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뭄바이 테러
1. 개요
2008년 뭄바이 테러는 2008년 11월 26일부터 29일까지 파키스탄 국적의 테러리스트들이 뭄바이에서 벌인 일련의 테러 공격을 말한다. 차트라파티 시바지 마하라지 터미너스, 레오폴드 카페, 타지마할 팰리스 호텔, 오베로이 트라이던트 호텔, 나리만 하우스 등에서 총격, 폭탄 테러, 인질극이 발생하여 최소 174명이 사망하고 293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테러는 파키스탄의 라슈카르-에-타이바(LeT)가 기획하고 실행했으며, 10명의 테러리스트 중 9명이 사살되고 1명이 생포되었다. 이 사건은 인도-파키스탄 관계를 악화시켰으며, 국제 사회의 규탄을 받았다.
| 명칭 | 2008년 뭄바이 테러 |
|---|---|
| 일부 | 인도의 테러 |
| 발생 위치 | 레오폴드 카페 차트라파티 시바지 마하라지 터미너스 타지마할 팔레스 호텔 오베로이 트리덴트 카마 병원 나리만 하우스 메트로 아드랩스 성 자비에르 대학교 |
| 목표 | (정보 없음) |
| 좌표 | 18°55′19″N 72°50′00″E |
| 날짜 | 2008년 11월 26일 – 2008년 11월 29일 |
| 시간 | 26일 21:30 – 29일 08:00 |
| 시간대 | IST, UTC+05:30 |
| 유형 | 폭탄 테러 대량 총격 대량 살인 인질극 포위 공격 |
| 사망자 | 175명 (공격자 9명 포함) |
| 부상자 | 300명 이상 |
| 피해자 | 사상자 목록 참조 |
| 가해자 | 자키우르 레흐만 라크비 라슈카르에토이바 |
|---|---|
| 용의자 | (정보 없음) |
| 무기 | AK 소총 RDX IED 수류탄 |
| 참가자 수 | 10명 |
| 방어 | 국가 안전 경비대 MARCOS 뭄바이 경찰 CRPF RAF 철도 보호군 뭄바이 소방대 |
|---|---|
| 동기 | 이슬람 테러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기타 | "26/11"은 "스물여섯 열하나"로 발음함. 슬래시는 발음하지 않음. 인도 무슬림들은 26/11 공격자들을 매장하지 않은 것으로 칭송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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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10년 후, 뭄바이의 테러 시간 재방문 26/11 뭄바이 테러 공격 여파: 지금까지 227개 비주요 항구에서 보안 감사가 수행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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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의 테러 사건 -
2011년 뭄바이 테러
2011년 7월 13일 인도 뭄바이에서 발생한 세 차례의 폭탄 테러는 26명의 사망자와 130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으며, 질산 암모늄 기반 폭발물과 사제 폭발물이 사용되었고, 인도 무자히딘의 연루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
뭄바이의 테러 사건 -
2006년 뭄바이 열차 폭탄 테러
2006년 뭄바이 열차 폭탄 테러는 7월 11일 뭄바이 통근 열차 7곳에서 12분 동안 발생한 연쇄 폭탄 테러로 209명이 사망하고 700명 이상이 부상했으며, 복합적인 요인과 파키스탄 정보국 연루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다. -
2008년 대량 살인 -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은 2008년 6월 아키하바라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가토 도모히로가 트럭과 흉기로 7명을 살해하고 10명에게 부상을 입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
2008년 대량 살인 -
논현동 고시원 살인 사건
2008년 10월 20일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감 등으로 인한 용의자의 방화 및 살인으로 6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당했으며, 사형 선고 이후 사형 제도 존폐 논쟁을 야기했다. -
이스라엘의 고문 피해자 -
엘리 코헨
엘리 코헨은 이스라엘의 첩보 요원으로 모사드에서 활동하며 시리아에 침투하여 주요 정보를 수집, 사업가로 위장하여 고위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으나 발각되어 처형되었고, 그의 활동은 6일 전쟁 승리에 기여하여 이스라엘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
이스라엘의 고문 피해자 -
메나헴 베긴
메나헴 베긴은 이스라엘의 총리이자 이르군의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건국에 기여하고, 리쿠드를 이끌어 정권 교체를 이루었으며,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나, 레바논 침공 등으로 논란이 되기도 한 인물이다.
2. 역사적 배경
1993년 3월 12일, 뭄바이에서 257명의 사망자를 낸 13건의 조직적인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공격은 이전 봄베이 폭동에 대한 보복으로 자행되었으며, 당시 많은 무슬림들이 사망했다.
뭄바이는 인도 경제의 중심지이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으로, 테러리스트들의 주요 목표가 되어왔다. 2000년대에 들어 뭄바이에서는 여러 차례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 2002년 12월 6일, 가트코파르 역 근처에서 BEST 버스 폭발로 2명이 사망하고 2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폭탄 테러는 바브리 사원 철거 10주년에 발생했다.
* 2003년 1월 27일, 빌레 파를레 역 근처에서 자전거 폭탄이 터져 1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었다.
* 2003년 3월 13일, 물룬드 역 근처 열차 칸에서 폭탄이 터져 10명이 사망하고 70명이 부상을 입었다.
* 2003년 7월 28일, 가트코파르의 BEST 버스에서 폭발이 발생하여 4명이 사망하고 32명이 부상을 입었다.
* 2003년 8월 25일, 남부 뭄바이에서 두 개의 폭탄이 터져 최소 44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나는 인도의 관문 근처에서, 다른 하나는 칼바데비의 자베리 바자르에서 터졌다.
* 2006년 7월 11일, 뭄바이 교외 철도에서 11분 안에 7개의 폭탄이 터져 209명이 사망하고 7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뭄바이 경찰에 따르면, 이 폭탄 테러는 라슈카르-에-타이바(LeT)와 인도 이슬람 학생 운동(SIMI)에 의해 자행되었다.
2.1. 2001년 이후 주요 테러 사건 (인도)
2001년 이후 인도에서는 여러 차례의 주요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 연도 | 사건 |
|---|---|
| 2001 | 인도 의회 의사당 공격, 스리나가르 차량 폭탄 테러 |
| 2002 | 라구나트 사원 공격 (3월), 악샤르담 사원 테러, 콜카타 미국 문화원 공격, 칼루착 학살, 카심나가르 학살, 라피간지 열차 사고, 라구나트 사원 공격 (11월), 뭄바이 버스 폭탄 테러, 쿠르눌 열차 충돌 |
| 2003 | 뭄바이 폭탄 테러 (1월), 뭄바이 폭탄 테러 (3월), 뭄바이 폭탄 테러 (7월), 뭄바이 폭탄 테러 (8월) |
| 2005 | 아요디아 공격, 자운푸르 열차 폭탄 테러, 베굼펫 자살 폭탄 테러, 델리 폭탄 테러, 방갈로르 총격 사건 |
| 2006 | 아메다바드 기차역 폭탄 테러, 바라나시 폭탄 테러, 델리 자마 마스지드 폭탄 테러, 도다 학살, 뭄바이 열차 폭탄 테러, 말레가온 폭탄 테러, 서벵골 열차 폭발 사건, 카코파타르 학살, 스리나가르 폭탄 테러 |
| 2007 | 삼자우타 특급 폭탄 테러, 하이데라바드 메카 마스지드 폭발 (5월), 하이데라바드 폭탄 테러 (8월), 아즈메르 다르가 폭탄 테러, 우타르프라데시 폭탄 테러 |
| 2008 | 자이푸르 폭탄 테러, 방갈로르 연쇄 폭발, 아메다바드 폭탄 테러, 델리 폭탄 테러 (9월 13일), 델리 폭탄 테러 (9월 27일), 말레가온 폭탄 테러, 아가르탈라 폭탄 테러, 임팔 폭탄 테러, 아쌈 폭탄 테러, 뭄바이 테러 |
| 2011 | 뭄바이 폭탄 테러, 델리 폭탄 테러 |
| 2016 | 파탄코트 공격, 우리 공격 |
| 2019 | 풀와마 공격 |
3. 공격의 진행
2008년 11월 26일 밤, 뭄바이에서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발생했다. 테러는 뭄바이 남부의 여러 장소에서 발생했는데, 주요 공격 장소는 다음과 같다.
| 장소 | 공격 유형 |
|---|---|
| -- 차트라파티 시바지 마하라지 터미너스 역 | 총격, 수류탄 공격 |
| -- 레오폴드 카페 | 총격 |
| -- 타지마할 팰리스 호텔 | 총격, 폭발, 화재, 인질극 |
| -- 오베로이 트라이던트 호텔 | 총격, 폭발, 인질극, 화재 |
| 차량 탈취 후 총격 | |
| 카마 병원 | 총격, 인질극 |
| 나리만 하우스 (뭄바이 하바드 하우스) | 총격, 인질극 |
| 뭄바이 북부 빌레 파를레 | 차량 폭발 |
| 마즈가온 조선소 | 폭발, 선박 점거 |
| 길가움 초파티 해변 | 테러리스트 1명 사살, 1명 체포 |
테러리스트들은 해로를 통해 뭄바이에 잠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인도 어선을 납치하여 선원들을 살해하고, 11월 26일 오후 8시경 콜라바 지역에 상륙했다. 이들은 현지 어부들에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두 그룹으로 나뉘어 이동했다. 어부들의 신고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대응은 미흡했다.
주요 공격:
* [[차트라파티 시바지 마하라지 터미너스 역]] (CSMT): 아즈말 카사브와 이스마일 칸이 밤 9시 30분경 AK-47 돌격 소총으로 공격을 시작하여 58명이 사망하고 104명이 부상당했다. 철도 방송 아나운서 비슈누 다타람 젠데의 안내 방송은 많은 승객의 목숨을 구했다. 이후 두 테러리스트는 거리에서 경찰관 8명을 살해하고 카마 병원으로 향했으나, 병원 직원들의 대처로 환자 살해에는 실패했다. 테러 대책반과의 총격전 끝에 칸은 사살되고 카사브는 체포되었다.
* [[레오폴드 카페]]: 21시 30분에서 21시 48분 사이, 쇼아이브와 나지르, 두 명의 테러리스트가 카페에 총격을 가해 10명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 택시 폭탄 테러: 빌레 파를레와 와디 번더에서 두 차례의 택시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운전자와 승객 등 총 4명이 사망하고 약 15명이 부상당했다.
* [[타지마할 팰리스 호텔]]과 [[오베로이 트라이던트 호텔]]: 두 호텔에서 총격, 폭발, 인질극이 발생했다. 타지 호텔에서는 6차례, 오베로이 트라이던트 호텔에서는 1차례 폭발이 있었다. 소방관들은 타지 호텔에서 200명의 인질을 구출했다. 유럽 의회 의원 등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호텔에 투숙 중이었으나, 대부분 무사히 탈출했다.
* [[나리만 하우스]]: 두 명의 테러리스트가 차바드 루바비치 유대교 센터를 점거하고 인질극을 벌였다. NSG 특수부대가 투입되어 진압 작전을 펼쳤으나, 랍비 가브리엘 홀츠버그와 그의 아내 리브카 홀츠버그를 포함한 인질들이 살해되었다.
최종적으로 11월 29일 아침, NSG 특수부대가 모든 공격을 진압하고 테러리스트들을 사살하면서 공격이 종료되었다. NSG는 오베로이에서 250명, 타지에서 300명, 나리만 하우스에서 12가족 60명을 구출했다.
4. 테러의 배후 및 진상 규명
2008년 뭄바이 테러는 파키스탄 내 라슈카르에 타이바(Lashkar-e-Taiba) 무장 세력이 기획 및 지휘했으며, 10명의 젊은 무장 남성들이 뭄바이로 파견되어 훈련을 받고, 휴대전화와 VoIP를 통해 파키스탄 내부에서 지시를 받아 실행했다.
파키스탄 당국은 2009년 7월 라슈카르에 타이바(LeT)가 카라치와 타타에 있는 LeT 캠프에서 이 공격을 기획하고 자금을 지원했다고 확인했으며, 11월에는 앞서 체포한 7명의 남성을 이 공격의 기획 및 실행 혐의로 기소했다.
뭄바이 경찰은 파키스탄 육군 장교 2명을 포함한 37명의 용의자를 지목했고, 미국에서 체포된 데이비드 콜먼 헤들리(David Coleman Headley)와 타하우르 후세인 라나(Tahawwur Hussain Rana)도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파키스탄계 미국인 헤들리는 공격 전 인도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정보를 수집했다.
2011년 4월, 미국은 사지드 미르(Sajid Mir), 아부 카하파(Abu Qahafa), 마즈하르 이크발(Mazhar Iqbal, 별명 "마조르 이크발"(Major Iqbal)) 등 파키스탄 남성 4명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이들은 LeT의 일원으로 공격 계획과 훈련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4.1. 테러 단체
테러범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수색은 첫 번째 공격이 시작되는 동안 시작되었다. 수색 과정에서 무자히딘 하이데라바드 데칸(Mujahideen Hyderabad Deccan)이라는 이름을 가진 알려지지 않은 단체가 이메일을 통해 공격에 대한 책임을 주장했다. 이 이메일은 나중에 파키스탄에서 보내진 것으로 추적되었고, 허위 정보로 간주되었다.
뭄바이 테러는 파키스탄 내 라슈카르에 타이바(Lashkar-e-Taiba) 무장 세력이 기획 및 지휘했고, 뭄바이로 파견되어 훈련받은 10명의 젊은 무장 남성들이 휴대전화와 VoIP를 통해 파키스탄 내부에서 지시받아 실행했다. 2009년 7월, 파키스탄 당국은 LeT가 카라치와 타타에 있는 LeT 캠프에서 이 공격을 기획하고 자금을 지원했다고 확인했다. 2009년 11월, 파키스탄 당국은 앞서 체포한 7명의 남성을 이 공격의 기획 및 실행 혐의로 기소했다.
뭄바이 경찰서는 당초 음모에 연루된 혐의로 파키스탄 육군 장교 2명을 포함한 37명의 용의자를 지목했다. 대부분 별명으로만 알려진 용의자들 중 2명을 제외한 모든 용의자는 파키스탄인이다. 2009년 10월 미국에서 다른 테러 사건으로 체포된 데이비드 콜먼 헤들리(David Coleman Headley)와 타하우르 후세인 라나(Tahawwur Hussain Rana)도 뭄바이 테러 계획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한 명인 파키스탄계 미국인 데이비드 헤들리(David Headley, 본명 다우드 사예드 길라니(Daood Sayed Gilani))는 공격 전에 여러 차례 인도를 방문하여 음모자들을 위해 영상과 GPS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1년 4월, 미국은 이 공격의 용의자로 파키스탄 남성 4명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사지드 미르(Sajid Mir), 아부 카하파(Abu Qahafa), 마즈하르 이크발(Mazhar Iqbal, 별명 "마조르 이크발"(Major Iqbal))로 알려진 이 남성들은 라슈카르-에-타이바(Lashkar-e-Taiba)의 일원으로 여겨지며 공격자들의 계획과 훈련을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격자들은 몇 달 전부터 공격을 계획했으며, 보안군이 떠난 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날 수 있을 정도로 일부 지역을 잘 알고 있었다. 여러 소식통은 카사브가 경찰에게 그들이 뭄바이 주민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공격자들은 방글라데시와의 국경 인도 쪽에서 구입한 최소 세 개의 SIM 카드를 사용했다. 미국 뉴저지주에서 구입한 SIM 카드에 대한 보도도 있었다. 경찰은 2008년 2월 체포된 인도 라슈카르 대원 파힘 안사리가 11월 공격을 위해 뭄바이의 목표물을 정찰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카슈미르 스리나가르 출신의 믹타르 아마드와 콜카타 거주민 타우시프 레흐만이라는 두 명의 인도 용의자를 체포했다. 그들은 콜카타와 뉴델리에서 SIM 카드를 제공했다.
데칸 무자히딘(Deccan Mujahideen)이라는 조직은 사건의 범행 성명을 주장하는 이메일을 언론 기관에 발송했다. 수사 결과 이 이메일 발신지가 파키스탄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테러 실행범들의 소속 조직은 특정되지 않았다. 인도의 만모한 싱총리는 이 테러 사건은 단독으로는 실행 불가능했을 것이므로, 아마도 "외부와의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체포된 테러리스트 중 한 명이 자신들이 파키스탄에 본거지를 둔 이슬람주의 조직 라슈카르에 타이바(Lashkar-e-Taiba)에 소속되어 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일부 언론은 이러한 테러 공격을 파키스탄에 본거지를 둔 이슬람 무장단체 라슈카레토이바(Lashkar-e-Taiba)의 소행으로 보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에 따르면, 국제적인 보안 전문가들은 데칸 무자히딘에 대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으며, 한 분석가는 이를 허울 좋은 명칭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만약 라슈카레토이바가 연루되어 있다면, 이 테러는 알카에다(Al-Qaeda)와 연관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라슈카레토이바는 연루를 부인하고 있다.
많은 분석가들은 이번 공격이 파키스탄 세력이 아닌, 올해 일련의 폭발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 극단주의 그룹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4.2. 파키스탄 연루 의혹
인도 정부는 이 공격이 파키스탄 "기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파키스탄은 이를 부인했다. 인도 정부는 심문, 무기, 통화 기록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파키스탄은 처음에는 연루를 부인하고 방글라데시와 인도 범죄자를 비난했으나, 인도에 의해 반박당했다. 2009년 1월 7일, 파키스탄 당국은 아즈말 카사브가 파키스탄인이라는 데 동의하고, 다른 세 명의 파키스탄 국민에 대한 사건을 등록했다.
2009년 7월, 파키스탄 당국은 라슈카르에 타이바(LeT)가 카라치와 타타에 있는 캠프에서 공격을 기획하고 자금을 지원했다고 확인했다. 2009년 11월에는 공격 기획 및 실행 혐의로 7명을 기소했다.
뭄바이 경찰은 당초 파키스탄 육군 장교 2명을 포함한 37명의 용의자를 지목했다. 미국에서 체포된 데이비드 콜먼 헤드리와 타하우르 후세인 라나도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파키스탄계 미국인 헤드리는 공격 전 인도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정보를 수집했다.
2011년 4월, 미국은 파키스탄 남성 4명(사지드 미르, 아부 카하파, 마즈하르 이크발(별명 "마조르 이크발"))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이들은 LeT의 일원으로 공격 계획과 훈련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은 수사에 협조할 것을 약속했으며,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공격에 연루된 파키스탄 요소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다짐했다. 자마트 우드 다와의 몇몇 구성원을 체포했지만, 며칠 후 풀어주었다.
2010년 10월, 인도 보고서는 파키스탄 정보기관(ISI)이 자금 제공을 통해 공격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는 LeT 최고 군사 사령관 자키 우르 라흐만 라크비가 ISI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2018년, 나와즈 샤리프 전 파키스탄 총리는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의 책임을 인정했다.
4.3. 수사 및 재판
아즈말 카사브는 경찰에 의해 생포된 유일한 테러범이었다. 그는 2010년 5월 6일 사형 선고를 받았고, 2012년 11월 21일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인도에서 사형 집행은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에, 이 사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카사브의 재판은 인도 변호사들이 변호를 꺼리면서 지연되었지만, 결국 변호인이 선임되었다. 2009년 2월, 인도 수사관들은 카사브를 살인, 음모 등의 혐의로 기소하는 1만 1천 페이지 분량의 공소장을 제출했다. 카사브는 2010년 5월 3일 86개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봄베이 고등법원과 인도 대법원은 그의 항소를 기각하고 사형을 확정했다.
파키스탄에서는 테러 관련자 7명이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되었다. 2009년 11월, 파키스탄 당국은 공격 기획 및 실행 혐의로 7명을 기소했다. 인도와 파키스탄 경찰은 DNA 증거 등을 교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파키스탄에서는 호메오파시 약사 함마드 아민 사디크를 포함한 7명이 체포되어 2009년 10월 공식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인도 당국은 기소가 라슈카르 지도부의 최고위급 인물들에게는 미치지 못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데이비드 콜먼 헤들리와 타하우르 후세인 라나 등 관련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헤들리는 2006년에 이크발 소령으로 알려진 ISI 장교로부터 25000USD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이 장교가 공격을 위한 통신 시스템 마련을 도왔다고 진술했다. 헤들리는 12가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35년형을 선고받았다. 타하우르 라나는 뭄바이 테러 공격 음모 혐의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다른 두 가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14년형을 선고받았다.
2012년 6월, 델리 경찰은 자비우딘 안사리(아부 함자)를 체포했는데, 이는 카사브 체포 이후 가장 중요한 진전으로 여겨졌다. 안사리는 공격자들의 힌디어 교사였으며, 그의 심문을 통해 사지드 미르 등 파키스탄 육군 소령이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5. 피해
2008년 11월 26일 밤, 인도 최대 도시이자 상업 중심지인 뭄바이에서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발생하여 최소 174명(인도인 141명, 외국인 34명)이 사망하고 293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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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는 차트라파티 시바지 마하라지 터미너스 역, 타지마할 팰리스 호텔, 오베로이 트라이던트 호텔, 레오폴드 카페, 나리만 하우스 등 여러 장소에서 발생했다.
| 장소 | 공격 유형 | 사망자 수 | 구조자 수 |
|---|---|---|---|
| 뭄바이 항구 | 총격, 인질극 | 4 | 없음 |
| 차트라파티 시바지 터미너스 (급행/근교 열차 종착역) | 총격, 수류탄 공격 | 58 | |
| 콜라바 레오폴드 카페 | 총격, 수류탄 폭발 | 10 | |
| 인도의 관문 근처 타지 마할 팰리스 호텔 | 총격, 6차례 폭발, 화재, 인질, 인근에서 RDX 발견 | 31 (특수부대원 1명 포함) | 약 250 |
| 나리만 포인트 오베로이 트라이던트 | 총격, 폭발, 인질, 화재 | 30 | 143 |
| 메트로 시네마 | 차량 탈취 경찰차 총격 | 약 10 | 없음 |
| 카마 병원 | 총격, 인질 | 경찰 5명 | |
| 나리만 하우스 (차바드 하우스) 유대교 봉사활동 센터 | 포위, 총격, 인질 | 7 (특수부대원 1명 포함) | 9 |
| 빌레 파를레 (공항 근처) | 차량 폭탄 테러 | 1 | 없음 |
| 타임스 오브 인디아 건물 뒤쪽 | 총격 | 경찰 9명 | |
| 마자가온 (뭄바이 항구 지역) | 폭발, 무장 보트 압수 | 없음 |
레오폴드 카페에서는 10명(일부 외국인 포함)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타지 마할 팰리스 호텔에서는 31명, 오베로이 트라이던트 호텔에서는 30명이 사망했다. 나리만 하우스에서는 랍비 가브리엘 홀츠버그와 임신 6개월이었던 그의 아내 리브카 홀츠버그를 포함한 7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에는 사업, 언론, 보안 서비스 분야의 저명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하라슈트라 주는 테러 공격으로 사망한 유족에게 500,000 루피, 중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50,000 루피의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6. 사건의 영향 및 반응
2008년 뭄바이 테러("26/11 테러")는 인도 국내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건 발생 1년 후 제출된 프라단 조사 위원회 보고서는 "전쟁 같은" 공격에 대한 경찰의 대응 부족, 특히 하산 가푸르 뭄바이 경찰청장의 리더십 부재를 비판했다.
마하라슈트라 주 정부는 해안 경비 강화, 대테러 부대 (포스 원) 창설, 경찰 무기 현대화 등을 계획했다. 만모한 싱 총리는 연방 대테러 정보 및 수사 기관 설립을 약속했고, 정부는 대테러법을 강화하고 국가수사기관을 설립했다.
인도 국민들은 정치 지도자들의 무능을 비판하며 시브라지 파틸 내무부 장관 등 주요 정치인들이 사퇴했다. 인도 무슬림들은 테러를 규탄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기업과 시민 사회도 보안 강화와 추모 운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테러는 인도-파키스탄 관계를 악화시켰고, 미국 등 국제사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FBI는 인도 정보 기관과의 협력을 칭찬했지만, 인터폴은 정보 공유 부족을 지적했다.
언론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파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 사건을 "가장 잘 기록된 테러 공격"이라고 평가했다.
6.1. 인도-파키스탄 관계 악화
2008년 뭄바이 테러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를 급격히 악화시켰다. 인도에서는 파키스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시 인도 외무장관 프라납 무케르지는 인도의 영토 보전을 위해 파키스탄 내 테러 캠프에 대한 군사 공격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인도 정부는 파키스탄 정부에 테러 당시 심문 기록, 무기 및 통화 기록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파키스탄 "기관"의 공식적인 지원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파키스탄은 테러 연루를 부인하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파키스탄의 유수프 라자 길라니 총리와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테러를 규탄하고, 공격에 연루된 파키스탄 요소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다짐했다. 초기에는 파키스탄인들의 공격 책임을 부인하고 방글라데시 음모자와 인도 범죄자를 비난했지만, 2009년 1월 7일, 파키스탄 당국은 생포된 테러범 아즈말 카사브가 파키스탄인임을 인정하고, 다른 세 명의 파키스탄 국민에 대한 사건을 등록했다.
파키스탄은 자마트 우드 다와의 몇몇 구성원을 체포하고 설립자를 잠시 가택 연금했지만, 며칠 후 풀어주었다. 공격 1년 후에도 뭄바이 경찰은 파키스탄 당국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불만을 제기했다.
2010년 10월, 인도 정부는 데이비드 헤들리 심문 결과를 요약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파키스탄 정보기관(ISI)이 뭄바이 정찰 임무에 자금을 제공하여 공격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는 라슈카르에 타이바 최고 군사 사령관 자키 우르 라흐만 라크비가 ISI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헤들리의 주장이 포함되었다.
2018년, 파키스탄 전 총리 나와즈 샤리프는 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뭄바이 공격을 막지 못한 파키스탄의 무대응을 문제 삼았다.
인도는 파키스탄 정부가 협력하지 않을 경우 파키스탄 영토에 대한 공격을 개시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인도와의 국경으로 군대를 이동시켰으나, 수일간의 회담 끝에 파키스탄 정부는 국경에서 군대를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6.2. 국제사회의 반응
2008년 뭄바이 테러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긴장을 더욱 악화시켰다. 인도에서는 반파키스탄 감정이 고조되었으며, 이는 2016년 우리 공격과 2019년 풀와마 공격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미국에서도 6명의 미국인이 사망하면서 비슷한 감정이 나타났다. 이 공격과 압바타바드 급습 이후, 미국에서는 반파키스탄 시각과 파키스탄계 사람들에 대한 증오 범죄가 급증했다. 이러한 차별을 피하기 위해 많은 파키스탄인과 파키스탄계 미국인들이 자신을 인도인으로 밝히고 있다.
당시 인도 외무장관 프라납 무케르지는 인도가 영토 보전을 위해 파키스탄 내 테러 캠프에 대한 군사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 사건은 미국과 양국 간의 관계, 미국 주도의 NATO 아프가니스탄 전쟁, 세계 테러와의 전쟁에도 영향을 미쳤다. FBI 국장 로버트 뮬러는 뭄바이 테러 공격 조사와 관련하여 미국과 인도 정보 기관 간의 "전례 없는 협력"을 칭찬했다. 그러나 인터폴 사무총장 로날드 노블은 인도 정보 기관이 인터폴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6.3. 인도 국내의 변화
2008년 뭄바이 테러는 인도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 테러는 "26/11" 테러라고도 불리며, 인도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정치적 변화
테러 이후 인도 국민들은 정치 지도자들의 무능함을 강하게 비판했다. 언론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우리 정치인들은 무능하게 앉아있고 무고한 사람들은 죽어간다"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 여론 속에서 시브라지 파틸 내무부 장관, 빌라스라오 데슈무크 주총리, R. R. 파틸 부총리 등 주요 정치인들이 사퇴했다. 특히, 전 장관이 아들과 볼리우드 감독 람 고팔 바르마를 대동하고 피해 현장인 타지 호텔을 방문한 것과, 테러를 대수롭지 않게 언급한 것이 큰 논란이 되었다.
보안 강화
마하라슈트라 주 정부는 해안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 고속정 36척과 헬리콥터를 구매할 계획을 세웠다. 또한, "포스 원"이라는 대테러 부대를 창설하고 뭄바이 경찰의 무기를 현대화하는 계획도 추진했다. 만모한 싱 총리는 FBI와 같은 연방 대테러 정보 및 수사 기관을 설립하여 테러 대응 활동을 조율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UAPA 2008을 통해 대테러법을 강화하고, 연방 국가수사기관을 설립했다.
시민 사회의 반응
사회 운동가 케탄 티로드카르는 테러로 사망한 경찰관, 특히 뭄바이 경찰 폭발물 처리반 대원들의 희생에 대한 정의를 요구하는 공익 소송을 제기했다.
인도 무슬림들은 테러를 규탄하고 공격자들의 매장을 거부했다. 무슬림 단체들은 테러에 반대하는 행진을 벌였고, 모스크에서는 희생자들을 위한 침묵 기도가 이어졌다. 아미르 칸과 같은 유명 무슬림 인사들은 이드 알 아드하를 애도의 날로 지킬 것을 촉구했다.
기업들은 교통 체계 변화와 자체 보안 강화 등을 요구하며 테러에 대응했다. 이 공격은 인디아 투데이 그룹의 "테러와의 전쟁" 캠페인과 같은 시민 운동을 촉발시켰다. 인도 전역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 집회와 추모식이 열렸다. 한편, 델리에 주둔한 NSG 특수부대가 테러 현장에 도착하는 데 10시간이나 걸린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6.4. 언론 보도와 소셜 미디어의 역할
2008년 뭄바이 테러에 대한 국제적인 반응은 광범위했으며, 많은 국가와 국제기구들이 공격을 규탄하고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전 세계의 주요 인사들도 이 공격을 비판했다.
언론 보도는 소셜 미디어인 트위터와 플리커 등을 사용하여 공격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을 강조했다. 많은 인도 블로거들이 실시간 텍스트 보도를 제공했으며, 웹 저널리스트들은 구글 지도를 활용해 공격 지도를 작성했다. 뉴욕 타임스는 2009년 7월 이 사건을 "어쩌면 어디에서도 가장 잘 기록된 테러 공격일 것"이라고 묘사했다.
뭄바이 연쇄 테러는 시민 저널리즘과 소셜 미디어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와 플리커를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알렸고, 정보는 "뭄바이"나 "공격"이라는 태그로 공유되었다. 테러 공격 다음 날, 인도 정부는 뭄바이 시민들에게 경찰 활동 생중계를 트위터로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많은 인도 블로거들이 블로그를 통해 사건을 생중계했고, 사건 발생 장소는 구글 지도에 표시되었다. 영어 위키피디아 등도 기존 언론보다 먼저 자세한 내용을 보도했다.
7. 기념 및 추모
사건 1주년에, 주 정부는 희생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마하라슈트라 주 정부가 창설한 새로운 치안 부대인 포스 원은 나리만 포인트에서 초파티까지 행진을 펼쳤다. 공격이 발생했던 여러 장소에서 다른 추모식과 촛불 추모식도 열렸다.
사건 2주년에도 희생자들에게 다시 경의를 표했다.
26/11 뭄바이 테러 공격 10주년에 라슈카르-에-타이바 테러리스트들의 표적이 되었던 여러 시설 중 하나인 나리만 하우스는 추모비로 지정되어 나리만 등대(Nariman Light House)로 이름이 바뀔 예정이었다.
인디언 익스프레스 그룹은 2008년 뭄바이에서 발생한 끔찍한 테러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뭄바이에서 매년 26/11 – Stories of Strength라는 추모 행사를 개최한다. 2016년에 시작된 이 추모 행사는 현재 인도 게이트에서 열리며, 인디언 익스프레스가 지난 10년 동안 인터뷰한 100명 이상의 생존자들의 용기와 힘에 관한 영감을 주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배우 아미타브 바찬은 수년 동안 이 행사의 홍보대사를 맡았다.
8. 관련 작품
* 뭄바이 대학살 (2009): 빅토리아 미드윈터 피트 감독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영화로, 2008년 뭄바이 테러 생존자들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오스트레일리아 방송공사에서 처음 방영되었으며, PBS의 죽음의 비밀 에피소드로 재편집되어 방영되었다.
* 뭄바이 테러 (2009): 댄 리드 감독의 영국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영화로, HBO에서 방영되었다. 젊은 총격범들과 파키스탄 지휘자들 간의 통화 내용과 유일하게 살아남은 총격범의 증언을 담고 있다.
* 뭄바이 테러 공격 (2010): 아시시 R. 슈클라 감독의 인도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영화로, 미디테크 제작, 내셔널 지오그래픽 인도에서 방영되었다.
* "포위된 도시" (2012): 매슈 힌치클리프 감독,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시리즈 블랙 옵스의 첫 번째 에피소드. 테러 공격 당시 구조 작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뭄바이 테러" (2011): 마이크 필립스 감독, 미국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드라마 시리즈 살아남았다의 네 번째 에피소드. 테러 공격에 휘말린 외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내용이다.
* "뭄바이 대학살" (2012): 스탠 그리핀 감독,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드라마 시리즈 재난의 순간 5시즌 여섯 번째 에피소드. 테러 공격으로 이어진 정보 실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블랙 토네이도 작전" (2018): 온라인 채널 디스커버리의 비어에서 방영된 인도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시리즈 배틀 옵스의 세 번째 에피소드.
* 루바루 로쉬니 (2019): 스바티 차크라바르티 바트칼 감독의 인도 다큐멘터리 영화. 스타 인도에서 방영되었으며, 테러 공격 생존자들에 대한 내용이다.
* 크래커스(2011): 아닐 고얄 감독의 인도 애니메이션 영화. 테러 공격에서 영감을 받았다.
* 뭄바이 작전(2012): 아짓 바르마 감독의 인도 액션 영화. 아즈말 카사브의 동기 등 테러 공격의 사건들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 샤히드(2012): 한살 메타 감독의 인도 전기 드라마 영화. 변호사이자 인권 운동가였던 샤히드 아즈미의 삶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2010년 테러리스트를 사주한 혐의를 받았던 파힘 안사리의 변호를 맡았다가 암살당했다(후에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음).
* 26/11 테러 공격(2013): 람 고팔 바르마 감독의 인도 액션 스릴러 영화. 로멜 로드리게스의 책 카사브: 26/11의 얼굴을 바탕으로 하며 아즈말 카사브에 초점을 맞춰 테러 공격을 묘사한다.
* 아람밤(2013): 비슈누바르단 감독의 인도 액션 스릴러 영화. 테러 공격에서 영감을 받은 인도의 대테러 작전에 대한 내용이다.
* 팬텀(2015): 카비르 칸 감독의 인도 액션 스릴러 영화. 라슈카르-에-타이바 지도자 하피즈 사에드 암살에 대한 대안적 역사적 해석을 담고 있다.
* 타지마할(2015): 니콜라스 사아다 감독 및 각본의 프랑스-벨기에 스릴러 드라마 영화. 제72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호라이즌 부문에 상영되었다. 테러리스트들이 호텔을 공격했을 때 호텔 방에 혼자 있었던 18세 프랑스 소녀에 대한 영화이다.
* 뭄바이 포위: 4일간의 공포(또는 하나의 신이 적어짐) (2017): 리암 워딩턴 감독의 독립 오스트레일리아 영화. 타지 호텔 안에 있던 몇몇 외국인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 호텔 뭄바이(2019): 앤서니 마라스 감독, 존 콜리와 마라스 각본의 액션 스릴러 영화. 테러 공격에서 파키스탄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 푸나 26/11(다시 26/11): 인도 액션 영화. 테러 공격 이후 뭄바이에 대한 또 다른 공격을 막기 위한 노력을 배경으로 한다.
* 인터뷰(2021): 로렌스 포스트마 감독 및 각본의 인도 스릴러 영화. 기자는 테러 공격 보도를 포기하고 발리우드 여배우와 인터뷰를 한다.
* 수리야반시(2021): 로히트 셰티 감독의 인도 액션 영화. 테러 공격 이후 대테러 작전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 메이저(2022): 사시 키란 티카 감독의 인도 전기 액션 영화. 텔루구어와 힌디어로 동시에 촬영되었으며, 테러 공격 당시 인질을 구출하다 사망한 메이저 산딥 우니크리슈난의 삶을 바탕으로 한다.
* 아짓 바르마(Ajit Varma) 감독의 인도 힌디어 텔레비전 미니시리즈 작전 26/11(Operation 26/11, 2021)은 뭄바이 테러 이후의 상황과 그에 따른 대테러 작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ZEE5에서 공개된 인도 힌디어 웹 시리즈 포위 상태: 26/11(State of Siege: 26/11, 2020)은 NSG 특수부대원의 관점에서 테러 공격을 보여준다. 이 시리즈는 기자 산딥 우니타한(Sandeep Unnithan)의 책 블랙 토네이도: 뭄바이 3중 포위 작전 26/11(Black Tornado: The Three Sieges of Mumbai 26/11)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방영된 인도 힌디어 의학 드라마 시리즈 뭄바이 다이어리 26/11(Mumbai Diaries 26/11, 2021)은 니킬 아드바니와 니킬 곤살비스(Nikhil Gonsalves)가 감독했다. 이 시리즈는 테러 당일 밤 봄베이 제너럴 병원 직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 로멜 로드리게스(Rommel Rodrigues)의 저서 카사브: 26/11의 얼굴(Kasab: The Face of 26/11)(2010)은 체포된 유일한 테러리스트인 아즈말 카사브(Ajmal Kasab)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은 앞서 언급된 영화 26/11 공격(The Attacks of 26/11)의 기초가 되었다.
* 캐시 스콧-클락(Cathy Scott-Clerk)과 에이드리언 레비(Adrian Levy)의 논픽션 저서 포위: 타지 공격(The Siege: The Attack on the Taj)은 2008년 11월 26일 밤 인도 뭄바이의 타지 마할 팰리스 호텔에서 발생한 2008년 테러 공격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은 2013년 펭귄 북스(Penguin Books)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 2014년, 인도 언론인 산딥 우니탄(Sandeep Unnnithan)이 쓴 논픽션 저서 블랙 토네이도: 뭄바이 26/11의 세 번의 포위 공격(Black Tornado: The Three Sieges of Mumbai 26/11)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테러 공격의 자세한 경과와 인도의 보안군이 뭄바이 포위 공격을 어떻게 막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 아지즈 버니(Aziz Burney)는 26/11: RSS의 음모?(26/11: RSS ki Saazish?)라는 제목의 책을 써서 RSS가 어떤 식으로든 공격과 관련이 있다고 암시하며 인도국민회의 지도자 디그비자야 싱(Digvijaya Singh)의 참석하에 책을 출판했다. 나중에 RSS가 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사과해야 했다.
* 2020년 회고록 이제 말하겠습니다(Let Me Say It Now)에서 테러 공격 수사 책임자였고 아즈말 카사브(Ajmal Kasab)를 직접 심문했던 라케시 마리아(Rakesh Maria) 전 IPS 경찰은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시신을 힌두교도로 오인되게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밝혔다. 마리아에 따르면, 라슈카르-에-타이바는 카사브가 ‘사미르 디네시 차우다리(Samir Dinesh Chaudhari)’라는 벵갈루루 거주자로, 손목에 붉은색(신성한) 실을 묶고 ‘힌두 테러’ 사건으로 묘사되도록 죽기를 원했지만, 그들의 계획은 실패하고 경찰이 카사브를 체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