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마르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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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브리엘 마르셀은 프랑스의 철학자, 극작가, 음악 평론가로, 1889년 파리에서 태어나 1973년 사망했다. 그는 초기 실존주의자로 분류되지만, 무신론적 실존주의와는 거리를 두었으며, '신소크라테스주의자'를 자처하며 기독교적 실존주의를 강조했다. 마르셀은 '소유'와 '존재'를 대립시키고, 기술 중심 사회의 물질주의를 비판했으며, 타자와의 관계에서 상호 주관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주요 저서로는 《형이상학 일기》, 《존재와 소유》, 《존재의 신비》 등이 있으며, 희곡 작품도 다수 발표했다. 그의 철학은 장 발, 폴 리쾨르, 에마뉘엘 레비나스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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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생상스는 1835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오페라, 교향시, 협주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 프랑스의 음악 평론가 - 가오싱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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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자유주의 신학 비판과 신정통주의 신학 창시, 나치즘 저항,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 정립,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 기여 등으로 알려져 있다. - 실존주의 신학자 - 에마뉘엘 레비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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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는 19세기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이자 비평가, 사회 운동가로, 《루공마카르 총서》를 통해 제2제정 시대 프랑스 사회를 묘사했으며 드레퓌스 사건 당시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하여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 프랑스의 평론가 - 장 폴 사르트르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는 핵심 철학을 바탕으로 자유의지, 책임, 부조리를 탐구하고, 전쟁과 사회적 불의를 비판하며 인간관계와 도덕적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던진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앙가주망 지식인으로서 20세기 지적 담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가브리엘 마르셀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가브리엘 오노레 마르셀 |
| 로마자 표기 | Gabriel Honoré Marcel |
| 출생일 | 1889년 12월 7일 |
| 출생지 | 파리, 프랑스 |
| 사망일 | 1973년 10월 8일 |
| 사망지 | 파리, 프랑스 |
| 아버지 | 앙리 마르셀 |
| 학력 | |
| 모교 | 파리 대학교 |
| 철학적 배경 | |
| 주요 분야 | 서양 철학 |
| 시대 | 20세기 철학 |
| 학파/전통 | 기독교 실존주의 실존 현상학 해석학적 현상학 인격주의 |
| 주요 관심사 | 존재론 주관성 윤리학 |
| 주요 사상 | 다른 사람 (autrui) 구체 철학 (philosophie concrète) 인간을 정의하는 대조적인 방식으로서의 존재 대 소유 |
| 영향 | |
| 영향 받은 철학자 | 앙리 베르그송 마르틴 부버 카를 야스퍼스 쇠렌 키르케고르 프랑수아 모리아크 조시아 로이스 |
| 영향을 준 철학자 | 피에르 부탕 에마뉘엘 레비나스 워커 퍼시 장 발 폴 리쾨르 |
| 주요 저서 | |
| 대표 작품 | 존재의 신비 (1951) |
|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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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음 | ; 프랑스어: |
| 수상 | 에라스무스 상 (1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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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가브리엘 마르셀은 1889년 12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외교관이자 예술 애호가였고,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소르본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20세에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프랑스 적십자사에서 행방불명된 병사들의 정보를 찾는 일을 했다.[3][8] 1929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8] 반유대주의에 반대하고 비가톨릭 신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지지했다.
출판사 플롱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극작가로도 활동했고, 여러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2] 앙리 베르그송의 영향을 받아 장 폴 사르트르와 교류하며 실존주의와 접촉하기도 했으나, 이후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와는 다른 길을 걸으며 기독교적 실존주의를 탐구했다. 그는 신앙을 중심 축으로 한 기독교적인 실존자로서의 인간을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으로 파악했다. 1948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 대상, 1964년 독일 도서협회 평화상을 수상했다.
1973년 10월 8일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8]
2. 1. 유년기와 교육
마르셀은 1889년 12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로르 메이어는 그가 어릴 때 사망했고, 그는 삼촌과 아버지인 앙리 마르셀에게서 자랐다.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전권공사로 근무하던 곳으로 1년 동안 이주했다.[3]마르셀은 소르본 대학교에서 diplôme d'études supérieures|디플롬 데튀드 쉬페리외르프랑스어 (대략 석사 학위 논문에 해당)를 완성하고 1910년, 이례적으로 어린 20세의 나이에 철학 아그레가시옹 (교수 자격시험)을 취득했다. 1910년 그의 논문 제목은 ''콜리지와 셸링''(Coleridge et Schelling)이었다.[3]
2. 2. 제1차 세계 대전과 적십자 활동
제1차 세계 대전 중 마르셀은 프랑스 적십자사에서 봉사 활동에 참여하여 행방불명된 병사를 조사하는 활동을 했다. 이 경험은 마르셀이 실존에 눈을 뜨며 철학적 사색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8]2. 3. 가톨릭으로의 개종
마르셀은 1929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8] 전기 작가들은 이것이 너무나도 이른 부모의 죽음을 마음속에서 메우는 보완적인 의미를 지녔을 것이라고 해석한다.2. 4. 말년과 죽음
Gabriel Marcel|가브리엘 마르셀프랑스어은 1973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8]3. 철학 사상
마르셀은 실존을 기반으로 타자론, 신체론을 전개했으며, 그의 살롱에는 사르트르, 레비나스, 리쾨르 등 전후 프랑스 사상을 이끈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철학적 사색을 심화시켰다. 그의 사상은 메를로-퐁티의 신체론과 레비나스의 타자론의 선구가 되었다.[8]
그는 인간 상호작용에서 "타자"의 객관적인 특징을 인정하면서도, 두 개체가 서로의 주관성을 인식하는 "교감"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마르셀은 1913년에 쓴 희곡 "Le Palais de Sable"에서 다른 사람을 주체로 대하지 못하는 인물 로제 무아랑을 예로 들어 객관화의 문제를 지적했다. 희곡에서 무아랑은 두 딸을 자신의 마음속에 객관화된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며 주체로 대하지 않는다. 마르셀은 이러한 객관화가 "그가 가진 유일한 가치 있는 것을 빼앗아 그를 효과적으로 저하시킨다"고 지적한다.[4][5]
마르셀은 현대 물질주의와 기술 중심 사회에서 인간 주체성이 소멸되는 것에 대한 투쟁을 주요 주제로 삼았다. 그는 과학적 이기주의가 존재의 "신비"를 기술적인 "문제"와 "해결책"으로 대체하여, 인간 삶을 허황된 시나리오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마르셀에게 인간 주체는 기술 세계에 존재할 수 없으며, 대신 인간 객체로 대체된다. 그는 "대중 사회에 맞서는 인간" 등에서 기술이 과학의 내적 대화에서 주체가 자신의 위치를 "그"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특권적인 권위를 가지며, 그 결과 인간은 과학에 의해 자신의 소멸을 기뻐하도록 설득당한다고 주장했다.[6]
마르셀의 "신체론"은 자기 자신의 신체를 사고의 계기로 삼아 "나는 신체이다"라는 명제를 전개한다. 말년에는 이것을 타자론과 결부시켜, 죽은 자의 기억을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표현하며, 존재를 신비화하는 사상을 더욱 심화시켰다.[8]
3. 1. 실존주의와 기독교 실존주의
마르셀은 종종 초기 실존주의자 중 한 명으로 분류되지만, 장 폴 사르트르와 같은 무신론적 실존주의와는 거리를 두었다. 그는 쇠렌 키르케고르의 영향을 받아 "신소크라테스주의자"라는 명칭을 선호했다.[4] 마르셀은 신앙을 중심 축으로 한 기독교적인 실존자로서의 인간을 강조했다.앙리 베르그송의 영향을 받아 사르트르에게 접근하여 실존주의와 접촉하게 되었다. 그 후 사르트르의 실존 개념에 무신론적인 뉘앙스를 감지하고, 이탈하여 기독교 연구로 돌아왔다. 그는 신앙을 중심 축으로 한 기독교적인 실존자로서의 인간을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으로 파악하여 당시 프랑스의 실존적인 철학, 문학 풍조에서도 독특한 사상가로 알려졌다.[8]
3. 2. 문제와 신비
마르셀은 현대 물질주의와 기술 중심 사회에서 인간의 주체성이 사라지는 것을 경고했다. 그는 과학적 이기주의가 존재의 "신비"를 기술적인 "문제"와 "해결책"으로 바꾼다고 보았다. 마르셀에게 인간은 기술 세계에서 주체로 존재할 수 없으며, 객체로 대체될 뿐이다.[6] 그는 "대중 사회에 맞서는 인간" 등의 저서에서, 기술이 과학 담론에서 주체가 자신의 위치를 "그"로 받아들이게 하고, 결국 인간은 과학에 의해 자신의 소멸을 기뻐하도록 설득당한다고 주장했다.[6]3. 3. 소유와 존재
마르셀은 '소유(having)'와 '존재(being)'를 대립적인 관계로 보았다. 소유는 물질적이고 외적인 것에 대한 집착을 의미하는 반면, 존재는 인간의 내면적이고 영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그는 현대 사회가 소유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존재를 경시하는 경향을 비판했다.[6]마르셀은 현대 물질주의와 기술 중심 사회에서 인간의 주체성이 소멸되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그는 과학적 이기주의가 인간 삶의 "신비"를 기술적인 "문제"와 "해결책"으로 대체한다고 보았다. 마르셀에 따르면, 인간은 기술 세계에서 주체로 존재할 수 없고, 객체로 대체된다. 그는 저서 "대중 사회에 맞서는 인간" 등에서 기술이 과학의 권위를 통해 주체가 자신의 위치를 "그"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며, 결국 인간은 과학에 의해 자신의 소멸을 기뻐하도록 설득당한다고 주장했다.[6]
마르셀은 인간 상호작용에서 "타자"의 객관적인 특징을 인정하면서도, 두 개체가 서로의 주관성을 인식하는 "교감"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자신의 희곡 "Le Palais de Sable"을 예로 들어, 다른 사람을 주체로 대하지 못하는 인물 로제 무아랑을 통해 객관화의 문제를 지적했다. 무아랑은 자신의 딸들을 객관화된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며, 이는 "그가 가진 유일한 가치 있는 것을 빼앗아 그를 효과적으로 저하시킨다"는 결과를 낳는다.[4][5]
3. 4. 타자론과 상호주관성
마르셀은 타자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타자를 단순한 객체가 아닌, 나와 동등한 주체로 인식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두 개체가 서로의 주관성을 인식하고 교감하는 상태를 설명했다.[4] 마르셀은 자신의 희곡 "Le Palais de Sable"을 예로 들어, 타인을 주체로 대하지 못하는 경우를 설명했다. 희곡의 주인공 로제 무아랑은 자신의 딸들을 객관적인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는데, 마르셀은 이러한 객관화가 "그가 가진 유일한 가치 있는 것을 빼앗아 그를 효과적으로 저하시킨다"고 지적했다.[5]마르셀은 현대 물질주의와 기술 중심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주관성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과학기술이 인간을 객체로 대체하며, 인간은 자신의 소멸을 기뻐하도록 설득당한다고 주장했다.[6]
마르셀은 실존을 기반으로 타자론을 전개했으며, 그의 살롱에는 사르트르, 레비나스, 리쾨르 등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철학적 사색을 심화시켰다. 그의 사상은 메를로-퐁티의 신체론과 레비나스의 타자론의 선구가 되었다.[8] 그는 "나는 신체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신체론을 전개하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통해 죽은 자의 기억을 존재를 신비화하는 사상으로 심화시켰다.[8]
3. 5. 신체론
마르셀은 "나는 신체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신체를 단순한 물질적 대상이 아닌, 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보았다.[8] 그는 자기 자신의 신체를 사색의 기원으로 삼았으며, 이러한 생각은 메를로-퐁티의 신체론에 영향을 주었다.[8]3. 6. 기술 비판
마르셀은 현대 물질주의와 기술 중심 사회에서 인간 주체성이 소멸되는 것에 대한 투쟁을 주요 주제로 삼았다. 그는 과학적 이기주의가 존재의 "신비"를 기술적인 "문제"와 "해결책"으로 대체하여, 인간의 삶을 허황된 시나리오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마르셀은 인간 주체가 기술 세계에 존재할 수 없으며, 대신 인간은 객체로 대체된다고 보았다. 그가 "대중 사회에 맞서는 인간" 및 다른 저서에서 지적했듯이, 기술은 특권적인 권위를 통해 주체가 자신의 위치를 "그"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며, 결과적으로 인간은 과학에 의해 자신의 소멸을 기뻐하도록 설득당한다.[6]4. 주요 저서
가브리엘 마르셀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 출판 연도 | 제목 | 번역 | 출판사 |
|---|---|---|---|
| 1927 | 『형이상학 일기』 | 미시마 유기(三嶋唯義) | 춘추사, 1973 |
| 1935 | 『존재와 소유』 | 와타나베 히데(渡辺秀)·히로세 쿄이치로(広瀬京一郎) | 이상사, 1957 |
| 『존재와 소유』 | 와타나베 히데·히로세 쿄이치로·미시마 유기 / 신타 쇼조(信太正三) 외 | 춘추사, 1971 | |
| 『존재와 소유』 | 야마모토 신(山本信) | 중앙공론사, 1976 | |
| 1940 | 『거절에서 기원으로』 | 타케시타 케이지(竹下敬次)·이토 아키라(伊藤晃) | 춘추사, 1968 |
| 1945 | 『여행하는 인간』 | 야마자키 요이치로(山崎庸一郎)·시라이 켄사부로(白井健三郎)·이토 아키라 | 춘추사, 1968 |
| 1951 | 『존재의 신비 서설』 | 미네시마 아키오(峰島旭雄) | 이상사, 1963 |
| 『존재의 신비』 | 마츠나미 신사부로(松浪信三郎)·카케시타 에이이치로(掛下栄一郎) | 춘추사, 1977 | |
| 1951 | 『인간, 스스로에게 등지는 것』 | 고지마 타다히코(小島威彦)·신타 쇼조 | 창문사, 1958 |
| 1954 | 『지혜의 쇠퇴』 | 고마츠 겐(小松元) | 창문사, 1958 |
| 『지혜의 쇠퇴』 | 고지마 타다히코 | 명성대학출판부, 1980 | |
| 1955 | 『인간 이 물음받는 것』 | 고지마 타다히코 | 춘추사, 1967 |
| 1958 | 『상식의 쇠퇴』 | ||
| 1959 | 『현전과 불멸』 | ||
| 1964 | 『인간의 존엄』 | 미쿠모 나츠오(三雲夏生) | 춘추사, 1966 |
- 『하느님의 죽음과 인간』 1958
- 『기술시대에 있어서의 신성한 것』 춘추사 1966
- 『희곡·독약, 희곡·밀사, 연극의 시간』 춘추사 1970
- 『현대 기독교 사상총서 7 벤야예프/마르셀』 백수사 1974
- 『도정 어떤 각성으로?』 1976
- 『《대화》마르셀과 리쿠르(リクール)』 1979
- 『마르셀에 있어서의 인간 연구』 1980
- 『능선의 길』 2023
4. 1. 철학 저서
- '''존재와 객관성''' (1914)[9]
- '''형이상학 일기''' (1914-1923), 갈리마르 1927.
- '''존재와 소유''' (1918-1933). 오비에르, 1935.
- '''거절에서 간구로''' 갈리마르, 1940. (1967년 '''구체적 철학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재출판)
- '''호모 비아토르: 희망의 형이상학 서론.''' 오비에르, 1945.
- '''조시아 로이스(Josiah Royce)의 형이상학.''' 오비에르, 1945.
- '''존재의 신비에 대한 위치와 구체적 접근''' 루뱅, 1949.
- '''존재의 신비'''. 오비에르, 1951, 2권.
- '''인간 대 인간''' 1951, 재출판: 1968.
- '''지혜의 쇠퇴'''. 플롱, 1954.
- '''문제적인 인간'''. 오비에르, 1955.
- '''연극과 종교'''. 리옹, 1958.
- '''현존과 불멸'''. 플라마리옹, 1959.
- '''인간의 존엄성과 그 존재론적 토대'''. 오비에르, 1964.
- '''폴 리쾨르, 가브리엘 마르셀과의 대담'''. 오비에르, 1968, 재출판: 1999.
- '''비극적 지혜와 그 너머를 위하여'''. 플롱, 1968.
- '''어떤 각성을 향한 여정에서?''' 갈리마르, 1971.
-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폰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오비에르, 1971.
- '''폭력보다 더 결정적인 것'''. 플롱, 1971.
-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한 돌파구'''. 1973.
- '''피에르 부탕이 질문하는 가브리엘 마르셀''' 뒤에 '''존재의 신비에 대한 위치와 구체적 접근'''이 수록됨. 1977.
- '''너는 죽지 않으리라''', 2005.
주요 일본어 번역본은 『가브리엘 마르셀 저작집』(춘추사, 전9권)에 수록되어 있다. 아래는 원저 출간 연도 순이다.
| 출판 연도 | 제목 | 번역 | 출판사 |
|---|---|---|---|
| 1927 | 『형이상학 일기』 | 미시마 유기(三嶋唯義) | 춘추사, 1973 |
| 1935 | 『존재와 소유』 | 와타나베 히데(渡辺秀)·히로세 쿄이치로(広瀬京一郎) | 이상사, 1957 |
| 『존재와 소유』 | 와타나베 히데·히로세 쿄이치로·미시마 유기 / 신타 쇼조(信太正三) 외 | 춘추사, 1971 | |
| 『존재와 소유』 | 야마모토 신(山本信) | 중앙공론사, 1976 | |
| 1940 | 『거절에서 기원으로』 | 타케시타 케이지(竹下敬次)·이토 아키라(伊藤晃) | 춘추사, 1968 |
| 1945 | 『여행하는 인간』 | 야마자키 요이치로(山崎庸一郎)·시라이 켄사부로(白井健三郎)·이토 아키라 | 춘추사, 1968 |
| 1951 | 『존재의 신비 서설』 | 미네시마 아키오(峰島旭雄) | 이상사, 1963 |
| 『존재의 신비』 | 마츠나미 신사부로(松浪信三郎)·카케시타 에이이치로(掛下栄一郎) | 춘추사, 1977 | |
| 1951 | 『인간, 스스로에게 등지는 것』 | 고지마 타다히코(小島威彦)·신타 쇼조 | 창문사, 1958 |
| 1954 | 『지혜의 쇠퇴』 | 고마츠 겐(小松元) | 창문사, 1958 |
| 『지혜의 쇠퇴』 | 고지마 타다히코 | 명성대학출판부, 1980 | |
| 1955 | 『인간 이 물음받는 것』 | 고지마 타다히코 | 춘추사, 1967 |
| 1958 | 『상식의 쇠퇴』 | ||
| 1959 | 『현전과 불멸』 | ||
| 1964 | 『인간의 존엄』 | 미쿠모 나츠오(三雲夏生) | 춘추사, 1966 |
- 『하느님의 죽음과 인간』 1958
- 『기술시대에 있어서의 신성한 것』 춘추사 1966
- 『희곡·독약, 희곡·밀사, 연극의 시간』 춘추사 1970
- 『현대 기독교 사상총서 7 벤야예프/마르셀』 백수사 1974
- 『도정 어떤 각성으로?』 1976
- 『《대화》마르셀과 리쿠르(リクール)』 1979
- 『마르셀에 있어서의 인간 연구』 1980
- 『능선의 길』 2023
4. 2. 희곡
- Le Cœur des autres프랑스어, 타인의 심장, 파리, 그라세, 1921년
- Le Monde cassé프랑스어, 깨진 세계, 파리, 데클레 드 브뢰외르, 1933년
- Chemin de Crète프랑스어, 크레타의 길, 파리, 그라세, 1936년 - 프랑스 아카데미 폴 에르뷔 상 수상
- La Soif프랑스어, 갈증, 파리, 데클레 드 브뢰외르, 1938년, Les cœurs avides프랑스어, 탐욕스러운 심장들이라는 제목으로 라 타블 롱드, 1952년 재출판
5. 영향

마르셀은 매주 철학 토론 모임을 주최했는데, 이를 통해 장 발(Jean Wahl), 폴 리쾨르(Paul Ricœur),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와 같은 젊은 프랑스 철학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7] 그는 자신의 철학 논문이 아닌 희곡을 통해 대중에게 더 알려진 것에 대해 실망하기도 했다. 현상학자이자 토마스주의 철학자인 카롤 보이티와(후일 요한 바오로 2세가 됨)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보이티와는 기술 변화에 대한 비판에서 마르셀의 "존재"와 "소유"의 구분을 활용했다.[7]
마르셀은 실존을 기반으로 타자론, 신체론을 전개했으며, 그의 자택 살롱에는 사르트르, 레비나스, 리쾨르 등 전후 프랑스 사상을 이끈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철학적 사색을 심화시켰다.[8] 자신의 신체를 사색의 기원으로 삼고, 타자와의 엄격한 구분, 존재를 신비화하는 사상은 메를로퐁티의 신체론과 레비나스의 타자론의 선구가 되었다.[8]
그의 "신체론"은 자기 자신의 신체를 사고의 계기로 삼아 "나는 신체이다"라는 명제를 전개한다. 말년에는 이것을 타자론과 결부시켜, 죽은 자의 기억을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표현하며, 존재를 신비화하는 사상을 더욱 심화시켰다.[8]
참조
[1]
서적
Existential Phenomenology and the World of Ordinary Experience: An Introduction
University Press of America
[2]
웹사이트
Gabriel (-Honoré) Marcel
http://plato.stanfor[...]
[3]
서적
The Philosophy of Existentialism
https://archive.org/[...]
Citadel Press
[4]
서적
The Existential Background of Human Dignity
[5]
서적
Homo Viator
[6]
서적
Gabriel Marcel: The Mystery of Being
McGraw-Hill
1967
[7]
간행물
A Deep Amazement at Man's Worth and Dignity': Technology and the Person in Redemptor hominis
InterVarsity Press
[8]
서적
新訂版 倫理資料集 ソフィエ ~智を学び夢を育む~
清水書院
[9]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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