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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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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감리서는 1883년 부산항, 인천항, 원산항에 처음 설치된 감리아문에서 명칭이 변경된 기관으로, 개항장의 세관 관리 및 외국인 상업 활동을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895년 일시 폐지되었다가 1896년 재설치되었으며, 이후 웅기, 증남포, 군산포, 목포, 마산포, 성진, 용암포, 신의주 등 8개 항구와 평양 등 3개 개시장에 확대 설치되었다. 감리서는 1906년에 모두 폐지되었으며, 당시 조선의 외교적 자주성 확보에 기여했다.

2. 역사

1883년(고종 20년) 부산항, 인천항, 원산항에 감리아문이 처음 설치되었고, 이후 감리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감리서는 중간에 명칭 개칭, 일시 폐지, 재설치를 거쳤다. 이후 전국 8개 항구(웅기(경흥), 증남포, 군산포, 목포, 마산포, 성진, 용암포(신의주))와 3개 개시장(평양 등)에 확대 설치되었다가 1906년(광무 10년) 모두 폐지되었다.[1]

2. 1. 초기 감리서 (1883년~1895년)

1883년(고종 20년)에 부산항, 인천항, 원산항에 처음 감리아문이 설치되었으며, 이후 감리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감리서는 일시 폐지되었다가 다시 설치되기도 하였다.[1]

2. 2. 감리서 폐지와 지사서 (1895년~1896년)

1895년 갑오개혁으로 감리서가 폐지되자, 기존 감리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덕원(원산항)과 경흥(경흥항)에 지사서가 설치되었다.[6] 지사서는 1896년 1월에 설치되어 운영되다가, 그해 8월경 두 항구에 감리서가 다시 설치되면서 폐지되었다. 지사서의 기관장인 지사(知事)는 감리(監理)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였다.

2. 3. 감리서 재설치와 확장 (1896년~1906년)

1883년 부산항, 인천항, 원산항에 처음 감리아문이 설치되었고, 이후 감리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일시 폐지 후 재설치되었다. 1896년부터 1906년 사이 감리서는 전국적으로 확장되었는데, 개항장과 개시장에 설치되었다.[2]

구분명칭설치 연도폐지 연도소재지
개항장인천항 감리서 (인천 감리서)1883년, 1896년(재설치)1895년경기도 인천도호부(인천 제물포)
부산항 감리서 (동래 감리서)1883년, 1896년(재설치)1895년경상도 동래도호부(동래 부산포)
원산항 감리서 (덕원 감리서)1883년, 1896년(재설치)1895년함경도 덕원도호부(덕원 원산포)
경흥항 감리서 (경흥 감리서)1889년, 1896년(재설치)1895년함경도 경흥도호부(경흥 경흥진)
목포항 감리서 (무안 감리서)1897년1906년전라도 무안군(무안 목포진)
삼화항 감리서 (삼화 감리서)1897년1906년평안도 삼화군(삼화 증남포)[2]
군산항 감리서 (옥구 감리서)1900년1906년전라도 옥구군(옥구 군산포)
창원항 감리서 (창원 감리서)1900년1906년경상도 창원군(창원 마산포)
성진항 감리서 (성진 감리서)1900년1906년함경도 성진군(길주 성진)[3]
용천항 감리서 (용천 감리서)1905년1906년평안도 용천군(용천 용암포)
개시장회령 감리서1896년1906년함경도 회령도호부
평양 감리서1900년1906년평안도 평양부[4]
의주 감리서1905년1906년평안도 의주군


2. 4. 감리서 폐지 (1906년)

1883년(고종 20년) 부산항, 인천항, 원산항에 처음 감리아문을 설치했고, 이후 감리서로 명칭을 변경했다가 일시 폐지 후 재설치되었다. 1906년(광무 10년)에는 전국 8개 항구(웅기(경흥), 증남포, 군산포, 목포, 마산포, 성진, 용암포(신의주))와 3개 개시장(평양 등)에 설치되었던 감리서가 모두 폐지되었다.[1]

3. 임무

감리서는 개항장에 설치된 해관(세관)을 관리, 감독하고 개항장에서 외국인의 상업 활동 등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는 개항장 소재 각국 영사관에 대응하는 업무였다.[5]

3. 1. 세관 관리

개항장에 설치된 해관(세관)의 관리, 감독 업무를 수행하였다.[5] 또한 개항장에 있는 외국인의 상업 활동 등을 관리하였으며, 이는 개항장 소재 각국 영사관에 대응하는 업무였다.[5]

3. 2. 외국인 관리

감리서는 개항장에서 외국인의 상업 활동 등을 관리하였으며, 이는 개항장 소재 각국 영사관에 대응하는 업무였다.[5]

3. 3. 외교 업무

감리서는 개항장에서 외국인의 상업 활동 등을 관리하고, 개항장 소재 각국 영사관에 대응하는 업무를 수행했다.[5]

4. 영향

감리서는 설치되지 않아 한국 근대화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참조

[1] 문서 감리OO항통상사무(監理OO港通商事務)
[2] 문서 증남포(甑南浦)에서 진남포(鎭南浦)로 개칭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포특별시
[3] 문서 성진항 감리서 함경도 성진군 1902
[4] 문서 평양부 이아(二衙)
[5] 논문 조선 개항장 감리서의 성립 과정 (1883~1886) 2012
[6] 문서 인천항, 부산항의 감리서 기능 인천부 관찰사, 동래부 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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