[13] 간성읍 탑동리, 토성면 도원리 일대는 송이 생산지로 유명했는데, 이번 산불로 주민들의 중요한 소득원이 사라졌다.

산림청과 사고대책본부 합동조사 결과, 피해 지역 토양이 심하게 훼손되어 원상 복귀에 최소 40년에서 최대 10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먹이 사슬 단절, 씨앗 확산 문제로 소실 면적의 3배인 10000ha 지역이 생태학적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산화 탄소 흡수 기능 상실, 민통선과 설악산을 잇던 생태 통로 단절도 예상되었다.[7]

3. 1. 피해 규모

다음은 최종 확인된 피해 규모이다.

구분내용
이재민49세대 140명
산림3834ha
입목2762ha
송이16215kg
묘지 등66건
건축물227동
동산53,423점
집기류 등12,133점
농기계17,745점
가축718두
유실수 등21,052본
사료 등1,775점
총 피해 비용227.17억


4. 화재 원인 및 발화자 처벌

발화 지점은 죽왕면 마좌리 죽변사 계곡 육군 1군지사 8군지단 58탄약대대 사격장이다. 국방부는 이 부대 정재석 중사가 불량 TNT 525발을 폭파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고 발표했다. 규정상 TNT는 신호킷을 미리 제거하고 전량 소각 처리를 해야 했지만, 정재석 중사는 이를 마좌리 산33번지에 위치한 공용화기 사격장에서 60cm 크기의 구멍을 파 그 속에 TNT를 넣어 폭발시켰다. 이로 인해 구덩이 근처에 있던 신호킷이 발사되면서 불꽃이 강한 바람에 실려 계곡 상류 숲 등지에 옮겨 붙었다.[8] 육군은 당시 부대 폭발물 처리 반장이었던 정재석 중사를 실화 혐의로 구속했다. 동시에 부대 대대장 신유승 소령을 보직 해임하고, 8군지단장 정재호 대령은 군사령부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9] 그러나 국방부 내에서조차 사상 최악의 피해를 기록한 사고에 대한 징계를 부사관 1명으로 끝내는 것은 국민감정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미미한 처벌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또한 육군은 산불 상황을 촬영하려는 방송사들의 헬리콥터 운행 신청을 규정에 걸린다는 이유로 거부하여, 자체 처벌은 소극적이면서 진상 공개 방지에는 적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10]

5. 진화가 늦어진 원인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 험한 지형, 장비 부족, 전문인력 부족 등이 산불 진화를 어렵게 하고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특히 바람이 강하게 불어 불이 번지는 속도가 빨라졌고, 바람 방향도 수시로 바뀌었으며, 날씨 또한 건조하여 불이 쉽게 옮겨붙었다. 이 때문에 진화 방향을 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산불 발생 지역 대부분이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험준한 지형이었기 때문에 헬기에 의존하여 진화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많은 인원을 투입했음에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또한 강원도에는 자체 산불 진화용 헬기가 한 대도 없었고, 진화 장비도 뒷불을 끄는 수준의 조악한 것만 갖추고 있었다. 투입된 인원은 1만 명이 넘었지만, 이 중 화재 진압 전문 훈련을 받은 인원은 2천여 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이유로 대형 산불 방재 작업에 필요한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초기 진화에 필요한 신속한 출동 체계가 미흡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산림청에 헬기 지원을 요청했지만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30분이 걸렸다. 군부대 사격장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의 경우, 불발탄 폭발 위험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고, 군부대의 협조가 있어야만 진화 작업을 할 수 있는 등 신속한 진화가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11]

주민들은 행정청이 솔잎혹파리 제거 등을 위해 솎아베기한 소나무를 산에 그대로 방치하여 불이 빠르게 번져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했다.[12] 또한 화재 발생 후 군부대가 13시간 동안 대피 방송을 하지 않아 피해가 더 커졌다고 비판했다.[13] 주민들과 함께 진화 작업에 참여했던 공무원들은 군부대가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며 불만을 제기했고, 산불 책임 관련자를 전원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 후속 조치

1996년 4월 26일, 김영삼 대통령은 고성 지역 산불을 포함하여 잇따라 일어나는 대형 산불에 대해 종합적인 대책을 1996년 6월까지 수립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14] 다음 날 정부는 정부종합청사에서 산불 방지 종합 대책 마련을 위한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산불이 국방부의 과실로 드러난 만큼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국가배상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농림수산부장관을 본부장으로 하여 ‘고성산불 중앙사고대책본부’를 설치하고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 조사 등의 후속 절차를 밟기로 했다.[15] 관계부처합동조사단은 이날 현장에 투입되어 주민의 재산 피해 및 산림 피해액 등에 대한 정밀 조사에 착수했으며, 피해 농가에 볍씨와 영농 자재 및 영농 자금 등을 특별 지원하기로 했다. 육군 또한 예하 부대에 모든 병력과 장비를 동원하여 피해 지역 복구를 지원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16] 강원도는 피해 지역 주민들에 대해 재산세, 도시계획세, 종합토지세, 지방세 등의 징수를 6개월 동안 유예했다.[17]

1996년 6월 19일 환경부는 산불로 탄 지역 중 주민들의 경제 활동에 피해가 가지 않는 지역을 골라 나무를 심지 않은 채 50~100년 동안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과정을 관찰하는 생태계 복원 시험장을 만들 계획을 발표했다.[18] 자연 복원지는 고성군 죽왕면 구성리와 인정리 두 곳에 각각 30ha와 70ha 규모로 조성되었다.[25]

이듬해 1997년 4월 보도에 따르면, 산림청은 주민들의 송이 채취를 앞당기기 위해 조림 계획을 세웠으나, 촉박한 조림 일정으로 인해 묘목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온실에서 속성 재배한 나무를 공급하기로 하였고, 이로 인해 여러 임학자들로부터 비판이 나왔다.[19]

7. 사고 이후 상황

1997년 4월, 고성군 주민 316명은 국가를 상대로 송이버섯 채취 활동 등에 대한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했다.[21] 같은 해 8월 15일, 제8군단지구 배상심의위원회는 발화자가 사격장 시설 공사를 한 민간인이므로 국가배상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배상 기각 판정을 내렸다.[20] 1998년 12월 3일, 서울지법은 1997년 4월의 집단소송에 대해 국가가 주민에게 84억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21]

화재 발생 9년 후인 2005년 4월을 기준으로, 고성군에 설치된 두 곳의 자연 복원지는 인공 조림지에 비해 식물의 무게와 밀도가 훨씬 높았다. 그러나 토양이 척박하고 식생이 빈약한 곳이 많아, 숲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기까지는 10년 정도 더 필요할 것으로 나타났다.[22] 2009년 6월,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 결과, 산불로 소실된 지역에서 야생 조류 16종이 관찰되어 피해 지역의 80%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23] 2010년 4월 보도에 따르면, 산불 피해 이후 소나무 조림목은 지속적으로 성장했으나, 자연복원지에서 자란 참나무는 변색 및 동공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24] 2015년 5월 기준으로, 사고 이전의 소나무 숲은 대부분 사라졌으며, 참나무, 상수리나무, 진달래 등 활엽수와 잡목이 2~3m 크기로 자라고 있다. 복원지 반대편에는 동부지방산림청 양양국유림관리소에서 관리하는 인공 조림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소나무와 자작나무 단일종으로 구성되어 숲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지만, 산불로 인해 토양 능력이 저하되어 소나무의 키는 보통 나무의 41~71.9%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25][26]

참조

[1] 뉴스 고성임야 7백만평 피해/산불 이틀째 http://www.seoul.co.[...] 서울신문 2009-05-01
[2] 뉴스 강원 고성에 큰 산불/집 70채 태워 주민 긴급대피/계속 번져 https://www.hankooki[...] 한국일보 1996-04-25
[3] 뉴스 江原고성 최악 산불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2015-06-22
[4] 뉴스 강원고성 대형 산불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2015-06-22
[5] 뉴스 高城산불 진정국면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2015-06-22
[6] 뉴스 총리 산불현장 급파/김 대통령 긴급 지시 https://www.kmib.co.[...] 국민일보 1996-04-25
[7] 뉴스 모든 생물 사라진 「검은 사막」/고성 산불 피해 현장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2009-05-02
[8] 뉴스 고성 산불 TNT폭파처리중 발생/국방부 조사발표 https://www.kmib.co.[...] 국민일보 1996-04-26
[9] 뉴스 폭발물처리반장 구속 https://www.kmib.co.[...] 국민일보 1996-04-26
[10] 뉴스 ‘산불’ 사후조처 불구경식 http://newslibrary.n[...] 한겨레 2009-05-02
[11] 뉴스 “났다하면 대형” 산불 비상/계속된 건조날씨 큰 원인 https://www.hankooki[...] 한국일보 1996-04-26
[12] 뉴스 20년래 최악산불 이모저모/자연산 송이생산지 피해 수십억 https://www.kmib.co.[...] 국민일보 1996-04-26
[13] 뉴스 고성 산불 죽왕면 삼포1리 르포 세계일보 1996-04-26
[14] 뉴스 산불대책 6월까지 마련/고성 이재민 지원책 강구/김 대통령 지시 http://www.seoul.co.[...] 서울신문 2009-05-02
[15] 뉴스 고성 산불/주민피해 전액 배상/정부 https://www.kmib.co.[...] 국민일보 1996-04-27
[16] 뉴스 고성 산불 피해 전액배상/정부조사단 정밀조사 세계일보 1996-04-28
[17] 뉴스 이재민 세금 6개월 유예/고성 산불 3개읍면 피해 정밀조사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2009-05-02
[18] 뉴스 고성 산불지역/생태계복원 시험장 만든다 https://www.kmib.co.[...] 국민일보 1996-06-19
[19] 뉴스 「高城산불」 1년 "高聲논란"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2015-05-15
[20] 뉴스 고성 산불피해 배상기각 주민 반발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2015-05-15
[21] 뉴스 고성 산불 피해 주민 84억 배상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2015-05-15
[22] 뉴스 산불참화 10년째 고성에 가보니 https://news.naver.c[...] 한겨레 2015-05-15
[23] 뉴스 산림과학원 "고성산불 피해지 야생조류 늘어났네"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5-05-15
[24] 뉴스 고성 산불 피해지 생태계 복원 `멀고 먼 길' http://www.kwnews.co[...] 강원일보 2015-05-15
[25] 뉴스 고성 산불 그후 20년, 조림지와 자연복원지 차이 http://ecotopia.hani[...] 한겨레 2015-05-14
[26] 뉴스 고성 산불 10년…"새로운 희망이 움튼다" http://www.kwnews.co[...] 강원일bo 201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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