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마요트 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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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9년 마요트 국민투표는 마요트가 프랑스의 해외 레지옹으로 지위를 변경하는 것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였다. 2009년 3월 29일에 실시된 이 투표에서 95%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로 찬성이 통과되었고, 이에 따라 마요트는 2011년 프랑스의 해외 레지옹이 되었다. 이로 인해 마요트의 법률, 사회 제도, 경제 시스템이 프랑스 기준에 맞춰 변화했으며, 프랑스 사회 복지 혜택과 유럽 연합 기금을 지원받게 되었다. 반면, 코모로와 아프리카 연합은 이 투표에 반대하며 외세 점령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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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마요트 국민투표 | |
---|---|
국민투표 개요 | |
주제 | 마요트의 해외 데파르트망 지위 전환 |
날짜 | 2009년 3월 29일 |
질문 | 마요트가 프랑스 헌법 73조에 따른 해외 데파르트망이 되는 것을 승인하십니까? |
투표 결과 | |
총 투표수 | 39,634 |
찬성표 | 38,161 |
반대표 | 1,473 |
유효표 | 39,634 |
무효/기권표 | 정보 없음 |
투표율 | 61.02% |
찬성 비율 | 96.98% |
결과 | |
결과 | 찬성 |
영향 | 마요트가 프랑스의 101번째 데파르트망이 됨 |
배경 | |
배경 | 마요트는 1970년대부터 프랑스와 코모로 간의 분쟁 지역이었으며, 프랑스는 마요트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코모로는 자국 영토로 주장함. |
이전 국민투표 | 2000년 국민투표에서 유권자들은 마요트가 "프랑스 공화국 내에서"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지지함. |
기타 정보 | |
코모로의 입장 | 코모로인들은 마요트의 프랑스령 지위에 반대하며, 국민투표를 "도발"로 간주함. |
시위 | 국민투표에 반대하는 코모로인들의 시위가 있었음. |
2. 역사적 배경
2009년 국민투표 당시 마요트의 인구는 약 18만 6천 명이였다.[3]
2. 1. 프랑스와의 관계
마오래인의 95%는 수니파 이슬람교 신자이다.[3] 많은 마오래인은 프랑스어보다 시마오레 방언과 부시어를 포함한 현지 언어에 능숙하다.[3] 인구의 3분의 1은 대부분 가난한 이웃 섬인 코모로에서 온 불법 이민자로 추정된다.[3] 프랑스와의 지속적인 정치적 연합은 마요트가 독립된 코모로에 비해 적어도 지역적 기준으로는 상대적으로 번영을 유지하도록 해주었다.[3] 독립 이후 경제적, 정치적 불안정을 겪고 있는 코모로는 마요트를 자국 영토의 일부로 계속 주장하고 있다.[3]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마요트의 미래 지위에 대한 국민투표를 약속했다.[3] 많은 마오래인은 찬성 결과가 나올 경우 미래에 경제적으로 혜택을 받기를 희망했으며, 2009년 국민투표 당시 마요트의 실업률은 25%가 넘었다.[3]
2. 2. 코모로와의 관계
마요트 인구의 95%는 수니파 이슬람교 신자이다.[3] 많은 마오래인은 프랑스어보다 시마오레 방언과 부시어를 포함한 현지 언어에 능숙하다.[3] 인구의 3분의 1은 대부분 가난한 이웃 섬인 코모로에서 온 불법 이민자로 추정된다.[3] 프랑스와의 지속적인 정치적 연합은 마요트가 독립된 코모로에 비해, 적어도 지역적 기준으로는, 상대적으로 번영을 유지하도록 해주었다.[3] 독립 이후 경제적, 정치적 불안정을 겪고 있는 코모로는 마요트를 자국 영토의 일부로 계속 주장하고 있다.[3]3. 국민투표 이전 상황
2009년 마요트 국민투표 당시 마요트의 인구는 약 18만 6천 명이었다.[3] 마오래인의 95%는 수니파 이슬람교 신자이며,[3] 프랑스어보다 시마오레 방언과 부시어 등 현지 언어에 능숙한 주민이 많았다.[3] 인구의 3분의 1은 대부분 가난한 이웃 섬 코모로에서 온 불법 이민자로 추정된다.[3]
마요트는 프랑스와의 지속적인 정치적 연합으로 독립된 코모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번영을 누려왔다.[3] 반면, 코모로는 독립 이후 경제적, 정치적 불안정을 겪으며 마요트를 자국 영토의 일부로 계속 주장하고 있다.[3]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마요트의 미래 지위에 대한 국민투표를 공약했다.[3] 2009년 국민투표 당시 마요트의 실업률은 25%가 넘었으며, 많은 마오래인은 찬성 결과에 따른 경제적 혜택을 기대했다.[3]
3. 1. 찬성 운동
마요트의 주요 정당과 정치인, 일반 평의회 의장 아흐메드 아투마니 두치나를 포함한 모든 정치인들이 찬성 운동을 지지했다.[2] 예를 들어, 마오라이 입법 의원인 압둘라티푸 알리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요트가 본토의 일부 지역보다 프랑스와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찬성 운동을 지지했다. 그는 "우리는 흑인이자 가난하고 무슬림일지라도 니스보다 더 오랫동안 프랑스인이었다."라고 말했다.[3] 이 캠페인은 또한 파리의 프랑스 정부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국민 투표 직전의 여론 조사에서 마요트 시민 대다수가 더 긴밀한 정치적 통합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찬성 캠페인이 큰 표차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2] 많은 사람들은 완전한 프랑스 시민권이 주는 이점이 프랑스 법에 따라 폐지될 일부다처제와 같은 전통적인 지역 관습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크다고 보았다.[2]
3. 2. 반대 운동

일부 이슬람 이맘과 종교 지도자들은 "반대" 투표를 촉구했다.[2] 마요트의 수도인 마무주의 이맘은 "찬성"이 승리하면 일부다처제가 폐지될 것으로 예상하여 국민투표에 강력히 반대했다.[2] 그는 "꾸란의 율법은 남자가 두세 명의 아내를 갖는 것을 허용합니다. 저는 일부다처제를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이미 두세 명의 아내를 떠나보냈습니다."라고 말했다.[2]
4. 국민투표 결과
투표 결과 | 득표수 | 득표율 (%) |
---|---|---|
찬성 | 41,492 | 95.22 |
반대 | 2,084 | 4.78 |
유효표 | 43,576 | 99.14 |
무효표 | 380 | 0.86 |
총 투표수 | 43,956 | - |
투표율 | - | 61.02 |
초기 개표 결과, 찬성표가 전체 투표의 약 95.2%를 차지했다.[3][4] 마요트 유권자의 투표율은 약 61%로 높게 나타났다.[3]
5. 국민투표 이후 변화와 영향
2009년 마요트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마요트는 2011년 3월 31일 프랑스의 해외 레지옹이 되었다.[3] 이는 마요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마요트는 프랑스 법 체계를 따르게 되면서, 일부다처제 금지,[3] 여성 상속권 강화,[3] 결혼 가능 연령 상향 (15세 → 18세)[3] 등 여성의 권리가 강화되었다. 또한 샤리아 폐지,[8] 카디의 역할 변화 (판사 → 법률 자문역)[3] 등 사법 제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마요트는 프랑스의 해외 레지옹이 되면서 확대된 사회, 경제 프로그램과 유럽 연합의 기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3]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본토 수준의 사회 복지 제도를 즉시 제공하는 대신, 2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프랑스 본토와 동일한 수준으로 제공할 예정이다.[2] 이와 함께 마오라이 인프라 강화를 위한 재정 지원도 약속했다.[3] 한편, 프랑스와의 통합으로 소득세가 인상되었다.[3]
5. 1. 정치적 변화
해외 집합체였던 마요트는 2009년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2011년 3월 31일 프랑스의 해외 레지옹이 되었다.[3]이에 따라 마요트의 사법, 경제, 사회 법률 및 관습은 프랑스 법에 맞게 변경되었다. 레지옹이 되기 전, 마요트는 일부다처제를 금지했다.[3] 여성의 상속권 등 여성의 권리는 프랑스 기준에 맞춰 강화되었다.[3] 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은 15세에서 18세로 높아졌다.[3] 마요트는 동성 및 이성 시민 연대 협약을 합법화했다.
이슬람의 꾸란 원칙과 아프리카 문화, 말라가시 문화의 관습이 결합된 마요트의 전통적인 지방 법원 제도는 프랑스 법률 체제를 우선하여 점진적으로 사라졌다.[2] 샤리아는 폐지되고 통일된 프랑스 법으로 대체되었다.[8] 이전에는 종교 학자인 카디로 구성된 전통적인 이슬람 법률 시스템이 존재하여 이슬람 율법 관련 사건을 판결했으나,[3] 이슬람 법원과 사법 제도는 세속 법원으로 대체되었다. 다만, 카디는 법률 자문역으로 남았다.[3]
마요트는 레지옹이 되면서 확대된 프랑스 사회 및 경제 프로그램과 유럽 연합 기금 지원을 받게 되었다.[3]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본토 수준의 사회 복지 제도를 즉시 확대하지 않고, 2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마오라이 시민에게 확대하여 프랑스 본토와 동일한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2] 프랑스 정부는 마오라이 인프라 강화를 위한 재정 지원도 약속했다.[3]
프랑스 공화국과의 통합으로 소득세가 인상되었다.[3]
5. 2. 경제적 변화
레지옹이 되면서 마요트는 확대된 프랑스 사회 및 경제 프로그램과 유럽 연합 기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3]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본토가 누리는 사회 복지 제도를 즉시 확대하지 않았다.[2] 대신 사회 서비스 혜택은 20년 동안 점진적으로 마오라이 시민에게 확대되어 프랑스 본토에서 누리는 혜택과 동일하게 될 예정이다.[2] 프랑스 정부는 또한 마오라이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3]프랑스 공화국과의 통합으로 인해 소득세가 인상되었다.[3]
5. 3. 사회, 문화적 변화
해외 집합체였던 마요트는 2011년 3월 31일 프랑스의 해외 레지옹이 되면서, 지역의 사법, 경제, 사회 법률 및 관습은 프랑스 법에 따라 변경되었다.[3] 마요트는 레지옹이 되기 전에 일부다처제를 금지했고,[3] 여성의 권리는 프랑스 기준에 맞춰 강화되었다. 이전에는 마요트에서 여성의 상속권이 동등하지 않았으나,[3] 프랑스 사법 제도에 따라 수정되었다. 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은 15세에서 18세로 상향되었다.[3]이슬람의 꾸란 원칙과 아프리카 문화, 말라가시 문화의 관습을 결합한 전통적인 마요트 지방 법원 제도는 프랑스 법률 체제를 선호하여 단계적으로 폐지되었다.[2] 샤리아는 폐지되고 통일된 프랑스 법으로 대체되었다.[8] 마요트는 종교 학자로 알려진 카디로 구성된 전통적인 이슬람 법률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은 이슬람 율법과 관련된 사건에서 판사 역할을 했다.[3] 이슬람 법원과 사법 제도는 세속 법원으로 대체되었지만, 카디는 법률 자문역으로 역할을 유지했다.[3]
6. 국제 사회의 반응
프랑스 내무부 장관 미셸 알리오-마리는 압도적인 선거 결과에 대해 "이는 마요트의 공화국 내 지위를 강화하고, 특히 성 평등, 법적 평등, 그리고 프랑스어의 지위와 같은 우리 헌법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3]
아프리카 연합과 코모로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외세의 점령"이라며 반대했으며, 코모로 수도 모로니에서 여러 차례 시위가 열렸다.[5][6] 코모로 부통령은 이번 투표를 "선전포고"라고 말했다.[7]
참조
[1]
뉴스
Départementalisation de Mayotte : début d'une campagne d'explication
http://www.lagazette[...]
La Gazette
2009-01-09
[2]
뉴스
Mayotte readies for referendum on overseas department status
http://www.france24.[...]
2009-03-29
[3]
뉴스
Mayotte votes for full French integration
http://www.france24.[...]
2009-03-29
[4]
뉴스
Mayotte : 95.2% de "oui" au final
http://www.lefigaro.[...]
Le Figaro
2009-03-29
[5]
뉴스
Mayotte to hold referendum on whether to become France's 101st département
https://www.telegrap[...]
Telegraph
2009-03-27
[6]
뉴스
Comorans demonstrate against French referendum for Mayotte
https://web.archive.[...]
Afrique en ligne
2009-03-28
[7]
뉴스
Mayotte backs French connection
http://news.bbc.co.u[...]
BBC News
2009-03-29
[8]
뉴스
Mayotte vote en faveur de la départementalisation
http://www.lemonde.f[...]
Le Monde
2009-03-29
[9]
뉴스
마요트, 해외 데파르트망 승격을 위한 국민투표 준비 (Mayotte readies for referendum on overseas department status)
http://www.france24.[...]
France 24
2011-04-05
[10]
웹인용
마요트, 프랑스 101번째 광역단체 편입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1-04-05
[11]
웹인용
마요트, 프랑스 해외道(도)로 편입된다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1-06-14
[12]
뉴스
Mayotte to hold referendum on whether to become France's 101st département
http://www.telegraph[...]
Telegraph
2009-03-27
[13]
뉴스
Comorans demonstrate against French referendum for Mayotte
http://www.afriqueje[...]
Afrique en ligne
200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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