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그린란드 자치확대 주민투표
1. 개요
2008년 그린란드 자치확대 주민투표는 그린란드의 자치권 확대를 묻는 투표로, 2009년 그린란드 자치법 시행을 위한 기반이 되었다. 1775년 덴마크-노르웨이의 식민지가 된 이후 1979년 자치 정부를 수립한 그린란드는 2008년 투표를 통해 경찰, 해안 경비대, 법원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고 그린란드어를 유일한 공식 언어로 지정했다. 또한 석유 수입 분배 방식을 변경하고, 그린란드인을 국제법상 별개의 민족으로 인정받도록 했다. 투표 결과는 찬성 75.54%, 반대 23.57%로 자치 확대에 대한 높은 지지를 보여주었다.
| 제목 | 그린란드 자치 정부 법안 초안에 명시된 내용 및 조건으로 그린란드에 자치 정부를 도입하는 것을 찬성하는가? |
|---|---|
| 국가 | 그린란드 |
| 날짜 | 2008년 11월 25일 |
| 찬성 | 21,355 |
| 반대 | 6,663 |
| 총 투표수 | 28,268 |
| 무효표 | 250 |
| 유권자 수 | 39,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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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국민투표 -
2008년 아일랜드 국민투표
2008년 아일랜드 국민투표는 리스본 조약 비준을 위한 헌법 개정안에 대한 투표였으며, 국민투표 결과 53.4%의 반대로 부결되었고, 이후 재협상을 통해 2009년 재투표에서 조약이 가결되었다. -
자치권 국민투표 -
1961년 프랑스 국민투표
1961년 프랑스 국민투표는 알제리 독립에 대한 찬반을 묻기 위해 실시되었으며, 75%의 찬성률과 92.2%의 투표율로 높은 지지 속에 가결되었다. -
자치권 국민투표 -
1997년 스코틀랜드 국민투표
1997년 스코틀랜드 국민투표는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 설립과 과세 권한 부여에 대한 질문에 높은 찬성률을 보여 스코틀랜드 의회와 정부 설립의 계기가 되었다. -
2008년 11월 -
2008년 뭄바이 테러
2008년 11월 26일부터 29일까지 인도 뭄바이에서 파키스탄 기반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 라슈카르-에-타이바 소속 테러리스트들이 일으킨 연쇄 테러로 166명이 사망하고 293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주요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
2008년 11월 -
2008년 뉴질랜드 총선
2008년 뉴질랜드 총선은 경제 성장 둔화와 사회 불안으로 노동당 정부의 지지율이 하락한 가운데 치러진 조기 총선으로, 국민당이 승리하여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2. 역사적 배경
그린란드는 1775년 덴마크-노르웨이의 식민지가 되었고, 1953년에는 덴마크의 주로 편입되었다. 1979년 덴마크 왕국 내 자치 국가가 되어 의회와 의료, 학교, 사회 서비스에 대한 지역 통제권을 가졌다. 1985년에는 수역 내 어업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당시 유럽 경제 공동체(현재는 유럽 연합)에서 탈퇴했다. 덴마크의 장려에도 불구하고 그린란드의 경제적 보조금에 대한 필요성으로 인해 독립을 향한 움직임이 일부 있었다.
2003년 자치 정부 위원회는 그린란드의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 독립
* 다른 국가와의 연합 (이전 아이슬란드 왕국(1918-44)과 유사한 덴마크와의 개인 연합)
* 자유 연합 (미국과 팔라우, 뉴질랜드와 쿡 제도, 또는 20세기 초 영국과 영국 자치령(예: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간의 관계와 유사)
* 연방
* 자치 정부를 넘어선 자치권 확대
* 완전한 통합
2.1. 덴마크 식민지 시대
그린란드는 1775년에 덴마크-노르웨이의 식민지가 되었고, 1953년에는 덴마크의 주로 편입되었다. 1979년에는 덴마크 왕국 내 자치 국가가 되어 의회와 의료, 학교, 사회 서비스에 대한 지역 통제권을 갖게 되었다. 1985년에는 수역 내 어업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당시 유럽 경제 공동체(현재는 유럽 연합으로 알려짐)에서 탈퇴했다. 덴마크의 장려에도 불구하고 그린란드의 경제적 보조금에 대한 필요성으로 인해 독립을 향한 움직임이 일부 있었다.
2.2. 자치 정부 수립
1979년 덴마크 왕국 내 자치 국가가 된 그린란드는 의회, 의료, 학교, 사회 서비스에 대한 지역 통제권을 갖게 되었다. 1985년에는 수역 내 어업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당시 유럽 경제 공동체(현재의 유럽 연합)에서 탈퇴했다. 덴마크의 장려에도 불구하고 그린란드의 경제적 보조금에 대한 필요성으로 인해 독립을 향한 움직임이 일부 있었다.
2003년 자치 정부 위원회 보고서는 그린란드의 미래에 대한 여섯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 독립
* 다른 국가와의 연합, 또는 이전 아이슬란드 왕국(1918-44)과 유사한 덴마크와의 개인 연합
* 미국과 팔라우, 뉴질랜드와 쿡 제도, 또는 20세기 초 영국과 영국 자치령(예: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간의 관계와 유사한 자유 연합
* 연방
* 당시 존재하던 자치 정부를 넘어선 자치권 확대
* 완전한 통합
2.3. 독립 논의
1979년 덴마크 왕국 내 자치 국가가 된 그린란드는 의회, 의료, 학교, 사회 서비스에 대한 지역 통제권을 갖게 되었다. 1985년에는 수역 내 어업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당시 유럽 경제 공동체(현재는 유럽 연합)에서 탈퇴했다. 덴마크의 장려에도 불구하고 그린란드의 경제적 보조금에 대한 필요성으로 인해 독립을 향한 움직임이 일부 있었다.
2003년 자치 정부 위원회 보고서는 그린란드의 미래에 대한 여섯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3. 자치 확대 제안과 논의
덴마크 의회는 비록 구속력 없는 국민투표였지만, 이 투표 결과를 지지하고 존중할 것을 약속했다. 이후 자치권 확대는 자치 정부 수립 30주년이 되는 2009년 6월 21일에 발효되었으며, 이때 그린란드 자치법이 시행되었다.
3.1. 자치 확대의 주요 내용
덴마크 의회는 구속력 없는 국민투표였던 2008년 그린란드 자치확대 주민투표의 결과를 존중할 것을 약속했다. 자치 확대는 자치 정부가 수립된 지 30주년이 되는 2009년 6월 21일에 발효되었으며, 이때 그린란드 자치법이 시행되었다.
확대된 자치권에 따라 그린란드는 경찰, 해안 경비대, 법원에 대한 더 큰 통제권을 얻었으며, 그린란드어가 유일한 공식 언어가 되었다.
석유 수입 분배 방식도 변경되어, 처음 75 (13.1)는 그린란드에 귀속되고, 나머지 수입은 덴마크와 균등하게 분배된다.
코펜하겐으로부터의 그린란드 보조금은 점차적으로 폐지될 예정이었다. 2008년 보조금은 연간 3500 (588)였으며, 이는 섬의 국내 총생산 10500의 약 3분의 1, 자치 정부 총 수입 6100의 거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그린란드인들은 국제법상 별개의 민족으로 인정받았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부 덴마크 정치인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협상에 참여했던 페르 외름 요르겐센은 그린란드가 스스로를 책임질 준비가 되기까지 "30~40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 인민당의 쇠렌 에스페르센 의원은 그린란드인들이 "전례 없는 선전에 의해 세뇌되었다"고 주장하며, "미래에 엄청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고 논란을 일으켰다.
3.2. 덴마크 정치권의 반응
덴마크 의회는 구속력 없는 국민투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지하고 그 결과를 존중할 것을 약속했다. 자치 확장은 자치 정부 수립 30주년이 되는 2009년 6월 21일에 발효되었으며, 이때 그린란드 자치법이 시행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부 덴마크 정치인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협상에 참여했던 페르 외름 요르겐센은 그린란드가 스스로를 책임질 준비가 되기까지 "30~40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 인민당의 쇠렌 에스페르센 의원은 그린란드인들이 "전례 없는 선전에 의해 세뇌되었다"고 주장하며, "미래에 엄청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고 논란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