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양맥 전투
1. 개요
2차 양맥 전투는 259년 겨울 12월, 고구려 중천왕이 위나라 장수 울지해가 이끄는 군대를 양맥 골짜기에서 격퇴한 전투이다. 245년 위나라의 침공으로 고구려가 큰 피해를 입은 후, 중천왕은 정예 기병 5천 명을 이끌고 2차 양맥 전투에서 위군을 크게 격파하여 8천여 명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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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요 전투
245년 위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하여 동천왕이 크게 패하고 환도성이 함락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259년에는 울지해가 침입하였으나, 중천왕이 양맥 골짜기에서 위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2.1. 1차 침공 (245년)
245년 가을 8월, 위의 유주자사 관구검이 오환족과 선비족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동천왕은 관구검에게 크게 패하여 고구려군 1만 8천 명을 잃고 가까스로 도주하였다. 이후 관구검은 고구려 수도 환도성을 함락시켰다. 관구검의 침입으로 고구려는 주력군 대부분을 잃었고, 수도였던 환도성이 불에 타 폐허가 되었으며,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다. 248년, 동천왕이 서거하고 그의 아들 중천왕이 즉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